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속으로 유폐

봄이 오고 가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눈멀어 있었거든요 그것이 슬픔이든 사랑이든 제 가슴에 노래가 흘러넘쳐 미칠 것만 같아 춤을 추었지요 그러니 저를 꼭 껴안아 주세요 제발

여름이 왔음을 지나가던 행인이 소근대며 말했다
장미가 저렇게 활짝 피었네
날은 맑았고 붉은 장미를 그제서야 보았다
오늘은 도시 위로 비가 내린다 유리창과 건물과 아파트와 우산과 사람과 도로 위로
우울함 때문에 빛바랜 그리움을 꺼내 무채색의 나날 속으로 먼지를 떨었다
꽃잎처럼 홀씨처럼 습기에 젖은 향기처럼

지나간 사랑의 이야기가 피어오를 무렵 먼 동네에서 마실 온 그는 눈물을 훔치며 그것은 인터메쪼지만 생애의 모든 것을 털어부어도 그만큼 슬플 수는 없다고 가슴 속을 더듬어 기어이
추억이라고 말했다
그의 나이는 막 오십이었다

노을이 와서 서창을 두드렸고 하오를 맞이하러 노예처럼 강 가로 끌려갔다
도시의 그림자와 하늘과 노을이 마침 강물에 녹아 대지의 끝을 향하여 서서히 흐르고 아이들이 둑을 따라 달리고 연을 날릴 때 하늘은 온갖 불순한 색깔을 풀어 저녁과 밤을 만들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어디에 계시며 어디로 가시는 길인가요
차마 그것을 알지 못한 나는
이 날들 속에서 외롭고 허무하기가 그지없어서
허물어진 신전의 뜰에서
경전을 펼쳐 광막한 길의 번지수를 찾고 있다가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말았다
영광도 수치도 없이 세월이 남기고 간 기나긴 족쇄에 묶인
시간의 노예요 좁은 골목과 낮은 처마 밑
그림자를 삼키며
지겹도록 익숙한 나날들을 살아가는 囚人인 나에게
지나가던 나그네가 방문을 두드리고
사막을 건너고 대양을 지나던 나날들 속에서
기나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먼 길을 가는 순례자인
당신을 보았다고 말했다
추억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당신의 가슴에서 피어나던
젊었던 향기와 긍지에 가득했던 당신의 눈동자일 뿐
당신의 입맞춤은 영원 속으로 스며들어
有限者인 나의 기억 속에서 더 이상 더듬을 수 없고
이렇게 저주받았고 타락했기에
샘물을 길어 몸을 씻어도 죄는 견고하며
제 5의 행성을 스쳐지나던 유성처럼 짧은 입맞춤의 기억으로
당신은 다시 광막한 우주를 밝히곤 했다

여기는 도시 집으로 돌아가 깜빡깜빡 형광등을 켜고 라면을 끓인 후 자정을 향한 뉴스가 끝날 즈음에 칫솔을 물고 시침을 조준한 다음 자리를 펴고 불을 끈 후 오늘 위에 눕는다 지친 세상이 밤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밤이 세상을 밟고 지나가는 소음이 간헐적으로 잠 속에 기어들어왔고 사이사이로 무의식과 자아가 뒤섞이며 아침을 잉태했고 내일이 아닌 영원한 오늘 속에 유폐되고 말았다

나에게 귀환이란 없었다

20091126

This Post Has 2 Comments

  1. 마가진

    여인님께선 혹 가족은 타지에 계시고 외지에서 근무하고 계신가요?

    오늘 글에선 다소의 지침과 살짝 눌러담는 그리움과 살풋 지겨워지는 일상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편하게 쉬시기 바랍니다.^^;;

    1. 旅인

      아닙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본 것은 한 이삼개월 밖에 안됩니다. 늘 가족과 함께 했기 때문에 한두달 정도는 떨어져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날 정도입니다.

      마지막 구절이 꼭 홀로 사는 홀아비같다는 느낌을 풍겼을 것 같습니다. ^^

      하지만 늘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것이 허전하고 지치는 것임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