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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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아득한 것들을 불러서 눈앞으로 끌어오는 목관악기같은 언어를 나는 소망하였다.
써야 할 것과 쓸 수 있는 것 사이에서 나는 오랫동안 겉돌고 헤매었다.
그 격절과 차단을 나는 쉽사리 건너갈 수 없었다.
이제 말로써 호명하거나 소환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을 터이고,
나의 가용어(可用語) 사전은 날마다 얇아져 간다.

후략……

연재를 앞둔 떨리는 마음으로
2009년 4월 27일
김훈은 쓰다.

김훈 씨의 인터넷 연재소설 <공무도하>를 다 읽었다. 앞에 읽은 것은 까먹어가며 시간이 나는대로 몇일을 쉬다 읽고, 보름을 쉬다 읽다보니 도대체 무엇을 읽었는지 조차 모르겠다.

공무도하가

公無渡河    저 님아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임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    물에 쓸려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가신 님을 어이할꼬

(번역 : 정병욱)

‘어느 늙고 술 취한 사내’ 1白首狂夫 : 머리가 허연 미친 남편, 늙었고 기사 상 술병을 든 것으로 미루어보아 미쳤다기 보다 술에 꼭지가 돌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임 가 강을 건너려 한다. 아내는 그를 말리지만, 강을 건넜고 마침내 빠져 죽는다. 그 아내는 공후를 타며 노래를 부른 후 강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당시 배를 젖던 ‘곽의 사람 고’ 2霍里子高 : 곽 지방의 자고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곽 땅 사람 고라고도 해석할 수도 있다. 기록에는 朝鮮津(조선에 있는 나루)의 병졸로, 사건 당시 배를 젖고 있었다고 한다 는 이를 보고 아내에게 전한다. 아내 ‘여옥’ 3麗玉 : 고조선 여인치고는 현대적인 이름이다 은 이를 슬퍼하며 그 노래를 전했다고 한다.

이 노래가 고조선의 노래라면, ‘최표’ 4공무도하가 또는 공후인이라고 불리는 이 노래는 우리의 기록이 아닌, 중국 晉나라 때 최표가 먼나라의 노래를 채집하여 관련된 사건의 기사와 함께 古今注 音樂篇에 실은 것이다 가 살던 시대에 비하여 몇백년 전, 아득히 먼 땅의 노래다. 그리고 망자에게 바치는 노래를 고가 듣고, 아내에게 전하여 그녀가 노래한 후, 전하고 전하여 멀리 이역 중국의 최표에게 전해져 중국의 글로 바뀐다. 그 후 다시 이 땅으로 역수입되어 사건 발생 이천몇백년 쯤 지나 우리 글로 다시 살아난 노래다.

그러니 술에 취하여 강을 건너는 자의 심사도, 함께 뛰어든 아내의 슬픔의 내력도 세월의 흐름에 떠내려가 알 수 없다. 배를 젖던 고가 물에 빠진 그들을 구할 생각은 않고 왜 바라보기만 했는지 또한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다.

이 노래는 한국 여성의 애상을 절창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국어시간에 가르친다. 하지만 저 노래가 정병욱씨가 번역한 것처럼 슬픈 것일까?

무식한 내가 번역해보면, <당신은 강을 건널 수 없다/당신은 기어코 강을 건넌다/강에 빠져 죽었다/이제 당신을 어찌할까>이다.

슬프지 않다. 그저 사실일 뿐이다.

김훈의 공무도하

김훈의 공무도하는 기록의 형태로 쓰려 한 소설이다. 아무런 애상을 개입시키지 않으려는 심사로 그는 글을 기록한다. 무대는 물난리가 난 창야와 공유수면매립을 둘러 싼 해망이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설에는 알아낸 사건을 기사화하지 않고 묻어두는 기자, 동료를 배신한 학생운동가, 화재의 현장에서 장물을 취득한 후 퇴직한 소방수, 딸의 목숨을 돈과 바꾼 농사꾼, 베트남에서 시집와서 가출한 여인, 자식을 위하여 먼 곳으로 돈을 벌러왔다가 그만 자식을 잃은 여인 등, 강을 건너려다 그만 표류하는 사람들을 그린다.

하지만 그들은 백수광부처럼 익사하지 않는다. 그냥 살아가지만 표류한다.

김훈은 이들을 통하여 이 시절의 탁류를 그려내고, 그 탁류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자기의 고향을 등지고 있으며, 그 탁류 속에서 사람들이 표류하는 모습을 허무한 눈으로 기록한다.

소설에 내면의 묘사는 없다.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도 아무런 비평도 없다. 전직 기자였던 그는 소설임에도 사실 만 말한다. 그 사실은 신문기사처럼 간명하고 뚜렷하다.

공무도하가에서의 사실을 우리가 한국 여인의 애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이듯, 그의 소설을 읽고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던지 김훈은 관여치 않으려는 것 같다.

쓰기를 마치고

그래서 김훈은 인터넷 연재를 마치면서 이렇게 마감한다.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문제다.

나는 왜 이러한가. 이번 일을 하면서 심한 자기 혐오에 시달렸다.
쓰기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처음의 그 자리다. 남은 시간은 흩어지는데,
나여 또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2009년 가을에
김훈 쓰다.

참고> 공무도하가의 조선으로의 반입되어 변형된 기록은 다음과 같다.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 해동역사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將奈公何 – 대동시선
公無渡河 公而渡河 公墮而死 將奈公何 – 청구시초
公無渡河 公終渡河 公淹而死 當奈公何 – 연암집

참고> 공무도하

This Post Has 8 Comments

  1. 컴포지션

    인터넷 연재 소설인가요? 저는 일단 컴퓨터로 책이나 소설을 읽으려면 집중이 잘 되지않아서요.. 여튼 꼭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

    1. 여인

      연재가 끝났으며, 출간을 했는지 예매 중인 소설입니다.

  2. lamp; 은

    강을 건너려다 그만 표류하는 사람들. …
    남은 시간은 흩어지는데 나여 또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훔~~ (입 꼭다물고 긴 숨)

    1. 여인

      잘 다녀오셨는지요?

      맨 첫부분 김훈 씨의 서문 부분이 달라 수정하였습니다.

      서울은 그동안 복작댔습니다.

  3. 서정적자아

    쓰기를 마친 김훈의 소감이.,… 참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군요. 맑게 소외된 자리라…

    1. 여인

      그런데 김훈씨의 소감이 이번처럼 가슴에 와닿지 않기는 처음입니다.

      아마 큰 작품이 끝나면, 정말 맑게 소외된 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랄 것 같습니다.

      김훈씨의 글은 때로 사람을 먹먹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4. 위소보루

    추석은 김훈씨의 소설과 함께 하신 것인가요? 전 사진 찍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 아무쪼록 추석을 잘 보내신 것 같습니다.

    인터넷으로도 소설을 연재하시는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왠지 하이텔, 나우누리 같은 느낌이 드는건 왜인지 ^^;;

    요새 드는 생각은 정말 제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산문과 운문에 대한 해석들이 무척이나 편협적이었을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땐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제 생각을 그 교과서적 논리에 맞추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 여인

      황석영씨가 개밥바라기를 인터넷으로 연재하였고 그 전부터 특정작가들이 인터넷 연재를 했던 모양입니다. 인터넷 연재를 해도 책의 구매가 줄어들거나 하지 않고 인터넷 댓글들을 통하여 자신의 글에 대한 독자들의 호감도나 의견들을 청취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가에게는 도움이 큰 것 같습니다.

      위소보루님처럼 운문과 산문의 구분은 없겠지요. 저는 오히려 시를 쓴다거나 소설을 쓴다라는 것보다, 문학이라는 멋들어진 이름보다, 통칭하여 글짖기 혹은 글쓰기라는 것이 글의 가능성과 유역을 더 넓혀주지 않는가 싶습니다.

      최근 위소보루님의 사진 밑에 쓴 글들이 하나의 가능성이자 보다 넓은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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