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나비부인

Madama Butterfly

My first Opera Series Ⅳ

그저께 국립오페라단에서 하는 나비부인을 보러갔다.

6월말인가 7월초, 직원 하나가 만원짜리 오페라표가 있다며 한번 보러가자고 하는 바람에… 결국 삼만원짜리 표를 사긴 했지만, <국립오페라단과 함께하는 나의 첫사랑 당신의 첫번째 오페라>라는 기획처럼 나는 오페라에, 아니 예술의 전당이라는 곳에, 처음으로 갔다.

예술의 전당 앞을 스쳐지나기만 했던 나는, 규모와 시설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비부인을 하는 토월극장의 이층 우측 난간에 있는 좌석은 앞뒤가 좁아 발을 어찌할 수 없었다.

7시반에 시작한 오페라는 중간 20분간의 휴식시간을 포함, 2막 2장임에도 10시15분에 끝났다. 시간이 길어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나처럼 오페라에 문외한인 직원들은 눈물이 날 뻔 했다고 한다.

전당 내의 토월극장은 좁았다. 하지만 육성으로 아리아가 또렷하게 들렸고, 무대는 조형미가 뛰어났다. 아침과 저녁, 그리고 빛과 시간이 흘러갈 수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아름다웠다. 오케스트라 또한 가슴을 촉촉히 적셨다.

이 오페라는 푸치니의 1904년작이다. 초연에 실패했다고 하지만, 2막 1장의 어느 개인 날(Un bei di vedremo)은 불후의 명곡이다.

나비부인은 전직 기생출신의 양공주다. 1막에서 게이샤인 나비부인은 핀커톤이라는 양키중위와 결혼을 한다. 놈은 각국 최고의 미인을 얻어야 인생을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람둥이다. 이때 나비부인은 열다섯이다.

삼년쯤 흘러서 2막 1장이다. 삼년이란 양키가 데리고 놀던 어린 동양여자에게 신물을 느끼고 도망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하인 스즈키는 “외국인 남편이 돌아왔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자 나비부인은,

“아! 넌 믿음이 부족하구나! 잘 들어봐!”라며 노래부른다.

어느 개인 날
저 멀리 지평선 너머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게 될 거야
그러면 곧 배가 나타날 거야
아름다운 하얀 배가
항구로 미끄러져 들어오겠지
천둥같은 대포소리르 내면서 말이야
보여?
그가 오고 있다고!
그를 마중하지는 않겠어
안 그럴거야!
언덕 꼭대기에서 기다려야지 기다릴 거야
하지만 기다림으로
지치지는 않을 거야
복잡한 광장을 지나
한 사람이 걸어 나오겠지
멀리서 잘 볼 수는 없지만
언덕을 올라오고 있어
누군지 알겠어?
그가 꼭대기에 도착하면
뭐라고 말할 것 같아?
멀리서 나비!하고 부를 거야
그러면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숨어서 그를 놀려야지
그런데 실은
그를 보는 순간
내 숨이 멎을 것 같아
그러면 그가 걱정이 되어
날 부를 거야
“내 사랑하는 아내 나의 오렌지꽃!”
예전에 부르던 이름들로 나를 부르겠지
이러 날이 곧 올 거야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마
그는 돌아올 거니까
난 알아

<나비부인 Libretto 중>

오페라를 보러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허리둘레를 가늠할 수 없는 뚱뚱한 여자가 주인공이랍시고 나와 보는 재미를 여지없이 끊어버리고, 고음의 비브라토에서 나오는 신이 내려준 소리 하나 만 건져가라는 강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만…

나비부인으로 나온 이지은씨의 자태는 손가락 끝의 움직임조차 나비부인이었다. 어느 개인 날을 부르는 그 목소리는 처음에는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듯 했지만, 노래가 이어질 수록 소리는 멀리 멀리 퍼져 기다림의 슬픔이 앞 날에 대한 기대감에 뒤섞여 머나먼 대양을 지나 수평선에 걸친 뭉게구름마저 떨리도록 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나비부인의 모습은 너무나 뚜렷하여 오히려 애절하다. 그 청아한 아리아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2막 2장에 결국 난봉꾼 핀커톤은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미국인 부인을 데리고 나타나 나비부인을 만나지도 않고, 나비부인이 낳은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가려 한다.

그러자 버림받은 것을 알게 된 나비부인은 아이를 보내기로 하고, 자살을 하는데… 멀리서 핀커톤이 나비부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비극적인 결말임에도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낸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를 나와 야외 음악광장으로 나갔다. 밤은 깊었고 음악분수는 빛을 발하며 춤추고 있고 광장에는 음악이 울렸다.

그렇게 하루는 저물었고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오페라 하우스에 들어가기 전 오후의 모습(20090724 19:15)//Lomo LC-A+ Fusi ISO 100

This Post Has 8 Comments

  1. 위소보루

    저는 한 2주전에 친구가 공짜표가 생겨서 로미오와 줄리엣 뮤지컬을 보러 예술의 전당에 갔었습니다. 도착하니 대학교 1학년 연극개론 수업 이후에 7년만에 들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뮤지컬은 무척이나 지루했던 기억이,,,,

    그러고 보니 전 아직까지 오페라라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듯 합니다. 기회가 되면 보는 것도 좋겠지만 또 뮤지컬 때 마냥 조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어 ^^;;

    1. 여인

      저도 몹시 지루하지 않을까 하고 갔는데… 저와 같이 간 직원들의 의견을 들으면 아주 만족스럽게 본 것 같습니다. 자리가 좁아 불편했다는 것 외에는 영화보다 재미있고, 문화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약간의 허영심마저 충족시켜준 기쁨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오디오로는 많이 들었는데, 현장에서 보니 훨씬 흡족했습니다.

  2. 뮤지컬은 좋아하지만 오페라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한번 보고싶네요.

    1. 여인

      저도 지루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생각을 완전히 불식시키네요. 10월에 투란도트 공연이 있는데. 그때 한번 다시 가봐야 겠습니다. 그런데 금액이…?

  3. 쏘울

    예술의 전당 문탁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곳인데 최근엔 못가봤네요.
    오페라 나비부인은 언제 어떤 팀의 공연을 봐아도 늘 감동이더군요.

    전 오래전에 세종 문화회관에서 보았던 나비부인이 제일 감동스럽게 본 거였습니다.

    1. 여인

      저는 처음이라 잘모르지만, 예술의 전당이 멋있더군요. 앞으로도 라보엠이나, 투란도트와 같은 오페라가 있으면 한번 가 볼 생각입니다.

      공주는 잠못 이루고나, 내 이름은 미미를 극장에서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습니다.

      아리아 어느 개인 날은 가슴이 멍할 정도였습니다.

    2. 쏘울

      ㅋㅋ 오페라에 맛들이시면 아래 트랙백 보낸 글의 저처럼 폐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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