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1 08:04 : 언덕 위의 고물 書店

요즘 날씨는, 먼바다의 태풍으로 인하여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낭설 - 요즘 TV에서 하는 말들은 대충 받아들이기가 석연치 않다. - 에도 불구하고 맑다. 맑다기보다 투명하다.

며칠동안 열대야 때문에 아내가 틀어준 에어컨 바람에 그만 감기에 걸렸다. 아침이면 땀을 흘리며 지하철로 가고, 지하철의 냉방에 젖은 몸이 식으며 기침을 한다.

기침을 하며 회사 흡연실의 창 밖으로 바라본 하늘은 구름으로 어둡다. 하지만 가시거리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공기는 투명하다. 며칠동안 작열하던 염천에도 광스모그가 없었는지, 공기는 차분하다. 건물과 산과 나무들은 날이 흐림에도 며칠동안 표면에 축적했던 빛을 다시 토해내는듯, 윤곽이 뚜렷하다.

이런 풍경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며칠동안 위소보루님이 읽는다고 해서, 보르헤스의 <불한당의 세계사>를 읽고 있다. 보르헤스는 미셀 푸코와 같이 온갖 것들이 뒤섞여 있는 역사의 지층을 탐색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 속에서 소외된 허접한 것들,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상은 역사처럼 인과관계에 입각하여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온갖 불합리한 것들, 충동과 욕구 그리고 두려움과 망상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보르헤스는 이 책을 1935년에 썼다. 식민지를 경영하던 그 시절, 서양에서 바라본 동양이란, 미개와 불합리로 점철된 그런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 중의 단편 <여해적 과부 칭>과 <무례한 예절 선생 고수께 노 수께> 등은 참고문헌이 보르헤스 자신에 의해 적시되어 있음에도, 어딘지 석연치 않다. 여자 해적 이야기는 1797~1809년을 무대로 한다. 이 시기는 청나라 가경제(嘉慶帝 : Jiaqing) 때 이다. 소설에 나오는 왕의 이름은 키아 킹이다.

이 글을 보면서, 올리비아 뉴튼 존이 나왔던 영화, 제너두(Xanadu)가 떠올랐다. 북경으로 부터 북방 270Km 떨어진 곳에 카이민 푸가 있다고 한다. 카이민 푸는 원나라 때에는 상도(上都)라고 불렸다. 그곳에 쿠빌라이 칸이 여름궁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상도가 음역되고 음역되어 제너두로 바뀌고,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과 행복으로 둘러싸인 전설의 파라다이스로 변모된다.

몽고제국이 모스크바를 함락하려 하다가 페스트가 두려워 철수한 이후, 오랫동안 스스로 야만인이라는 인식을 지닌 서양인들에게 동양이란, 갈 수 없는 복락의 세계로 이해되었고, 온갖 기화요초와 향료들, 비단과 향기로운 차로 둘러싸인 곳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중국역사 속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는 청나라다. 누르하치가 1616년에 후금을 만주에 세운다. 그의 아들 홍타이지(황태극)가 팔기군 체제를 갖추고, 조선반도로 남진, 1636년 12월 남한산성을 에워싸고, 1637년 1월에 깡깡 얼어붙은 삼전도의 맨 땅에서 인조는 신하의 예로써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 세번 절하되 아홉번 머리를 땅바닥에 부딪는 예법)를 올린다. 청태종은 높은 계단에 앉아 머리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투덜댔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신하 인조에게 전면에 한문, 후면에 만주문과 몽골문으로 된 삼전도 청 태종 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를 세우라 명하고 철군한다.

그의 아들 순치제는 명나라가 국력을 탕진해가며 증보수한 만리장성을 넘지 않고, 조용히 장성이 서해에서 끝나는 산해관으로 우회, 말발굽 소리를 드높혀 서쪽으로 진군, 북경을 함락하고 명나라의 잔존세력들을 미얀마까지 몰아낸다.

순치제 이후의 왕들은 강희(제위 1661~1722), 옹정(1722~1735), 건륭(1735~1795)이다. 이들은 중국 10대 황제로 불리워질 만큼 영명하고 뛰어난 통치력을 보였다. 강희제는 제위 61년으로 중국 역대 황제 중 제위기간이 가장 길다. 그는 오삼계 등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호랭이 담배피우던 시절,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1689년)을 맺어 러시아의 남진을 막고, 서진하여 영토를 위구르 자치구까지 넓히고, 티벳을 식민지화함으로써 현재의 중국영토를 획정한다. 그리고 강희자전을 만들어 학술진흥에 힘쓴다. 그의 아들, 옹정은 아버지 때문에 제위기간은 짧으나 민생과 내치에 전념했다. 그 다음이 건륭으로 할아버지보다 길 수 없다고 제위 60년에 가경제에게 양위하고 태상왕 3년을 한다. 그러니 중국 역사 상 실질 제위기간이 가장 긴 것은 건륭제이다. 건륭은 내치, 민생, 해외정벌, 문화, 학술 어디 하나 빠짐이 없이 발전을 시켰으며, 서양문물에 대해서도 관대한 입장을 견지했고, 당대에 사고전서를 편집한다. 우리의 정조대왕께서 북경에 사신을 보낼 때마다, 사고전서를 구하라는 명을 내렸고, 사신들이 백방의 노력을 다했어도 결국 구하지 못한다.

기록에 보면, 건륭제 치위 60년 중 한 사료를 보면 50년동안 1억4천3백만(1741년)에 달하던 인구가 3억4백만(1791년)으로 늘었다고 한다. 현대사 이전에 이런 인구증가는 기록 상 거의 부재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참고로 한나라 말기(AD100년경) 중국의 인구는 5천만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 황건적의 난을 거쳐 위촉오의 삼국지의 전란기를 지나고 진이 삼국을 통일했을때, 인구는 1천7백만. 며칠을 가도 개와 닭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고, 전란 이후의 피폐와 참상을 누군가는 술회한다. 한나라 때의 인구 오천만은 당나라에 이르러서도 복구되지 않고, 물경 1600여년이 지나서야 2.8배인 일억사천만에 이른다는 이 기막힌 사실 이후에 50년만에 인구가 2.4배로 늘었다는 사실도 경악할 일이다.

강희제의 강희자전은 대단한 작업이다. 최고의 백과사전을 지닌 나라가 팍스 브리태니커를 운영한다고 떠들어 댔지만, 이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미국이 만든다. 한국의 국어사전은 무늬만 국어사전이지, 일본의 국어사전을 베끼고 있는 실정이다.

자전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국력을 상징하는 것이며, 사고전서를 바탕으로 건가지학(건륭 가경 때의 학문)이라는 학문의 새로운 방법론인, 청대 고증학 또한 이때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일치일란이라고, 융성했던 건륭제의 치세는 말기가 되면서, 제국의 일각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잦은 외국정벌과 지방순회 등으로 재정이 피폐해지고 관리들의 부패, 인구의 증가를 감당하기에 답보상태에 머문 경작면적의 증가(동기간 중 15.8% 증가) 등이 맞물리면서 서서히 제국의 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백련교도들의 난이 일어났고, 건륭은 가경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가경제는 백련교의 난을 평정하였으나, 그 후 광동, 복건, 절강 등 남동해안에서 민란이 났고, 1813년에는 천리교가 일어나 궁성을 범하기도 했다. 그 후 묘족, 회족 등이 반란을 도모하고 아편이 밀수되기 시작하며, 나라는 점차 피폐되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는 일치하지 않으나, 영국의 사신이 빅토리아 여왕의 친서를 지니고 하서별장인 이화원에 가경제를 만나러 갔을 때, 친서를 본 중국의 관리는 "노랑내나는 요망한 계집이 감히 황상께 올리는 글에 신(臣)이라고 쓰지 않았다"고, 황상의 앞전에서 보란듯이 친서를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가경제가 아닌 도광제나 함풍제 때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쪽 해안가에서 아편전쟁이 나고 홍콩이 영국에 떨어지게 된다.

여해적 과부 칭은 만청정부가 몰락하기 시작한 가경제의 제위 시기와 일치하지만, 아직은 만청정부가 강건한 시점으로 해적이 창궐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무례한 예절 선생 고수께 노 수께>는 과부 칭의 이야기에 비하여 더하다. 에도막부(1603~1867)가 뿌리를 내린 1702년 효고현의 아코성의 성주가 천황의 사신을 맞이하게 된다. 워낙 사신을 맞이하는 예가 번잡스러워 사신을 보내기 이전 에도(동경)의 천황 황실에서 예식을 지도하는 선생을 보낸다. 그가 바로 고수께 노 수께이다. 그는 아코성의 성주에게 무례하게 예법을 가르치다가 성주를 격노케 했고, 분노한 성주는 싸가지 없는 선생의 이마에 칼자국을 남긴다. 선생은 군사재판을 열고 성주를 할복케 한 후 재산을 몰수, 음풍농월하다가 47명의 료닌에게 잡혀 할복을 강요받지만, 겁이 난 그는 할복을 하지 못하고 참수를 당한다.

하지만 천황의 황실은 메이지 천황에게 대정봉환이 이루어진 1867년까지 에도가 아닌 교또에 있었다. 또한 막부가 체제가 100년에 이른 그때, 천황이라는 이름조차 아직 없었고(천황이란 명칭은 메이지가 대정봉환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성립되었다고 한다), 그가 가진 권력이란 신도라는 무당연합체의 총대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쇼군이나 다이묘에게 살려구다사이로 연명하는 처지에 불과했다.

천황의 사신을 맞이하는 예법을 가르치는 선생에 의해 다이묘나 성주가 군사재판에 회부되고 자결을 명 받는다는 이런 식의 스토리는 메이지 시대 이후 군국주의의 화신으로 올라선 덴노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 부터 역소급하는 빈약한 역사인식에 불과한 것이며, 이 이야기를 쓴 1935년, 서양의 동양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빈약했는가를 보여주는 일례다.

내가 알기에는 서양이 동양에 대하여 인식을 시작하고 열망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인도에서 부터 시작했고, 구스타브 융이 여동빈의 태을금화종지에 대한 연금술적 연구와 더불어 헤르만 헤세의 도가적 관심에서 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조셉 니이덤(Joseph Terence Montgomery Needham :1900~1995)처럼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있기는 하지만, 동양이 서양의 대중문화 속으로 습합되어가는 시기는 베트남전이 한창인 시절, 태평양을 바라보는 북미 대륙의 해변가였다. 그 해변에서 히피들이 가리방을 긁어 갱지에 등사하여 읽던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이 1970년 출판되자, 공전의 히트를 친다. 순식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출판기록을 갈아치우면서, 단박에 20세기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다. 한국어판이 1973년에 나왔고, 1974년에 나는 그 책을 읽는다.

하지만 그 소설을 읽을 때,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그것은 구파무협소설에 요한복음의 전반부를 짬뽕한 동물우화집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홀로 나는 법을 연습하다가 절벽에 부딪혀 실신한 후, 밝은 빛에 감싸인 갈매기들과 치앙(張)이라는 늙은 갈매기를 만난다. 아마 그들은 화산파 장문인과 그의 제자 쯤 될지도 모른다.여하튼 조나단은 치앙라오쓰(張老師)로 부터 華山飛法과 내가심법을 전수받고, 예언자가 되어 속된 갈매기의 무리로 돌아와 진정한 나는 것에 대하여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 <갈매기의 꿈>은 히피들이 지향하던 평화와 자유는, 서구의 물질문명이 베트남의 밀림을 소이탄으로 들쑤셔대는 것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그윽한 정신문명에 기반할 때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심어주면서, 뉴 에이지라는 거대한 크로스오버의 해일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아마 이러한 경향 이전에 이소룡이 이단 옆차기로 이야오 이야오 들쑤시고 TV 드라마 <쿵후> 같은 것들이, '서부로 가자!'에서 더 나아가 태평양을 지나 극동에 대한 열망으로 바꾸어 놓았는지 모른다.

그 후 1977년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개봉되었다.

친구가 "야 저 놈들 포스, 포스하고 말하는데... 우리 말로  뭐냐?"하고 물었고, 나는 오랫동안 생각한 후에 "그것은 氣가 아닐까?"라고 대답했다.

스타워즈는 요다(일본)로 대표되는 제다이의 기사단, 전자총이 피웅거리는 우주 속에서 제다이들이 광선검을 붕붕거린다는 것 자체가 사무라이와 같은 짓거리며, 서구가 이룩한 과학문명을 비웃는 그런 것이었다.

월남전과 함께 시작된 반전운동의 일환으로 나타난 히피문화는 한때 서구의 퇴폐적인 문화행태로 받아들여졌지만, 동서문명이 교차하는 운동의 시발이 되었고, 자존심을 상실한 동양이 다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분명하다.

시간이 더 지난 21세기의 이 시점에서는, 더 이상 1935년 보르헤스가 쓴 불한당의 세계사와 같은 동양에 대한 인식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고, 푸치니의 투란도트와 같은 웃기는 짬뽕도 아닌 극본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지식의 쪼가리 사이를 파고드는 과감한 상상과 그것들을 발효시켜가는 그럴듯한 요설들이야말로 이 황폐하고 재미없는 세상에, 제너두와 같은 상상의 파라다이스를 만들기도 하고 때론 연옥과 지옥이 바로 여기라고 말하는 문학적인 작업이 아닐까 싶다.

20090811 비 오기전에 시작하고 이제는 비가 온다.


주) 사고전서 : 건륭제(乾隆帝)가 1741년에 자료를 수집, 1781년에 첫 사고전서 완성. 수록된 책은 3,458종, 7만 9582권, 經·史·子·集의 4부로 분류 편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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