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시절

1. 면접실에서

어제는 하루종일 면접을 보느라고 사람들과 씨름을 했다.

신입사원 면접을 처음보았을 때 그들을 평가하기가 두려웠다. 만들어진 질문에 순식간에 답하는 그들의 초조를 뚫고 사람의 능력이나 인격을 갈파해 내기란 힘든 것이다.

해가 지나면서 경험도 쌓이다 보니 처음과 같은 두려움은 감해지는 대신, 당락이란 운일수 밖에 없다는 값싼 생각에 머물게 된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면접실로 쏟아져 들어오는 저들을 감당하기에 시간은 짧고, 체력은 부친다.

골방에 갇혀, 3명씩 20회, 60명을 하루종일 면접본다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능력을 보고 뽑으라고 하지만, 업무의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다. 서로 하루종일 눈을 맞추고 일하는 현장에선 남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희생할 줄 알고, 때론 자신의 시간을 소비해가며 의미가 없는 것이 뻔한 보고서를 만드는 미련함도 필요하며, 동료가 술 마시자고 하면 피곤해도 자리를 함께 할 수 있고, 팀장이 터무니없는 지시를 내려도 하는 척해보는 우직함이 필요하다. 능력을 요구하기엔 상사는 무능하고, 중구난방 개인의 능력을 흡수할 조직적 역량 또한 회사에는 없다. 회사에서 특정 능력을 요구할 경우, 직원들에게 그런 능력은 언제나 부족하다.

정작 성격이나 됨됨이를 알기에는 면접시간은 너무 짧고, 면접장소는 살벌한 긴장감으로 똘똘 뭉쳐있다.

저들의 능력을 평가할 재간이 나에게 제한되어 있는 만큼, 나의 평가는 피상적이다. 붙고 떨어지고는 저들의 인격이나 능력이 아닌, 면접 그 순간의 기지와 운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면접을 보고 나면 늘 씁쓸하다.

나의 펜끝에 몇십명의 밥 그릇이 깨박나겠지만, 회사가 요구하는 기대 수준 또한 맞출 수도 없다는 공허함은 늘 남게 마련이다.

우리 그룹의 대졸 신입사원 공채 경쟁율은 70 대 1 이라고 한다. 끔찍한 경쟁율이다.

파릇한 신입사원으로 넥타이를 꼬아매고 회사에 들어서자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돈 주고 하는 일은 뭐든 재미있지만, 돈 받고 하는 일은 뭐든 재미없다.”

하지만 돈 주고 받는 일이 없는 백수는 지겹다.

2. 산업구조조정

어제 면접을 보고 퇴근하니 몸이 무겁기가 천근이다. 그제는 직원들과 회식을 한 후 집에 들어가니 자정을 넘었고, 면접에 신경이 날이 섰는지 퇴근길 지하철에선 진땀이 났다.

하지만 면접을 보고 나면 한국의 인력수급에 늘 걱정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산업구조조정이라는 말이 한동안 회자되었다. 그러면서도 산업구조조정을 어떻게 해야만 하지, 산업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원인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그에 대한 반성적인 접근을 한 학자는 강철규 씨(당시 KIET연구원) 정도였다.

그는 산업구조조정은 비교우위에 입각한다고 했다.

다른 학자들이 산업구조조정이 경제나 기업의 성장과 발전의 동력이라고 낭만적으로 생각한 반면, 강 박사는 산업구조조정을 못할 경우 그 산업이 외국과의 비교우위에 있어서 경쟁열세에 노출되면 도산할 수 밖에 없다고 음울한 논리를 전개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는 산업구조조정이 경공업에서 중공업 등으로 진전되는 것 이외에 산업 내 구조조정도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섬유산업이 중국 등에 비교우위에 입각한 경쟁우위를 상실했을때, 단순한 섬유 직물가공 단계에서 패션 등의 하이터치 쪽으로 나가면 원가보다는 품질우위, 고부가가치로 옮겨가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원사생산에서 직물생산 정도까지 대기업이 담당을 했고, 염색, 봉제 등의 후차가공단계는 중소 영세기업들이 담당을 한 관계 상 후차가공에서 패션브랜드 가치를 높힐 수 있는 역량은 부재했고 아예 패션이란 것은 외국의 브랜드나 들여다 내수시장에 어떻게 팔아먹느냐 하는 수준이었기에, 중국이 섬유제품의 생산기지가 되자 후차가공단계부터 붕괴되기 시작하여 직물, 원사 또한 거의 도산상태에 이르르고 만다.

이러한 상태에 이른 기업들은 공장을 빼서 다만 한푼이라도 더 벌 수 있는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린 기업들은 우리 땅에 돈을 쓰는 것이 이익이냐 외국에 돈을 쓰는 것이 이익이냐를 고민한다.

이제 국내 투자액은 줄어드는 대신 외국에 삼성, 현대, LG 등의 공장들이 들어서고 한국내 종업원보다 외국의 종업원이 더 많은 모양새인데, 한국에는 부가가치가 있는 IT 쪽에만 투자를 한다. 하지만 IT 쪽의 인력수요는 투여된 자금에 비하여 형편없이 적다.

대졸자는 매년 늘어나는데, 인력수요는 매년 답보 내지 줄어드는 형편이다.

매년 대졸공채 경쟁율은 높아지고, 백수는 늘어나게 마련이니 향후 국민연금을 챙겨먹을 수나 있는지 걱정이다.

그리고 국내에 공장이 없으니 지금 우리가 시장에서 사는 옷들의 레벨을 까보면 중국제이듯, 중국에 있는 삼성전자의 세탁기를 달러를 지급하고 수입해서 써야 할 터이니 무역수지는 악화되고 나라는 가난해질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낮다고 하지만, 현대의 노동자나 벤츠의 노동자나 생산하는 자동차 댓수의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차는 천만원, 벤츠의 차는 오천만원 한다면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한 노동생산성은 현저히 낮은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이 현대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탓이라고만 호도될 것은 아니다.

빨리 디자인, 성능 모든 면에서 세계 수준으로 올려 브랜드 가치를 높혀가야하는 경영능력의 문제이며, 산업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3. 올림픽 공원

피로함에도 불구하고 아침 다섯시에 깨어나 빈둥댔다. 집에서 차분히 앉아 책을 읽지는 못하겠다. 이제는 독서란 것은 지하철에서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뭐 특별한 것을 하는 것도 아니다. 밥 때나 기다리고 하면서 하루가 간다.

해가 질 즈음이면, 자전거를 타고 올림픽공원으로 간다.

바람이 정말 미친 듯 불었고, 공원은 이미 늦가을같다. 해가 진 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공원에는 간혹 젊은 연인들이 함께 걷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20091017

This Post Has 9 Comments

  1. 善水

    저두 면접보러가기전에 여인님께 한번 검사를 맡아봐야겠어요 ㅋ 가끔 뜨끔할정도로 꿰뚫어보는 여인님이 신기했는데 요런일도 하시는군요 하지만 왠지 사람들의 좋은점을 잽싸게 알아채고 다독여주시는걸보면 무한한감사와 그리고 화이팅을 날려드리고싶어요, 힘내세요! 기지와 운, 그게다 그사람의 인격과 능력에서 비롯되 함께 빛을 발하게 되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이 아니라면 더 다듬어져서, 영 아니됐다면 그사람에게 더 좋은 곳이 기다리고 있을지도요 여기는 정말 춥네요~흐ㅜㅠ 이틀내내 비가 쏟아지고 있슴다.. 이달이 가기전에 눈이 올것 같아요~ㅎ

    1. 여인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길…
      이제 이 곳은 슬슬 은행잎이 질 시간이네요. 저는 그때부터 가을입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저한테만 여름인 셈.^^
      운도 능력이라는 말이 있고, 줄을 잘서야 한다는 것 또한 능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범주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한다고 다른 회사에 가서 훨씬 좋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고요.
      하지만 면접을 보러 오는 친구들을 보면 안스럽다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2. 마가진

    제가 맨 처음 면접볼 때 어찌나 긴장했던지..^^;
    정말 통과 통과.. 통과를 위한 삶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부 기업을 제외하곤 저임금에, 그나마도 회사파산을 걱정해야 하고,
    자영업이든 무엇이든 맘놓고 편한 직업은 없군요.

    여인님의 손끝에서 면접보는 한사람과 그 뒤에 있을 수많은 가족의 기대가 좌우된다고 생각해보면
    그 스트레스도 여간 심한게 아니겠군요.

    마지막 사진이 좋습니다. 그 풍경처럼 편안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여인

      면접이란 것을 많이 보아서 좋을 것은 없겠죠? 자본주의가 발전되기 이전에는 이러한 통과의례가 많지는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떨어진 사람에게 또 다른 기회가 생기고 더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흰돌고래

    여인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요?

    저는 직장에서 저를 쉽게 받아줄 것 같지가 않으니
    제가 만들어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ㅋㅋㅋㅋ
    이 현실성 없는 맘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어쨌거나 현실성을 더하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1. 여인

      저는 안해본 것이 거의 없습니다. 영업, 경리, 자금, 기획, 관리 등등
      지금은 영업을 하고 있는데, 면접 시에는 사람이 모자라 간부급은 대충 차출되게 되어 있습니다.
      직장보다는 자신의 일을 만들어 하는 것이 훨씬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결국은 취업을 해야할 수 밖에 없을 텐데, 취업이 결코 쉽지는 않은 현실이지만 경력관리를 착실히 해나간다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겁니다.
      그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를 배운다면, 본인의 일을 할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4. 아톱

    사진의 보라빛 물결이 너무 좋네요. 저 색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거든요.ㅎㅎ

    짧은 시간 짧은 대화 몇 번으로 그 사람의 인성과 능력을 다 판가름할 수 있을까요.
    그저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진정성이 있나 없나를 중요시 여기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거짓포장과 입발린 말이 면접관에겐 금방 들통날 것 같다는 생각이요.
    그래서 전 솔직했네요.

    1. 旅인

      저 물빛을 보라빛이라고 생각을 못했네요.
      사실 저는 사람보는 눈이 없는 축에 드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면접이 가슴을 풀어놓은 대화까지 이를 수 조차 없는 적지와 같은 살벌함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것은 면접관 역시 매한가지입니다.
      거짓포장이나 입발린 말은 느낌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면접관들은 솔직함 보다는 성실함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善水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