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 들떠있는 밤

어느 날부터인가 불면이 내게 다가왔다. 잠 못드는 불면이 아니라, 깨어나는 불면, 육신은 피곤하여 잠 속에서 뒤척이는데, 불쑥 깨어나 야비하게 고달픈 육신을 일으켜 세우는 정신의 쿠테타다.

불면증(insomnia)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깜짝 놀라 깨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두려워하는 내일이 대체 무엇이관데?

이러한 불면의 끝에 낮이면 기면증(narcolepsy)에 시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오늘이 되면 반복되는 일상으로 느슨해지고 그만 나는 가물가물 조는 것이다.

요 며칠동안 술을 마시고 얕은 잠을 잔 나의 시력은 흐릿하고, 늘 뭔가를 까먹고는 한다.

휴일에 견딜 수 없이 밀려드는 졸음 때문에 한두시간의 낮잠을 자다 깨어나면 오후가 창에 걸려있다. 때론 그런 오후가 너무도 막막하여 마치 수천년동안 자다 일어난 기분에 젖어들기도 한다.

아주 어렸을 적에도 그런 느낌이 종종 들었다.

낮잠을 곤하게 자고 난 후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

잠에서 깨어나 천장을 바라보았을 때, 담 밖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불에서 나는 냄새마저 익숙하지만, 분명 수천년의 세월을 지나오고 말았다는 느낌 속에, 어머니와 나를 아는 사람들 모두가 사라지고 나만 살아남아 어긋난 싯점으로 굴러 떨어졌다는 느낌, 그래서 너무 외롭다는 느낌, 그것 때문에 어리벙벙한 때에 어머니께서 곁에 와 “잘 잤니?”하고 물으면 그만 왈칵 쏟아져 내리던 그 슬픔 때문에 하염없이 엄마하고 울고 말았던 그 어느 날…

20091204

This Post Has 10 Comments

  1. 마가진

    술을 드신 뒤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 다음날 피곤하다고 합니다.

    …. 이따위 차가운 답을 달기엔 어머니의 “치맛자락”이 너무 따뜻합니다….
    오늘은 편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편히 주무십시오.^^;;

    1. 旅인

      요즘은 술을 마셔도 어느 정도 술김이 빠지고 난 후 잠을 자는데도 힘이 듭니다.

      예,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자야할 것 같습니다.

  2. 클리티에

    저도 가끔 이유없이 불면의 밤을 보내는 때가 있어요..

    멍하니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방 안에 홀로 누워 있다 보면
    어느새 나는 하나의 섬이 되어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해요.
    그럴때면 두려운 생각이 들어 온몸을 최대한 웅크린채 잠을 청하곤 하죠.

    불면이라는게 스트레스와 생각많음;의 이유가 많은것 같아요.

    참.. 머리맡에 깐 양파 놔두면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아로마 향도 좋구요..

    나쁜 불면 녀석 꼬옥 떼네시길 바랄께요~~

    1. 旅인

      아무래도 스트레스와 잡다한 생각 때문이겠지요?
      또 다량의 커피…

      하여간 문제가 많다니까요.

  3. 善水

    수천년의 세월을 지나오고 말았다는 느낌..
    술은 아무리 즐겁게 마셔도 푹 휴식하고 각성되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전 요즘에 사이다먹고 취하도록 연마하는 중입니다 크핫

    주말엔 가끔 다른 도시에서, 다른 햇살에 눈을 떠보시면 어떨까요?
    여행가면 잠도 잘오고용^^
    저는 칼슘을 대량복용해봤는데 좀 많이 도움이 되는것 같았습니다

    1. 旅인

      불행하게도 출장이나 여행을 떠나면 잠은 더 단축됩니다. 3시간 쯤 자다가 깨어나곤 합니다.
      여행가서 메모를 하는 시간은 보통 이른 새벽이라 제 여행이나 출장기록을 보면 꼭두새벽임을 아실 겁니다.
      칼슘 대량복용이라…?
      명심하겠습니다.

  4. luna

    수천년을 자다가 일어난 기분..
    어릴 적 낮잠을 자고난 뒤의 막막함이 그런 거였군요.
    뭔가 어긋난 것 같단 느낌에 울음부터 나왔었는데…

    1. 旅인

      루나님도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던 모양이네요. 예전에 어른들께서 얼빠져서 그런다고들 하셨는데…^^

  5. 위소보루

    전 정말 눕기만 하면 자는 스타일이라 어찌 보면 축복받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래서 그런지 30분 정도 잠을 뒤척일라치면 내가 왜 이럴까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거든요 하하하하

    전 출장가서는 최대한 빨리 잤습니다. 그 다음날에 대한 준비랄 것까진 없지만 스스로를 압박해서 일찍 자게 되더라구요.

    1. 旅인

      저도 잠 자는 것은 베개에 머리 만 묻으면 졸도하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몇시간 못자고 벌떡 깨어나는 조조각성증입니다.

      이것도 죽을 맛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