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이웃에서 소를 잡다

황석영씨 이야기

그저께 <하루…및 잡담>에 황석영씨에 대한 짧은 글을 올렸다가 그만 내렸다. 그저께는 그만 우울한 날이 되고 말았다.

나 같은 찌질한 사람은 세상을 굳건하게 딛고 큰 소리도 치지 못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흐리다. 그럼에도 그 굴곡된 시절 속에는 내 가슴을 대신하여 말해주거나 그 시절의 번지수를 밝혀줄 사람은 희소했다. 그들은 늘 감방에 있었거나 연금 상태, 아니면 망명처럼 외국을 떠돌았다.

1974년은 지금 올리고 있는 <녹슨 시절>이 시작하는 해이다. 입시과열을 막겠다는 명목 하에 이른바 고교 입학을 <뺑뺑이>라는 도박판으로 만들고, 무수한 파행 끝에 대한민국 교육을 ‘이 모양 이 꼬라지’라는 현주소에 이르게 한 단초를 제공한 한 해였지만, 황석영 씨의 중단편 소설집 <객지>가 출간된 기념비적인 해이기도 하다.

그 해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11월인가? 황석영씨의 <객지>를 읽었다. 머리로 쓴 글이 아닌, 몸으로 쓴 글이 어떤 글인지 알게 되었다. 그의 책을 읽으며, 우리가 한치 앞도 안보이는 절망의 23시를 지나고 있으며, 독재라는 폭력 아래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비굴하게 살리라는 것을 간신히 알게 되었다.  그 후로도 우리가 표류하고 있는 시대가 어디쯤인가를 그는 더듬더듬 알려주었다.

내가 보잘 것 없는 나날을 보냈다면, 그는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황석영, 그는 영웅이었고, 우리가 동시대를 살고,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암울한 시대에 허락된 조그만 기쁨이었다.

(보수 + 진보) / 2 = 중도 ?

좌파는 진보, 혁신 또는 사회주의적 사상이나 경향을 가진 인물이나 단체를, 우파는 보수, 자본주의적 사상이나 경향을 말한다. 하지만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절대적인 정치적 이념이나 운동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보수나 진보나 이데올로기적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하지만 이런 상대적인 면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좌익이니 빨갱이가 되는 나라가 이 나라였다. 해방이 되고, 진보와 좌익이 그토록 철저하게 유린당했음에도 이 나라에는 정작 보수도 우익도 없었다.

문민정부, 참여정부에 들어서면서 보수와 진보의 논의가 출범했고, 새는 한 날개로 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작년은 한나라당이 집권을 한 해다. 홍세화씨는 작년 한해를 보내던 12월 한 칼럼에서 “광신은 그 자체에 열성을 내장하고 있다. 증오도 마찬가지이며 사익 추구가 그 뒤를 따른다. 공익·사회정의·연대·평등에는 열성이 내장되어 있지 않다.”고 침중한 목소리로 진보의 좌절에 대해서 말하는 한편, 왜 올드 라이트도 아닌 뉴라이트라는 단어가 횡행하는 가를 묻는다. 작년은 촛불집회도 있었지만, 그동안 가려져 있던,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어 모호한 보수, 실체없이(자기논리없이) 진보를 질타함으로써 그림자로만 존재했던 수구보수가 하얗게 분칠을 하고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한 해이기도 하다.

작년 한 해동안 내가 본 것은 국민과 진리와 정의 속에 발을 내리지 못한 채, 돈에 굴복하고, 외세에 기대고,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한, 끊임없는 독설, 뻔뻔한 변명, 화려한 수식, 그리고 지독한 고집 속에서 표류하는 정국이었다. 그러한 표류는 그들이 뿌리내리고 있는 바닥이 당위의 자리가 아닌, 헛 것인 탓에, 앞으로도 지속되며 멀미에 시달려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럴 즈음에 황석영씨는 엇그제 MB의 중도 실용에 동의를 한다.

진보논객들의 MB정권이 보수를 넘어선 수구 언저리에 있다는 그 성마른 목소리를 접어놓고, 보수의 대척점인 진보가 어디에 둥지를 틀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진보는 한마디로 한나라당이나 뉴라이트가 진보라고 하면 진보이지, 진보 자신의 목소리로 당당하게 서있는 진보는 보이지 않는다. 진보란 보수의 그림자가 만들어낸 또 다른 환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할진데, 보수, 진보 모두 얼굴이 없는 이 나라에서 중도란 도대체 무엇인지 우매한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또 대운하 사업, 영어몰입식 교육, 일제고사, 고교등급제, 값싼 미국 쇠고기라는 실용이 어떤 그늘을 간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동쪽 이웃에서 소를 잡다.

엇그제 황석영씨의 기사를 접했을때, 갑자기 주역의 수화기제(水火旣濟) 속의 한 구절이 떠 올랐다.

동쪽 이웃에서 소를 잡는 것은 서쪽 이웃에서 소박한 제사를 지내어 그 복을 받느니만 못하다.(東隣殺牛 不如西隣之禴祭 實受其福)

이 구절은 역사적으로 볼 때, 동쪽(陽剛)의 殷나라의 폭군 紂에게 봉사(殺牛: 큰 제사)하는 것보다, 서쪽(陰柔)의 제후국과 선린(약: 작은 제사)을 기하는 것이 낫다는 뜻일 것이다.

이 글을 우리 사회에 대입해 보면. 東은 九五 양강인 만큼, 권력과 돈이 있는 기득권자. 더 넓게는 미국과 일본 등의 외세를 말할 수 있다. 西는 六二 음유로 비천한 자. 짓눌리고 억울하며, 나날의 밥그릇이 걱정인 자들을 말할 것이다.

그러니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제사를 올려야 하겠는가?

동쪽에 빌붙어 소를 잡고, 때론 양심과 영혼을 팔아야 할 것인가? 서쪽과 친하려면 닭 몇마리면 충분하고, 그것이면 축제가 될 것이며, 행복이리라.

여태까지 서쪽에서 민중의 광대였던 그가, 어쩌자고 이제 소 잡는 칼을 들고 동쪽으로 가겠다는 것인가?

나는 황석영씨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정말 알고 싶다.

20090516에……

2 thoughts on “동쪽 이웃에서 소를 잡다

  1. truth 09.05.16. 21:51
    ㅜㅜ…숙연해집니다..

    산골아이 09.05.16. 23:31
    저간에 흘러나니는 얘기에 의하면 맹박이랑 쑤끈쑤근… 내 힘으로 노벨문학상 밀어줄테니 우리 서로 잡해봅세다.. 쎄쎄쎄…. 하여, 몇번 은밀한 장소에서 만나 북치고 장구치고…. 그래 황씨가 그 노벨이라는 것에 홀라당 빠져서 지금 저 잣태를 벌이고 있다는 말들도 나돌던데요….에라이, 모르겄나. 서쪽에서 시퍼렇게 간 칼날로 동쪽을 향해 한번 찔러보자… 민중은 뭐 어러죽을 놈의 민중이냐. 객지무대인 광산에서 일할 때나 민중이니…. 작금의 시대에 뭐 씨나락까먹는 그따위보다 우리네겐 노벨문학상이 필요하다. 황가 내가 노벨을 따오기만 하믄 문학계도 나라도 좋아라 잔치집일 될 터인데. ㅎㅎ 꼼수를 두고 있는거로 보임네
    ┗ 유리알 유희 09.05.17. 00:23
    가장 귄위 있다는 노밸상마저 전략과 술수, 정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니… 씁쓸합네다.

    유리알 유희 09.05.17. 00:22
    쩝! 유희도 모르옵니다. 유구무언입니다. 하지만 여인님의 글은 명문이옵니다. 유희는 그것만 보렵니다.
    ┗ truth 09.05.17. 00:45
    네,,,사상과 삶이 일치하여 그것이 어느날엔 애끓는 정의글로 풀려내려지니 명문이라 일컬어도 가하다생각됩니다.

    지건 09.05.18. 15:14
    시대를 맞서는 것은 ‘의지’였을 것인데…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은 의지의 눈을 살짝 감기만 하면…편히..흘러갈 수 있는…공중파 텔레비전을 통해 비춰지는 그를 보며..글을 짓던 그와 많이 다른 점들을 보는 것 같아…의문이 들더니만…드뎌..그의 눈가리고 시대 흐름에 편승하는…모습…영악함이 순수한 의지로 그가 자부했을 모습을 전복하는 데에는…스포트라이트의 방향만을…향해 달려드는 나방과 무엇 다를까….그럼에도…이해관계에 끝까지 버티지 못하는 자신의 양심에 속 깊은 곳에서는 허무함과 아픔이….밀려들고 있길…바랄뿐…그에게 무얼 바랄 수 있겠습니까….게바라의 사진이 모 맥주 포스터에 이용되는 것

    지건 09.05.18. 15:16
    을 봤던 몇 해 전의 충격만큼이나…..흐름을 조장하고 시대의 흐름이 대세라고…우리 눈을 멀게 만드는 강한 황금빛은…시골 마을의 고목이 주는 그늘 마저도…강한 서치라이트로…환하게 비춰주는데…눈부셔서…눈 뜨고 살기 힘든데…
    ┗ truth 09.05.18. 21:15
    ……ㅜㅜ 어디에선가는.. 죨지오 알마니 같은 느낌으로..게바라의 사진이 그런포스트에까지…

    旅인 09.05.18. 21:06
    나이란 젊은 시절에 갖고 있던 세상에 대한 박애와 타인의 통증에 대한 민감함, 정의에 대한 믿음과 그를 수호하겠다는 의지, 이런 모든 것들을 돈과 권력, 혈연을 위해서 포기하게하는 힘이 있나 봅니다. 장사치들은 돈만 된다면 체게바라만 그러겠습니까? 모택동과 스탈린도… 조만간 히틀러는 수입이 될 것 같고…
    ┗ truth 09.05.19. 03:46
    이 댓글은 낮시간에 그리고 지금에,, 읽고 느낌받고 생각하게하는 강도를 조절하는 힘을 발휘중인듯해요.. 다릅니다.그렇듯 그럴수도 있겠지하며 타협에 가까와집니다.아침 말짱할땐 다른책임 못질듯 자신이 없구요..없던것이 나오진 않는단거..그건 아는바
    ┗ 旅인 09.05.19. 08:10
    글을 쓸 때도 밤과 낮이 다르지요. 그래서 밤새 쓴 연애편지는 대낮의 햇빛에 한번 비춰보아야 한다는…^^
    ┗ 旅인 09.05.19. 08:11
    어쩌면 사람에게 뿌리란 없을 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자기 합리화는 늘 필요한 법이고.

    엘프 09.05.22. 12:55
    읽는 즐거움이 컸었는데 오늘에야 답글 남깁니다. 좋은 글 두고 읽을 수 있도록 안 내리셨으면하는 바램입니다. 한 번밖에 못봤거든요^^
    ┗ 旅인 09.05.22. 13:39
    한번이면 마이 묵읏따 아입니꺼?

  2. 旅인 09.05.21. 11:28
    레테의 가족분들께 어떤 면에서 쓸데없는 논의에 휩쓸리게 한 것이 아닌가 하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사회에서 정치라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사람의 얼굴을 붉히게 하는 논재이기에, 레테의 가족들이 이런 논의를 극력 자제하고 계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제가, 황석영씨를 잃었다는 그 이유로 자칫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될 그런 논의 주제를 올려 소란스럽게 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황녀님의 요청에 대하여 답글을 올리고 얼마 후 본 글과 앞의 글을 내리겠으며, 추후 정치적으로 비화될 문제점들은 자제토록 하겠습니다.
    ┗ 다리우스 09.05.22. 06:03
    이왕 올리신 잘 짜여진 글 굳이 아깝게 내리실 필요까지는,,,
    ┗ 旅인 09.05.22. 10:15
    어쩐지 레테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유리알 유희 09.05.21. 13:21
    잘 봅니다. 여인님!
    ┗ 旅인 09.05.22. 10:15
    어쩐지 쑥스럽습니다.

    truth 09.05.22. 03:51
    주제가 그것 아녔단 기억이 납니다.비화될 논의는 더더욱 아녔단생각입니다.생각하며 살아야 한단 생각입니다. 글 잘 대하였습니다.
    ┗ 旅인 09.05.22. 10:16
    때와 장소에 적절한 외침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라마 09.05.22. 18:44
    여인님, 이 주제는 정치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작품과 작가, 작가와 현실(사회, 정치 등)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문학계에서는 유구한 주제일 것입니다. 예컨대, 이어령과 김수영의 참여시 논쟁, 예술주의(또는 유미주의 또는 심미주의 또는 예술지상주의) 논쟁이 그런 주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껏 ‘문학의 정치성(사회성)’과 ‘작가의 정치성(사회성)’의 차이, 혹은 ‘문학의 자유’와 ‘작가의 자유’의 차이 등에 관한 논의는 거의 없었을 겁니다. 요컨대, 여인님의 문제의식은, 문학과 정치, 크게는 문학과 현실의 관계! 이 유구하면서도 시작도 못한 논의주제를 환기하는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旅인 09.05.22. 16:05
    하지만 저는 아직 맥락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어쩌면 광주항쟁 이후의 사회구성체 논의와 같이 아득한 논의가 될수도 있겠구요.

    러시아황녀 09.05.25. 01:35
    잘 읽었습니다. 정치적인 의도가 없었다는 처음 글과는 많이 솔직해지셨습니다. 답글 천천히 쓰겠습니다.
    ┗ 旅인 09.05.25. 15:27
    제게 무슨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는 뜻인지…? 가장 답답한 것은 우리 사회에 그나마 없는 민주주의를 향해 폭풍우를 지쳐가는 향도의 목소리가 점차 점차 거친 파도 속에 지워져 간다는 그 안타까움일 뿐 입니다.
    ┗ 다리우스 09.05.25. 18:08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볼 때 이건 정치적인 의도가 아니라 한 개인의 작품과 현실간의 불일치에 대한 비평적 총람이라고 죽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정치가 아니라 문학,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비평의 영역이겠습니다. 그러니까 숨은 대전제는 즉, 작가와 그 작품 세계, 나아가 작가와 그 문학 내부의 정치적 의도는 일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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