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속의 네가지 견해

如是滅度 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金剛經 大乘正宗分 中

금강경의 사상(四相)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말한다.

금강경 내에서 심심하면 반복되는 이 4가지 상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고 소리나는 대로 번역하거나, 자아라고 하는 생각, 개아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수명이라는 생각 등 번역자들마다 천차만별, 제멋대로 해석되고 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사상이 나오는 구절을 만나게 되면 무슨 소리인지 알지도 못하고 넘어가기 일쑤다. 그래서 보다 명료하게 해석해 보고자 한다,

정확한 개념을 알기 위하여 찾아보니 네가지의 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1. 相

금강경에 나오는 상(相)에는 3가지가 있다.

    – samjna : 앎, 관념, 인식, 생각, 견해 /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상
    – nimita : 형상, 모습의 뜻 / 보살은 상에 머물지 말고 보시해야 한다의 상
    – laksana : 특별한 모양이나 형태의 뜻 / 여래의 신상에서의 상

2. 四相

사상의 개념을 소승과 대승으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하지만 이 개념에 대해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가 없기 때문에 추론한 것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사상은 아무리 명료하게 추론해 내도 결국 그릇된 생각으로, 소승이나 대승이나 다 혁파되어야 하는 사고방식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금강경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짚고 넘어갈 수 밖에 없다.

○ 我   相 : atma-samjna
    – 소승 :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되는 ‘진아’나 신성이 있다는 견해
    – 대승 :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는 견해

○ 人   相 : pudgala-samjna
    – 소승 : 무너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어떤 ‘실체’가 개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견해
    – 대승 : 식별되는 눈 앞의 ‘대상’ 세계와 남들이 실재한다고 여기는 견해

○ 衆生相 : sattva-samjna
    – 소승 : 중생들의 ‘생명’을 주관하고 있는 어떤 원리가 들어 있다는 견해
    – 대승 : 중생을 중생이게 하는 무명의 ‘번뇌’가 실로 있다고 여기는 견해

○ 壽者相 : jiva-samjna
    – 소승 : 중생들에게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이 있다는 견해
    – 대승 : 어떤 경지를 깨쳤을 때에 그 ‘깨달음’을 실체화시키려는 견해

정리하면,

소승은 진아와 실체, 생명과 영혼이 없다는 관점이고, 대승은 나와 대상, 번뇌와 깨달음이 없다는 관점이다.

3. 번역

이렇게 한량없고 끝없는 중생을 제도하되 실제로는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이가 없느니라. 무슨 까닭이겠는가? 수보리야, 만약 어떤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어느 번역문에서 절취)

▷ 다른 번역의 예(물론 旅인의 번역이겠지요)

이와 같이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을 다 제도하지만, 실로 한 중생도 제도된 바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보살이 내가 있다는 생각, 대상 세계가 있다는 생각, 번뇌가 있다는 생각, 깨달음이 있다는 생각이 있다면 이는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 더 간략히 한다면,

이와 같이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을 다 제도하지만, 실로 한 중생도 제도된 바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보살이 내가, 중생들을, 번뇌로부터, 깨달음으로 인도했다는 생각이 있다면 이는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4. 결론

즉 제도의 주체인 나도 대상인 중생도 없고, 중생을 번뇌에 깃들게 하는 무명을 깨트려(滅)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度)는 것도 없다는 인식에 도달해야 보살이라는 것이다.

※ 참고 : 자아(atman), 개아(pudgala), 중생(sattva), 영혼(jiva)

This Post Has 8 Comments

  1. 旅인

    금강경을 읽고 있다. 읽으면 머리가 다람쥐 쳇바퀴돌듯 뱅글뱅글 돈다. 부처님과 수부티 장로가 수냐의 풍경을 말하고 있는데, 정작 空이라는 글자는 한글자도 보이지 않는다.

    1. lamp; 은

      에헤헤헤…
      뱅글뱅글…

      왠지모를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만드는 저 단어.
      뱅.글.뱅.글. ^^;

  2. 클리티에

    불경.. 좋은말이 참 많아요..
    금강경 개념 잘 풀이해주셔서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

    1. 旅인

      법구경이나 슈타니파하타의 경우는 좋은 말이 많고, 미란다왕문경과 같은 경우는 희랍의 사유와 이어져 있어서 그런지 어느 정도 이해는 되는데 그 외의 경전들은 너무 어렵습니다. 게다가 번역 상의 어려움까지 겹쳐져 더욱 어렵게 느껴집니다.

  3. 마가진

    계속 알아가고 계속 논하다보면
    결국 온전한 자아만이 존재하고
    그게 부처가 되고
    그게 “공”이 되는 것인가요?

    쉽게 정리를 해놓으셨지만
    역시 어렵군요.^^;;

    1. 旅인

      불교에서는 브라만교의 Atman(진아)마저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부처도, 여래도, 보살도, 번뇌도, 깨달음도 없다고 하네요.

      이 끝없는 부정의 너머에 어떤 진리가 있는지는 차마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짧은 반야심경에는 공이 7번이나 나오는데, 반야심경의 공과 같은 의미의 단어는 단어는 한번도 나오지 않고 허공에서 공이 두번, 다른 의미로 공이라는 단어가 쓰인 바, 그것만 쳐도 3번입니다.

      모든 것이 없으니, 불교는 깨달음을 얻어야 그 본의를 알 수 밖에 없는가 싶습니다.

      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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