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들-10

관심법

예전에 궁예가 관심법(觀心法)이라는 것으로 부하들의 속마음을 읽는다며, 많이들 잡아죽였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저도 간혹 합니다. 특히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난다면, 더욱 그렇겠죠.

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몹시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자신의 생각은 감추고, 타인의 생각 만 읽겠다? 이것처럼 음산한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녀의 만남, 즉 데이트라는 것은 우습게도 불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졸렬하기도 하며, 고도의 심리전을 수반합니다. 자신의 마음은 교묘하게 숨기면서, 상대의 마음만 알겠다는 찌질한 욕구는 <독심술>이라든가 <이성의 마음을 읽는 법> 같은 책의 수요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런 싸구려 책일수록 심리학이라는 그럴듯한 학술용어를 갖다 붙입니다. 사실은 싸구려 처세술일 뿐이죠. 정말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하고 한두권 정도는 읽어보았는데, 한마디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입니다.

이런 책을 읽느니 차라리 연애소설을 통하여 이성 앞에 선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양태를 습득하거나, 아니면 내가 저 여자라면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대입하고, 타당한 행동을 유추해 낼 수 있다면, 그것이 독심술이자 마음을 읽는 기술입니다. 역지사지란 타인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자는 수준 높은 공맹의 말씀이겠으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독심술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독심술이 상대의 심리를 간파해내는데는 효과를 발휘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백한마리의 원숭이가 들어앉아 몸 속의 이를 잡느라 바쁘거나, 서로 싸우고, 분탕질을 쳐대고 있어서 본인도 정작 자신의 마음을 모릅니다. 상대편이 잠깐 자신을 좋아하게 할 수는 있어도, 이러한 사술로는 오랜 사랑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상대편의 심리를 객관적으로 해석한답시고, 이러저런 점들을 분석해 볼 때, 나를 안좋아한다는 것이 틀림없다고 한다면, 심리전에서 이미 진 셈이고, 그 놈의 연애는 종친 것입니다. 다소 왜곡이 있더라도, 낙관적으로 해석합시다. 저 여자가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나도 저 여자를 사랑하겠다고 말입니다.

사랑에 다가가는 과정이란 이처럼 지난합니다. 상상(꿈)의 이자관계로 환류하려는 노력에 이처럼 치열한 심리전의 양상이 펼쳐진다는 것은 짜증이 납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라는 광고문안도 있나 봅니다.

혹시 천안통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방 구석에 앉아서 천리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냥 보는 것 말입니다.

대학교 때였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 삼랑진이라는 조그만 읍에 들어섰습니다. 시외버스에서 내린 저희는, 먼저 고향으로 내려온 친구를 기다리기 위하여, 어느 다방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문득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층에 있는 다방을 보고, “계단을 올라가면 거울이 있을꺼야. 그리고 그 거울에는 [축 발전]이라고 쓰여 있을꺼구, 그 옆으로 문이 있는 데, 갈색이야.”라고 말했죠.

계단을 올라서자, 거울이 있었고, 제 말처럼 거울의 밑에 축 발전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물론 저희는 갈색문을 열고 다방에 들어섰죠. 당연히 친구들은 어떻게 알았느냐, 한번 와보았느냐? 하고 묻더군요.

저는 거만한 자세로 냉커피를 마시며, “아니, 그러나 다 아는 수가 있지!”라고 했죠.

여행을 가기 전. 어느 소설에 읍내 다방의 꼬라지에 대해서 쓴 소설이 있었습니다. 그 다방을 보자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올랐고, 그것을 흉내내서 장난을 쳐본 것입니다. 당시의 시골 다방은 대부분 지역 유지나 명망있는 지역 단체에서 보내 준 큼지막한 거울을 출입문 곁이나 안에 놓아 두었는 데, 놓을 위치가 마땅치 않기는 매 한가지였고, 천편일률적으로 그 ‘축 발전’이라는 글귀와 함께 긴 이름의 무슨 상조회니 연합회 등이 쓰여 있곤 했습니다. 또 아직 칼라TV가 보급되지 않은 관계 상 칼러에 대한 감각도 둔감하기 그지 없어서, 창 틀에 칠해진 페인트와 같은 색으로 출입문을 칠하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씨부린 것이 맞을 확률은 70~80% 정도는 됐고, 틀린다고 해도 놈들이 저를 패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장난을 한번 해보니까, 척척 들어 맞는다는 것도 재미있고, 친구들의 존경하는 혹은 저거 귀신든 것 아니야? 하는 눈빛 또한 재미있더군요. 그래서 그런 예언과 같은 장난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뒤따라오던 친구에게, 돌아보지도 않고 “거기를 아무리 쳐다봐야 그 여자가 나타나겠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게 다가와 “내가 골목을 쳐다보는 걸 어떻게 안거야?”하고 묻습니다. “이 형님께선 간혹 뒷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뭐가 보인단 말씀이야!”라고 말합니다.

“귀신이 따로 없네!”라고 친구가 말하지만, 실상은 그 골목에 놈의 헤어진 여자친구의 집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남자란 자신이 Coool하다고 하면서도 늘 헤어진 여자에 대하여 미련을 갖고 있다는 것, 그래서 다시 한번 만났으면 하는 생각에 그 골목을 들여다 볼 수 밖에 없죠. 그래서 당연한 일을 지껄인 것에 불과한 데, 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치 본듯 이야기 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놀라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놀이가 그만 저의 취미가 되었죠. 이런 예언(왜 예언이라고 했는 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이 반복되었고, 명동의 어느 다방에서 히히덕대고 있던 친구 놈들 앞에, 제가 짠~하고 나타나면, 놈들은 “어떻게 우리가 여기있는 줄 알았냐? 집에서도 모르는 데…”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봅니다.

“이제 너희 놈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나한테 접수된거야. 방 안에서 네 놈들이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여기라고 점지가 내려지더군.”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좀더 복잡한 매트릭스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만약 A를 잘 안다면 그 놈이 잘 가는 곳은 대충 알 수가 있습니다.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한번 만날까 놈의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 놈이 B를 만나러 갔다고 하면, B가 어디를 자주 가고, 또 A와 B의 관심사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놈들이 어디를 함께 놀러갔다고 치면, 그때 함께 갔던 C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혹시 B나 A를 만나러 가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렇다.”는 답이 나오면, 놈들이 어디에서 무슨 작당을 하기 위하여 만나고 있느냐가 쭈악 펼쳐지게 됩니다. 세 놈이 갈만한 곳들을 좌표에 찍어보면 특정 지점이 나오고, 세 놈이 무슨 이바구를 나누고 있는 것까지 대충은 알 수 있는 것이죠.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자, 친구들은 정말 제가 초능력을 갖고 있는 줄 알고, 사소한 예언을 부탁하기 시작했죠. 가령 다방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있다면, 누굴 기다리냐고 묻습니다. 친구를 기다리는 남자는 보통 자신이 하는 일에 몰두를 하지만, 여자를 기다릴 경우 문이 까딱만 해도 눈길이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여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떤 여자냐고 묻지요. 척보니 남자는 지나치게 깔끔을 떨고 있고, 약간 긴장되어 있습니다. 분명 만난지 얼마 안된 여자일 것이니 단정한 차림으로 나올 것입니다. 당시에는 치마가 단정했기 때문에 “좀 무난한 치마를 입은 여잔데?” 그러자 다방 문이 열리고 단발머리에 무릎을 내려오는 치마를 입은 여자가 들어서서 남자의 건너편 의자에 앉습니다. 이 아무 것도 아닌 사실에 친구들은 경이에 찬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너 혹시 주문같은 것도 외울 줄 아니?”라고 묻습니다.

“아직은 못하는 데… 그것도 가능할 것 같아.”라며, “그럼 다음에 이 다방 안에 들어오는 여자가 우리 자리에 오도록 주문을 외워 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아가씨가 한 명 들어오더니, 정말 저희 자리로 다가옵니다. 친구 놈들은 경악에 가득한 눈으로, 저와 그 아가씨를 번갈아 쳐다봅니다. 이윽고 그 아가씨가 제 옆자리에 앉을 즈음에는, 놈들은 자리에서 기겁을 하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갈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저는 “놀라지들 말고 인사해. 내 여자친구야.”하고 놈들을 다독거려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예언연습을 점차 심도를 더해갔고, 어떤 때는 도저히 계산이 안되어 대충 때려잡는데도 맞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정말 저도 알 수 없는 무엇이 제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때의 제 기분은 정말 세상이 제 손바닥 안에 들어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안되겠다 하고 더 이상 장난을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짓거리를 뚝 끊어내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된 봄 날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사직동에 있는 모처에서 붓글씨를 배우기 시작했죠. 남자 놈들만 붓글씨를 배우고 있는 서예 교실에 어느 날, 한 여자가 짠~하고 나타납니다.

그다지 예쁜 얼굴도 아니었고, 당시 여자친구가 있었던 관계로, 그녀의 출현은 저에게 아무런 사건도 못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 녀석들에겐 때는 바야흐로 춘삼월, 발정기가 시작되는 지절이었죠. 놈들은 겨울방학동안 허벅지에 송곳을 쑤셔가며 무지하게 외로운 겨울밤을 보냈다는 겁니다.

그래서 강습이 끝나고 나서, 내자동이나 적선동 뒷골목의 탁주집에 가서 술 만 마셨다 하면, 그 여자가 자기를 쳐다보았다. 아니다. 저번에 날 보고 살짝 웃었다. 그 여자가 내 자리 옆에 앉았던 것 기억나냐? 하며, 지들끼리 그 여자가 내꺼다 아니다로 놀고들 있었죠.

저는 그래도 여자 친구가 있다는 푸근함 때문인지, 쌩폼이라도 잡을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막걸리 한 사발을 캬~ 소리를 내며 들이키고, 탁자 위에 탁소리를 내며 사발을 내려놓으며,

“이 짜식들아! 맘에 들면 여기서 씹어대지 말고, 다가가서 한번 사귀자고 그래. 먼저 말붙이는 놈이 임자다 이거야. 그럴 자신이 없으면, 구구로 잠자코 술이나 쳐 드시든지… 이거 어디 시끄러워서 술 맛을 음미할 수가 있나? 거시기 달린 새끼들이 기집애들처럼 수다는…?”하고 놈들의 존심을 확긁었죠.

그렇다고 이 놈들이 그냥 팍 죽을 놈들은 아닙니다.

“아쭈구리? 어디서 못 생긴 여자 하나 꿰찼다고 기고만장했나본 데…? 그렇게 말하는 너는 그 여자한테 커피라도 한잔 하자고 말할 수 있어?”

“내가 할 일 없냐?” 하고 말했지만, 그렇게 놈들이 물으니, 쉽게 다가가서 말을 걸고 하는 것도 만만치 않고, 커피라도 한 잔하자고 찍자 붙었다가, 딱지라도 맞으면, 가문의 수치는 물론, 졸업할 때까지 놈들이 저를 줄창 씹어댈 것 같았습니다. 놈들한테 한번 잘못 찍히면 평생갑니다. 그러니까 놈들은 친구가 아니라 웬수입니다.

그래서 살짝 발을 빼며,

“마~ 지엄하신 이 형님께서 쪽 팔리게 아녀자한테 커피나 한 잔 하자는 쌍팔년도식의 히야까시를 어떻게 할 수 있겠냐? 어험~” 하고 둘러댔죠.

하지만 놈들은 질긴 놈들입니다. 자신없지? 자신없지? 하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통에 그만,

“나처럼 내공수위가 높으신 어른, 즉 본좌께선 아녀자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그 여자가 와서 말을 걸게 되어있느니라.”라며 말을 끊었습니다.

그 후 집으로 돌아가 머리를 싸매고 어심술(御心術: 상대의 마음을 제어하는 사악한 마공)의 초식을 창안해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전에 옮겼고, 그로부터 얼마 안되어, 그 여자가 제 어심술에 걸려 저한테 말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론 친구들은 저를 (진심으로) 존경하기로 했다나요? 빌어먹을!

하지만 알고 보면, 내용은 간단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그 여자에겐 검정색이 수호색이 될 것 같아.”라는 식의 애매한 소리를 친구 놈들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느긋하게 그 말이 발효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됩니다.

그 여자가 저한테 말을 걸어도 되고 안걸어도 손해날 것은 없습니다. 친구 놈들은 제가 그 여자한테 말을 걸 자신이 없으니, 변명삼아 헛소리를 한 것 정도로 알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 그녀가 저에게 말을 걸어오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선은 (물론 돈을 선납해서 할 수 없이 나올 공산은 있지만) 남자 놈들만 있는 곳에 여자가 홀로 나오고 있다는 점, 제가 볼 때는 그 여자는 붓글씨보다는 딴 데 관심이 있는 것 같지만 말입니다. 두번째 제가 그녀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검정색이 수호색…”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넌즈시 밝혀놓은 셈입니다. 세번째는 순박한 친구놈들이 그 여자에게 말을 걸긴 해도 심장이 약해서 죽어도 그녀에게 “커피 한잔 하자!”라는 말을 못하리라는 것. 마지막으로는 그 여자가 검정색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펼쳐놓은 그물에 걸려들 것을 은인자중, 예의주시하며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붓글씨 강습이 끝나고 적선동에 보아논 탁주집에 가서 친구들과 목을 축이려고 문을 나서는 순간, 그녀가 저에게 다가와 그렇게 묻더군요.

” 저어~ 뭐하나 여쭤볼 것이 있는데요?”

저는 무엇을 묻고 싶냐는 표정(게다가 될 수 있으면 해맑은 눈)으로 그녀를 봅니다.

“검정색이 저의 수호색이라고 하셨다는 데… 그게 무슨 뜻이예요?”

“아~ 그 말이요?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그냥 얼굴선이 곱고 목선이 부드러워서 검은 색을 무난히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고…, 검정색이 본인이 간직하고 있는 품위를 돋보이게 할 것 같아서… 그만, 주제넘게…” 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입니다.

그 후 고삐를 놓치면 안될 것 같아서, 곧바로,

“그런데 무슨 과에 다니시죠? 혹시 그림 그리지 않으세요?”

그러자 “제가 그렇게 보였어요?”라며,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우리가 한동안 알았던 사이처럼 제게 바싹 붙어왔습니다.

그러자 제 뒤를 따르며,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쏘아보던 놈들 사이에서 약간의 소요가 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직동에서 길을 건너 적선동으로 내려가는 내내, 앞에는 그녀와 저가 걸어가고, 그 뒤로 떨거지들이 줄줄이 따라오는 어설픈 학익진 대형을 유지했습니다.

“오늘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 하기로 했는데, 함께 한 잔 어떠세요?”

그렇게 그녀는 저희의 술자리에 끼게 되었고, 당시에 휴학 중이라 심심한 차에 붓글씨나 배워볼 까 하고 나왔다고 하더니, 성격이 좋았는지 금새 외롭고 배고픈 늑대들 속에 한마리의 양이 되더군요.

하지만 그런 자리엔 꼭 치사한 놈이 있게 마련입니다. 술이 거나해지자, 어떤 빌어묵을 놈이 손가락으로 저를 가르키며,

“이 새끼, 나쁜 놈입니다. 우리 과에서 알아주는 바람둥이라는 것 아세요?”라고 씨부리더군요.

이 남자 놈들이란 종자는 잘들여다 보면, 지들이 속 좁고 수다스럽다고 하는 여자들보다, 더 밴댕이 소갈딱지고, 삐지기도 잘하고, 수다를 떨면 더 가관입니다. 놈들 뿐만 아닙니다. 저처럼 품행이 방정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도 그러하니 사내 놈이 싸가지 없다는 것은 예외가 없는 보편적인 진리라 이겁니다.

하지만 놈들이 잘모르는 것이 있는데, 저는 바람같은 것 피우지 않습니다. 제가 다른 여자를 만난다면, 그것은 절교를 했다던지, 여자에게 걷어차이고 나서 고독에 몸서리치지 않는 한, 양다리 걸치고 하는 피곤한 짓은 절대 안합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됐냐고요?

그냥 해피앤딩이라고 해두죠. 멍청한 제 친구 하나가 그만 그 여자와 눈이 맞았고, 오랫동안 년놈들은 행복하게 잘 지냈으니까요. 단지 하나 비극적인 것이 있다면, 제가 그만 천하에 몹쓸 바람둥이 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억울할 데가…

그러니 괜한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려면, 친구는 잘 사귀고 볼 일 입니다.

관심법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멀리까지 왔네요. 하지만 이 관심법이란 것이 결국 연애라는 남녀 간의 치졸한 전투에서 어떻게 전략을 구사하고, 전술단위에서 세부적인 줄다리기를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불과한 것 입니다.

하지만 이런 짓거리를 하다보면 점차 그 속에 빠져들게 되고,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한대로 이루어지도록 조작해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제 정신이 박혔다면, <연애의 정석-Ⅱ>에나 나올 이런 복잡한 확률(개연성) 계산에 몰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이란, 복잡한 함수를 계산하는 이공계의 과목이 아닌, 인문계 과목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연애의 정석-Ⅱ에서 나오는 복잡한 확률 계산은 저희와 같은 일반인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제비나 날라리들이 자신의 직업 또는 취미 상, 가장 적은 In-Put으로 가장 많은 Out-Put을 산출해야겠다는, 효율 측면의 계량적 문제일 뿐이지, 인문과학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랑이 발하는 그 찬연한 가치는 어떻게 사랑을 얻는다는 How to 즉, 방법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저에게는 없다고 판단되지만) 어떤 사랑을 했느냐, 내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는가 하는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사랑하는 사람들은 감기에 걸려 코가 막힌 소리로 묻곤 합니다.

여자 : “자기야~ 자기는 날 얼마나 사랑해?”(닭살입니다.)
남자 : 팔을 활짝 펼쳐 동그라미를 그리며, “하늘만큼!”(흐이그 정말 닭살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제가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그때 왜 감기에 걸려 코맹맹이 소리 한번 질러보지 못했느냐 이겁니다.

This Post Has 7 Comments

  1. lamp; 은

    저..

    (주저주저..)

    글에서 느껴지는 포스는 영락없는 바람둥이같아요..-.-

    1. 여인

      아니라는 것을 학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낮가림이 심하고, 용기가 한 2% 부족하고, 그렇게 말 잘하지 못하고, 이벤트에 닭살이고 기타 등등에 결정적으로 좀 인물이 빠진다는 등의 결함요소가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좀 순정파적인 요소도 있고 화려하고 멋진 것보다 좀 조용하고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바람이라는 것과 제 취향이 맞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글처럼 희화하지 않은 제 글들을 보면 아실 겁니다.

  2. 善水

    크하하 여인님 너무너무 재밌습니다. 여인님같은 친구가 있으면 제가 정말 귀찮게 했을것 같습니다. ㅋㅋ ‘하지만 문제는 독심술이 상대의 심리를 간파해내는데는 효과를 발휘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저도 동감이요!^^

  3. 善水

    음 확실하게도 아니고 학실하게 말씀해주셔서말인데 제생각엔 그저 어중이떠중이 바람둥이가아닌 찍은것은 한발명중 고수정도로 생각이 듭니다 ㅋ

    1. 여인

      저의 문제는 바람둥이냐 고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남여상냉(열이 아님)지사의 고수로 여자친구는 있어도 애인은 없고, 있어도 조만간 걷어채이고 만다는 무지하게 불행한 과거를 지닌 사람이라 이겁니다.

  4. 旅인

    다리우스 09.01.12. 22:49
    이번 장은 관심법이군요, 그럼요 중요한 문제겠지요, 흥미롭게 잘 읽겠습니다, 여인님~
    ┗ 旅인 09.01.13. 18:22
    관심법을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이겠지요.

    truth 09.01.13. 02:05
    하..정말 다행스런 결론입니다.
    ┗ 旅인 09.01.13. 18:20
    그렇겠죠. 이런 잡스런 짓은 할 일이 못됩니다.
    ┗ truth 09.01.13. 19:33
    네^^하지만 다양한것들에 때론 치밀히 집착하며 나름의 연구를 통한노력..그날수가 길어져 지금의 해박하고 깊은 여인님의 모습이 완성되어감이 아닌가싶었습니다.결국엔 관심법에서 벗어남이 진정한 행복추구란 결론에 다달을수있지않았겠는지요..^^

    샤론 09.01.13. 17:14
    하여간 정말 재미있습니다…그렇게 여자 속을 다 알거나 남의 속을 다 알 것 같으면 좀 겁날 것 같습니다..내 속을 들키지 않을까 하는….
    ┗ 旅인 09.01.13. 18:19
    이 정도는 다 눈치껏 살피면서 하는 일인데…그냥 한번 정리해 본 것에 불과합니다. 저처럼 사람 눈치 살피지 못하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늘 저희 집사람이 하는 말이 그렇게 눈치도 없으면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느냐고 늘 뭐라합니다.
    ┗ 샤론 09.01.14. 13:29
    그럼 이 글 속에서 맞추는 것은 어찌된 일이지요? ..전 사실 남자들은 좀 둔하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여인님은 속을 다 꿰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예전에 정말 눈치가 아니라 속을 들여다 보는 사람과 잠시 있어야 했던 적이 있는데 겁나서 혼났습니다..내가 속으로 누군가를 못마땅히 여기거나 하는 것을 들킬까봐죠..전 꼭 찝어서 얘기 해야 알아듣는 사람이라서 가끔 어리둥절할 때가 많아요..그 표정이 너무 웃기다고 사람들이 웃곤 하죠..
    ┗ 旅인 09.01.14. 23:07
    글과 현실은 다릅니다. 현실은 늘 움직이는 생물이지만, 글은 쓰는 사람의 의도대로 표현되기 마련이지요^^

    라비에벨 09.01.13. 17:41
    진정한 사랑을 쟁취하는데는 여인님의 예지능력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할것 같습니다.^^재밌게 읽고 갑니다…
    ┗ 旅인 09.01.13. 18:20
    맞습니다. 맞구요. 다 쓸데없는 짓거리입니다.

    그라시아 09.01.13. 19:22
    쟈가아~ 나 얼마나 사랑해? (글쎄에) ㅋㅋ
    ┗ 旅인 09.01.14. 23:09
    ……………………..?!#&$ 긁적 긁적 ?

    유리알 유희 09.01.13. 23:11
    나는 얼마나 사랑했을까? 이미 늦었을까요. 갑자기 여인님 만나기가 쪼매 무서워집니다. 관심법 그거이 하지 않을거죠? ㅎㅎ
    ┗ 旅인 09.01.14. 23:10
    관심법 못합니다. 하지만 회사 관두며 사주나 관상봐요를 할까하는 생각이 조금 있기는 합니다.

    집시바이올린 09.01.19. 23:41
    학익진대형~ 관심법으로 친구들을 사로잡았을 여인님이 쪼매 터프하게 느껴집니다. 굉장히 부드럽기만 한줄 알았거든요^^ 궁금혀라~
    ┗ 旅인 09.01.20. 11:48
    저 부드러운 남자입니다. 놈들이 아쉬우니까 따라온 것 뿐이지, 제가 끌고 간 것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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