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16 09:48 : 벌레먹은 하루

딸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

공지영의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던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다 읽었다. 이 책은 화요일날 분리수거 때 버리기 위한 신문들과 매달 배달되어 오지만 한번도 읽지 않고 그냥 분리수거되는 한국논단이라는 잡지 틈에서 발견했다.

여성작가의 책이나 수필집같은 것에 관심이 없던 나는, 어제 산 것처럼 깨끗한 책이 버려진다는 것이 아깝고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라는 점에서 한번 읽어볼까 하고 가방에 넣은 뒤, 출퇴근 시간에 조금씩 읽었다.

여자들은 사랑을 하는구나!

책을 읽으면서 남자가 다가가지 못하는 여자의 모퉁이를 발견했고, 그것이야말로 젊은 시절 여자들이 나를 매혹시켰지만, 내가 결코 알지 못했던 그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면서 남자들이란 하찮은 것들로 머리를 썩히는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열차시각표

당신은 무슨 책을 가장 열심히 읽었습니까?

지하철에서 공지영의 산문집을 다 읽고 고개를 들어 멀거니 맞은 편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 마주 섰던 열차가 차창을 스치며 미끄러졌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내가 탄 차가 출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심결에 몸을 끼우뚱했다. 하지만 반대편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대학시절 가장 열심히 본 책이 우습지만 열차시각표라는 것이 기억났다.

시각이 별로 바뀔 것도 없는 열차시각표를 두세달에 한번씩 사서, 당장 내일이라도 여행을 떠날 것처럼 경부선, 호남선의 출발 시각을 들여다보고 구례구나 순천에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그려봤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기 보다 막연히 떠나가고 싶어서, 할 수 없이 가야할 곳을 만들어야 했던 모양으로 시각표에 있는 조그만 지도를 들여다 보며, 어디로 갈 것인가로 설레곤 했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면서 완행을 타곤 했다. 개찰구가 열리고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위하여 허겁지겁 달려가 급히 맨 마지막 차량에 올라탈 때, 어슬렁 걸어서 기관차 쪽 맨 앞의 객차에 올라타 자리를 잡고 나면 뒷칸으로 부터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러면 초조한 마음으로 쿵소리가 한번 울린 뒤, 역사의 풍경이 뒤로 밀려가는 그 느글거림을 기다리곤 했다.

중앙선같은 경우, 일제 때 만들어진 객차에는 임검석이라는 것이 있기도 했는데, 그 자리는 대충 화장실 옆이나 건너편에 있었다. 재수가 좋아 그런 자리를 발견하게 되어 자리를 잡고 문을 닫아 걸면 여행은 아주 은밀한 것이 되었다.

순천에서 탄 경전선은 젠장할 만큼 느렸다. 언덕을 올라가는 열차의 뒷문에서 내린 친구는 후다닥 달음질을 쳐서 요술처럼 앞문에서 나타났다. 어느 지선은 승객이 하나도 없어서 한시간가량 노란 햇빛이 객차의 바닥에 그리는 그림자와 함께 여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때면 정말 외롭다.

밤차를 타고, 개울물 소리가 깨어날 즈음 어느 역에 내려 기지개를 켜면, 호주머니 속에는 약간의 돈과 시간이 있을 뿐이며, 중간고사 성적은 아무래도 좋았고 그 날 하루 나는 어디나 갈 수 있고 또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비가 내리는 시외버스정류장은 정취가 있다. 시간은 많이 남아있는데,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대합실의 승강구 위에 걸린 노선표에 적힌 가 보지 못하여 아득한 지명들과 출발 도착 시각들을 다 보고, 서성이며 가판대의 잡지나 신문의 겉표지를 다 훑어보고 난 후, 슬픔처럼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땅거미가 질 것이고, 잘 곳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약간의 초조함으로 정류장의 밖으로 나가 처마 밑에서 비를 긋는다. 들에서는 빗소리에 아우성을 치며 젖어가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산등성이로 부터 골안개가 내려온다. 그러면 엽서라도 한장을 부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머리 속은 점점 하얗게 변하고 단지 무심코 세상 위에 널어 논 나의 삶이 눅눅하게 젖었다. 길은 아득했고. 내버려두고 온 하찮은 일상들이 그리웠다.

그러니 열차시각표를  열심히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들

왜 놈은 한번도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지 않는 것일까?

마하무드라의 노래

책장에서 꺼낸 이 책은 1980년 11월의 1쇄판이다. 라즈니쉬가 오쇼라고 불리워지기 이전, 브하그완 슈리 라즈니쉬라고 할 때의 책이다. 맨 뒤에 보니 책값이 3,000원이다. 신기하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있다.

마지막 경험은 이미 경험의 영역을 넘고 있다. 거기 경험자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 경험하는 자가 없을 때 그 경험에 대해서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누가 경험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 경험과 연결을 갖겠는가? 주관이 없을 때 객관도 사라진다. 강의 둑은 사라진다. 오직 경험의 강물만이 남는다. 지식은 거기있다. 그러나 그 지식을 아는 자 거기 없다.

200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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