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영혼

이 이야기는 불사의 현인이거나 아니면 사악한 영혼을 지녔다는 생 제르맹 백작과의 대화이다. 생 제르맹은 근대의 서구 역사에 간헐적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생 제르맹이란 흔한 이름이고, 그에 대한 기록 또한 정식기사가 아닌 흥미거리로 가득한 이류급 잡지에서나 나온만큼 실존 여부는 미상이다.

생 제르맹이 18세기 어느 날부터 서구역사에 불쑥 등장한 데 반하여, 이 글의 제르맹은 이천년전에서 부터 살아왔다고 하며, 불사의 능력을 갖게 된 비밀을 털어놓고 있다.

1. 백작과의 대화

그의 집은 소박했다. 수세기동안 백작으로 불리어 온 만큼, 넓은 정원과 숲 사이에 있는 저택의 깊숙한 곳, 큼지막한 서가가 있는 서재에서 그를 만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집은 방생가의 조용한 골목가에 위치하고 있는 3층 짜리 주택이었다. 도로로 면한 현관에서 집사의 안내로 들어간 거실은 아담했다.

기괴한 전설 속의 인물과의 대화라는 점에서 긴장을 했다. 그 곳에 들어섰을 때, 부드럽고 친절한 인상의 중년 신사가 가벼운 웃음과 함께 따스하게 손을 잡아주었다. 전형적인 사십대의 신사로 그의 얼굴에는 현명함 속에 인자함이 깃들어 있다.

해가 뉘엿해질 때까지 함께 있었으니, 8시간 정도 대화를 했다. 녹음이나 기록은 말아달라고 한만큼, 우리의 대화는 중단없이 이어져 나갔다. 간혹 기억을 더듬거나, 감정을 자제하려는 듯 침묵에 빠져들기도 했으나, 그의 이야기는 고요하고 차분했다.

잡지기자로써 소화하기에는 그의 일대기는 장대한 역사 위에 놓여 있었다. 고대와 중세의 마법과 같은 이야기에 둘러싸이다 보니 <나니아 연대기>를 읽는 느낌에 빠져들기도 했다. 대화의 내용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다. 그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때 직면하는 이러한 모호함이, 그를 “기벽이 있고 허황한 사람이다”(호레이쇼 윌폴), “전 생애를 통해 만나본 가장 비범한 인물'(그라프 칼 코벤체크)이라는 평가로 갈라지게 했는지 모른다.

이야기에는 고대의 전승과 같은 것으로 가득했다. 사용하는 단어들도 생소한 것이 많았고, 언급된 인물 또한 역사에서 지워졌거나, 정사 속에 취급되지 않는 인물들로 나의 지식으로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당장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 알게 될 것이요. 안다고 해도 단어는 허깨비에 불과하겠지만…”

생 제르맹 백작으로 18~19세기에 불리워져 왔으며, “결코 죽는 일이 없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볼테르)이라고 칭송을 받아왔던 그는, 현자·마법사·프리메이슨의 수뇌·악마의 현신·연금술사·협잡꾼·약장사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녔고, 각국의 지식인(생 마르텡, 메스메르, 킬리오스트로 등이 그의 제자라는 말도 있음), 정부 관료들은 물론 루이 15세의 정부인 마담 퐁파드르나 마리 앙뚜와네트와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론 첩자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일부 인정을 하면서도, “그렇게 바삐 살아갈 이유가 없는 사람이요. 조용히 여행이나 하고 기도나 묵상으로 남아도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오. 사교계나 음모로 가득한 궁전은 나에겐 흥미도 어울리지도 않지요.”

자신에게 많은 이름이 있는 이유는 처음에는 살아가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숨어지내기 위한 방편이라 했다. 또 자신을 사칭한 사기꾼들이 이름을 먹칠했지만, 생 제르맹 또한 익명에 불과한 만큼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내 이름은 본래 마기 느히비암 아 캄비(캄비의 사제 느히비암), 메데(메디아: 이란 북서부에 있던 고왕국)가 고향이지요.”

조상 때부터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마기) 집안 출신이고, 그 역시 사제였다. 예수보다 9살 정도 나이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이천년을 살았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불행과 슬픔 그리고 고통으로 부터 벗어나 감정을 다스리고, 부처와 같이 영원한 자유를 맞이한 각자(覺者)겠지요. 나는 종교적 사제임에도 범속한 감정에 휩쓸리며, 길고 지루한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무녀 씨빌에게 신은 영원한 삶을 주었으나, 젊음을 주지않아 육신이 새장 안에 들어갈 정도로 쭈그러 들었듯, 저에게 지혜를 주진 않았어요. 그래서 불사(不死)란 영원한 저주와 형벌이었습니다.”

2. 불사의 나무

이천년전 세계사의 중심에 있었다고 그는 진술한다. 불사의 존재가 믿어질 수 없듯, 그의 이야기는 황당했지만, 그를 따라 이천년전 예루살렘으로 걸어들어갔다.

“이 저주스런 운명은 예수 때문이지요.”

성서의 동방박사 중 한사람이 외조부라고 했다. 그는 마기 중 현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자신은 어렸을 때 외가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의 메데는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이후 동서를 잇는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유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 외에 시리아의 바알 신앙과 바빌로니아의 제의, 심지어는 박트리아를 통하여 인도의 사유가 메데에 흘러들고 있었다.

“그분은 수비학과 각 천사들에 배속된 별들, 세상의 모든 종교에 대해 능통했어요.”

자신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제가 된 서른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임종 시 자신에게 코덱스1Codex : 파피루스를 일정하게 재단하여 현재의 책의 형태로 제본한 것. 성스러운 글의 경우는 양피지로 된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했고, 코덱스는 상인들에 의하여 휴대가 간편하도록 제작된 것이다. 바이블과 같은 책들이 코덱스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대부분 기원 후이다.로 된 지도를 주며, 모든 강이 시작되는 곳으로 가서, 지도에 있는 나무를 찾아 그것을 베어 예루살렘으로 옮기라고 했다. “때가 이르면 그것을 언덕 위에 세우리라.”고 예언을 하고 돌아가셨다.

“세피로트2Sephiroth : 까발라에서 말하는 생명의 나무로 아담 카드몬(원형의 인간, 자웅동체의 아담, 신의 발현체)의 현현이라기도 함. 아인 소프(무한자)가 유출되는 10단계를 뜻하며, Axis Mundi 즉 우주와 세계의 중심이라고도 한다. 에덴에서 이 생명의 나무를 찾기 위해서는 지혜의 나무의 열매를 취해야만 한다고 한다. 중세의 전승에 의하면 아담이 셋(카인과 아벨 이후의 세번째 아들)에게 죽기 전, 에덴으로 가서 생명의 나무(세피로드)의 씨앗 세개를 가져와 자신의 시신을 매장하기 전에 자신의 입에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셋은 간난신고 끝에 에덴에 당도하여 들어가려 한다. 미카엘이 그를 저지했다. 셋이 아담의 부탁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미카엘이 그를 들어가게 한다. 생명의 나무의 과실에서 씨앗을 채취하여 집으로 돌아오니 아담이 이미 죽었다. 셋은 씨앗 세개를 아담의 입에 넣어 매장한다. 그 후 아담의 무덤에서 세 그루의 나무가 자라난다. 후일 이 나무는 잘려져 골고다의 십자가가 되었다고 한다.였지요. 9년동안 방황 끝에 그 자리를 찾았을 때, 메마른 세 그루의 고목이 협곡 안 평탄한 곳에 서로 얽혀 있었어요. 죽은 나무인가 했지만, 열매가 하나 있더군요. 마노처럼 딱딱하여 먹을 수는 없었지만, 모양이 독특하여 내 품에 간직했지요. 도끼로 메마른 밑둥을 찍자, 엄청난 수액이 흘러 개울을 이루었고, 밤이 되자 계곡을 채운 수액은 피로 변했고, 사람의 얼굴에 소의 몸, 그리고 뱀의 꼬리에 커다란 날개를 가진 케루빔3Cheribim : 창세기의 에덴 동편을 지키던 그룹(Cherub)으로 언약의 궤의 주변에 장식된 앗시리아 스핑크스를 말한다. 사람의 얼굴에 숫소의 몸, 사자의 꼬리에 날개를 지녔다고 한다.이 골짜기를 떠돌며 울부짖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이었지만, 그 몸과 눈에서 나오는 광채에 견디지 못하여 깨어나기를 바랄 정도 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인 몇은 코와 눈 사이로 피를 흘리며 죽어있었지요.”

두려움에 떨며 협곡을 빠져나와 코덱스에 그려진 형상대로 나무를 다듬어, 고원을 지나고, 사막과 광야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루살렘이란 곳은 끔찍한 곳이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숨통이 막힐 듯 좁아터진 곳이지요. 그곳에 사는 인간들은 타인에 대한 관대함이란 찾아볼 수조차 없는 옹졸한 인간들이었지요. 얼마지나지 않아 그들을 혐오할 수 밖에 없더군요.”

그는 이름을 시몬 마르쿠스(사도행전에 나오는 마구스는 아니라고 했다)라 하고, 메데로부터 양탄자와 직물을 들여와 장사를 하거나, 사람들의 운명과 점을 보아주기도 했다.

“헤롯의 궁전에도 사람을 대고 있었고, 총독의 부인이었던 프로쿨라와는 자주 만났습니다. 지성적이며 동정심이 많았지요. 무녀였는데, 지금의 프랑스 지방 여자로 동방의 종교에 관심이 많았지요.”

니산월4유대력으로 정월, 태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함. 유월절은 니산월 14일(보름)이다. 부활절은 그레고리력이 도입된 이후, 춘분 이후의 보름이 지난 다음의 일요일(태양의 날)로 그레고리력이 도입되면서 획정되었다. 금년의 경우 춘분이 3/20일, 3/22일이 보름, 3/23일이 일요일로 3/23일이 부활절이 되었으나, 보통은 4월에 부활절이 있다. 이런 태양과 만월의 상징은 초기 기독교 당시 로마에 유행했던 미트라교의 무적의 태양(Sol Invictus)의 제의와 무관하지 않다.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총독의 부인이 그를 불러 꿈을 이야기했다. 피가 온 세상을 뒤덮었는데, 그 피는 해골의 곳(골고다)에 있는 나무에서 비롯했다고 했다. 총독이 손에 묻은 피를 씻어도 지워지지 않고, 그만 모욕과 오물 속에 가라앉았다며, 그녀는 떨었다.

그녀의 꿈이 자신이 계곡에서 꾼 꿈과 비슷하여, 그녀를 위로하고 골고다로 올라가보니 바위 산에는 잡초 만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예언의 때가 다가온 것을 알았지요. 그래서 언덕에 나무를 세우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프로쿨라는 무슨 일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지요. 외조부의 예언을 이야기해 주었고, 친절한 그녀는 연락하겠다고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총독의 부관인 만류스에게 들었다며 부러진 창에 쓸 재목을 구하기 위하여 로마군병이 찾아왔고, 나무 하나룰 내어주었다.

그 이튿날 새벽에 총독의 부인이 재목을 찾는다는 전갈을 받았다. 관저로 가자 마당과 문 앞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시녀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가자, 프로쿨라는 “저 사람이 예수요. 저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리다.”했다. 그때 총독이 관저 앞 사람들에게 소리친 후, 대야를 내놓고 손을 씻었고, 피투성이가 된 예수에게 자주빛 망토를 입힌 후 자신이 가져간 나무기둥을 그의 어깨에 얹은 후 골고다로 가도록 했다.

오전의 햇빛은 극명하게 밝았다. 성벽과 신전은 빛으로 번쩍거렸고, 아침부터 열기에 가득했다. 죽어라! 죽어라! 사람들이 소리치며 예수의 뒤를 따랐다. 좁은 언덕 길에는 사람들로 꽉차서, 그 틈을 헤치고 나가느라 시간이 걸렸다. 예수는 몇번이나 넘어졌고, 흘린 피로 기진하여 일어서질 못했다. 결국 지나던 사람에게 나무기둥을 지게 했다.

골고다에 올라가자, 짊어진 나무로 T자형의 형틀(십자가가 아니었다고 했다)을 만들었다. 예수를 그 위에 올리고 팔목과 발목에 못질을 했다. 쇠못이 나무에 박히는 소리는, 고통에 찬 비명에 지워졌다. 실신을 한듯 다시 조용해졌다. 형틀이 들어올려져 구덩이에 텅하고 떨어질 때, 다시 한번 비명이 언덕 위를 스치고 지났다.

“시간이 아홉시5제 삼시 : 유태의 시간은 해가 뜨고 난 후(6시)부터 하루가 시작되어 제 삼시는 번제를 드리는 시간으로 9시 경이 되며, 제 육시면 정오이다. 예수께서 제 3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제 9시에 돌아가신다. 쯤 됐어요. 형틀이 들어올려져 언덕 위에 세워졌을 때, 저주받은 나의 운명을 알게 되었지. 어렸을 때부터 위대한 마기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오. 불쌍하고 힘든 이웃과 신도들을 도와줄 수 있는 정도의 지혜를 바랬고, 가족과 함께 조용히 살고 싶었을 뿐이오. 예수의 고통을 보면서, 너무 멀리 왔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예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고통에 찬 그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오.”

지글거리던 태양이 정수리를 지날 즈음,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안개와 구름이 몰려와 언덕 위에 가득찼고, 빛과 함께 뒤섞였다. 갈수록 어둠이 깊어졌기에, 로마 병사들은 모닥불을 지폈다.

형틀 위에서 예수가 뭐라고 소리쳤으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칠흑같은 어둠이었습니다. 예수는 ‘아브라카다브라’6Abracadabra : 히브리어식으로 해석하면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아람어(예수가 썼던 갈릴리 지방의 방언)로는 ‘나는 말한대로 창조한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영지주의 바실리데스파에서 질병의 치유와 제마의 주문으로 쓰였다. 이 주문은 아프락사스와 관계가 있으며, 중세에는 연금술의 주문에 사용되었다.라고 소리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어둠의 시간은 깊고 길었습니다. 아후라 마즈다의 빛이 아리만의 어둠에 쫓겨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어요.”

예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뭐라고 말한 후, 고개를 떨구었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로마병정들은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해보기 위하여 창 끝으로 가볍게 찔러보았다. 마침내 자신에게서 부러진 창에 쓸 재목을 구해간 병정이 창으로 늑골 밑을 쑤셨고, 그 곳에서 수액과 같이 허연 물이 쏟아졌고 그 끝으로 피가 흘렀다. 그러자 마른 번개가 예루살렘과 유대의 광야 위에 으르렁거리며 울린 후, 지친 오후의 햇빛이 언덕 위를 다시 밝히기 시작했다.

바리새인 하나와 여인들이 로마병정으로 부터 시신을 받아갔다. 자신은 형틀을 내리고, 나무를 빼앗아 간 병정에게 은을 세데나리온인가 주고 창을 샀다고 한다.

“형틀과 창을 들고 돌아온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가게와 물건을 헐값에 처분하고, 형틀과 창을 태우고 재를 모았습니다. 먼 길을 가기 위하여 불을 피우고, 조상들이 그랬듯이 천사들의 이름을 하나씩 외우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가슴 속에 앞 날에 대한 열정과 희망이 피어올랐고, 우리는 서로를 얼싸 안았습니다.”

그의 일행은 북상하여 갈릴리와 다소를 지나 한달 만에 하란에 도착했다. 하란에서 동쪽, 유프라테스가 발원하는 곳, 나무를 자른 계곡으로 들어가 잘라버린 뿌리 위에 재를 뿌렸다.

“재를 뿌리며 무심결에 ‘아브라카다브라’라고 중얼거렸지요. 그러자 그 뿌리로 부터, 먼지와 같은 광채가 떠오르더니, 열개의 구슬로 나뉘었고 각각의 색채를 발하며 커다란 나무로 변했습니다. 잎이 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음악이 계곡을 채웠습니다. 모든 감각들은 희열에 들떠 마치 몸이 공중을 배회하는 것 같았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지만, 나무는 다시 빛이 되어 사라져버렸지요.”

그들은 오루미예 호수에 당도하여, 아테슈카데7불의 집 : 조로아스터교도들이 예배를 보는 장소임.에 들어가 마즈다에게 예배를 드린 후, 마침내 고향인 마슈하르드에 당도한다.

십사년 만에 돌아온 고향은 텅비어 있었다. 황폐한지 오랜 듯 개와 닭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살을 당한 모양입니다. 동북방에 박트리아를 멸망시킨 투르크족들이 살고 있었죠. 그들이 마슈하르드로 쳐들어 온 모양입니다. 오루미예 호반의 몇몇 도시도 침략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능욕을 당하고 노예로 끌려간 모양입니다.”

가족들을 찾기 위하여 주변 마을을 전전했지만, 그 야만족들이 도시와 마을들을 휩쓸고 지난 지 오륙년이 흘렀다.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잃었기에 하인들에게 떠날 것을 종용하고, 마즈다의 품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습니다. 더 이상 선에 머무를 의지가 나에겐 없었고, 의지가 사라진 사람은 결국 악신 아후라의 재물이 될 것이었습니다.”

맑은 날을 골라, 침묵의 탑8조로아스터교는 風葬과 鳥葬을 치르는데, 시체의 사지를 가르고 내장들을 새들에게 먹게 하는 조장을 치르는 장소이다. 둥그런 형태의 탑 형태로 되어 외부에서는 장례를 볼 수 없다.으로 올라갔다. 벽이 허물어지고 폐허가 된 탑 주변에는 독수리 등이 보이지 않았다. 팔에 상처를 내서 자신의 웃옷에 피를 묻혀 새들이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휘휘 내두르고 나무가지에 옷을 걸었다.

언덕의 저 편으로 부터 피 냄새를 맡은 몇마리의 독수리가 날아왔다.

십년넘게 간직해 왔던 구슬(나무의 열매)을 옆에 놓고, 칼로 자신의 배를 갈랐다. 불과 같은 통증이 엄습했다. 새들이 다가와 내장과 눈알을 빼먹기 전에, 죽어야 했다. 목의 동맥에 칼을 올리고 힘을 주며 소리쳤다.

“아브라카다브라!”

하늘 위에서 피냄새를 맡은 새들이 키윽거리며 선회하고 죽음이 엄습한 순간, 구슬에서 녹색의 빛이 흘렀나왔다. 빛을 보자 이유도 없이 구슬을 세상에 놔두면 안된다는 생각에 그것을 삼켰다.

“열매는 입 안에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녹았지요. 그러자 육신에 머물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지요. 하밍스타칸9연옥 : 천국과 지옥에 가지 못하는 영혼이 머무는 곳이다. 본시 유태교적 전승에 의하면 천국과 지옥이라는 내세관은 없었다. 단지 저승(She’ol)의 구덩이(시간이 존재하는지 의문임) 중에 머물다가 파루시아(신의 재림)의 시기에 죽엄들을 무덤 가운데에서 살려내 심판한 후, 무저갱에 가두거나 신의 왕국에서 영생을 누린다고 보았다. 이러한 소박한 형태의 내세관이 바뀌게 된 계기는 다리우스 1세의 할아버지인 키루스 2세(기독교에서는 고레스 대왕이라고 함)가 바빌로니아를 함락(BC538)시키고 유태인들을 바빌론 유수에서 풀어준 데서 기인한다. 유태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조로아스터 경전을 싣고 갔으며, 間約期(구약과 신약 사이의 기간)동안 내세관과 천사의 위계질서, 그리고 악신 아리만의 다른 이름인 샤이틴으로 부터 사탄의 개념을 도입한다.으로 올라가 천사의 심판대 위에 오르기를 기다렸죠.”

새떼들이 자신의 살을 뜯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침묵의 탑 위로 바람이 불었다. 추웠다. 눈을 떴을 때, 탑 둘레에는 새들이 날개를 접고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배를 보았다.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그리고 목과 팔의 상처도 사라졌다.

“그 치유력은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졌지요. 이후 영원히 마흔 여섯살입니다. 마흔 여섯살이란 나이는 오랜 세월을 버텨나기에 적절한 나이죠. 젊음의 열정은 평온함으로 바뀌었지만, 아직 늙고 피곤한 육체도 아닌…”

천년과 같은 고독이 그의 얼굴 위로 잠시 떠올랐다. 침묵 속에 있다가 예의 따스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구슬은 다 녹지 않고 씨앗이 입 안에 남아 있었지요.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아브락사스”10Abraxas :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가지고 있는 신성 혹은 영지주의자 바실리데스에 의하여 만들어진 말로 도대인들에 의하여 일곱가지의 창조력 혹은 행성의 천사로 인식되어진 일곱 글자로 이루어진 언어적 상징이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후일 이 아프락사스는 신의 이름 혹은 연금술이 흥성하면서 현자의 돌, 치유의 돌, 마법사의 돌로 불리어지게 된다. 이 아프락사스(부적, 돌)를 들고 아브라카다브라(주문)를 외우면 뜻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아브락사스에 대해서는 익히 알 것이라고 말했다. 신의 이름이라기도 하고, 중세에는 연금술사들이 이것을 찾았으며, 한편으로는 ‘치유의 돌’이자 ‘현자의 돌’이라는, 이것에 대해서 자신도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이것은 실제적인 효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상징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브락사스는 내가 지은 이름이지요. 하인들이 세상에 유포했고, 바실리데스11Basilides(AD120경)는 물질세계가 참된 하나님으로 부터 창조되었을 리가 없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창조론을 붕괴시켰다. 극단적으로 데미우르고스(창조주)를 거짓된 신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예수에 대해서 가현설(假現設 :Docetism)을 주창하여 ‘그리스도는 고난받지 않았고 구레내의 시몬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도록 강요받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진 시몬은 십자가에 못박혔다’하며, ‘예수 자신은 구레내의 시몬으니 모습울 취하고 거기 계시며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웃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적 신조를 전면 부인한다.란 친구가 기록에 남겼을 뿐이오. 그 후 사람들의 상상력은 그 이름을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의미를 덧붙였지.”

아브락사스는 분명 치유의 효과가 있다. 그러나 아브락사스란 선이 사라진 곳, 그래서 악이라고 불리울 것마저 사라져버린 곳, 그래서 아후라 마즈다 자신에서 발원한 악의 영, 앙그라 마이뉴(아후라)가 지멸된 그 지점에서 단일한 영으로 현현하는 신이자, 새로운 왕국을 가르킨다고 했다.

연금술이란, 불순물을 걸러내고 지고의 것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며, 모든 것을 정화하고 변화시켜 금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변화에는 모든 원소가 에테르의 상태에 이르도록 하는 불과 평온한 소망인 아브라카다브라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묘법의 시간에 인간의 신체 또한 정화에 이르게 되며, 치유가 된다.

“한가지 말씀을 드린다면, 생명의 나무(세피로드)의 열매 속에 생명, 즉 성서에서 말하는 선악과의 씨가 깃들어 있는 것이오.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 있을 때, 열매만 먹고 씨를 먹지 않았오. 그리고 금단의 나무인 선악과의 열매만 먹고 그 씨는 취하지 않았오. 열매(지혜)와 씨앗(생명)을 다 취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이것이 지고의 신인 조물주12Demiourgos : 그리스어로 창조신의 별칭이다. 세계는 이미 존재하는 질료로부터 형성되므로 데미우르고스의 세계창조는 세계가 그곳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장소’에 의하여 필연적인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데미우르고스의 세계창조는 無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가 아니며, 그 자신도 전능의 신은 아니다. 몰래 감춘 비밀인지 모르오.”

3. 사악한 영혼

침묵의 탑에서 집으로 돌아간 그는 떠날 곳을 정하지 못하여 남아있던 하인들을 데리고 로마의 심장부로 갔다. 몸에서 죽음이 떠나버린 것을 몰랐던 그는 살아가기 위하여 많은 일들을 했다고 한다. 재산을 모은 후, 결혼도 하고 자식도 보았다고 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더 이상 늙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요. 하인이었던 나의 친구들은 하나씩 죽어갔지만, 마흔 여섯의 육체를 가진 채 나는 살아남았오. 젊었던 아내는 할머니가 되어 죽었고, 나의 자식들도 세월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갔지.”

자신이 불사의 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세상을 떠돌아 다닐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신화와 전설이자, 현인이거나 악마의 사제였다. 로마를 떠나 이집트에서 곱트 수도원에서 세월을 보내기도 했고, 인도에서 요기들과 생활도 하고, 회교의 사원에서 아잔을 외우기도 했다.

“나의 인생은, 협애한 인생이 아니라오. 바로 역사였오. 기록되지 않고 한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역사란 끔찍할 정도로 지리하고 수많은 기억과 고통, 분노와 절망들로 아로새겨지는 법이요. 이천년전 어린 나의 시절 어머니의 젖내음과 함께 몇번인가 외로움에 어쩔 수 없이 사랑했던 여인들의 애교섞인 밀어들이 나의 뇌수에 섞이고, 살고자 하는 인간들이 절규와 함께 죽어가던 그 순간들, 총독의 관저의 프로쿨라가 앉았던 걸상의 공단 촉감과 사라센의 회교사원의 천장에 영원히 끝을 찾을 수 없이 흐르던 아라베스크 문양, 오래된 나무처럼 꼼짝도 않고 갠지스강을 내려다보던 구루의 집요한 명상 모습. 이 모든 것이 지워지지 않고 이천년동안 나의 육신 속에 차곡차곡 쌓여갔오.”

어둠이 다가오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모습은 창에서 낮게 스미는 광선 속에서 그림자로 가라앉았다.

“죽을 수 있는 길은 알고 있오. 그것은 선악을 알려주는 씨앗인 아브락사스를 먹는 것이오. 죽기 전에 바라는 것은 이 사악한 영혼이 정화되는 것이오. 이천년동안 바라본 것들, 인간의 아픔들이 내 속에서 녹아 아름다움이 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그래서 프렐로마13Pleroma : 충만함이라고 불리워지나 비물질적인 것, 아인 소프와 신의 충만함으로 알려질 수 없는 것이다. 이 프롤레마는 그 내용 상 브라만교의 브라흐만, 불교의 空(Sunya)와 비슷한 내용을 지니며, 물질세계는 아인 소프가 독자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유출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얄다바오스가 출현하여 프롤레마의 질서에 교란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데미우르고스는 얄다바오스가 된다.가 되어 무와 유를 다 포괄한 충만 속에 깃드는 것이라오. 그래서 죽음을 알고 그것을 맞이하는 것이라오.”

오늘이 자신이 태어난지 이천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치고 연민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 살았지요. 영생을 권하고 싶진 않소, 천국에서건, 파루시아14예수의 재림의 그 날이건 말이오. 신과 하나가 되는 방법 외엔, 영생은 무한한 순간들이 영원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지옥이며, 이 지옥을 방황하는 영혼은 울부짖으며 회개할 수도 없고, 속죄는 인간의 속성 상 또 다른 죄악으로 이끌리지요. 영혼은 빛과 선함 속에 깃드는 것이 아니라, 사악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오.”

<생 제르맹 백작과의 대화에서: 198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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