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학적 질문

삼국유사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이야기를 보면 싣고 일본으로 돌아간다(負歸日本)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에서 일본(日本)이란 어디일까요?

참고>

신라 8대 왕 아달라 4년(AD157), 연오랑이 바닷가에 가서 해초를 따고 있는 데 바위가 있어 올라섰더니 그것이 일본으로 데려다 주었고(負歸日本), 그 곳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삼았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세오녀 또한 바닷가에서 바위에 올랐더니 일본으로 갔고 다시 연오랑의 귀비가 되었다. 그때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고, 일관이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내렸었는데, 이제 일본으로 가 버렸기 때문에 이런 변괴가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사신을 일본에 보내어 돌아오기를 청하니, 하늘의 뜻이라며 세오녀가 짠 비단을 주며 제사를 지내라고 한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니 빛이 돌아왔다고 한다.(삼국유사 紀異第一)

16 thoughts on “해석학적 질문

  1. 말그대로 일본! 이라고 하기에는 트릭에 걸릴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으니.. 그냥 지금의 일본이 아닐까 합니다. 생각해보니, 결국 일본왕은 한국의 해초따는 사람이군요..

    1. 저는 한국의 고전 번역의 실태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글을 올렸습니다. 저 글은 민음사간 삼국유사의 내용입니다.

      일본이라는 단어가 쓰여진 시점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사건의 발생시점인 아달라왕 4년(157년)과 일연이 삼국유사를 쓴 1281년 경의 싯점이 있습니다.

      이 두 시점 공히 일본이라는 단어가 지금의 Japan에 대한 우리들이 쓴 공식명칭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왜(倭) 또는 왜국이라는 명칭으로 조선 때까지 줄곧 써 왔습니다.

      또한 일본에서도 일본서기가 720년에 편찬되기는 했지만, 일본이라는 국호를 정한 것은 명료하지 않습니다.

      일본 내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백촌강 전투(백제가 멸망 후 일본에서 지원병을 보내 벌어졌던 전투) 이후 텐지천황이 국호를 왜국에서 일본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일본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었습니다. 또 일연 스님이 저 글을 썼던 당시에는 헤이안 시대(784~1185)가 끝난 시점으로 니혼이라고 왜놈들이 자기 나라를 부르긴 했으나, 승 일연에게는 왜국을 일본으로 부를 이유가 없는 관계로 뒤의 기사들에는 박제상 이야기 등에서는 일관되게 일본을 왜국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신화로 연오랑의 오는 까마귀로 태양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연오랑은 해, 세오녀는 달이라는 신화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해(日)의 근원(本)으로 갔다. 즉 해가 뜨는 곳으로 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해석은 負歸日本은 싣고 해뜨는 곳으로 갔다 라고 해석해야 맞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 상으로는 해와 달이 신라에 살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빛이 약해졌다. 즉 일식이나 월식과 같은 천문현상이 일어났는데, 사신을 해 뜨는 곳으로 가서 세오녀의 비단을 받아오니 빛이 다시 강해졌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大化の改新’の前、天智天皇二年(663)8月27日 ‘白村江の戦い’の後天智天皇が国号を其れまでの倭国から日本に改めたのが一般的に言われている説だと言われている。

    1. 요즘 쓸 것도 없고 해서 이런 장난들을 하고 있는데…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2. 여인님의 주석을 보니 일본으로 돌아간다에서 해의 근원지로 돌아간다라는 해석이 확실히 보다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해가 뜨는 동쪽에 위치한 곳은 당시 한반도 내에서는 신라였는데 그보다 더 동쪽에 있는 일본을 지칭함이 아니었을까라는 좁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만 그건 뭐 제가 봐도 억지 논리인 것 같네요

    이런 고문의 해석은 정말 쉬운 것이 아니군요. ^^;

    1. 해 뜨는 곳이 일본일지도 모르지만, 실체로서의 일본과 신화 속의 일본은 분리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문의 해석은 아직도 사서집주의 주석이 계속 비판되고 있는 점을 보아도 쉬운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3. 아참! 위에서는 두가지 싯점이 있다고 했는데, 제3의 싯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해석(번역)의 싯점입니다. 번역자는 바로 자신의 시대에서 오래전의 문서를 번역하게 되는데, 자신들이 쓰는 술어와 같은 단어를 보게 되면 분석을 하지 않고 자신이 쓰는 술어와 동일하다고 인식합니다.

    단적인 예로 우리가 실학의 대가로 알고 있는 다산에게 “실학에 대해서 아십니까?”하고 물으면, 다산은 “실학이 뭔데요?”라고 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실학이란 우리가 조선 후기의 실용주의적인 학문을 한 학자들에게 우리가 붙여준 이름에 불과한 것이지, 그들이 실학이라는 것을 추구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해의 지평>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 그 기록 당시의 정황으로 <이해의 지평>을 쉬프트시켜야 좀더 이해가 정확해진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승 일연의 경험과 지식을 <추체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소설을 읽을 때에 작가의 생몰연대와 당시에 벌어졌던 사건들, 작품의 배경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작품에 접근해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추체험의 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1. 마자요! 마자요!! ^^
      문학, 예술, 철학 모두 그래요.
      이름이 나중에.. 붙..여..

      어? 또 뭔가 쓰윽~ 지나갔는데 뭐죠? ^^;

    1. 퇴근 후 대만의 고객과 함께 한 잔하다보니 큰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음씨 좋을 것 같은 대만 고객의 주법에 휘말려 죽기 일보 전까지 음주. 어제는 깨어나 잠시 어디를 갔다 온 후 계속 잠, 잠, 잠 새벽에 깨어났다가 다시 잠. 이제 깨어났습니다.

  4. 어릴 때 읽은 책에서는 일본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았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렇군요.
    한참 후의 임진왜란에서조차 일본이란 말은 없었던 것 같으니까요..

    1. 아마 우리의 기록 속에 일본이라는 국명이 나온 것은 구한말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임란 후의 에도막부와 외교적인 문서를 작성한다면, 국가의 대표성을 지니지 못하는 쇼군과의 문서에는 국명보다 정권이 우선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중앙집권적 왕조와 조각난 봉건적 막부와 번주체제는 서로 사맞지 않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울릉도와 독도의 문서도 우리나라와 번주들 간의 문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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