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와 미로 그리고 금강경

Labyrinth/photos

아침 태양이 청동 칼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칼에는 이미 피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정말 믿을 수가 있겠어, 아리아드네?” 테세우스가 말했다. “미노타우로는 전혀 자신을 방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

아스테리온의 집에서…

1. 블로그에 미로를 설치하다

방대해진 포스트들을 데이타 베이스로 쓸 생각에 지역로그(Location)를 정리했다. 정리하다보니 Location이 마치 미로가 된 듯하다.

아스테리온의 집에서 보면, 미궁(labyrinthos)이란 거기에 들어선 자들을 혼미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스테리온 자신을 묶어두기 위한 것이다. 아스테리온이란 미노타우로스라고 불리운 고독한 괴물의 이름이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몰랐다. 왜냐하면 그는 유일무이하고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실타래을 잡고 미궁 속으로 들어간 테세우스는 아스테리온을 참수하고 아리아드네에게 돌아온다. 돌아온 그의 모습은 기괴하고 공허했으며, 의심에 가득차 있었다고 보르헤스는 보고하고 있다.

나도 반인반수의 몰골을 가리고자 미로를 설치하고, 유일무이한 존재로 익명의 세계 속에 자폐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내 이름은 旅인이 아니며, 한번도 불리어진 적이 없다.

2. 금강반야바라밀다경

이 經에 설치된 미로의 끝에서 공허를 마주하게 될 터인데, 마주하는 순간, 미로도 나(我)도 공허마저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렇게 이름한다고 금강경에는 쓰여있다.

3. 다시 논어에 도전하다

논어 20편 중 6편 옹야편에서 중단한 논어를 다시 시작했다. 공자가 꿈에 그리던 사문(斯文)을 그려볼 수 있을까?

20091116

* Asterion은 별이 빛나는 하늘이라는 뜻이다.

18 thoughts on “논어와 미로 그리고 금강경

    1. 드러나지 않는 익명성과 자신 만의 비밀들을 간직하고 싶어하는 의도적인 자폐가 아닐까 싶습니다.

  1. TV에서 였나 예전 미노타우루스는 그 시대에 가장 강한 검투사였으며 그 상징으로 황소의 심볼을 몸에 지니고, 무리의 장으로서 훈련을 동굴에서 했기에 이러한 전설이 생겼다는 설을 들었습니다.

    아스테리온이라는 이름이 별이 빛나는 하늘이라니 참 쓸쓸한 생각이 듭니다. 자기 자신을 가두기 위해, 혹은 스스로를 유폐하기 위해 설계된 미로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하늘밖에 없었을 이름없는 그의 이름이 한때 아스테리온이라는 사실이요

    1. 아스테리오스(아스테리온)는 크레타섬의 왕의 이름이었던 모양으로 미노스 왕의 아버지도 아스테리온이며, 미노스의 자식 중에 이 아스테리온(두번째 아내 파시파에가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와 정을 나누어 나온 자식)과 또 다른 아내 안드로게니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또 다른 아스테리온이 있습니다.

      아스테리온의 집은 라비린토스로 명장 다이달루스가 지었는데, 그의 딸 아라아드네를 위하여 실을 뽑아주었고 테세우스가 그 실타래를 갖고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을 빠져나오자, 실을 뽑아준 죄로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다이달루스는 자신이 만든 라비린토스에 갇힙니다.

      다이달루스는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만들어 아들 이카루스와 미궁을 탈출하는데,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충고를 듣지 않고 그만 너무 높이 날아 태양열에 밀랍이 녹는 바람에 그만 바다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니 이 미로에는 분명 지붕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2. 동서남북 사방이 막혔을 때
    마지막 열린 공간, 하늘을 보고 날개를 만들어 위로 날아 올라
    미궁을 탈출했던 이카루스와 다이달로스가 생각이 나네요..

    알 수 없는 미로 속에 헤매는 것이,
    내일이 확연한듯 하다가도, 내일 또한 알 수가 없는 우리 인생이 아닌가 싶어요..

    1. 이카루스의 이름은 참 멋있죠?

      그런데 그리스신화는 왜 그렇게 난잡한 것인지? 그토록 난잡한 신들을 믿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이성적이고 풍부한 문화를 만들어냈는지?

      아마도 추잡한 신들이 너희들은 우리처럼 살지 말라고 늘 이야기를 하는 모양입니다.

      이 이야기가 이카루스와 이어지는 것을 알고 야 이런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음, 그리고 혹시, 불자 화가이신 박항률 아세요?
    링크해서 보여드리고 싶은 그림이 있는데, 찾기가 쉽지가 않네요..
    여인님 글들을 읽고 있으면, 의연히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1. 작가의 이름은 몰랐지만, 몇 작품을 본 것 같습니다. 박항률씨의 홈피를 가보았더니 여인(제가 아니라)의 프로필 그림이 많이 있네요.

      그림이 단아하네요.

      링크된 그림은 예전에는 저와 비슷했을텐데… 요즘은 살이 올라서 뜅뜅한 중생입니다.

    2. 작품 이름을 빼 먹었네요. “생의 명상” 이에요..

      이 작품을 보고;;;;;;;;;;;;;;;;;;;;

      우리의 삶을 하나의 기나긴 항해로 볼때, 우리는 그 항해를 주도하고 있는 주체로 보았습니다. 주체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조건은 최소한 이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우리들에겐 하나의 거대의 짐이고, 자유의 주체는 이 고난을 헤쳐 나가야 하죠.. 그러나 우리에겐 몸서리 쳐지도록 무서운 현실이라는 벽이 주어져 있을 따름이고..

      나름대로 자율적이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저 밧줄, 저 노가, 삶의 끈처럼 해석 됐어요.. 한 없이 위태로워 보이지만,, 우리의 삶이 그러하겠지만,,그것을 부인하기 위해서 하루 하루를 엮어 나가려 하지만, 그것이 제 뜻대로 쉽게 따라오지는 않겠지만,,

      나름대로 자율적이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고 여겨지는 저 줄의 움직임이 태초의 희망, 꿈, 자유, 우리의 삶 자체로, 우리를 인도하는 하나의 삶의 구성요소가 아닐까 ,, 자유의 주체는 끊임없이 흔들리겠지만 앞으로, 앞으로 천천히 나가죠..그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후후.. 조악한 해석이 많이 길어졌네요.. 부끄럽습니다.. >_<

    3. 좋은 비평이며 좋은 대화를 이룰 수 있는 빌미가 되겠습니다. 클리티에님의 감상을 보고 나서 다시 한번 박항률씨의 작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마간산격으로 볼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보게 된 점, 감사합니다.

      박항률씨의 작품에는 새, 나비, 꽃 그리고 배와 촛불들이 인물과 함께 나오며, 이런 부제들이 뭔가 의미를 간직한 텍스트로 그림에 자리잡나 봅니다.

      배는 아마 니르바나에 이르기 위한 도구이지만 스님이 머리에 이고 있다는 것은 깨달음에 대한 집착을, 빈 배는 속세의 번뇌와 욕심들을 버린 출가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내관에 들어 시선이 없는 눈동자와 저 슬픔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클리티에님의 해석에 비하여 저의 해석이 몹시 고답적이라고 느껴지며, 텍스트 해석에 대한 방법에 대해서 저의 고답적인 방법보다 http://yeeryu.com/127 을 읽어보시면 클리티에님의 방식이 월등하심을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4. 너무 겸손하신 말씀이십니다..
      제가 쓰는 보잘 것 없는 글에 견주하시니, 부끄러움만 더해 가네요..

      여인님 글에서는 낙엽내음이 납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싱그러운 물기를 마음껏 머금었다가, 찬 공기 속에선
      색을 오그리고 떨굴줄 아는 낙엽의 따뜻하면서도 스산한 체념이 좋습니다.

      특히나 걸상 위의 녹슨 공책, 길 건너편 창고에, 이 카테고리에서 머물때면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르겠어요..

      도서관에서 무심코 빌린, 40년도 전에 발간 되었던, 누런 책장에서, 무심한
      세로 결 문장의 장막 사이 사이로 비추이는 푸르스름한 ‘한 때’의 내음이 납니다..

      저도 낙엽의 빛깔을 머금고 싶은데, 많은 시간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4. 로케이션을 보니 신기하네요..
    사용법을 배우고 갑니다. 저같은 경우는, Location이라고 해 놓아서 제가 지금 살고있는 곳으로만 해 놓았습니다. 시간날때 고쳐봐야겠네요.

    저희 아버님은 항상 저에게 논어를 읽어보라고 하시는데, 제대로 된 “논어”를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대체 어떠한 책을 구해야 하는 것인지 조언부탁드립니다. 🙂 행복한 하루되세요 🙂

    1. 한번 논어를 어줍잖은 한글번역보다 영어로 읽어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전 텍스트 해석에 있어서 스칼라 쉽이 중시되는 영미계열이 우리처럼 대충 해석하는 것보다 더 엄밀할지도 모르니까요.

  5. 주역을 읽어 볼 요량으로 책을 준비하고 아주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논어를 보신다는 말씀에 더 큰 관심이 갑니다.

    많은 성과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1. 역시 고무풍선기린님께서는 책 한권을 만나시는 것도 조심스럽게 접근하시는군요.

      주역이나 논어나 접근하기도 소화하기도 참으로 어려운 책인 것 같습니다.

      주역은 삼십년 넘게 보아도 알 수가 없고, 논어는 한문장 한문장에 깃든 삶의 물결괴 깊이를 함부로 재어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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