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함께…

시간의 틈

담배를 끊고 나자, 담배를 꼬살라 연기와 함께 한숨을 날리고 싶다는 욕망보다, 주름졌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바람 든 비닐봉지처럼 밋밋하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그 밋밋했던 시간 속에서 미미한 틈을 찾아, 즉 회의가 끝났다거나 식사를 한 후, 담배를 피우고, 그 사이로 삼십년이 넘도록 꽁초를 쑤셔 박았다.

그래서 시간의 곳곳에 담뱃불 자국들과 자국들 사이로 누렇게 쭈그러든 주름들이 뒤덮혀 있었다. 주름들은 사유처럼 음울하기도 하고, 인생의 의미같아 보이기도 한다.

담배를 참아왔던 일주일동안, 과거처럼 나의 밋밋한 시간 속에 불침을 놓지 못한다는 것이 답답했다. 희의가 끝난 후 한 모금을 삼키고 토해내는 그 연기의 맛, 그리고 시간이 갈색연기 속으로 타래를 풀며 공기 중에 흡수되고 무화되는 그 절묘한 순간들, 식사 후의 포만감을 감싸는 후식과 같은 향연, 심심한 공기내음 속으로 매캐한 자극으로 다가옴으로써 숨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간신히 느끼게 해주던 타르연기가 사라지자, 그만 시간은 간이 안된 국과 같이 싱거워지고 말았다.

사실 내 생활의 싱거움이란 간이 안된 국물 만도 못한 것이었다.

제밀라의 바람

‘세상에는 정신 그 자체를 부정하는 하나의 진리가 태어나도록 하기 위하여 정신이 사멸하는 곳이 있다. 내가 제밀라에 갔을 때, 그곳에는 바람과 태양이 있었다.’라고 젊은 까뮈는 제밀라의 바람이라는 글의 앞머리에 썼다. 정신 그 자체를 부정하는 진리를 찾기 위하여 그의 글을 읽다가 그만 진리와 정신 모두를 잃어버리고, 고독한 자연 앞에서 폭양과 바람을 맞으며 방황할 수 밖에 없었다.

제밀라(Djemila)는 알제리의 900m의 고원에 있는 로마의 성채이자, 식민도시이다. 하지만 그 이름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유혹적이다.

알제의 여름

‘무언가를 배우고 교육을 받고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이곳에서 얻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쓴 알제의 여름은 그의 수필집 결혼(여름은 2~3년 후에 쓰여진 만큼 딴 책이라고 보자) 중 가장 무덤덤한 문체로 쓰여있지민, 젊은이가 감당하기에는, 아니 젊은이만 감당할 수 있는 삶의 열광들로 가득해서 알제(Algier)는 폭양과 열기 그리고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인생은 건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연소시켜야 할 대상이다.”라고 23살의 까뮈은 건방지게 지껄이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오늘은 2009년 2월 13일 금요일. 지금은 8시 10분이다. 비 내린다. 낡은 오백원짜리 동전색의 아침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렵다. 단지 살아가기 위해서는 거친 피부를 적실 약간의 습기와 우울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하늘을 보면, 말보로 라이트의 한모금이 얼마나 묵직한 감미로움이었던가를 기억할 수 밖에 없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난 향 09.02.13. 08:52
    담배끊기가 어떻게 되가는지 궁금했는데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군요..허전해도 힘내시길….

    유리알 유희 09.02.13. 10:59
    여인님! 담배맛을 모르는 유희도 사념들이 밋밋하기만 합니다. 그건 아마도 연륜탓이 아닐까 해요. 나이듦이 감각을 무디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담배 때문은 아닐거라는 억지위안이라도 드리고 싶다고요. 오늘 대천의 바닷바람속에서 부인과 나 잡아 봐라, 하시면서 아주 유치하게 노시는 겁니다. 까뮈가 기절할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엘프 09.02.13. 11:16
    ㅋ 낡은 오백원짜리 동전색의 아침..그러네요.^^ 비오면 추워진다는 말에 긴장해서 겨울코트를 입고 나왔는데 열대바람이 불어오고 있어서 깜짝 놀란 아침이었네요. 같이 담배를 꼬스를 친구가 하나 둘 사라져간다는 건 서글픈 일이었어요. 담배끊고 대신 마리화나를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만요.^^ 임어당님의 연초부인을 생각하면서 부디 오늘같은 날 그녀를 저버리지 마시기를…^^*

    다리우스 09.02.13. 12:51
    끊고 나자,,,! 암튼 축하드립니다. 밋밋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가 곧 도래할 줄로 믿습니다.^^;

    꽃님이 09.02.13. 13:40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즐거움을 택하시는게 더 큰 위안이 아닐까요? ㅋㅋㅋ……. 이러다 한 대 맞을라 줄행랑 칩니다. ==========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
    ┗ 집시바이올린 09.02.13. 16:13
    큭큭 미치……………^^ 삼십육계 줄행랑이 더 재미나요^^;;

    유진 09.02.13. 13:53
    제가 30년을 멋지다’라는 사고 속에 가둔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대요.. 만약 담배로 인해 5년 일찍 죽는다면 자신은 단연 5년 일찍 죽는 쪽을 택할거라고.. 솔직히 그렇게 일과 담배에 온 삶을 일관되이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이 옆에서 보기에 그리 나빠보이지는 않았답니다.. 이곳도 온종일 비가 올 듯합니다.. 간만에 평안을 얻습니다.

    자유인 09.02.13. 16:35
    담배 만큼 이별이 오랫동안 기억되고 틈틈히 그립고 애타게 하는 것은 드문 듯 합니다.9일째가 이별의 아픔이 가장 심하다고도 합니다.잘 견디십시오.^^

    집시바이올린 09.02.13. 23:20
    낡은 오백원짜리 동전색의 아침…..우와 멋져~ 회색빛에 약간은 꼬장한 손때가 묻은 색깔…. 단지 살아가기 위해서는 거친 피부를 적실 약간의 습기와 우울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담배 잘 끊으셨어요 축하드려요 수명을 단축 시키는 걸 왜 피워요 …밋밋한 시간들이 바람 든 비닐봉지군요 주름이 하나도 안잡혀서….글쿤요 주름을 잡아야 할텐데…
    ┗ 집시바이올린 09.02.13. 23:21
    저는 입으로만 쓰는데, 여인님의 글을 읽으면 뚜렷한 메세지가 전해오는 따끈한 형상이 떠올라요 그것이 차이점이겠지요^^

    더불어숲 09.02.14. 15:50
    말로르 라이트를 애연하셨군요. 저도 작년에 100일 쯤 금연 했다가…왠지 30년 이상 피운 제 습관의 벽에 부딫혀 또 연기을 날리고야 말았지요. 지금은 일단 담배 안 사고 안가지고 다니기 전략으로 바꾸었지요…금연이 아니라 절연, 구두쇠 전략. 혼자 있을땐 물마시고…누가 피우면 얻어피우고, 그러나 미안하거나 자존심 상하면 안피우며 견뎌봅니다. 그러나 잠 못든 밤 몰래 편의점 가서 한갑 사서 피우고 이틑날,,친구 줘버리고 또 얻어피우고….요즘은 담배피우니 냄새난다고 핀잔을 하도 들어 가급적 적게 피우려고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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