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9월 15일에

딸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

공지영의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던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다 읽었다. 이 책은 화요일날 분리수거 때 버리기 위한 신문들과 매달 배달되어 오지만 한번도 읽지 않고 그냥 분리수거되는 한국논단이라는 잡지 틈에서 발견했다.

여성작가의 책이나 수필집같은 것에 관심이 없던 나는, 어제 산 것처럼 깨끗한 책이 버려진다는 것이 아깝고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라는 점에서 한번 읽어볼까 하고 가방에 넣은 뒤, 출퇴근 시간에 조금씩 읽었다.

여자들은 사랑을 하는구나!

책을 읽으면서 남자가 다가가지 못하는 여자의 모퉁이를 발견했고, 그것이야말로 젊은 시절 여자들이 나를 매혹시켰지만, 내가 결코 알지 못했던 그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면서 남자들이란 하찮은 것들로 머리를 썩히는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열차시각표

당신은 무슨 책을 가장 열심히 읽었습니까?

지하철에서 공지영의 산문집을 다 읽고 고개를 들어 멀거니 맞은 편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 마주 섰던 열차가 차창을 스치며 미끄러졌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내가 탄 차가 출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심결에 몸을 끼우뚱했다. 하지만 반대편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대학시절 가장 열심히 본 책이 우습지만 열차시각표라는 것이 기억났다.

시각이 별로 바뀔 것도 없는 열차시각표를 두세달에 한번씩 사서, 당장 내일이라도 여행을 떠날 것처럼 경부선, 호남선의 출발 시각을 들여다보고 구례구나 순천에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그려봤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기 보다 막연히 떠나가고 싶어서, 할 수 없이 가야할 곳을 만들어야 했던 모양으로 시각표에 있는 조그만 지도를 들여다 보며, 어디로 갈 것인가로 설레곤 했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면서 완행을 타곤 했다. 개찰구가 열리고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위하여 허겁지겁 달려가 급히 맨 마지막 차량에 올라탈 때, 어슬렁 걸어서 기관차 쪽 맨 앞의 객차에 올라타 자리를 잡고 나면 뒷칸으로 부터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러면 초조한 마음으로 쿵소리가 한번 울린 뒤, 역사의 풍경이 뒤로 밀려가는 그 느글거림을 기다리곤 했다.

중앙선같은 경우, 일제 때 만들어진 객차에는 임검석이라는 것이 있기도 했는데, 그 자리는 대충 화장실 옆이나 건너편에 있었다. 재수가 좋아 그런 자리를 발견하게 되어 자리를 잡고 문을 닫아 걸면 여행은 아주 은밀한 것이 되었다.

순천에서 탄 경전선은 젠장할 만큼 느렸다. 언덕을 올라가는 열차의 뒷문에서 내린 친구는 후다닥 달음질을 쳐서 요술처럼 앞문에서 나타났다. 어느 지선은 승객이 하나도 없어서 한시간가량 노란 햇빛이 객차의 바닥에 그리는 그림자와 함께 여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때면 정말 외롭다.

밤차를 타고, 개울물 소리가 깨어날 즈음 어느 역에 내려 기지개를 켜면, 호주머니 속에는 약간의 돈과 시간이 있을 뿐이며, 중간고사 성적은 아무래도 좋았고 그 날 하루 나는 어디나 갈 수 있고 또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비가 내리는 시외버스정류장은 정취가 있다. 시간은 많이 남아있는데,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대합실의 승강구 위에 걸린 노선표에 적힌 가 보지 못하여 아득한 지명들과 출발 도착 시각들을 다 보고, 서성이며 가판대의 잡지나 신문의 겉표지를 다 훑어보고 난 후, 슬픔처럼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땅거미가 질 것이고, 잘 곳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약간의 초조함으로 정류장의 밖으로 나가 처마 밑에서 비를 긋는다. 들에서는 빗소리에 아우성을 치며 젖어가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산등성이로 부터 골안개가 내려온다. 그러면 엽서라도 한장을 부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머리 속은 점점 하얗게 변하고 단지 무심코 세상 위에 널어 논 나의 삶이 눅눅하게 젖었다. 길은 아득했고. 내버려두고 온 하찮은 일상들이 그리웠다.

그러니 열차시각표를  열심히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들

왜 놈은 한번도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지 않는 것일까?

마하무드라의 노래

책장에서 꺼낸 이 책은 1980년 11월의 1쇄판이다. 라즈니쉬가 오쇼라고 불리워지기 이전, 브하그완 슈리 라즈니쉬라고 할 때의 책이다. 맨 뒤에 보니 책값이 3,000원이다. 신기하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있다.

마지막 경험은 이미 경험의 영역을 넘고 있다. 거기 경험자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 경험하는 자가 없을 때 그 경험에 대해서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누가 경험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 경험과 연결을 갖겠는가? 주관이 없을 때 객관도 사라진다. 강의 둑은 사라진다. 오직 경험의 강물만이 남는다. 지식은 거기있다. 그러나 그 지식을 아는 자 거기 없다.

20090915

This Post Has 5 Comments

  1. 여인

    여성작가에 대해서 내가 경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같은 사람에겐 여성작가의 감성이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전혜린의 글을 보고 실망했고, 샤강과 같은 글은 가벼울 것이라고 설핏 넘겨버렸다.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고삼때 읽다가 한번도 공부하란 소릴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를 기어코 열받게 한 적이 있다. 아마 책의 두께 때문에 어머니가 소리를 치신 듯…
    그 후 <일본은 없다>라는 싸구려 책을 읽고 지랄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올라온다. 한비야 책은 한권 읽다가 말았다. 여행이라는 것을 모험과 극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나는 편하게 여행하고 싶다. 여행에 대해서라면 알렝 드 보통의 이야기가 나에겐 가깝다.

  2. 일단. 저는 오쇼 싫어합니다. 이 싫어함은.. 음.. 경멸에 가깝습니다. 이유를 말슴드리자면… 2박 3일 세미나 해야합니다. ㅜ.ㅠ
    암튼. 그렇고요.

    여자들의 모퉁이, 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오늘 날씨, 쌀쌀하네요. 햇빛도 없고요. 이런 날씨.. 좋아요. 좋아.

    1. 여인

      젊은 시절 라즈니쉬의 책을 읽어보고 광풍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지금은 아무런 호오의 감정도 없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다지 싫어할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날씨는 점점 공기가 탁해져 가는 것 같아서 얼마전의 그 맑던 공기가 그립습니다.

  3. 위소보루

    저는 대학교 1학년때까지는 달리는 완행열차 문 밖으로 손과 얼굴을 내밀고 바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런 맛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위험하지만요 ^^;;

    아드님께서 친구들을 데리고 오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사생활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왠지 가족에겐 잘 보이고 싶다는 사실으로 하여금 그것을 변형시킬 수 있는 친구라는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데리고 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ㅎ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서는 게임을 빼면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서두요 하하

    1. 여인

      이제는 비둘기호같은 완행열차도 없어져 버리고 통일호는 있는지 모르겠네요.

      사생활보다 정이 그만큼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의 생각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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