겨울 오후의 햇살

… 그러니까 2009년 12월, 그리고 첫 토요일 오후 네시쯤 집 건너편 동산을 보고……

오래 전, 이 계절에 낡은 건물의 옥상에 있는 창고에서 몇 사람과 일을 했다. 그 창고는 연탄난로를 피워도 따스하지 않았다. 어느 날 오후 네시 쯤 혹시 불이 꺼진 것이 아닌가 하고 연통을 뽑아논 A4 두장 짜리만한 서쪽 창을 바라보았다.

조그만 창을 바라보자 사무실 안은 어둠 속에 가라앉고, 그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네모난 오후 햇살에 그만 추위에 지친 영혼의 한 쪽이 걸렸던 모양이다. 무중력의 시선으로 하루에 마지막으로 남은 그 햇빛을 침묵으로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창고에 있던 모두들 침묵 속을 서서히 유영하며 천장을 바라보거나 턱을 괴고 무중력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침내 창 가에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하자,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듯 깜빡깜빡 정신을 차리며 다시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우리는 오후 네시의 햇빛이 창 가에 몰려오는 시간이면, 무중력 상태에 빠져들었고 그 짧은 시간은 늘 그윽하고 나른했다.

오늘 창 밖의 동산으로 서쪽에서 놀러 온 햇빛도 그 날들을 닮은 것 같다.

20091205

This Post Has 7 Comments

  1. 위소보루

    전 오후 네시의 그 햇살을 떠올리면 중학교 시절이 떠오릅니다. 육상부였기에 다른 친구들이 연합고사를 준비할 때, 항상 운동장에서 스파이크를 신고 뛰었었는데 그 스파이크가 무척이나 발목에 무리가 갔었습니다. 스파이크를 벗고 두손에 쥐어지고 다시 출발선으로 향할 땐 학교가 항상 발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 기억이 나네요 ^^

    사진의 전선 줄의 기울어짐이 무척 맘에 듭니다. ^^

    1. 旅인

      사진의 전선줄은 아파트 앞 동 사이에 걸쳐진 케이블입니다. 아파트는 안나오도록 찍었지요.^^

      중학교 때 육상부였다면 고등학교 때는 어땠는지요? 운동부의 운동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2. 위소보루

      아 그렇군요 ^^ 그래도 볼수록 저 경계가 참 맘에 드네요 하하

      고등학교 때 서울로 왔고, 학교 특성상 운동부가 없었기에 운동을 계속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중학교 때로도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나마 육상은 개인 종목이라 선배들과 부딪힐 일이 없었기에 다른 운동부에 비해서는 편했던 것 같습니다 ^^

  2. 마가진

    창고안의 공간에 같은 감성이 담겨졌었나 봅니다.

    마지막 말씀에 드러나지 않는 반가움이 담겨 있는 듯 보입니다.^^;;

    1. 旅인

      저는 늘 석양빛을 좋아했습니다. 해가 뜨는 것보다 지는 것이 더욱 마음 속에 스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해가 지는 시간에는 모든 사람들이 나른해지고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3. 클리티에

    저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에 잠시 눈이 부신,
    맑고 차가운 겨울 날씨가 어찌나 좋은지.. ^^*

    여인님, 집에서 저렇게 가까이 산이 보이나요?
    엄청 가까이 있는듯 보여요. 부럽습니다..

    1. 旅인

      집 앞의 야트막한 동산은 50m 쯤 떨어져 있는데, 서울의 변두리에 살고 있는 관계로 동산과 봉우리가 경기도까지 쭉 이어지고, 야트막한 산과 동산 아래로 사람들이 서식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겨울의 차고 반짝이는 햇살을 좋아합니다.

마가진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