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놓고…

1.

어제 수종사를 갔다 온 후, 옹야편에서 그친 포스트를 끝내려고 논어를 다시 펼쳤다. 몇 구절을 읽고 나니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공자 생평의 기록이니 2500년전의 어록이다. 논어에는 단지 공자와 관련인물들의 대화 밖에 없으며, 그 대화도 전후 사정에 대한 설명도 없는 짧은 어록일 뿐이다.

이런 어록이 동아시아의 사유를 지배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논어를 읽으면 2500년 동안 인간들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논어는 이 세대의 비평서로써 하나도 진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당금에 만들어진 정치, 문화에 대한 인문학 서적의 사유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며, 몹시 신선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어는 대화이기에 논어 그 자체로 읽기가 어렵다. 모든 대화의 이면에는 그 대화를 있게 한 독특한 정황이 있는데, 그 정황이 포착되지 않을 경우 대화를 이해하기란 힘들다. 이러한 난점을 한대 이후의 주소(注疎 : 의미를 흐르게 하고 소통시킨다는 뜻)와 공자와 제자들의 행적에 대한 연구로 간신히 간신히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주희의 사서집주 작업은 이런 노력들의 집대성이란 의미에서 대단한 작업이다.

만약 사복음서가 만들어지지 않고, 동양의 사서집주와 같은 형식의 예수의 대화(Q-자료)를 바탕으로 주석의 형태로 발전해 왔다면, 기독교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보는 신약은 예수와 함께 한 사람들이 쓴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의 세대에 의해서 써진 문서들이다. 신약 중 가장 앞선 것으로 판단되는 편지서 중 바울의 서신 또한 기록될 당시의 편지서와 일치 여부에 대한 의문은 늘 남는 가운데, 바울이 쓴 것이 아닌 야고보서 이후의 편지서에 대해서는 여전히 작자미상이다. 4복음서 가운데, 요한복음은 사도요한의 저작이라고 주장되지만 그 또한 요한의 후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예수와 함께 하였던 열두사도가 예수에 대하여 기록하였다면, 그들의 기록 속의 예수는 어떤 존재였을까?

신약의 기록은 예수의 사후,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예수의 목소리를 듣고 회심한 바울의 무리에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실존한 한 인간 예수에 대한 기록이기보다, 신이 되어 바울에게 나타난 예수의 기록이 되는 것이다.

2.

머리가 아파 <쌩 떽쥐뻬리硏究>라는 책의 뒷 쪽에 있는 어린왕자를 읽으려고 꺼냈다가 사진을 몇장 찍고 어린왕자를 펼치지 못한 채, 앞의 연구모음을 읽는다.

그의 생애는 나란하다. 날기 위하여 태어났고 날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 죽었다는 것보다 날다가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는 것이 그의 생에는 맞는 이야기다.

쌩 떽쥐뻬리의 글 중…

대지가 우리 자신에 대해 온갖 책보다도 더 많이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대지가 우리에게 저항하니까. 인간은 장애물과 겨룰 때 비로소 제 자신을 발견하는 법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뤄내는 데는 연장이 필요하다. 대패라든가 쟁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농부는 경작을 하는 동안 자연에서 어떤 비밀을 조금씩 앗아 내는 것인데, 그가 끌어낸 바 진리는 보편적이다. 마찬가지로 항공로의 연장인 비행기가 사람을 모든 옛 문제로 끌어 넣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로 날은 나의 첫날밤의 인상이 지금도 내 눈 앞에 선하다. 들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등불만이 별 모양 깜박이던 캄캄한 밤.

그 하나하나가 이 어둠의 대양 속에도 인간의 의식이라는 기적이 깃들이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이 보금자리 속에서 사람들이 읽고 생각하고, 하소연을 뇌고 있는 것이다. 또 딴 집에서는 공간 재기에 애를 쓰고 앙드로메다좌의 성운에 대한 계산에 골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저기서는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띠엄띠엄 이들의 불은 저마다의 양식을 찾아 들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주 얌전한 시인의, 교원의, 목수의 등불까지도. 그러나 이 살아 있는 별들 중에는 또한 얼마나 닫혀진 창문들이며, 꺼진 별들이며, 잠들 사람들이 끼어 있을 것이다. ……

필요한 것은 서로 맺어지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들에 띠엄띠엄 타오르고 있는 이 불들의 그 어느 것들과 마음이 통하도록 해보아야 될 일이다.

<인간의 대지 중>

이 글을 읽자 부끄러워졌다. 나는 장애물과 겨뤄본 적이 없는 것 같았고, 지상에 깜빡이는 모든 빛들과 관계 맺기를 포기한 지 너무 오래되어 심장이 나무토막과 같다.

3.

일요일 새벽에 문득 깨어났을 때, 딸 아이가 이불 속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열은 내렸지만, 혹시나 해서 인근 종합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진을 했다.

오늘 출근하니 나의 핸드폰에 “신종플루 검사에서 맞는 것으로 나왔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맞다>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가, 몇번인가 곱씹어본 후 딸아이가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것을 간신히 알았다.

메시지를 받고 난 후, 나도 몸이 으쓸한 기분이 계속 든다.

This Post Has 6 Comments

  1. 善水

    헉 맞다가 좋은것이 아니군요 ㅠㅠ;; 조심하세요 일찍 퇴근하세요~~~ 저도 밤이 깊어부렀습니다 이제 밧데리가 다되서 텍스트가 읽히질 않습니다… 푹 쉬시고 얼른 쾌차하세요

    1. 여인

      밧데리라고 하여 컴터인줄 알았더니…
      푹 주무시고 충전하시기를

  2. 위소보루

    빨리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갈수록 무서워지네요 쩝. 여인님께서도 조심하시길.

    전 고등학생일때 왜 공자는 그런 고리타분한 말들, 다 알수 있는 것들을 써서 사람을 귀찮게 하는가하고 윤리 시간에 속으로 비판했더랬는데 지금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엔…뭐 그래도 간혹 고리타분함을 느끼긴 합니다만 ^^;

    1. 여인

      조심해야겠는데… 잘 피해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논어는 읽다가 중단하고 또 읽고 한지가 얼마되지 않습니다.

      거룩하게 되기爲聖) 위하여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빚어간 공자의 발자취에 경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3. 마가진

    아.. 따님의 나이가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여인님께서 많이 놀라셨겠군요.
    잘 치료하셔서 빨리 건강 회복하길 바랍니다.

    1. 여인

      고1인데…
      퇴근해 보니 난데아닌 공휴일을 늘어지게 즐기고 있는 풍경이 주악 펼쳐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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