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무엇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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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 오면 누른 황혼에 젖어가는 푸른 하늘을 사분지 삼쯤 보리라. 들에서 담배를 피워도 무방할 듯하다. 땀에 절었던 지난 여름의 붉디붉은 욕정은 청바지 위에 감추어지고 지하로 내려간 일상은 나머지 사분지 일. 생의 열기와 그 차디참을 온전히 알기까지 가을은 깊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의 영육이 음욕에 젖어가는 것을 가벼운 기분으로 바라보았으되, 하늘이 이처럼 너른 것은 양식과 열매가 땅에 떨어져 인자의 배를 채우고 홑겹으로 살아가던 생명들이 죽어 바람처럼 사라지기 때문. 낡아빠진 나의 영혼을 뒤덮는 죽음으로 찬란하고 고요한 계절의 이야기며! 너의 속살거림이 그 날 오후의 햇빛처럼 드넓고 대지처럼 밝겠거니와 떨어져 내린 것들과 사멸하는 것들을 밟으며 이 계절을 건너는 것이 그윽하기만 할까?

시월이 가도 십일월은 오지 않는 것.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달력이 시월로 그늘과 먼지 속에 바래고 있을 때, 첫눈을 왔을 뿐. 기다림은 아무런 이유를 가질 수 없었다. 불면하기 보다 내일의 일용할 차비와 점심값과 담뱃값, 그리고 허다한 것과 손수건을 호주머니에 채워놓고 그냥 자기로 하자. 최초의 입맞춤의 붉었던 기억이여, 안녕! 그리고 자정 뉴스도, 자살한 어느 걸인의 소줏병도, 안녕! 너 불면도, 안녕!

들창은 있으되, 문은 닫혔고 외로움은 잊은 지 오래. 망각이 파먹고 채워지지 않는 십일월의 그 날들을 위하여 아득한 여름을 추억하거나 아니면 까마득한 봄을 기다리며 신전의 문턱에 앉아 계시록의 마지막 장을 찢곤 했다. 누구든 이 세상에 더할 것이나 깎아 내릴 것이 한 자 한 구도 없다는 서글픈 묵시의 지루한 강박은 살에 박힌 가시처럼 따가웠고 진물이 흘렀기에 강 가로 나가 노예들의 노래를 불렀다.

이 계절은 아스러지게 포옹해야 하거나 사무치게 외로워야 하고, 긴긴 겨울을 젊음과 사랑과 진실처럼 무료한 것들을 씹어 삼키고자 곳간에 양식을 그득 채웠노니, 은행나무 잎이 바래어 은빛으로 먼지가 되는 그 날까지 차디찬 빙점 속으로 가을을 아로새겨야 한다. 그래 그것을 사랑이라고 했다. 안아도 채워지지 않고 겉은 뜨거워도 그 안은 늘 차디찬 것. 허무해서 목말라하며 기다려 온 이름을. 허무가 되어버릴 그 이름을……

20061019

This Post Has 2 Comments

  1. 旅인

    [목련]
    무엇을 위하여!?
    내게 사랑은 뿌리내리기는 쉽지만 잘라내기는 어려운듯,
    힘겹습니다.
    마음으로만 조용히 품어온 사랑이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이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할까요??
    이 또한 거짓입니다,거짓속에 진실도 있겠고요.
    이밤은 우리 여인님의 글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언제제가꼭,업고갈글들입니다]

    [여인]
    마음 속에 자리잡는 것들을 가지치기가 어렵다 보니, 저희들의 마음을 좁고 둔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가을은 우리가 덮어놓았던 추억과 잃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불러일으켜 세우기에 더욱 쓸쓸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목련]
    오늘은 마음이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에요.
    내가 왜이러는거죠^^*
    오래 못살려고 그러는걸까요?
    아님,반데로 오래오래 살려고 이런맘일까요??
    우리 여인님..항상 감사드리면서..기쁘고 소망의 찬 휴일 되세요^^*

    [여인]
    즐거운 휴일이 되시길…
    공중에 붕떠있는 느낌이라니까 아무튼 좋은 기분인 것 같습니다.
    그럼 아마 오래 사실듯…
    오늘 집 뒷산에 올랐더니 아카시아 잎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더군요. 엄연한 가을인 듯 싶습니다. 공기도 선선하고 날도 참 맑았습니다.

    [목련]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수 없는
    아름다운 날입니다.
    많이 바쁘셔두 이 목련을 잊지는 마소서!.
    흐흣,,이말농담인것아시지요!.
    온 산과 들에

    [여인]
    어찌 잊겠습니까?
    붉은 마음을 많이 채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좀 잠수를 하였습니다.

  2. 旅인

    다리우스 08.12.14. 15:28
    시월의 노래를 좀 더 읽어 보렵니다. 가을의 예찬인지 생에 대한 담담한 관조의 눈빛인지, 지나간 여름의 무더움에 대한 허망함을 되짚고저 함인지,,,아니면 작고 별거 아닌듯 주어진 일상에 대한 끝없는 긍정인지를,,,
    ┗ 旅인 08.12.15. 10:21
    그때의 그 기분인지라, 지금 제가 보아도 어떤 생각 속에 쓰여진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저도 이제 한낱 독자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집시바이올린 08.12.15. 03:45
    여인님의 글은 씹으면 씹을수록 쫄깃쫄깃하여 감칠맛이 납니다. 늘, 새롭습니다.
    ┗ 旅인 08.12.15. 10:23
    집시님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기쁘기가 ^_________^(너무 짧은가?)

    샤론 08.12.15. 08:52
    지면배치가 새로워서 좋습니다..멋진 구성에 멋진시를 잘 감상합니다…
    ┗ 旅인 08.12.15. 10:24
    카페의 글 폭이 너무 넓어, 저는 항상 태그로 폭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다리우스 08.12.15. 14:22
    헉스 태그?
    ┗ 旅인 08.12.15. 15:36
    제 글에 무단복사 금지가 안되어 있어서 우측 클릭하여 소스보기를 하면 HTML 문서가 보일 것입니다. 거기에 본 문장난을 보시면 몹시 간단한 태그만 달려있음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건 08.12.15. 14:29
    잔잔한 나래이터의 음성으로……차분하게…말하고 있지만…시월이 담은 의미와 주제는…육중하게 밀려옵니다…여인 님 감사합니다…^^
    ┗ 旅인 08.12.15. 15:38
    어 그런가요? 저도 다시 읽어보니 목소리가 조용하네요, 덕분에 다시 느꼈습니다. 고맙습니다.

    truth 09.06.22. 01:15
    슬프네요..역시 슬픕니다..그래도 이러하게나마 시간을 허락받고 대할수있음이 감사하구요..참…귀하십니다..
    ┗ 旅인 09.06.23. 14:37
    너무 슬퍼마십시요. 아마 이 글을 썼을 때 제 마음이 허허로왔나 봅니다. 텅빈 마음이 뭔가 채울 수 있는 것을 기다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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