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텍스트: 금강경

금강경을 읽기 위하여 민족사 불전간행회편의 금강경(정호영 옮김) 집어들었다. 뒤에 부록으로 실린 한문을 읽어가며 해석이 안되는 부분을 앞의 번역을 참고할까 했더니, 이 놈의 책의 번역이 이상하다.

일러두기를 보니, 책의 뒤의 한문은 구마라집의 것이되, 우리말 번역은 산스크리트본에서 번역된 나가오 간진(長尾雅人)의 일역과 에드워드 콘즈(E.Contz)의 영역본을 참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마라집의 글에 비하여 번쇄하다.

1. 구마라집의 역본을 참고한 글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依鉢, 洗足已, 敷座而坐.

<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 譯>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 급고독원에서 큰 비구 무리인 천이백오십인과 함께 계시었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진지드실 때가 되었으므로 가사를 입으시고 바리때를 드시고, 사위라는 큰 성에 들어가시와 그 성에서 차례로 밥을 비시었고, 돌아오셔서 공양을 마치신 뒤 가사와 바리때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여인의 참조역)

2. 민족사의 금강경의 번역문

다음과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1,250인의 큰 비구 승가와 수많은 위대한 보살들과 함께 슈라바스티(사위성)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핀다다(급고독장자)의 기원(祇園)에 계신 적이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바지를 입고 발우와 저고리를 들고는 탁발하기 위하여 큰 도시인 슈라바스티로 가셨다. 큰 도시인 슈라바스티에서 탁발을 하며 다니시고 공양을 마친 세존께서는, 오후에 탁발에서 돌아와 발우와 저고리를 정돈하고 두 발을 씻고, 가부좌하고 몸을 곧게 하여 마음을 눈 앞에 집중한 뒤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세존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세존의 두 발에 자신의 머리를 대고 예배하고는 세존 주위를 세 번 돈 후 한쪽에 앉았다.

(민족사의 번역문)

3. 당 현장의 역본을 참조한 글

如是我聞一時薄伽梵在室羅筏住誓多杯給孤獨園與大苾篘衆千二百五十人俱爾時世尊於茵初整理常服執持衣鉢入室羅筏大城乞食時薄伽梵於其城中行乞食已出還本處飯食訖收衣鉢洗足已於食後時敷如上座結加趺坐端身正願住對面念時諸苾篘來詣佛所到已頂禮世尊雙足右遶三匝退坐一面具壽善現亦於如是衆會中坐

<唐 三藏의 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 中>

다음과 같이 저는 들었습니다.

한때 석가모니(薄伽梵)께서 슈라바스티(室羅筏)의 수다타(誓多杯)의 급고독원에서 큰 비구(苾篘) 무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때 자리에서 이윽고 입던 옷을 가지런히 하시고 가사와 발우를 들고 슈라바스티의 큰 성으로 들어가 밥을 빌었습니다. 석가모니께서 그 성 중을 돌아다니며 걸식을 마치자, 성을 나와 본래 계셨던 자리로 돌아와 진지를 드신 다음,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씼으셨습니다. 공양을 마치신 후 펼친 자리에 앉아 결가부좌를 트시고 몸을 가다듬고 바로 하신 후 생각을 마주하시고자 했습니다.

그때 비구들이 부처께서 계신 곳으로 와서 머리를 숙여 두 발에 예를 드린 후 오른쪽으로 세 번 돈 후 돌아가 한 쪽에 앉았습니다. 수보리(壽善現) 역시 이와 같이 무리 가운데 앉아있었습니다.

(여인의 개판역)

4. 3개의 텍스트에 대한 생각

세 개의 텍스트를 놓고 비교해보면, 민족사의 해석과 당 현장의 글은 유사한 반면, 구마라집의 글은 금강경의 원문 텍스트 상에 차이가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구마라집의 글에 비하여 두 텍스트는 세세하고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든다.

이런 이유로 전통적으로 반야심경의 경우 당 현장의 글을 취하면서도, 금강경의 경우는 구마라집의 글이 널리 알려졌을 것 같다.

하지만, 두 텍스트에는 ‘마음을 눈 앞에 집중한 뒤…’와 해석하기가 까다로운 ‘願住對面念(맞은 편에 집중하는 것에 머무르고 싶어하다)…’라는 명상적인 용어가 있으나, 구마라집 역에는 없다.

반야심경에 소본(우리가 보는 일반적인 심경)과 대본(일반 경전식으로 편재가 되어 있는 조금 긴 심경)이 있는 것처럼, 이 금강경에도 소본과 대본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원 텍스트는 하나인데, 후일 경전을 가감하면서 이본이 생겨나고 하여 구마라집과 현장이 본 텍스트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어제 이 텍스트를 비교하다보니 재수좋게 고려대장경의 구마라집과 현장의 영인본 File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상호 비교해가며 금강경을 읽어보아야겠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반야심경의 경우는 뭔가 알듯 모를 듯 감이라도 잡히는데, 이 놈의 금강경은 늘 아득한 것이 시방 부처께서 무신 말씸을 하시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것이다.

20091109

참고 : 김훈 씨의 본 구절(법회인유분)에 대한 감상을 보시려면, 김훈과 김용옥을 참조

This Post Has 4 Comments

  1. 위소보루

    바루라고 하는 군요. 바릿대라고 알고 있었는데 같은 뜻이겠죠? 오전에 출장 정산하고 보고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오후에 여유시간이 남아 저것들을 해석해보니 역시 쉽지 않네요 ^^;

  2. 旅인

    바리때가 맞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쳐야겠네요.
    발우(鉢釪)라고 하기도 하고요.

    시간이 되신다면 아래의 현장의 글을 좀더 세밀하게 보아주십시요. 제가 번역을 엉망으로 한 것 같거든요.

  3. 지나가다가

    제 친구의 블로그에서 시작하여 건너고 건너다가 여인님의 댁까지 왔습니다. 금강경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주제넘게도 아는 척을 좀 해봅니다. 무례하다고 생각하시지만 말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가볍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칭 불자의 짧은 경험담으로 가볍게 들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아시고 계신 것처럼 금강경은 흔히 1품이 그 핵심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은 어떤 특별한 것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인님처럼 금강경에 대한 학문적인 지식은 거의 없습니다. 제 금강경에 대한 감상문은 그건 그저 글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금강경 뿐만 아니라 모든 경은 그것을 책으로 읽을 때는 그저 글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읽으며, 혹시 금강경을 철학서로 읽고 계신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체득한 자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경을 이해하고 나서 부처님의 말씀을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부처님의 말씀을 체득하고 나서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불경입니다. 정확하게 번역을 해서 이해하려고 드실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도무지 <모르겠다>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닐런지, 주제넘게 참견합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모든 경들은 결국 모두 같은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중생의 마음 하나 만을 놓고 설한 것이 팔만대장경입니다. 내 마음을 알고 나면 그제서야 제대로 읽히는 것이 경이기도 합니다.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수행의 시작이지요. 결례를 무릅쓰고 참견했습니다…

  4. 旅인

    어떻게 제가 문자선의 병에 들어있음을 아셨는지요?

    경에는 깨달은 후의 보임의 쓰임이나 결제를 해제한다는 의미도 있겠으나, 엄밀히 깨닫지 못한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말씀을 들어 진여를 밝히신 것(依言眞如)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안다(卽心是佛) 또한 경에서 나온 것으로 가르침이 없었다면 어찌 알겠으며, 팔만법문 또한 여래와 보살을 위하여 쓰여진 것이 아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보살의 길에 접어들게 하려는 부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따라서 모든 경전의 번역과 해석은 부처님의 일음을 하근기의 사람이라도 구하여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처음에는 손가락이 달인줄 알다가 마침내 달을 쳐다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무지랭이 육조께서 아무리 근기가 뛰어나다하여도 나무팔러가다 금강경을 듣기까지는 범부였지만, 인연이 뛰어나 사구게 하나로 단박에 깨우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깨달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금강경을 철학서로 읽는 것이 아닌가 하시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단지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좀 알고자 하는 것이며, 그 이해의 과정에서 잘 모르겠다는 것일 뿐이지, 철학서, 경전 등의 분별은 없다고 제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불교란 증험지를 추구하는 만큼 문자선을 떠나 수행에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님의 말씀에 적극 찬동하며, 우려해주시는 말씀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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