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기대어 살다

증오조차 하지 않고 神을 믿는다는 것은 놀랍다. 겨울로 가는 새벽의 숲은 흐릿하다. 나는 나의 생을 앞에 놓고 세상을 마주 한다. 삶이란 쌓아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모하기 위한 것이란 이야기를 간신히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늦은 가을의 창 밖에는 새들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단지 차들의 바퀴가 도로를 맹렬한 속도로 구르는 소리, 눅눅한 새벽안개 냄새, 먼 곳으로 가고 싶다. 오늘은 해가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수종사로 가는 것은 내일 아침까지 잠시 미뤄두기로 하자.

생에 퍼부어지는 나날들을 환희로 맞이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에 대한 애착을 던져버렸는지도 모른다. 혹은 너무 많은 것에 집착함으로써 가슴 속에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는 지도 모른다.

때로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이 세상과 내가 결별하여 함께 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 때문이 아니라, 자살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때로 자살을 생각할 미미한 이유마저 지닌 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요 며칠동안 줄곧 이천년 전에 사라진 어느 사내에 대해서 줄곧 생각하고 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회의를 주재한 후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의 실종에 대해서 여러가지 추측을 할 수 있지만, 아무 것도 확인되지는 않았다. 후일 그에게서 편지가 왔지만, 최근에는 그가 쓴 편지가 아닐 것이라고 한다.

낮이 되자 흐릿한 대기 중에 알전구 모양의 태양이 떴다. 그런 해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희랍에 대한 경탄은 추잡하고 타락한 신들과 함께 살면서도, 자신들의 신에 대하여 비난하기 보다는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자연계의 이법을 찾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실한 희랍인들의 삶의 태도로 인하여 마침내 신들은 신화 속에 매몰되었고, 인간이 신들보다 고매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였다.

낮잠을 잤다. 천년보다 더 길게 잔 것 같다. 정신과 영혼이 우주의 한 구석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반짝 깨어났다. 내가 어디있는지를 환기하기 위하여 꽤 오랫동안 주변을 살펴야 했다.

이미 오후 네시를 지났고 나의 게으른 하루 또한 저물고 있다.

그래! 나는 이 세상에 기대어 살고 있다. 그냥!

20091024

This Post Has 7 Comments

  1. lamp; 은

    “파리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지겠니.
    조용히,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리고 정당하게 절망하겠지.”
    라는 말이 가끔씩 생각나는데 절망까지는 아니라해도 조용히,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리고 정.당.하.게. 여기서 딱! 걸려 무릎 까지고 나서야 아차!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어쩌면 그들은 절망조차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음~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1. 여인

      인간들이 하는 말처럼 믿지 못할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의 범위와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은 더더욱 믿을 것이 못됩니다.

      오늘 아침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고독이 우리를 핍박할 때야말로 우리는 자유에 조금 다가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철학적인 사유가 아니라 일상적인 사유 속에서…

    1. 여인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여진히 날은 안개와 같은 것에 감싸여 있었고, 또 늦잠을 잤고 차에서 내려 수종사까지 걸어올라가야 한다는 것 등등으로 가지 못할 수만가지 이유를 만든 끝에 집에서 그냥 보냈습니다.

    2. 아까워라.. 안개가 있을 때는.. 정말 말못하게 아름다운 절인데… 차를 가져가시면 걸어올라가지 않아도 되는데요..

    3. 여인

      그럼 11월에 가 보면 안개가 더욱 짙겠네요. 게으른 것이 문제라니까, 에그

lamp; 은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