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이 지는 거리에서…

일본에서 맞이하는 날씨는 좋았다. 덥고 습하며 때론 태풍에 지진, 미칠 듯 하다는 주재원의 말에도 불구하고, 내가 맞이한 날씨는 환장할 정도로 좋았다.

하네다에 도착하자 비가 내렸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는 길은 어두웠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가와구찌(川口)에 내렸을 때도 비는 을씬년스럽게 내렸다.

화풍(和風)의 일식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잠을 잤다.

비 개인 아침은 미치도록 맑았다.

시간에 맞춰 역으로 가야 했지만, 호텔 문 앞에 선 나는, 그 투명한 대기 속으로 선뜻 들어설 수가 없었다. 비린내가 날 정도로 맑은 하늘을 보자, 서울의 사대문 안에 전차가 다니던 그 시절의 햇빛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하늘은 그토록 높고, 풍경은 뚜렷했다.

한가한 도로가 끝난 지점에 은행나무와 포플러 등이 아직도 잎을 간직한 채, 색이 바래고 있었고, 간혹 열차들이 철거덩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도쿄에서 후지산을 볼 수 있는 날은 몇일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시내로 가는 길에 아득하게 먼 저쪽에 후지산이 보였다.

거리

지하철을 몇번 갈아탄 후에 요가(用賀)에 있는 거래선에 가기 위하여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일본의 가지런한 골목과 거리를 보면, 소박한 풍요를 배운다.

관념 속의 일본은 닛뽄도처럼 서슬퍼런 적의를 품고 있는 반면, 내가 몸으로 만난 일본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혹자는 혼네(本音: 속마음)와 타데마에(建前: 겉으로 드러난 모습)가 다른 이중성 속에 그들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일본의 마찌(町)를 부러워한다.

도쿄의 번화한 건물보다, 햇빛과 함께 골목에 가득한 정적을 밟으며 거닌다는 것을 즐겁다. 마을과 거리가 오랜 시간동안 숙성되어 모나지 않고 차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좁지만, 차들이 골목을 침범하지 않고, 균열된 벽이나, 쓰레기가 보이지 않는 단정한 골목을 거닌다는 것은 즐겁다. 게다가 청량한 가을 햇빛이 그 위에 떨어지고 있다.

상담을 마친 후, 버스를 타고 시부야(涉谷)의 에비수(惠比壽)로 간다. 왕복 이차선의 거리를 버스는 급할 것 없다는 식으로 달렸고, 정류장에 버스가 선 후 노인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또한 급할 것은 없었다. 갓길 주차가 없는 관계로 도로의 소통은 원활했지만, 차들은 천천히 달린다.

서울에는 이미 은행잎이 다 져버렸지만, 여기에서는 노랗게 물들며, 몇잎의 낙옆 만 떨어질 뿐이다. 크게 자란 은행나무 뒤로 가을 하늘이 공활하다. 도쿄에 겨울이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은 듯하다.

거래선이 있는 에비스 가든 프레이스 타워의 38층에서 단정한 일식요리를 먹고, 창 가에서 도쿄를 보았다. 산이 없는 도시는 낮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심바시(新橋)로 간다. 역에서 내리니 긴자(銀座)가 보인다. 건물들을 따라 거래선을 방문한다. 우리나라보다 해가 30분 일찍 뜨는 이 곳은 저녁이 일찍 오는지 4시 30분이 되자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심바시에서 만난 고객은 재일교포다. 그의 말은 다급하고, 전에 한 말을 번복했고, 예의가 없었다. 그의 말은 나를 피로하게 했다. 아마 타국에서 사는 어려움이 그의 말을 거칠게 했는지 모른다.

신칸센(新刊線)을 타기 위해 동경역에 도착했을 때, 5시 30분. 날이 까맣게 저물었다.

마을

예전에 신칸센을 타고 센다이(仙台)에서 도쿄로 오면서 아침이 밝아오는 마을들을 본 적이 있다. 마을을 보며 부러웠던 것은 일본의 마을들이 전쟁이나 새마을운동 등으로 해체되지 않고 온존되어 왔고 지방자치제로 지역별 균형발전이 이루어져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마을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 부러웠다.

우리는 육이오를 거치면서 숙청이니 부역이니 마을이 찢어졌고, 1952년 동란의 와중에 형식적인 지방의회를 구성한다. 장면정부(1960~61)가 들어서면서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61년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대규모의 자본을 중앙에 집결하고 방대한 노동력을 경제발전에 투여하기 위하여, 박정희는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자치제의 효력을 정지시킨 후, 새마을운동이라는 명분 하에 논과 밭 사이에 서식하던 마을 사람들을 울산과 구로동 혹은 종삼, 오팔팔 등으로 내몬다. 그 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된 1995년까지 지방의 마을이란, 단순히 통일벼 증산의 현장이거나, 자식들을 버젖한 대학에 보내 서울에 살도록 하기 위해 땅을 팔아버리는 곳, 아니면 떠나야 할 곳, 사람이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후의 지방이란 이미 마을이 풍비박산이 난 상태로 새롭게 거듭날만한 경제력이라곤 없다. 아이가 없어서 폐교가 늘어나고, 노인네들만 남아서 푸성귀만 가꾸는 그 땅의 마을은 언젠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일본의 마을은 온존하다. 오랫동안의 지방자치제로 그 지역에서 배우고 벌고 살 수 있다. 그 지역의 대학을 나오고, 그 지역의 버젓한 기업에 취직하여 자신이 자라난 고장에서 출퇴근하거나, 가까운 도시에서 주말이면 마을에 가거나 할 수 있다.

일본의 살아있는 마을을 보면, 풋풋하다. 세상 어디에나 사람들이 들어차고 논과 밭을 갈아 살아가는 모습, 게다가 풍요롭고 행복한 삶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둠 속을 1시간 50분 가량 달려 센다이에 도착했다. 동북쪽의 군소도시임에도 인구가 백만을 넘는 이 곳의 밤거리는 시골처럼 촌스럽지 않고 도쿄의 어느 거리처럼 휘황하다. 하지만 거리의 바람은 동북지방이라 그런 지 추웠다.

여장을 풀고 어느 건물의 5층에 和屋처럼 꾸민 샤브샤브집에서 저녁을 했다. 어렸을 적 적산가옥에 살았던 적이 있는 나는 다다미며, 미닫이 문이 정겨웠다.

음식이 좀 짜기는 했지만, 고기는 달았다.

아침

아침에 일어나니 바깥의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창에 이슬이 잔뜩 맺혔다. 이슬이 서린 창 밖에는 아침이 웅장한 광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빛으로 가득하고 건물들은 빛을 받아 번쩍였다.

호텔의 5층에 있는 식당의 창 밖에는 일본의 정원이 꾸며져 있다. 조찬을 마친 후, 역으로 가서 지방의 전철을 탄다. 시내의 바깥으로 가는 열차라 그런 지 한적하고, 지나는 역사들은 아담하다. 지방의 촌임에도 스쳐지나는 주택의 모습은 단정하고 마당이 있어 햇볕이 좋다.

전철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한참을 가다 보니 10시인데 개울과 논 위로 늦은 안개가 피어오른다.

어제의 추운 공기 속에 이슬이 내린 논바닥에 아침 햇볕이 닿자 땅은 온기를 받아 부풀고 이슬은 해살거리며 풀리며 수증기가 되어 떠오르고 다른 수분들과 섞여 아침 안개가 되어 바람결에 떠돌며 들 저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유쾌한 영혼들이 재잘거리며 아침 햇살을 맞이하러 가는 모습이다.

좋은 아침이었다.

거래선은 단풍이 한창인 언덕 사이에 있다. 공장 건물이 자연과 그냥 한무더기라서 나뭇 잎 사이로 건물이 보이고 건물 사이로 산이다.

상담을 마친 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귀국한다.

20081124~20081126 출장

1 thought on “은행잎이 지는 거리에서…

  1. truth 08.11.27. 21:09
    찰칵 찰칵.. 몇장의 사진들이 담겨집니다^^ 좋은시간 보내신거같아 대리만족감이 큽니다.잘 읽었습니다 여인님^^
    ┗ 旅인 08.11.28. 10:26
    사진을 몇장 찍었으나 그 투명한 햇빛을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유리알 유희 08.11.27. 23:29
    일본 출장을 다녀 오셨군요. 이게 바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격이지요? 일도 잘 보시고 우리와 다른 일본의 거리와 마을들을 보시고 또 이렇게 멋진 여행기까지 적게 되셨으니. 일석 삼조십니다. 우리처럼 서울로 고고! 를 외치지 않아도 되는 일본의 마을들이 부럽습니다.
    ┗ 旅인 08.11.28. 10:34
    저는 늘 312호 아빠보다, 동네의 슈퍼마켓 주인이 중학교 동창 영칠이이고, 뒷집에는 선배 갑식이 형이 살며, 옆집은 동철이가 사는 마을을 그리워합니다. 생의 역사가 가득한 자신의 동네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보다 다정하고 윤리적인 사회가 이루어 지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 다리우스 08.11.28. 20:03
    일본을 다녀오셨군요, 덕분에 이웃 나라에서 느낀 점을 실감나는 글과 정서로 엿보게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일본의 그런 점 주변의 것들이 중심에 휘말리지 않고 병립할 수 있는 그 다양성의 토대들이 부럽습니다. 그러한 풍부한 자기 색깔들 속에서 일본은 보다 다양한 문화의 기틀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다는 생각 해볼 때 한국의 마을들은 너무나 중앙집권체제적으로 단촐하다는 씁쓸함을 느낍니다. 덕분에 도시를 바라볼 새로운 시각을 열게됩니다. 건강히 잘 돌아오셔서 저도 기쁩니다.^^
    ┗ 旅인 08.11.28. 15:23
    정말 우리는 일본에 대하여 무지를 강요당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일본에 대한 무지가 친일세력에 의하여 구축되어온 것에 대하여 더욱 분노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라는 식의 사고가 극일의 수단이 결코될 수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서 울분을 느낍니다.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생활이 태어나서 교육받고 늙어 죽을 때까지 몹시 안정적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 다리우스 08.11.28. 20:06
    그쿤요 우리는 얼마나 잘 못된 편견들을 강요받으면서도 일말의 의심없이 무던히도 살아왔던 걸까요?^^; 그런 의미에서 매스컴의 일색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중의 위험한 것, 파쇼와 유언비어와 군중심리의 온상이 아닐까 그 생각하며 좀 슬퍼집니다.

    샤론 08.11.29. 08:46
    일본어를 배우고 있어서 그런지 일본얘기가 흥미롭습니다..제목만 보고 아름다운 시일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역시 예상은 빗나가고 ….여인님의 이런 저런 세상구경이 부럽습니다..
    ┗ 旅인 08.11.29. 20:09
    출장이다 보니 껍데기만 보고 옵니다.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고 해야 하는데, 사람 만 만나고 오니 아쉽기가 그지 없습니다.

    엘프 08.11.29. 16:18
    마찌는 혼네와 타데마에의 경계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들의 부러울 것 없이 잘 가꾸어진 밭두덩을 의미하는 걸까요? 막내가 일본 신사에 심취했는지 방학 때마다 갔었는데 저는 공항밖 세상을 보지 못하고 왔었네요. 물가가 무서워서! 이웃집 토토로, 고양이의 보은등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편인데, 일본에 대한 새롭고 차분한 눈이 좋습니다. ^^
    ┗ 旅인 08.11.29. 20:13
    엘프님도 미야자키 하야오를 좋아하는 모양이네요. 저도 광팬인데, 요즘은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가 좋더군요. 사실 혼네와 타데마에는 누구나 갖고 있는 낯가림이 아닐까 합니다. 혼네를 내비쳤다가는 닛뽄도에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일본인들의 경우 그것이 극단적이겠지만, 정으로 가꾸어진 마찌에서는 혼네를 드러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요.

    자유인 08.11.30. 21:56
    깨끗하고 단아한 느낌마저 드는.. 그 곳 동네와 그 도시들 속에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예의는 잘지키데..남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들이 별로 없다고 하드군요.출장기를 통하여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旅인 08.11.30. 22:08
    사실 동네는 소음이 있어야 하는데, 정적 만 감돈다는 것은 따스한 마음이 없다는 반증인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한번 평생을 재일교포로 지낸 사람이 말하길, 예전에는 일본사람들도 마실도 다니고 먹을 것을 이웃에 돌리곤 하는 정이 있었는데, 요즘은 각박해졌다고 하더군요. 그런 점은 산업화가 가져다 준 서글픈 일면인 것 같습니다.
    ┗ 자유인 08.12.02. 22:12
    개인주의 성향이 많은 민족이라 하드군요.대문까지 허용을 했다면,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구요..집안 까지는 또 다시..그렇게..^^
    ┗ 旅인 08.12.03. 13:22
    이제 저희도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TT

    집시바이올린 08.12.01. 05:38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조금식 알아가면 갈수록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왜 성에 대해선 그토록 관대할까요
    ┗ 라마 08.12.01. 06:20
    그래야, 위정자들이 백성들을 다스리기 편하니까요. 갑갑하기 그지없는 일본의 생활에서 성욕과 식욕마저 억누르면, 사출구는 사무라이들의 내전 아니면 대동아전쟁밖에 없을 겁니다. 무수하게 양산된 일본의 귀신들과 만화들은 그런 사출구를 유지시키는 일종의 수문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수문들은 무엇일까요?ㅋㅋㅋ
    ┗ 旅인 08.12.01. 08:55
    일본은 근대화되기까지 우리와 같은 이데올로기화된 유교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불교와 샤먼적 신도가 혼재되어 오랫동안 흘러왔고, 무신정권이 이어져 왔던 나라입니다. 불교는 성에 대하여 관대한 특성이 있으며, 샤마니즘 또한 그렇습니다. 게다가 사무라이의 남성 중심적인 면이 함께 겹치면서 죽음과 성이라는 면이 도드라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라마님의 귀신의 문제도 신도가 무당연합체적인 성격이라는 점과 양반 중심의 사변적 문화가 아닌 민중 중심의 보편 문화가 만발하면서 귀신이 들끓는 나라가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선조의 여성의 정조 문제를 이기적인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라고 보는데,
    ┗ 旅인 08.12.01. 08:58
    정조라는 개념은 몹시도 근대적인 개념입니다. 동서양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현상인데, 이 정조라는 개념이 이전의 소유와 생산력의 한 수단으로 치부되어 왔던 여성의 존재를 보호받아야 하고 존중되어야 할 존재로 부각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정조개념이 부각되면서 신사의 개념 또한 성립되고 연애라는 델리케이트한 남녀관계 또한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집시바이올린 08.12.01. 19:16
    얼마전에 인터넷으로 수백명의 남녀가 쌍을 이뤄 사회자의 리드에 맞춰 스와핑을 즐기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근친상간도 그리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가령 오빠가 욕망에 사로잡혀 여동생을 범하더라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에서 한달동안 부부관계 횟수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가장 안하는 나라가 일본이라니 정말 아이러니 합니다. ^^ 아울러 여인님의 일본여행기 즐감하며 담에는 꼭 뜨거운 수증기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남녀혼탕 노천온천욕 기대할게요^^;; (가실땐 필히 망원경 지참하실것)
    ┗ 旅인 08.12.01. 22:20
    일본에 가서도 온천을 한번 가보지 못했네요. 언젠가 한번 여행을 가서 온천욕을 한번 해보아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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