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 보고서

이 보고서(報告書)는 「메시아」시대에 법정에서 만들어진 공문서로서, 현재「터어키」의 성「소피아」사원(寺院)에 소장되어 있다. 50권으로 되어있는 이 원고는 서기관(書記官)의 손으로 씌어졌는데, 각권이 2×4피트로 되어 있는 것의 전문(全文)을 옮긴 것이다.

「로마」사가(史家) 「빌레루스 파테르쿠러스」의 주(註)에 의한 원명(原名)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카이사르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로 되어 있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이 사가(史家)는 19세였으며, 그의 작품은 모두 소멸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사가(史家) 「프리시안」과 「타키투스」의 글을 빌면, 그는 「캄파니아」출신으로 카이사르와는 친한 벗이었고 16년동안 로마군을 지휘하였으며, 그 후 로마로 돌아가 「로마史」집필을 끝낸 후 집정관(執政官)의 직책에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사가(史家)「발레루스」 자신이 유다지방에서 만난 「나사렛」예수는 그가 만난 인물 중 가장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자신은 전 군대보다도 예수를 더 두려워했다고 기록하였다. 예수는 모든 종류의 병자들을 치료하였으며 죽은 자를 살렸고, 그가 결실하지 못한 과일나무를 저주하였을 때 그 나무는 즉시 뿌리까지 시들어 말라죽었다고 기록하였다. 예수는 그의 놀라운 능력을 타인을 해치기 위해서는 결코 사용치 않았으며 항상 유대인의 여론은 양분되었다. 빈민층은 「로마」의 권력으로부터 구원해 낼 그들의 구원자로 여겨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지도층 계급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증오하고 시기하였으며 등뒤에서는 그를 저주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죽음만큼이나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애굽의 마술사라고 빈정거렸다고 사가(史家)「발레루스」는 기록하였다.

본 보고서의 내용은 「도날드 N.리드만」박사가 소정의 요금을 지불한 후 특별 허가를 얻어 읽고, 영어로 번역하여 「예루살렘」에서 간행(刊行) 되고 있는 월간{더 마운트 자이언 리포터(The Mount Zion Reporter 「시온산 보고서」; June 1974)}에 게재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각하에게

각하께 문안드립니다. 제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최근 수년동안에 일어난 사건은 너무나 독특한 일이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 나라의 운명까지 변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저는 사건이 일어난 대로 각하께 소상히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발생한 사건은 모든 다른 신(神)들과는 조화될 수 없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발레리우스 플라쿠스」를 계승하여 유대 총독이 된 날을 저주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부임한 이래로 제 생활은 불안과 근심의 연속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직위를 인수하고 큰 연회(宴會)를 베풀 것을 명하고 「갈릴리」의 영주(領主)들과 대제사장, 그리고 그의 부하직원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저와 제가 속하고 있는 정부 전체에 대한 일종의 모욕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며칠 후 대제사장이 저를 방문하였습니다. 그의 거동(擧動)은 엄숙(嚴肅)하였으나 외식(外飾)에 가득찬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종교가, 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로마」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하는 것이라든지 먹는 것이라든지 마시는 것을 금지한다고 변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명은 신앙심이 깊은 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의 안색으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변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략(政略)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순간부터 피정복자는 정복자를 적(敵)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으며, 「로마」인들에게 이 나라의 제사장들을 요주의(要注意)할 것을 경고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벼슬과 호사스러운 생활을 위해서는 그들의 어머니라도 배신할 자들입니다. 제가 통치하는 모든 도시 가운데 「예루살렘」은 가장 다스리기 힘든 도시라고 여겨집니다. 백성들은 매우 거칠어서, 저 자신 순간순간마다 폭동(暴動)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폭동을 진압할 만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저의 지휘 하에 한 명의 백부장(百夫長)과 그가 거느린 군대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자기의 통치지역을 방어할 만한 충분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다고 알려 온 「시리아」의 사령관(司令官)에게 증원군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이미 획득한 영토를 방어하는 일을 등한히 한다면, 우리 제국의 확장을 꾀하는 지나친 욕심은 결국 우리 정부 전체의 붕괴(崩壞)를 초래케 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가능한한, 대중들을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 제사장들이 폭도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될 수 있는 데로 백성들의 마음과 입장을 탐지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제 귀에 들려온 여러 가지 소문들 중에 특별히 제 주의를 집중시킨 사건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젊은 청년이 「갈릴리」지방에 나타나,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새로운 법을 고귀한 열정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목적하는 바가 민중을 선동하여 「로마」제국에 대항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제 근심은 곧 걷히게 되었습니다.

「나사렛」예수는 유대인보다는 오히려 「로마」인에게 더 친근하게 말을 하였습니다. 어느날 저는 큰 군중이 모여 있는 「실로」라는 곳을 지나다가, 군중에 둘러싸인 젊은이가 나무에 기대어 선 채로 군중을 향하여 조용하게 연설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라고 누군가가 일러주었습니다.

그는 그의 연설을 듣고 있는 군중과 현저한 차이를 보여 주고 있어서 저는 그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30세 가량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도 마음을 잡아끄는 평온한 얼굴을 본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예수와,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저 검은 턱수염과 황갈색의 안색을 가진 무리들과를 어떻게 대조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온 것이 예수에게 방해가 되게 하지 않으려고 저는 계속 걸었으나 제 부관(副官)에게는 군중 속에 들어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제 부관의 이름은 「만류스」로서 그는 「카타린」을 잡으려고 「에투루리아」에 주둔한 적이 있는 공작대장의 손자입니다. 「만류스」는 「유대」지방에 오랫동안 거주한 고로 「히브리」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충성하여 저의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총독청에 들어서자 저는 먼저 와 있는 「만류스」를 발견하였으며 그는 「실로」에서 예수가 한 말을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읽어본 어떤 철학자의 작품에서도 예수의 말에 비교될 만한 것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항적인 유대인 중 한 사람이 「카이사르」에게 세(稅)를 바치는 것이 옳은 것인가고 그에게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자유를 그 「나사렛」젊은이에게 허용한 것은 이와 같은 그의 지혜로운 말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를 체포하여 「본디오」로 추방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였다면 그것은 「로마」정부가 사람을 다루어 왔던 지금까지의 관례와는 상반되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젊은이는 선동적이거나 반항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예수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보호의 손길을 그에게 뻗쳐 주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행동하였고 말하였으며, 사람들을 모아서 연설하거나 또 제자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어떠한 관청의 제재(制裁)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우리 조상의 종교는 예수의 종교로 대치될 것이며, 이 숭고한 관용의 종교는 「로마」제국을 허망하게 붕괴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가련한 저는 유대인의 말을 빌자면 하나님의 섭리요, 우리의 말대로 하자면 운명의 도구로 쓰여진 것일 것입니다.

예수에게 허용된 무제한의 자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부유하고 권세 있는 유대인들을 자극하였습니다. 예수가 후자들에게 가혹하게 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그 「나사렛」젊은이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은 것은 정략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그는 그들을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들은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음이 가득하다.” 또 한번은 부자가 많은 헌금을 내고 뽐내는 것을 보고 한탄하며, 가난한 자의 한푼이 하나님의 목전(目前)에서는 더욱 빛나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예수의 오만한 언동(言動)에 대한 항의가 날마다 총독청에 줄을 이어 들어왔습니다.

저는 예수에게 어떤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선지자로 불리우는 자들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으며, 예수에 대한 진정서가 「카이사르」에게 제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 처사는 원로인에게 재가를 받은 것이었으며, 「파르티아」전쟁이 끝나면 저에게 증원군을 보내주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폭동을 진압하기에는 우리의 군사력이 너무도 허약한 고로, 저는 힘없이 물러섬으로써 총독청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용히 성(城)의 평온을 되찾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예수에게 글을 써 보내어 총독청에서 한번 만날 것을 청하였습니다. 예수가 왔습니다. 황제께서는 제가 「로마」인의 피에 서반아(西班牙)의 피가 섞여 흐르는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두려움 따위의 유약한 감정은 모르는 사람임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나사렛」사람이 모습을 나타냈을 때 저는 저의 접견실에서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다리는 쇳덩이로 된 손으로 대리석 바닥에 붙여놓은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으며, 그 나사렛 젊은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용히 서 있는데도 저는 마치 형사범(刑事犯)처럼 사지(四肢)를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그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으나 제 앞에까지 다가와 서는 것만으로도 “내가 여기 왔나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 동안 저는 이 비범한 사람을 존경과 두려움으로 응시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신(神)들과 영웅의 형상을 그린 수많은 화가들이 아직 그려내지 못한 유형(類型)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너무나 두렵고 떨려서 그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여,” 하고 드디어 저는 말문을 열었습니다. “「나사렛」예수여, 지난 3년동안 나는 그대에게 연설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였소. 그러나 이 일에 대하여 나는 조금도 후회가 없소. 그대의 말은 현인(賢人)의 말이오. 나는 그대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을 읽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에는 그대의 설교는 다른 철학자들의 그것을 능가하며 단순하고도 장엄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황제께서도 알고 계시며, 그를 허락한 것을 스스로도 기쁘게 생각하고 있소. 그러나 나는 그대의 설교가 강력하고도 원한 깊은 적대자를 만들고 있음을 알려 드려야겠소.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오. 「소크라테스」에게도 대적이 있었으며 결국에는 그들의 증오의 희생물이 되었다오. 그대의 경우는 그대의 설교가 그들에게 매우 가혹하다는 것과, 내가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한 것으로 그들이 나를 반대한다는 것 때문에 설상가상으로 시끄러워지고 있소. 그들은 「로마」정부가 그들에게 허용한 작은 권리마저도 나와 그대가 손을 잡고 그들로부터 빼앗으려 한다면서 고소까지 하고 있소. 내가 그대에게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으로서, 이제부터는 그대가 설교할 때에 좀더 신중하고 온화한 말로하며, 그들을 고려하여 대적의 자존심을 상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어리석은 군중들을 충동질하여 그대를 대적하지 않도록 하고 또 나로 하여금 법의 도구 노릇을 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오.”

그 「나사렛」사람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땅의 군주여, 그대의 말은 참된 지식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격류(激流)를 명하여 산골짜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해 보십시오. 그러면 계곡의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버릴 것입니다.

그 급류는 자연과 창조주의 법칙에 순종한다고 그대에게 답변할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그 급류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 계십니다. 진실로 그대에게 이르노니 ‘샤론’의 장미가 피기 전에 정의의 피가 엎질러질 것입니다.”

“당신의 피는 엎질러지지 않을 것이오.”하고 저는 깊은 감동을 받고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의 지혜는 「로마」정부에 의하여 허용된 자유를 남용하는 거칠고 오만한 모든 바리새인 보다 더욱 값진 것이오. 그들은 「카이사르」에 대한 음모를 꾸며, 「카이사르」는 폭군으로서 그들의 멸망을 도모하고 있다는 말로 무식한 자들을 충동하여 황제의 관대하심을 공포로 조작시키고 있소. 오만무례하고 철면피같은 인간들이오! 그들은 악한 계획을 도모하기 위해서 때로는 양의 가죽을 쓰는 「테베레」강의 여우임을 그들 자신은 모르고 있소. 나의 총독 관저는 밤낮을 물문하고 그대에게 도피처로 제공될 것이오.”

예수는 관심 없다는 듯이 머리를 저으며, 근엄하고 숭엄(崇嚴)한 미소를 띄면서 말하였습니다. “때가 이르면 그 때는 땅 위나 땅 아래 어느 곳에도 인자를 위한 도피처는 없을 것입니다. 의(義)의 도피처는 저기에 있습니다.”라면서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의 책에 기록된 말씀은 성취되어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여,”하고 저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습니다. “그대는 나의 요청을 명(命)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오. 나의 통치하에 있는 지방의 안전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소. 당신은 설교할 때 좀 더 온건한 태도를 취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오. 나의 명을 어기지 않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결과가 어떠할 지를 그대도 잘 알 것이오. 와 주어서 고맙소. 잘 가시오.”

“땅의 군주여,”하고 예수가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평화와 사랑과 자비를 주려고 왔습니다. 나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세계에 평화를 주던 바로 그 날에 태어났습니다. 핍박은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핍박을 예상하고 있으며, 나에게 길을 보여주신 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그 핍박을 잘 감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의 세상 적인 사려분별(思慮分別)과 지각을 삼가십시오. 성막에 희생 제물을 잡아놓는 것은 그대의 권력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말을 한 후 그는 투명한 영혼처럼 접견실 휘장 뒤로 사라져 갔습니다. 저는 그 젊은이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중압감에 해방되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예수를 대적하는 자들은 그 당시 「갈릴리」지방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에게 편지를 써서 그 「나사렛」사람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헤롯」이 그의 성격대로 하였다면 그는 예수를 당장 잡아 사형에 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왕의 위엄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의원에 대한 그의 영향이 무시당할 지도 모르는 행동을 범하는데 주저하였으며 또 저처럼 예수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관리로서 한 유대인 때문에 겁을 집어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전에 「헤롯」은 총독청으로 저를 방문하였으며 얼마간 가벼운 대화를 나눈 후, 떠날 즈음에 「나사렛」사람에 대한 제 견해가 어떠한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대답하기를 예수는 가끔 위대한 민족이 드물게 배출해 내는 위대한 철인 중의 한사람으로 그의 교훈은 결코 처벌받을 만한 것이 아니므로 「로마」정부는 그 자신의 행동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를 그에게 허용하기로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헤롯」은 음흉하게 웃어보이면서 마지못해 하는 투로 인사하고는 떠났습니다.

유대인의 큰 축제가 다가오고 있었으며 백성의 여론은 유월절 의식(儀式)에서 항상 감정을 표명하는 일반 백성의 환희에 편승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성은 그 「나사렛」사람의 죽음을 시끄럽게 요구하는 소란한 군중들로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파견한 밀사(密使)는 성전의 금전이 군중들을 동원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고 전해 왔습니다.

위험은 점점 더 가중되었으며 한 「로마」의 백부장은 멸시와 모욕을 당했습니다. 저는 「시리아」 의 사령관에게 편지를 보내어 100명의 보병과 될 수 있는 데로 많은 기병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그는 거절하였습니다. 저는 반역하는 성(城)한 가운데서 얼마 되지도 않는 정병(精兵)들과 함께 외톨박이가 된 것 같았으며 폭동을 진압하기에 너무 약한 탓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을 너그럽게 대해 주는 수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붙들고 있었으며 선동적인 폭도들은 총독청에 대하여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그들의 상전(上典)의 명령만 믿고 있었으며, 제가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말해 보라고 눈짓을 했을 때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고래고래 고함치기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때는 세력 있는 세 당이 예수를 대전하기 위해 일심동체가 되었습니다. 첫째로 헤롯당과 사두게파로서 그들의 선동적인 행동은 두 가지의 동기-즉 그들은 「나사렛」사람을 미워하였으며 「로마」의 속박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에서 나온 것 같았습니다. 「로마」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기(旗)를 가지고 거룩한 성에 들어왔다는 것 때문에 저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비록 제가 어떤 치명적인 죄를 범하였다고 해도 신성모독죄 보다는 덜 흉악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불만의 씨가 그들의 가슴속에 사무쳐 있었습니다. 저는 성전의 은금(銀金)의 일부를 공공건물을 건축하는데 사용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제안은 무시당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공공연하게 예수의 대적임을 자처하고 다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정부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는 자들로서 그 「나사렛」사람이 지난 3년 동안 그가 가는 곳마다 「바리새」인들을 혹독하게 질책한 것에 대하여 끔찍한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만의 힘으로 행동하기에는 너무도 두렵고 약하다는 것을 알고 「헤롯」당과 「사두게」파와의 불화를 이용하였던 것입니다. 이들 세 당 외에도 저는 언제나 소요에 끼어들기 잘 하며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키는 데는 한몫을 잘 담당하는 분별없고 야비한 군중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예수는 대제사장 앞으로 끌려와 사형으로 정죄되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중재(仲裁)를 부탁해 온 때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는 예수의 유죄판결을 확인한 후 처형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예수는 「갈릴리」사람이요 그 사건은 「헤롯」의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니 거기로 보내라고 명(命)을 내렸습니다.

교활한 그 영주는 겸양을 표시하는 척 하면서 「카이사르」의 대리자인 저의 명령을 거절하고 그 사람의 운명을 제 손에 위탁하였습니다. 곧 저의 관저는 포위된 성보(城保)의 형세를 띄었고 매순간마다 불만에 가득찬 터질 듯한 군중들은 그 수가 증가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나사렛」산지(山地)에서 몰려온 군중들로 넘쳤으며 전 유대인들이 모두 「예루살렘」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장래의 운명을 내다본다는 까울지방의 여자를 아내로 두고 있습니다. 아내는 제 발치에 엎드려 몸을 맡기고 울면서 말하였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조심하십시오. 저 사람에게 손대지 마십시오. 그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어제밤, 저는 환상 중에서 그를 보았습니다. 그는 물 위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 바람의 날개를 타고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보세요. 「기드론」골짜기는 피로 물들어 붉게 흐르고 있었고 「카이사르」의 조상(彫像)은 대량학살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중간 기둥들은 퇴락하였고 태양은 무덤 속의 제녀처럼 슬픔 속에 면사포로 가리고 있었습니다. 오! 「빌라도」여, 악(惡)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아내인 제 애원을 듣지 않으신다면 「로마」중의원이 받을 저주가 두렵고 「카이사르」가 당할 괴로움이 두렵습니다.”

이 때는 이미 몰려온 군중들의 무게로 층층대의 대리석 계단이 삐걱거렸습니다. 그들은 그 「나사렛」사람을 다시 저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재판하는 장소로 나아가서 엄격한 어조로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 「나사렛」사람의 죽음이요.”하고 그들은 대답하였습니다.

“무슨 죄 때문인가?”

“그는 참람한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전의 황폐를 예언하였으며 그 자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유대인의 왕, 「메시야」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로마」의 법은,”하고 저는 말하였습니다. “그러한 죄는 사형에 처하지 않는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냉혹한 폭도들이 소리질렀습니다. 분노한 폭도들의 고함소리는 관저의 기초까지 흔들어 놓았습니다.

군중 속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침착하게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그 「나사렛」사람이었습니다. 무자비한 핍박자들로부터 예수를 보호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헛수고로 돌아가고 저는 마침내 그 순간 예수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생각된 방법을 취하기로 하였습니다. 즉 이러한 명절에는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것이 그들의 관례였으므로 저는 예수를 자유롭게 놓아 소위 그들이 일컫는 속죄염소로 삼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들에게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하여서는 하루를 온전히 금식하지 않고서는 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그들 자신의 법을 들어, 앞뒤가 맞지 않는 그들의 주장의 모순성을 지적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죄 선고는 산헤드린의 동의를 얻어 의장의 서명을 받아야 하며 또 어떠한 범죄자일지라도 형의 확정 선고를 받은 당일에는 그 형의 집행을 할 수 없으며 다음 날에 집행한다 할지라도 집행 전에 「산헤드린」이 전 경과를 검토해 보아야 하며 또 그들의 법에 따라서 한 사람이 기(旗)를 가지고 재판정 문에 서있는 동안 다른 사람은 말을 타고 좀 떨어진 곳에서 범죄자의 이름과 죄명과 증인의 이름을 소리 높이 외쳐, 혹시 누가 그를 변호할 사람이 있을 지의 여부를 알아봐야 하며, 형 집행 도중 범인이 세번 뒤를 돌아보아서 새로운 사실로 자신에게 유리한 변호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깨우쳐 주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구실을 말해 줌으로써 그들이 두려운 마음으로 복종하기를 바랐으나 여전히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소리질렀습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을 충족시켜 줄 생각에서 예수를 채찍질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군중의 분노를 증가시켰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대야를 가져오라고 하여 소란스러운 군중 앞에서 제 손을 씻음으로써 「나사렛」예수를 죽음에 내어 주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만 그것도 허사였습니다. 이 철면피 같은 군중들이 갈구하는 것은 바로 예수의 생명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가끔 시민폭동에서 노도한 군중을 목격하여 왔으나 이번처럼 격렬한 폭동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지옥의 모든 유령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것과 같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중들은 걸어다닌다기 보다는 갑자기 땅에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것 같았으며 총독 청사의 입구에서부터 「시온」산까지 이르는 군중들은 넘실거리는 파도를 따라 움직이는 소용돌이처럼 보였고, 판노니아의 공회소의 소동이나 폭동에서도 결코 들어볼 수 없는 가지가지의 해괴한 소리를 지르며 모여들었습니다.

겨울날 황혼 무렵처럼 날이 어두워지자, 저 위대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죽었을 때처럼 적막하였습니다. 마치 3월 보름달 같았습니다. 모반을 일삼는 이 성을 위임받은 통치자로서, 저는 접견실 기둥에 기대어 서서 그 죄없는 「나사렛」 젊은이를 처형하려고 끌고 다니는 어두컴컴한 지옥의 악마 같은 저들의 무서운 계략을 꺾을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 주위의 모든 것이 황량하게 보였습니다. 「예루살렘」은 그 주민들을 「게모니카」로 가는 장례(葬禮)문을 통하여 모두 토하여 냈습니다.

황막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제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저의 위병들은 기병과 백부장이 가세한 가운데 무력에 의한 질서유지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홀로 남았으며, 그때 잠깐동안 지나간 그 순간은 마치 저 자신이 꿈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결을 타고 「골고다」에서 들려오는 큰 부르짖음 소리는 일찌기 인간의 귀로는 들어본 적이 없는 고통의 소리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검은 구름이 성전 꼭대기 위에 드리워졌으며 마치 면사포를 가리운 것처럼 「예루살렘」을 덮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에 나타난 징조들은 너무도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마치 디오누시오가 “창조주가 고통을 당하고 있든지 우주가 떨어져 나가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다”라고 크게 소리질렀듯이 말입니다.

이러한 가공할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동안 애굽에는 무서운 지진이 일어났으며,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으며 미신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은 거의 죽음의 공포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안티오크」사람인 나이 많고 학식이 풍부한 「빌도살」이라는 한 유대인은 이 지진소동이 있은 후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그가 놀라서 죽었는지 아니면 슬픔으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그 「나사렛」사람의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날 밤 첫 시간이 되기 전에 저는 외투를 걸치고 성안으로 들어가 「골고다」로 향하는 문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 제물은 죽어 있었습니다. 군중들은 아직도 흥분하고 있었으나 실상은 침울하여, 말없이 절망에 빠진 상태로 집에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목격한 사실은 그들을 공포와 양심의 가책으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저는 또 저의 적은 「로마」병정의 일단이 슬픔에 잠긴 채 지나가는 것을 보았으며 기수(旗手)는 슬픔의 표시로서 독수리표 깃발로 얼굴을 가리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또 병정의 일부는 무엇인가 혼잣말을 하면서 지나갔지만 저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神)들의 뜻을 좇는 「로마」인들을 당황케 하는 기적들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한 무리의 남녀들이 걸음을 멈추고는 되돌아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어떤 새로운 경이(驚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갈보리」언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허탈한 마음과 슬픔에 차서 총독청에 돌아왔습니다. 그 나사렛 사람의 피가 아직 얼룩져 있는 계단을 오르다가 저는 문득 한 늙은이가 무엇을 탄원하는 듯한 태도로 서있는 것과 그 노인 뒤에서 몇 명의 「로마」사람들이 눈물을 지으면서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내 발앞에 몸을 굽히고 크게 통곡하였습니다.

늙은 노인이 울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으며, 비록 외국사람이기는 하지만, 함께 있는 「로마」사람과 같이 제 마음은 슬픔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날 제가 본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격한 감정을 가져본 체험이 없었습니다. 예수를 반역하여 판 사람들이나 그렇게도 반대 증언을 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그의 피 값을 우리에게 돌리시오.”하고 큰소리쳤던 무리들은 비겁한 똥개같이 쑥 들어가버려, 그들의 이빨을 식초로 씻은 듯 시침을 떼고 있었습니다. 제가 들은 대로 예수가 죽은 후에 부활하리라는 그의 가르침이 사실이라면 이 가르침은 많은 군중 가운데서 실현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영감님,” 저는 감정을 억제하고 그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 시며 바라는 요구가 무엇입니까?” “저는 「아리마데」 요셉이라고 합니다.”하고 노인은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나사렛」예수를 장사지내고 싶습니다. 그것을 허락해 달라고 당신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당신 소원대로 하십시오.”하고 저는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저의 부관 「만류스」에게 명하여 병정 몇 사람을 대동하고 가서 매장하는 것을 감독하고 불경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며칠 후 그의 무덤은 비어 있었으며, 그의 제자들은 각처로 다니면서 예수가 자신이 말한 대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파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건보다 더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제 나름대로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황제께서도 「헤롯」을 시켜 조사하여 보시면 저에게 잘못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묘실에 예수를 매장하였습니다. 그가 예수의 부활을 예상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묘실을 준비하려던 것인지는 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가 매장된 다음날 제사장 한 사람이 총독청으로 와서 제게 말하기를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훔쳐 숨긴 후 그가 생전에 예언한 대로 살아난 것처럼 꾸미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제사장을 친위대장인 「말커스」에게 보내어 무덤을 지키기에 충분한 수대로 병정을 대리고 가서 배치하라고 한 후, 만일 무슨 사건이 발생한다면 그들의 책임이지 「로마」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큰 흥분이 일어났으며 저는 더 큰 근심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슬람」이라는 사람을 보내어 자초지종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그는 제가 다음과 같은 상황을 연상할 수 있도록 자세히 말하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무덤 위에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빛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그는 여자들이 그들의 풍속대로 예수에게 발라드릴 향유를 가지고 왔는가 하고 추측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그는 여자들이 파수군을 통과할 수 없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이러한 여러 생각이 그의 마음에 스쳐가는 동안 이상하게도 온 주위가 환하고 밝게 비취고 거기에 이미 죽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수의(壽衣)를 입은 채로 서 있는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 모두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에 충만하여 환호하는 듯 하였으며 동시에 그 주위와 위로부터 그가 들어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왔으며 온 누리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가득차고 넘친 것 같았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보고 듣는 동안 땅은 기고 헤엄치는 것 같았고 그는 토할 것 같고 힘이 없어 일어설 수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대지는 그 아래에서 헤엄치는 듯하여 그의 감각은 마비되고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의 현기증이 잠에서 깨어나 너무 갑자기 일어남으로 흔히 있는 것 같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는가 물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잠들은 것이 아니라, 마치 임무 소행 중에 잠을 잤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아 죽는 경우와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병정들은 서로 교대로 잠을 잤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광경은 얼마 동안이나 계속되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약 한 시간쯤 되지 않았나 짐작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정신이 돌아온 후 그 무덤에 가보았느냐고 물었으나 못 갔다고 대답하였고 그 이유는 교체병이 오자마자 그들이 숙소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에게 질문을 당하였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인즉 제사장은 밤에 일어난 사건이 지진이었으며 파수군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간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에게 돈을 주겠다고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한 사람의 제자도 보지 못하였으며 시체가 없어졌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으며 누군가의 말을 듣고 후에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같이 대화한 제사장들의 예수에 대한 견해가 어떠하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제사장이 더러는 예수는 남자도 사람도 아니며 마리아의 아들도 아닐 뿐더러 「베들레헴」의 처녀의 몸에서 탄생된 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였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만일 유대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듯이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손에 있다는 사실이 그를 따르는 자들이나 배척자들에 의하여 알려지고 증거된 것처럼 그 모든 사실이 그 사람의 생애와 조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은전을 얻어낼 수 있었던 분입니다. 만일 모든 유대인들이 증거 하는 것처럼 그가 했다고 하는 많은 일들을 그가 할 수 있었다면 그를 대적하게 했던 그의 모든 주장은 사실일 수 밖에 없다고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는 범죄함으로, 어떤 법을 어김으로써 또 누구를 그릇되게 함으로써 비난을 싼 적은 없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 그를 지지하였던 사람 뿐 아니라 그를 대항하였던 수많은 사람들까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 처럼 나는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각하여,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 「안티파터」가 제게 관한 여러 가지 가혹한 평을 하였다고 들었으므로 황제께서 사건의 전모를 아신 후 제가 취한 행동에 대하여 바른 판단을 내려 주시도록 자세히 쓰느라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각하의 건승(健勝)을 빕니다.

저는 각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입니다.

본디오 빌라도


빌라도에 대하여

빌라도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 카이사르」치하에서 유대 총독으로 임명된 전형적인 군인이었다. 「아그립바」 1세가 말하는 빌라도는 천성적으로 고집이 센 사람이고 굽힐 줄 모르는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그를 규탄하였다. 빌라도와 유대인들 간에는 그가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부터 원한으로 대립되었다. 그는 예수를 재판하기 전에 그의 총독직을 위협하는 민중봉기를 두 번이나 당했다. 첫 봉기는 로마군을 투입하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세속화시키려고 시도한데서 발생했다. 유대인들은 즉각 폭동을 일으켰다. 빌라도는 5일만에 군대를 철수시켰다. 두번째는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궁전에 세운 「로마」기념비를 제거하라고 민중봉기를 일으켰다. 그는 그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에 피에 굶주린 무리들이 외치는 소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의 아내의 청원은 그로 하여금 예수를 석방시키도록 용기를 주었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으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는데 용기가 없었다. 사가「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그는 이 비극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으며 그로부터 수년 후에 유배를 당하여 고심하다가 자살했다고 한다. (여인)

첨언…

유첨한 <빌라도 보고서>를 오래 전에 읽고 이것은 순전히 날조된 문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엄밀히 연구를 해 보아야 하겠으나 단순하게 나마 보면, 부관이 히브리어를 잘 알기에 예수의 설교 등을 부관을 통해 전해 들은 것처럼 나오고 있는 데, 예수가 생존해 있을 당시 히브리어는 사어에 가까웠던 학술어에 불과했고, 갈릴리는 세계 도시로 이방인이 많았으며 거의 공용어는 헬라어(그리스어)였으며,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지방도 헬라어와 아람어를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거의 대부분의 말을 헬라어를 썼으며, 간혹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와 같은 아람어를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