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사는 곳은—6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저는 떠납니다.

편지 위의 글이 눈물에 번질까 두려워하며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이번 가을은 영혼처럼 맑고, 길은 아득해서 온 세상을 담고 있습니다. 멈춘 듯 가고, 쉬는 듯 거닐었던, 길 위에서 함께 나누었던 풍경과 이야기들을 언제쯤 다시 미소로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을까요?

가을은 가는 것이라서 가을이라고 했대요.

지는 낙엽과 너무 멀어서 가 닿을 수 없는 들과 산맥들로 가슴에 아릿했어도, 잡아주신 손길 덕분에 따스한 마음으로 그 모습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손을 꼭 잡고 많은 것을 보았지요.

지리산의 능선을 타고 도로 위로 내리던 땅거미 속으로
아우라지에서 산과 강이 사무치는 것을 보며, 춤을 추었고,
강과 바다가 갯벌 위에서 서로를 맞이하며, 빛으로 뒤채이던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산사의 풍경소리 속에서 정적을 맞이했습니다.

그것들은 갈증이자, 기갈을 채워 줄 샘물이기도 했죠. 풍경에 지친 저를 시골장터로 이끌어, 얼큰한 생활의 모습을 함께 보았고, 시고 달콤한 사과와 귤을 사먹었죠. 달콤한 피로에 지친 제 다리를 그대에게 내밀었고, 제 발을 차디찬 개울에 씻어주셨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당신의 품에 제 머리를 파묻고 그대 가슴 속에 울리는 고동 소리를 듣는 것 뿐이었어요. 당신에게선 먼 길을 지나온 먼지가 가을 햇빛에 빨갛게 그을은 냄새가 나곤 했죠.

제게 주어진 사랑하는 시간은 터무니 없이 짧은 것이었지만, 그 시간들 속으로 세상이 그늘지고, 당신은 꿈결같이 다가와 저를 어루만졌습니다. 저는 기쁨에 가득한 빛을 퍼올리고 또 길어올렸습니다.

하지만 아쉬움에 가득한 저는 말씀드렸죠.

“절 꼭 안아주세요.”

그리고 당신을 제 몸 가득히 채웠습니다.

제가 가야 할 곳은 아주 멀어서, 대양과 대륙을 시간이 지나는 여정 속에서 몇번이나 당신을 꺼내보아야 한답니다. 꺼내 볼 당신은 여기에 있기에, 당신의 체취와 그림자와 눈동자 속에 담겨있던 풍경들을 가슴 속에 차곡차곡 담아갑니다.

우리가 함께 걸었던 길 위로 은행나무 잎이 겨울바람에 지고 나면, 눈이 내리겠지요. 그 곳에 당신이 홀로 남아계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 당신을 홀로 남겨둔 채 떠납니다.

제가 떠나면, 당신이 아파하실 것을 알면서도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고 갑니다. 당신을 만나고 사랑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꿈이었기에, 꿈으로 사라집니다.

가슴 아프시겠지만, 제 말씀을 들어주세요. 그리고 찾지 마세요.

당신과 조금만 더 함께 지낸다면, 다시는 당신을 떠나지 못할 것 같아 먼저 떠납니다.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깨끗한 여자가 아니랍니다. 힘들고 피곤한 시간 속에서 저는 몸을 함부로 굴려 돈을 벌고 학비를 마련하였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술을 팔고, 그만 몸을 팔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더럽혀진 제 몸에 은총처럼 다가왔지만, 제 미소에는 늘 과거의 여울이 다가와 부딪히고, 당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여 가슴이 아팠습니다.

당신을 속이고 곁에 머물고자 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사랑이 깊어갈수록 더 이상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솔직하게 말하면, 다 받아주실 것 또한 알지만, 당신께 부끄러워 곁에 머물지 못함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 한 장으로 사랑하는 님의 가슴을 찢고 떠납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저를 용서하세요. 아니 미워해 주세요.

사랑합니다, 정우씨.

마지막 입맞춤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는 저를 용서하세요.

천년이 하루 밤의 꿈이기를…

어리석은 지영 올림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지건 08.12.16. 09:24
    음…

    자유인 08.12.16. 20:28
    육체적 사랑을 나누지 않은 이유가 이해 될 듯도 합니다.^^

    다리우스 08.12.17. 12:43
    저번장에서 하룻밤 같이 지낸 걸로 전 읽었는데,,,
    ┗ 자유인 08.12.17. 12:49
    여러밤 같이 지낸 것으로 읽었습니다.독자에게 궁금하게 툭 던져 놓은 기분도 드네요.
    ┗ 旅인 08.12.17. 13:39
    저는 멜로는 좋아하는데, 침대나 이불 그런 얘기는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은근슬쩍 넘어갔습니다.
    ┗ 자유인 08.12.17. 14:51
    언제 섹스를 할까..읽으면서 궁금하드군요.책”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딱 한번 섹스묘사가 있든데,강렬했든 기억이 납니다.”그 여자가 사는 곳을” 이 주는 상상의 여백을 숨길 수 없음에서 즐겁게 주저려봅니다.^^
    ┗ 旅인 08.12.17. 21:12
    제가 부끄럼을 잘타서 침대나 이층짖는 것을 잘 표현을 못합니다. 부끄부끄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