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4

하루 회사를 쉬었다.

1. ‘바다가 들린다’를 다시 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海が聞こえる, 1993)를 보았다. 고2에서 대학1년까지의 시기를 그린 성장 멜로물이라고 할까?

사소하면서도 수줍음을 깊이 감춘 고등학생의 사랑의 감정과 일상들을 일본영화처럼 담담하게 표현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남녀공학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정과 함께 움트는 사랑이란 것을 알았다면, 좀더 사고의 폭이 넓어지거나 자아의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별을 사던 날(星をかった日, 2006)을 보고 싶었지만 지브리 미술관을 가지 않는 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할 수 없이 이것을 보았다.

별을 사던 날의 내용은 아이가 무우를 팔아 씨를 사서 심으니 별이 자라난다는 이야기다.

2. 왕필에 대하여

그는 24살에 죽었다. 그를 천거한 하안이 조상과 함께 사마중달의 쿠테타에 의하여 참살되고 그는 파직되어 근근히 생명을 부지하다, 그 해 가을 돌림병(癘疾)으로 죽었다.

비록 그가 젊은 날에 쓴 몇편의 논문으로 위진현학의 개조가 되었다고 하나, 어린 천재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기는 역부족이었던지, 오만했다고 한다. 그래서 왕필에 대한 무수한 찬사에도 불구하고 하소(何劭)는 사람됨이 얄팍하고 물정을 모른다(爲人淺而不識物情)이라고 폄하한다.

하지만 그의 현풍(玄風)은 하늘이 중국인들에게 내린 것으로, 훈고, 경학, 상수지학에 머물던 학문의 방법을 의리지학으로 바꾸어 성리학이 배태될 토양을 마련한다.

그래서 성리학이 건방진가 보다.

그의 현풍은 근원을 높혀 짜잘한 것을 그치게 한다(崇本息末)를 기본으로 한다.

그의 현풍의 뿌리는 무(無)다.

주) 삼국지 여적논어를 읽다 03에 그에 대한 기사가 좀더 나옴.

3. 동양고전과 주

왕필의 노자주는 있는데, 주역주는 없어서 집의 책을 찾아보니 주역정의의 글과 왕필의 주가 달린 책이 있다.

하나의 텍스트 위에 집적시킨 방대한 주소(注疎)를 보면, 경이롭다.

주희의 사서집주에 대하여 해석이 틀렸네 어쩌네 하여도, 집주가 없다면 어떻게 논어를 해석할 수 있을까?

그토록 오래된 문서를 아직도 읽을 수 있다는 기적은, 고전에 대한 학자들의 지속적인 연구로 가능한 것이며, 다양한 학자들의 시각은 늘 고전에 대한 해석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글로 번역된 중국의 고전들에는 주소를 볼 수 없다.

4. 베드로 실종사건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어느 날 베드로가 사라진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20091014

This Post Has 11 Comments

  1. 컴포지션

    회사를 하루 쉬셔서, 양질의 휴식시간을 가지시는 것 같네요 🙂
    “바다가 들린다”라.. 멜로물이라 조금 걸리긴 하지만 한번 보고싶네요. 시간날 때 한번 보아야겠습니다.

    중국의 고전들은 주소가 다 달려있군요.. 몰랐던 사실입니다. 확실히 주소가있다면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참 편할 것 같네요.
    행복하고 여유로운 휴식의 하루가되시길 🙂

    1. 여인

      서양의 인문학적 전통은 불과 수백년에 불과하지만, 중국의 인문학적 전통은 이천년 이상을 자랑합니다.
      주역의 경우 만들어진 것은 삼천년 이상 된 만큼, 주역의 원문은 한자라는 시공을 초월한 문자로 쓰여있기는 하지만 해석이 아리까리한 문장이 많지만 주석과 소통(주소)으로 어거지로 해석을 하고 있으며, 논어와 같은 경우 아무런 사건에 대한 배경없이 공자나 제자들의 대화가 수록되어 있어서 어떠한 사건을 배경으로 저런 대화가 오고 갔는가를 파악할 수 없지만, 주소가들이 대화의 역사적 배경이나 고문 중 뜻이 통하지 않는 글을 새롭게 해석하여 이해들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달린 주소들은 후학들에 의해서 비판되고, 새로 발견된 사실에 의해서 고쳐지면서 지속적으로 본문에 대한 새로운 의견과 아이디어가 덧붙여진다는 것이 주소가 가진 장점입니다.

      하지만 주소가 달린 책을 구하려면 한문본 밖에 안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한글로 주소를 단다는 것은 가능이야 하겠지만, 분량이 엄청나고 원문 해석에 비하여 또 다른 난점이 있습니다.

  2. 우정과 함께 움트는 사랑이라… 멋지네요..

    베드로는… 그러게요..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1. 여인

      그런데 한참 후에 로마에서 편지가 한장 왔고 그 후에 또 편지 한장이 왔다고 하더군요.

      아직 제대로 읽지는 못해서… ㅋㅇ

      그런데 위의 저 아가씨 예쁘게 생겼죠? 이름은 리카코, 고2랍니다.

  3. GREENTREE

    아 바다가 들린다 고등학교때 친구집에서 설레이며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1. 여인

      하나 하나 장면들이 가슴을 설레게 하지요? 리카코만 예쁜 것이 아니라, 촌놈들의 인물도 좋아요.

  4. 마가진

    일본 에니메이션은 작품성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차근차근 감상해보고 싶군요.^^

    1. 여인

      저는 일본 애니를 폭 넓게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각각 그 장르에 있어서는 자신의 위치를 착실히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애니메이션 기술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만큼 뛰어난 각본과 제작자, 만화감독이 나온다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봅니다.

  5. 善水

    몸이 편찮으신건 아니신지요? 그렇군요.. 하소는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뭔가 인생의 단맛쓴맛을 겪지 않아도, 완성은 이미 되어있는것이구나… 그런생각이 들었었다는^^;

    1. 여인

      하소에 대해서는 책에도 인터넷 상에도 별다른 자료가 나오지 않는데, 진무제인 사마염(삼국통일은 했지만 호랑방탕함)과 어렸을 적부터 친구처럼 지내서 사마염이 왕이 된 후 높은 관직을 얻게 되었는데, 교만 사치하기가 그의 아비보다 더 했다고 되어있네요.
      하소는 왕필보다 하안을 더 미워한 모양인데, 교만한 사람이 그렇듯 남을 깍아내리고 하는 일도 즐겨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하소의 왕필에 대한 평가가 전적으로 그르다고만 볼 수 없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인간들에 대한 통찰은 정리적인 측면보다 역학적인 관계 측면에 이르기 쉽고, 게다가 왕필은 인간관계 등에 신경을 쓰기에는 너무 어렸다는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됩니다.

    2. 여인

      년표에 보니 노자주와 노자지략을 18살 전후에 썼다고 되어있네요. 하안이 20살의 왕필을 만나 성인에게 情이 있느냐를 논의하다가 그 견해에 놀라 패배를 자인했다고 합니다. 또 노자주를 짖고 있다가 왕필의 노자주를 읽고 더 이상 주 달기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왕필이 23살 때 하안의 황문시랑 천거가 조상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가하기도 해서 주역주와 주역약례를 지었다고 하니 만약 황문시랑이 되었다면 주역주와 약례는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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