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의 끝

남종으로 가자면 저 남쪽 강으로 가서 돛을 내린 배를 타야 한다. 남한강은 충주로 와서 북서행한다. 남한강이 끝나는 여울이 남종(南終)이란다. 종여울이라 부른다고 두물머리를 지나 북한강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수종사(水鐘寺)의 종소리와 연결지을 수는 없다.

팔당호의 저 편 호안을 보면 날이 맑아도, 비가 와도 슬프긴 마찬가지다. 건너야 할 것 같고, 풍경은 손에 닿을 듯 한데 강의 흐름은 먹먹하게 차오를 뿐이다.

이제 두물머리에서 더 이상 강은 합하지 않는다. 흘러가야 하는 강은 그냥 팔당호에 잠기고 물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곳이 여울의 끝, 이 곳 남종이다.

강의 북안, 젊은 다산이 한양으로 가기 위하여 배를 탔던 나루는 이미 팔당호가 삼켜버렸을 터이다. 마재에 있는 여유당은 물안개 너머로 보이지 않는다.

슬프다는 것은, 산이 물을 건너지 못하고 강의 저편에서 서성이는 탓이 아니라, 남종에서 팔당호를 따라 차를 달려 귀여리를 지나 수청리에 이르면 남한강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상이 낮아지는지 간헐적으로 모래톱 위로 짙은 나무가지가 보인다. 풍경은 한가하여 오히려 낯설기까지 하다.

좁은 노변에 차를 세우고 강을 내려다 보면, 막연하게 가슴에 차오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감정을 최초로 감지했던 어느 날, 북한강에 걸쳐진 어느 다리 위에서, 침묵이 느닷없이 던져주었던 장대한 화음 속으로 나는 침몰하고 있었다. 세상은 더욱 모호해지고,나의 가슴 속에 차오르던 단일한 감정이 사랑인지조차 몰라서 그냥 그녀를 안으면 그냥 울 것 같았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은 오전의 햇살을 받아 명멸하고 있었고 동쪽의 강의 끝자락은 짙은 산맥의 그림자 속에 지워져 갔다.

이후 강의 북안에서 남쪽을 바라보기 보다, 북쪽을 바라보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운심리에서 우회전, 집으로 가기 위하여 퇴촌으로 방향을 잡는다.

집으로 돌아가도 식구들은 휴일의 아침 잠에 빠져 있을 것이고, 나는 또 무료하고 끈적거리는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리모컨을 손에 든 채 하루를 보낼 것이다.

20091028에 쓰다.

This Post Has 5 Comments

  1. 여인

    여유당은 다산 생가의 당호다. 다산은 정조가 죽은 후 정세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당호를 여유당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노자의 與兮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에서 왔다고 한다. 망설임이여 겨울에 개울을 건너듯 하고, 두려워함이여 둘러싼 이웃을 무서워 하듯 하라로,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2. 마가진

    고고히 흐르는 강물을 보노라면
    감정이 참 많이 짧은 시간동안 변하는 것 같습니다.
    강물은 아무 말이 없어도 사람들이 각각 숨겨둔 감정을
    끄집어 내는 듯 하더군요.

    1. 여인

      흐르는 물은 험하기 때문에 마음을 침울하게 하고, 고인 물은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강도 아니고 호수도 아닌 팔당호에 가서 바라보는 풍경은 무슨 심사를 불러일으켰을까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에 보는 팔당호는 고요합니다.

  3. 다산 생가에 가셨군요. 하하. 내 사랑 다산..
    거기까지 가셨으면서 수종사를 아니가시다니.. 아쉬워라..

    1. 旅인

      다산 생가는 남종에서 팔당호 건너편에 있습니다. 다산 생가는 몇번 가 보았지만, 수종사라는 곳은 몰랐기에…

      다산의 생가까지 저희 집에서는 30분 쯤?

      팔당호가 없었다면 여유당과 한강은 꽤 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소설 목민심서, 박석무님의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등을 읽어도 도무지 다산의 모습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다산의 학문에 대하여 잘 정리된 책이 있다면 좋을텐데, 아직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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