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지의 호텔 방에서

먼 곳의 아침. 호텔 방에서 커튼을 걷었을 때, 날씨는 흐릿하고, 약간의 시간이 남았으며,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몸은 피곤하지만 더 이상 잘 수도 없어서 커피를 끓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의 티브이 프로그램을, 서울에서 맞이하는 여느 아침처럼 틀어놓고, 막연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동안 흘러왔던 나날들이 꼭 그러했으며, 더 이상 理想이나 진리 등으로 여과해낼 수 없는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뿌리내리고 그 위를 떠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어제는 춤을 추었고, 낯선 언어의 모르는 여자와 이야기를 한 후, 입맞춤을 했다고 치죠.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가슴이 뛰지 않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인데… 단지 비가 추적 추적내리는 밤거리를 달려 침대에 몸을 던졌고, 더 이상 오늘을 접어놓을 사이도 없이 가면의 상태에 빠져들었고, 약간은 자기도 하고, 약간의 깨어있기도 했습니다.

에어컨에서 바람이 새어나오는 소리가 밤새도록 베개머리를 적셨고, 켜놓은 채 잠들었던 티브이의 푸른 소리는 밤새 잠든 내 얼굴 위를 맴돌았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세상과 관계를 맺고, 수줍게, 때론 부끄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우면서도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삶은 無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 때문이 아니라, 원죄의 숙명을 짊어진 만큼 우리는 무죄라는 역설이며, 시시각각 찬란한 빛깔들로 세상이 명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피로감에 뒤섞인 미미한 열정을 간직한 채, 어제의 입맞춤을 흘려보내고, 또 다른 낯선 도시의 뒷골목을 배회할 것입니다. 때론 길 가에 내어놓은 탁자에 앉아, 도시의 골목 골목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 틈에 끼어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마실 것입니다. 그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과연 그들의 행복과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고 도시와 골목과 그 사람들을 또 다시 바라볼 것입니다.

우리는 늘 그 비밀을 알지 못할 것이며, 낯선 광장이나 잘 아는 길모퉁이를 돌 때, 불현듯 가을 햇살을 맞이할 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 거친 가슴으로 부터 잊혀졌던, 새겨놓을 수 없는 일말의 행복이라는 것이 잠시 떠오르고, 온화한 미소와 함께 이 세상이라는 것이 누려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거부할 수 없어서, 왈칵 포옹하게 되는 것입니다.

20080909 廣州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