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오프라야 강 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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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동안 저는 방콕의 서쪽, 짜오프라야 강이 내려다 보이는 이 곳에 앉아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늘 제 여행은 그 모양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방의 그늘에서 보내다가, 잠시 잠깐 밖으로 나가 대낮의 열기와 극명한 태양에 쫓겨들어와, 제 삶의 냄새를 가리기 위하여 쳐바른 향수와 땀으로 범벅이 된 속옷 냄새를 맡으며, 제게 할애된 하루가 어디까지 왔는가를 간신히 알아채곤 합니다.

피로감에 들떠 잠에 든 후, 조조각성증 탓인지 이른 새벽에 벌떡 깨어나 아침이 오는 것을 기다립니다. 베란다의 앞, 수상버스가 멈춰서는 프라 아티트 선착장이 있습니다. 선착장은 부교로 만들어져 강물의 흐름에 따라 흔들립니다. 오늘은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다리에서 끼욱 끼욱 하는 소리가 없는 것을 보니, 강물의 흐름이 조용한 것 같습니다.

어제 아침, 아니 그보다는 밤 속으로 새벽이 스며들 무렵, 한 사내가 어둠 속에서 새벽으로 걸어나왔고, 그의 손에 든 작살에 믿을 수 없이 큰 물고기가 걸려 버둥대고 있었습니다. 내가 사내의 얼굴 위에 번져가는 웃음을 보았을 때, 마침 느릿한 바지선들이 연결되어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바지선들의 선미에 판자집이 한 채 씩 있었고, 빨래들이 널려있었습니다. 그 중 한 집에서 아침을 짖는지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런 타인들의 생활을 볼 때마다, 할 수 없이, 인간이 흘려보내야 할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절망적인 기대를 포기하면서도, 세상이 제게 보내는 야릇한 유혹에 고요한 마음으로 휘말려들고 맙니다.

이런 나날들을 보내다보니 답장이 늦어졌습니다.

제 티파사에 대한 낡은 이야기에 대한 대답이 되겠는지 모르지만, 이런 글이 있군요.

우리의 생명이 마르지 않는 한, 이 두가지 사실을 오랜 시간 잊은 채 살아갈 순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며, 감탄하는 것이다.

– 알베르 까뮈의 <티파사로의 복귀> 중 –

또 다른 글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깜깜해진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이미 내 삶은 내 것이 아니었다고 뇌까리면서도 ‘지극히 빈약하나마 가장 끈질긴 기쁨을 얻었던 삶에의 추억들… 여름철의 냄새, 내가 좋아하던 거리, 어떤 저녁 하늘’을 그리워 하던 뫼르소처럼 말이다.

하지만 티파사에서 그는 지금 행복하다고 온 몸으로 말한다.

– 알베르 까뮈의 <티파사의 결혼> 중 –

“짜오프라야 강 가에서”에 한개의 의견

  1. 유리알 유희 08.11.17. 23:38
    사랑하는 것은 너무 난해하고 유희는 지금 감탄하는 걸로 휴식의 시간 가집니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제목이 너무 좋아서 덥썩 코엘료의 소설을 샀던 기억이 납니다, 짜오프라야 강 가에서 쓴 여인님의 글, 그리고 까뮈의 사랑과 감탄, 햇빛이 만들어주는 어둠을 오래도록 기억할 거 같군요. ㅎㅎ
    ┗ 旅인 08.11.18. 12:52
    까뮈가 아주 젊어서 쓴 <결혼, 여름>이라는 책에 나온 글귀들입니다. 이 책은 아마 생명에 대한 아주 젊은 성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의 이 책을 읽으면 티파샤와 제밀라의 풍경을 끊임없이 동경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헤어진 자들은 고통 속에서 살지 모르나 그것이 절망은 아니다.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눈에 눈물 없이 이 귀양살이를 참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기다린다. 어느 날이 와서 마침내……”<같은 책: 가장 가까운 바다 중>
    ┗ 유리알 유희 08.11.18. 13:20
    결혼, 여름, 기억해 두렵니다. 읽게 되면 우리 같이 야그해 봅세다. 호호.

    truth 08.11.18. 08:25
    우리의 생명이 마르지 않는한….
    ┗ 旅인 08.11.18. 12:52
    우리는 좀더…

    아르 08.11.18. 08:50
    旅인님 글따라 쨔오파야 강가를 내려다봅니다 슬며시요^^
    ┗ 旅인 08.11.18. 12:54
    방콕을 관통하는 꽉차서 흐름조차 보이지 않고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 강가의 여름이 다시 그립습니다.

    지건 08.11.18. 15:20
    강렬한 햇빛이…그리운걸까요…우리는.
    ┗ 旅인 08.11.18. 16:31
    아니면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자신에게 다가갈 시간들이 그리울 지도 모르지요.

    집시바이올린 08.11.19. 00:33
    쨔오프라야 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하루가 그려집니다^^
    ┗ 旅인 08.11.19. 11:51
    아내와 저는 방콕에 가서 거의 방콕한 셈입니다. 간혹 카오산 로드로 걸어가서 마사지를 받거나 즐기는 태국음식을 먹고 하루 두세시간 쯤 이곳 저곳을 거닐거나 했습니다. 남는 시간은 호텔의 베란다에서 강과 건너편의 수풀을 보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런 아무 것도 아닌 여행이 늘 마음에 듭니다.

    꺽수 08.11.19. 15:29
    여유로운 여행과 영어실력이 부럽습니다. 똑딱 똑딱 거리는 저의 여행과는 사뭇 다름니다. 작렬하는 태양 뜨거운 백사장 사진하나 머리속에 들어옵니다.
    ┗ 旅인 08.11.19. 16:00
    오해십니다. 저 영어 잘 못합니다. 그리고 어느 나라(홍콩 포함)를 가도 결정적인 곳에서는 영어가 안됩니다. 그래서 가기 전에 숫자와 자신이 가야할 곳, 음식이름 등 필요한 현지 낱말들을 수첩이나 종이에 메모하여 활용해야 합니다. 숫자가 제일 중요하고, 호텔 등 지명은 택시기사도 잘 모르는 만큼 약도같은 것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 꺽수 08.11.19. 17:07
    네 그런 준비를 해야하는데… 지난달 파리에서 퐁네프 다리를 찾아가는데 제 서툰 영어도 문제지만 알아듣질 못하더라구요 좀 황당하더군요…유럽이라고 다 영어를 잘 하는건 아니더군요. 알고 보니 네프가 다리인데 퐁네프 브릿지라 해서 못알아 들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휴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건 고역이더군요. 여기서 우리말로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요…
    ┗ 旅인 08.11.19. 17:16
    부럽습니다. 저는 아시아를 벗어나보질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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