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있으면 벚꽃이 질 것이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또 가슴이 아플 것이다.
아름다운 이 만화는 시간과 속도에 대한 소야곡이다. 아주 어린 시절로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간절했던 시간들 속에서, 벚꽃잎이 떨어지는 자연계의 속도로 부터 태양계 저쪽으로 날려보내지는 우주탐사선의 물리적 가속도 사이에서, 사랑이 상대편의 마음에 가 닿는 속도를 조용한 목소리로 그리고 있다.
1부. 있잖아, 초속 5Cm래,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 5CM 더보기...
벚꽃이 눈처럼 떨어지는 토오쿄오의 어느 건널목에서 나는 아카리와 헤어졌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날이었고, 그녀는 먼 곳으로 전학을 갔다. 한참 후에 아카리에게서 편지가 왔고, 그 후 아카리를 만나기 위하여 열차시각표를 샀다. 겨울동안 열차를 갈아타는 환승역과 아카리에게 당도하는 역과 역들의 이름을 외웠고, 도달하는 시간과 요금을 계산하고 또 했다. 카고시마로 전학갈 날이 임박한 3월 4일, 고우도쿠지에서 지하철을 타고 몇번인가 열차를 갈아탄 후, 토치키의 작은 역, 이와후네로 가 아카리를 만나려 했다. 벚꽃이 피었어야 할 그 날, 눈이 내렸다. 철 지나 내리는 눈은 늘 폭설이 되곤 했다. 폭설이 내리는 역과 역 사이에서 열차는 지체되었고, 연착과 연착 끝에 아카리에게 주려고 쓴 편지를 승강장에 몰아치는 바람 속에 날려버렸다. 텅빈 손과 풀 죽은 어깨로 오야마에서 갈아탄 기차마저 이와후네로 가던 도중 폭설 속에 멈춰버렸다. 멈춰 선 시간 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이를 꽉 물고 있었지만, "단 1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고, 시간은 확실히 악의를 품고 내 위를 천천히 스쳐지나고 있었다." 텅빈 역사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카리를 생각하니,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제발, 그만, 집으로, 돌아갔기를 빌었지만, 멈춰선 차창 밖의 설원에 빙점으로 멈춰버린 시간을 바라보며, 아카리가 기다려줄 것을 간절하게 빌었는지도 모른다.
속이 쓰릴 정도의 허기와 피로한 몸을 이끌고 이와후네의 역사에 들어섰을 때, 대합실에 깃든 악의에 찬 어둠 밑으로 아카리의 운동화의 끝이 보였다. 아카리는 나를 보자, "흑!"하고 슬픔을 짧게 토해냈다.
그토록 안타깝고 힘겨웠던 시간도 아카리가 싸온 주먹밥을 나눠먹고 허기가 가시자, 다정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막차가 끊긴 역사는 닫히고, 우리는 눈 덮힌 들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린 우리에겐 눈도, 시간도 더 이상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마침내 나는 아카리가 편지에 쓴 거대한 벚나무 앞에 섰다. 벚꽃이 피어야 할 시점에 눈만 소복히 쌓인 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입을 맞췄다.
"그 순간 영원, 마음, 영혼 같은 것이 어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은 늘 어디엔가 머물지 못하기에 "다음 순간 슬퍼졌다. 아카리의 따스함을, 마음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어디로 데려가야 할 지 나는 몰랐으니까." 정말 "우리 앞에는 너무나 거대한 인생이, 아득한 시간이 감당할 수 없게 가로놓여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나의 어린 마음은 아카리에게 머물기로 했고 결국 "내 앞에는 아카리의 촉촉한 입술만 남았다."
아카리와 나는 어느 헛깐에서 서로 손을 잡고 밤을 보낸 뒤, 다음날 헤어졌다.
2부. 시속 5Km
시속 5Km 더보기...
동경에서 전학 온 토오노를 처음 본 순간,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만 좋아했으면 될 것을 말조차 붙이지 못할 정도로 너무 좋아한 모양이다.
곁에 있고 싶었던 탓에 힘에 부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그가 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교실과 궁도장의 먼 발치에서 그를 바라보는 것과 방과 후 서로의 시간이 맞을 경우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지만, 토오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토오노가 보통 사내아이들과 다르다는 것, 낮고 조용한 그의 목소리는 먼지가 가라앉은 팅빈 오후 교실의 외로움과 같았고, 그의 시선은 우리가 바라보는 곳보다 더 먼 곳, 가령 끝이 없는 하늘의 어느 쪽에 멈춰서 있는 것 같았고 때론 핸드폰의 폴더를 열어 누구에겐가 문자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 앞에선 벙어리인 나는, 그의 문자가 광활한 우주를 건너 어느 날엔가 나의 핸드폰에 당도하는 것을 언제나 꿈꾸었다.
"나는 너를 사랑해." 혹은 "나는 너를 좋아해."라는 명료한 문장의 3형식은, 설레임이 가득하면 차마 말하기가 어렵다. 사랑을 이야기하기에는 본시 문법은 없는 것 같다. 명료한 문법이 있어서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의 눈은 그를 바라볼 수 있어도, 나의 입은 차마 그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나의 가슴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 서핑을 하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카고시마의 높은 파도를 타고 서핑보드에 우뚝 설 수만 있다면, 토오노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교길이 같은 토오노와 나는 어느 날, 건널목에서 우주발사기지로 가는 우주선을 실은 화물열차를 보았다. "시속 5Km래!"라고 내가 말했다. 토오노가 나를 보았다. 그의 눈에 반짝하고 슬픔이 스쳐지난 것만 같았다.
친구들이 대학입학지원서를 쓰기 위하여 고민을 하던 10월의 어느 날, 나는 마침내 서핑보드 위에 우뚝 섰고, 다짐했듯이 토오노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로 했다.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들르곤 했던 편의점 앞에서 문득 모터바이크가 고장났다. 토오노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 걸어서 가는 길은 멀었다. 일모의 그늘이 서서히 밀려드는 기나긴 시간과 시간 사이 속에서 "토오노, 난 너를 사랑해!"라든가 "오랫동안 너를 좋아했어" 등등의 말들을 속으로 몇번이고 곱씹었다. 그 말들은 가슴 속에서 뒤섞이며 내가 결코 그에게 말하지 못하리란 예감에 서글픔으로 맺히기 시작했다. 절망감이 밀려왔고 그런 내가 너무 힘들어 손을 뻗쳐 토오노의 옷깃을 잡은 그 순간, 사랑한다는 내 말은, 그만 눈물이 되고 말았다.
토오노는 영문 모를 나의 눈물 앞에 흠짓 놀랐고, 흘러내린 눈물을 변명하기 위하여 나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 "나에게... 상냥하게 대하지 말아줘"라는 터무니없는 애원을 그에게 토해내고 말았다.
그때, 하늘문이 열리는 시간인지, 우주기지로부터 태양계 저 멀리로 보내는 탐사선을 실은 추진로켓이 카고시마의 창공으로 날아갔다. 추진체가 남긴 항적운은 지상에서 영원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석양과 창공의 빛이 뒤섞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렸을 때, 토오노는 하늘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눈동자에 석양이 맺혔다. 그 순간 그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우주보다 더 아득한 거리를 알 것만 같았다.
집에 도착했을때 날은 저물었다. 사귄 적도 없었지만 마지막처럼 헤어졌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이불을 이마까지 끌어당긴 채, 둘 사이에 가로놓인 아득한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래도 나는.. 토오노군을 분명 내일도, 모레도, 그 훗날도, 역시 어쩔 수 없이 좋아할거라고 생각해."라고 눈물로 되뇌고 있었고, 결국 나의 고백은 졸업까지 완결되지 못했다.
단 1Cm도 더보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이라는 것이 시간과 공부와 돈과 일들, 그리고 허접한 것들의 짬뽕이라고 하기에는, 초속 5Cm로 벚꽃이 떨어질지라도, 천통 이상의 문자를 보내는 동안, 가슴은 서로에게 단 1Cm도 다가가지 못했다는 그녀의 문자는 의아하고 느닷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부인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있잖아, 초속 5Cm래,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좋아했던 소학교 6학년 짜리 아카리의 이야기는 그렇다고 쳐도, 카고시마의 동창생 카나에의 풋풋한 사랑을
외면하고 우주선이 지나간 저 창공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그 나날들을 지나,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취직하여 여자를 사귀고 "삼년동안
당신과 내가 천통이 넘는 문자를 했지만, 마음은 단 1Cm도 가까워지지 못했다"는 그녀의 문자를 받았을 때까지...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내 가슴에 아무런 상처와 무늬를 남기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와 함께 그녀가 허비한 사랑의 시간과 노고가 안타까우면서도 더 이상 어떻게 손 써볼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다시 외로워졌다.
초속 5Cm. 카나에가 말한 그 속도는 결코 느린 것이 아니다. 떨어져 내리는 꽃잎은 언젠가는 기어코 땅에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초속 5Cm이건 5mm이건.
카나에... 그렇지만 사랑은?
그것은 말이야... 삼년동안 천통이 넘는 문자로도 1Cm도 다가가지 못하는 속도이거나, 아직도 소학교 졸업식날 서로가 헤어진 건널목에서 서성이며, 건너편에 그리워했던 사람을 놔두고, 십년이 넘도록 애타하며 아득한 은하계 저 너머를 바라보다가 그리워하던 사람을 안타까운 세월 속으로 보내버리는...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거나, 시간의 비가역성을 거슬러가며 추억 속에서 내연하는 것인지도 몰라.
카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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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더보기...
신카이 마코토라는 감독의 2007년작
사진인지 그림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세밀한 묘사 속에서, 사진으로 잡을 수 없고 가미할 수 없는 우울과 고독 그리고 기대할 수 없는 풍경들을... 2차원의 평면 속에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런 만화를 보면, 일본이 무섭다.
일본에 대한 나의 지식이라야, <일본은 없다>를 쓴 전여옥의 수준에 훨씬 밑돈다. 하지만 전여옥의 수준이라야 감정적인 판단이기에 일본에 대한 생짜 무식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일방적인 폄하였기에, 우리의 반일감정에 만족감을 주긴 했어도, 극일에 필요한 냉철한 정보와 판단에 왜곡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전여옥의 책은 득보다 실이 많다. 일본은 얕잡아보기에는 너무 큰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을 무서워하는 데는 만세일계의 천황 중심의 신정국가라는 점이나, 우리가 그들의 식민지였다거나,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귀축미영과 태평양에서, 인도지나의 밀림에서 일전을 벌였다는 것 등이 아니다.
일본은 무섭게도 축적이 되어 있는 나라라는 점이며, 무척 다채로운 무늬로 채색되어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반면, 우리는 쌓이지 않고 허물어지며, 늘 때론 불교, 때론 유교, 때론 기독교 일변도의 단색조였다는 점이다.
나는 외국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시대에 학교를 다녔고, 당시 일본이란 무조건 나쁘다고 배웠다. 그리고 일본의 문화는 왜색문화로 천박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보아서도, 수용되어서도 안된다고 배웠다. 그래서 반일, 극일 이전에 혐일감정에 사로 잡혀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내가 일본사람의 책을 읽은 것이라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이나, 아주 소소한 단편에 불과했다. 그러니 얼마나 몽매했던가? 이런 몽매로 그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200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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