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부치는 글

어느덧 12월입니다. 이제 문풍지를 달고 계절이 지나는 아우성을 들으며 메마른 가지의 曲節마다 움트는 겨우눈의 꿈 속에 깃들어 저문 날들의 저편 뜰 안, 마른 낙엽 위로 내리는 눈발을 따라 서성이는 외로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그나마 해가 나고 따스합니다.

生이란 주는 것 없이 無感하고 피로한 것이어서, 늘 햇살 좋은 날이면 빨랫줄에 널어놓고 저 먼 곳으로 떠나고자 하였으나, 알고 보니 서로 미워할 처지는 아니었는지 이 놈이 삶이란 것이 저를 끌고 여기까지 왔나 봅니다. 제 육신은 아직도 쓸 만하나, 이 놈의 생이란 물건은 그동안 많이 절망하고 삭신은 삭았나봅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저는 생에 걸쳐두었던 희망이나 기대와 같은 것을 하나 둘씩 빼내 광 속 깊히 감추어 두곤 합니다.

창 가는 따스하나 몰아치는 추위는 이제부터 뼈에 사무칠 터, 오래된 책 위에 나무가지를 세우고 땅은 평평하고 하늘이 사발처럼 동그랗던 시절의 셈본을 공부합니다.

天空의 검붉은 장막 너머에 살던 제가 내려온 이 땅은 이상한 곳이라, 남이 밥을 먹어도 나의 배가 부르지 않고, 내가 웃고 뛰놀거나 가슴을 치며 울어도 남의 가슴에 슬픔이나 기쁨이 자라지 않는 유배의 땅입니다. 사람들 속으로 외롭고 배고픈 생애가 그림자 밑을 유랑하는 곳인지라, 제 몸 가득히 채우고 또 채우기 위하여 허기진 里程을 세우고 육중한 짐을 진 채 밤과 낮을 따라 먼 길을 다녔던 모양입니다.

태양의 황도를 따라 비칠거리며 마침내 당도한 곳은, 12월의 남은 햇빛이 반장짜리로 머무는 마당에 나가 있는 것입니다.

거친 바람에 떠돌다 찢어진 몸을 바들거리며 떠는 낙엽과 함께 저는 그대가 보내 준 오래된 편지를 태웁니다. 편지 속에는 제 생애에 부과된 찬란한 계명이 절반 쯤 섞여있을 터이지만, 어리석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계명을 어기고 삶에 적대하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폐기되지 않고 남은 계명은 오로지 죽지 않고 갈 데까지 가 보는 것입니다. 이 삼엄한 陋巷 위에 새겨지지 아니한 율법은 차라리 혹독하여 제 가슴은 갈 데까지 가 보자며 희열에 들떠 어쩔 줄 모릅니다.

이제부터 사랑과 추억은 저의 육신이 될 처지인지라, 고대의 화석처럼 근육은 굳고 그 위에 낡은 기억들이 낱낱이 새겨집니다. 제가 나의 후에 와 질기게 살아남을 자에게 당부할 일이란 風葬이요. 미루나무 가지에 육신을 널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과 나의 無緣함을 아무도 깨닫는 이 없이 저물어가는 생애가 늦은 오후에 붉게 타오르고 육신에 새겨진 그릇된 철자는 길거리에 떠도는 노래가락을 따라 배회하다가 紫微로 돌아가 空空과 함께 할 것입니다.

하오니 이제 남은 것은 가슴이 찢어지도록 벅차게 세상을 안고 겨울을 넘는 일입니다. 황량한 정원과 잎이 진 들, 거기에는 새들도 날개죽지에 목을 묻은 채 침묵하고, 살아있는 것들은 皮下의 살을 지펴 빙점을 넘을 것입니다. 동면하는 이 계절에 촛불의 심지를 돋우고 잃어버린 낱말들을 찾아 저는… 저의 罪에 대한 訴狀을 적어 당신에게 부칠 것입니다.

20091130

This Post Has 10 Comments

  1. 마가진

    역시 마지막과 끝맺음은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듯 합니다.
    깊어가던 계절은 이제 끝을 보이며 딱딱하게 굳습니다.
    얼마 후 다시 푸른 물이 돌아 새 세상이 열릴 때가지 이 시간을 즐겨야 할 것 같습니다.^^;

    1. 旅인

      이상하게 저는 이 계절이 좋습니다. 사물들이 흐려지고 조용해져 죽은 듯 웅크린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고 봄이 와 어느 날 불현듯 꽃이 피고 또 지는 것을 기다리는 그 시간도 좋습니다.

      하지만 추운 계절이니 늘 건강을 챙기시고요.

  2. 컴포지션

    벌써 2009년이 끝나가는 군요. 2009년 한해동안 대체 내가 무엇을 했는지 막연히 생각해 봅니다. 2010년을 준비해야겠네요.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흐릅니다. 공허하네요.

    1. 旅인

      너무 쉽게 한 해를 흘려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컴포지션님은 알차게 한 해를 보내신 것 같은데요?

      그리고 내년 준비를 알차게 하시기 바랍니다.

  3. 善水

    旅인님 저는 덕분에 더없이 따듯한 12월의 첫날입니다. ^^
    벅차게 세상을 안고 갈데까지 가보겠다는 말씀에 저도 덩달아 들뜨는것 같습니다.
    旅인님의 계절을 응원하고 그 시간들을 따라가다보면 이시간엔 어쩐지 가난한 마음이 되는것 같아 명상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글들도 살아있어 제 시선이 전해지는 것인지 자꾸 제게 말을 거는것 같단 말이죠 ㅋ
    좋은 아침입뉘다 ^.^

    1. 旅인

      예 좋은 아침입니다.
      때론 누군가를 향해서 쓰는 글들이 자신의 마음을 얹어놓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조금 남은 올해를 알뜰하게 보내고 싶기도 합니다.
      벌써 그곳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흘러넘치기 시작하겠지요?

  4. 클리티에

    시간은 한 해의 끝자락을 향해 힘차게 질주하고,
    우리들은 달랑 한 장 남은 달력 앞에 섰네요.

    지나간 일 년의 시간들이 마치 삶의 주마등인양 숨가쁘게
    스쳐 지나가네요.

    새롭게 시작된 12월은 즐거움과 행복한 날들로
    연결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1. 旅인

      12월에 들어서자 마자 술입니다. 좀 술 안마시고 조용히 한 해를 넘겼으면 싶은데, 왠 술자리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지…

      클리티에님은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좋아하는 계절을 알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5. 흰돌고래

    오늘 학교 가는 길에 개나리 몇 송이를 보았어요.. 이렇게 추운데도 어찌 그리 피어있는지!
    여인님! 남은 09년 마무리 잘 하시길 바라요. 저도 알차게 보내려고 고민고민 하는데, 고민으로만 끝날까봐 걱정이에요. ㅜㅜ

    다른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겨울이었음 좋겠어요.. *

    1. 旅인

      12월에 개나리라니… 세상의 날씨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흰돌고래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날은 추워도 마음은 따스한 겨울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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