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들-09

정  조

제  비 : 예전에는 은혜를 갚는 조류동물. 날렵하며 주로 짙은 계통의 단정한 복장을 하고 있으며, 카바레 등지에 서식. 외롭고 돈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이가 있는 암컷을 위한 서비스업에 종사. 서비스의 내용은 밀고 땡기는 춤 실력과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사교적인 화술, 능수능란한 기교로 성적 만족감이라는 용역을 제공. 문제는 상당액의 봉사료를 요구하며, 용역에 대한 댓가가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니 서방한테 이를꺼야 하는 등의 협박과 회유가 뒤따름. <반대말 : 꽃뱀

날라리 : 사전에 보면, 언행이 어설프고 들떠서 미덥지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아무렇게나 날림으로 하는 일. 때론 ‘기둥서방’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음. 사전적 의미를 떠나 어감 상으로 판단할 때, 곤충류로 이해할 수도 있음. 이들 날라리의 특성은 제비와 같이 용역을 제공하고 댓가를 받는다는 프로 근성이 없고,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하여 여성에게 접근, 성적 욕망을 채우면 금전적 댓가없이 금새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특성이 있음.

※ 공통점 : 외양에 몹시 신경을 쓰며, 능란한 화술을 보유한 반면, 도덕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음. 사랑과 같은 감정은 없으나, 상대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촉발, 현혹시켜 자신이 의도한 목적 달성을 이루려 함. 최근 IT의 발달에 따라 익명의 대화 공간이 무제한으로 공급되고, 영양상태의 개선에 따라 키 크고 미끈한 남자의 공급이 원활해짐에 따라, 고객들이 대폭 줄어들자 제비 또한 서식지를 잃고 있으며, 성개방에 따라 특정의 테크닉이 없어도 용이하게 침대로 갈 수 있게 되고, Cooool한 것이 미덕이 되는 만큼 날라리라는 특정소수를 별도로 분류관리할 의미를 잃게 됨. 따라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지칭함. 즉  이들의 생존여부가 우리 시대의 도덕 및 윤리의식의 시금석이 됨.


우리는 우리의 이 시대를, 말세라고 합니다. 지금 아마겟돈이 위치한 가자지구에 유태인들이 날려보낸 포탄이 떨어지고, 팔레스타인의 아녀자들이 불의 세례 속에 피를 뿌리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말세가 뚜렷한 실체를 지니고 점차 다가오고 있는 듯 싶습니다.

인류는 늘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유사 이래 가장 타락했으며, 말세라고 합니다. 하지만 고대사를 자세히 읽다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특히 성경이 그렇지요. 고대사의 어느 지점에 이르다 보면, 그 시절의 성 모럴이 우리의 성 모럴보다 훨씬 해이할 뿐 아니라, 가공할 정도로 엽기적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광이란 땅에서 포위되어, 자신의 생사가 백척간두에 서 있을 때, 돌연 아아 사문(斯文)이 끝날 것인가 하고 절규합니다.

공자가 이 문화(斯文)라고 탄식한 까닭은 당시의 공자가 처한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춘추시대의 말기인 당시 이미 주나라의 완정한 봉건체제가 붕괴되며, 열국들이 일어나 전란으로 피폐되어 있었고, 주공의 봉토이자 주나라의 아름다운 문화를 계승했다고 자부하는 노나라는 문강과 애강이라는 제후의 부인 때문에 개꼴이 나고 맙니다.

문강은 제나라 희공의 큰 딸입니다. 이 여자는 이복 오빠인 제아(후에 제양공)와 정을 통하다가 노나라의 환공에게 시집을 갑니다. 그러다가 제아가 제후가 되자 노환공과 함께 제나라로 축하차 가서 간만에 오빠와 운우지정을 나누게 됩니다. 이 사실을 노환공이 알게 되자 오누이가 공모하여 팽생이란 자를 시켜 노환공을 죽여버립니다. 노나라에서 이에 대하여 항의하자, 그들은 팽생을 죽여 무마했습니다.

애강은 문강의 동생으로 노환공의 죽자 제후가 된 노장공에게 시집을 갑니다. 노장공은 문강의 아들로, 일설에는 환공의 아들이 아닌 제아와 정을 통해 난 자식이라고 합니다. 애강은 친조카이기도 하고 외조카이기도 해서 햇갈리는 장공이 싫었는지, 외조카(즉 장공의 동생)이자 시동생인 경보와 정을 통합니다. 이후 경보가 쿠테타를 일으키고, 노나라는 혼란의 와중에 접어들게 됩니다. 그 후 한세기가 지난 후, 공자는 숙량흘과 안씨녀의 야합(길거리에서 눈이 맞아 놀아났다)으로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공자의 시대에는 전통적 질서와 와해된 가운데, 정조 관념도 없고 위 아래 할 것 없이 아무하고나 흘레를 붙는 패륜적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간 공자는 Back to the basic(기본으로 돌아가자)의 기치로 사문(주나라의 방정한 문화)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좀더 고대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죠. 프레이저의 흥미롭기는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황금의 가지>를 읽다보면, <싸이프러스의 아도니스>라는 장을 만나게 됩니다. 고대의 싸이프러스에서는 모든 여자들이 결혼에 앞서 여신의 성소에 가서 몸을 파는 것이 관습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습은 중근동의 많은 지방에 보급되어 있었고, 필자의 의견에 의하면 음탕한 유흥이 아니라 종교적 경건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마치 자신이 한때 그 곳에서 살았던 것처럼 씨부리고 있습니다. 바빌론에서는 여자는 부자건 가난하건 평생에 한번은 밀리타의 신전에서, 아스타르테(동양의 아프로디테)의 신전에서 외래인에게 몸을 맡기고 성스러운 매음에 의하여 얻은 보수를 여신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성역은 고객을 기다리는 여자들로 꽉차 있었고, 불사조가 있다고 전해지는 태양의 도시인 헬리오폴리스의 아스타르테 신전에서는 모든 처녀가 그 몸을 외래인에게 맡기는 관습이 있었으며, 아내도 같은 방법으로 여신에 대한 신앙심을 보여 주어야 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매음은 아모리테, 비블루스, 아르메니아, 파포스 등 모든 방역에서 이루어졌다고 그는 기술합니다.

사실 프레이저의 글이 아니라도 이집트와 바빌론의 사원에서 여사제의 주요한 임무는 매음이었고, 그들에게 매음이란 신에게 자신의 몸을 봉헌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매음은 아도니스와 오시리스의 재생제의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 같으며, 밭을 갈아야(외래인에게의 매음) 씨를 뿌릴 수 있다(정혼자의 아이의 잉태)는, 그래서 곡물 신의 부활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 다산제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또 탄트라에서는 식욕과 함께 성욕은 인간의 기본욕구임에도, 성에 대한 금제를 통하여 거대한 권력체계를 이루었고 사회가 발전했지만, 대신 인간은 자유를 잃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성에 대한 해방이야말로 해탈에 이르게 한다고 합니다.

선민이라고 자랑하는 유태인의 종교가 다신교(엘로힘의 시대)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첫 번째 계명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계명은 모세 이전에 무수한 신들이 가나안의 땅 위를 배회했다는 실마리를 역으로 제시하고 있는 중대한 구절인 것처럼, 일곱 번째 계명, “간음하지 마라”는 당시의 유태인들이 간음을 식은 죽 먹듯 했다는 역설일 수도 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 유태인의 어머니인 사라가 비록 아브라함이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더라도 파라오와 동침을 하는 장면을 성경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또 창세기 20장에 또 다시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브라함의 여동생으로 알고 취하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훼방으로 실패하고 아브라함에게 따져 물으니 사라가 자신의 이복여동생으로 자신과 근친상간의 관계임을 밝히는 기사가 나옵니다. 게다가 19장에는 소돔을 벗어난 롯의 두 딸이 지 아비와 통정하여 모압족과 암몬족을 나았다는 지랄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거 원 성경인지 음란물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렇다고 우리 만 홀로 잘났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고대의 제천의식인 동맹, 영고 등의 기사를 보면, 온나라가 떠들썩하게 큰 모임을 열고, 며칠동안 술을 쳐 마시고, 춤을 쳐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브라질의 삼바축제와 비슷한 분위기이던데, 젊은 남녀가 어울려 밤새도록 술 먹고 춤을 춰댔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또 조선조에 들어와 고려가요를 보고 남녀상열지사(년놈들이 서로 부비적대며 열내는 짓거리)라고 씹어댄 것을 보면, 우리 백의민족이 종족적으로 충절이 강한 것은 아니라 이겁니다.

이런 예를 놓고 현재의 가치관의 기준으로 보면, 인간이란 늘 음란했고 퇴폐적이며, 늘 말세의 끄트머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 사랑에 관한 부스러기 글들을 쓰고 있지만,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 저는 전혀 모릅니다.

사랑-性(sex) = x 라고 할 때, 여기에서 x에 대입될 수 있는 단어란 대체 무엇일까요?
x+性(sex) = 사랑 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겠지요.

싫어하는 데 성관계를 맺는다면 성폭행, 돈 때문에 관계를 맺는다면 매음, 쾌락 때문에 관계를 맺는다면 바람 등등으로 풀이가 되는데, x 때문에(x 라서) 관계를 맺으면 사랑이다 라는 답은 확연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무튼 좀더 생각해보기로 하죠.


정조라는 것이 아녀자의 주요 덕목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니지 못합니다. 그리고 남성들의 권위주의에 입각하여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마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통념과 상당히 다를 것입니다.

서구에서는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 등의 인문주의가 부활되고 절대왕권의 대두되면서 귀족계층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정조 개념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동양에서는 화려하고 귀족적인 당채문화(唐彩文化)가 퇴조하고, 송대에 이르러 지식계급인 사대부가 형성되면서, 여성들 또한 정조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러한 정조라는 것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경제발달이 가속화되고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것을 바탕으로 귀족계급이 자리잡고 지식인들이 양산되면서, 단순한 성적 대상이나 자손의 생산력 혹은 노동력 차원에서 바라보던 여성을, 고결함이라던가 보호받아야 마땅한 대상으로 변모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조관념이야말로 역으로 볼 때, 여성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여가는 페미니즘 운동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즉 정조라는 것은 그동안의 값싼 性의 공급을 대폭 축소함으로써 비싼 性으로 여성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남성으로써는 자신의 여자가 딴 놈과 배를 맞춘다거나 하는 일들이 줄어들게 되어 배타적 독점권을 바탕으로 한 안정감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성이 이혼을 하거나 재가를 하는 등에 많은 제약이 뒤따르긴 했지만, 여성들이 과거에 비하여 좀더 보호받고 존중받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정조라는 개념이 차곡차곡 형성되고 난 후, 이른바 연애라는 주목할 만한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연애란 사전에는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이라고 표현되었는데, 우리 말로 바꾼다면 그대로 남녀 간의 사랑입니다.

즉 사랑이란 복합적이고 이기적인 유희는 性의 가치가 비등하면서 나타났고, 로미오와 줄리엣,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의 연애소설은 아주 근대적인 산물이며, 읽는 사람의 가슴을 설래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성 모럴이 현저히 약화되면서, 이 사랑이라는 단어는 과거의 연애라는 의미를 탈각하고 오히려 과거 정조관념이 희박했던 시절로 퇴행하면서 Sex에 근접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 미국에서는 Love의 가치가 평가절하된 만큼,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Love의 개념에 상응하는 단어로 Luv(발음은 동일)을 사용하자는 논의가 있기도 했습니다.

오늘 좀더 다른 이야기도 할까 했으나 몇번 날려먹는 바람에 진이 빠져서 여기에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truth 09.01.09. 23:41
    진이 빠지신듯합니다..수고 많으셨어요..날려먹은 내용들은 같은맥일테지요..? 잘 읽었습니다..
    ┗ 旅인 09.01.10. 08:14
    예 그런데 좀 김이 빠지는 구석이 있습니다.

    유리알 유희 09.01.10. 00:10
    내일이 아들넘 생일인지라 반찬 두어가지 만들었더니 넘 피곤하여 집중이 안됩니다. 다음으로 예약합니다. 여인님!
    ┗ 旅인 09.01.10. 08:15
    열씨미 사시는 유희님께서 이렇게 자상하게 예약을 해주시니 자리는 비워두겠습니다.

    다리우스 09.01.10. 01:01
    해박한 지식으로 동서고금의 사랑의 흔적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해 들어가는 역사적 안목에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몇번을 날리셨다니 거기서 더 아쉬움을 느낍니다.

    다리우스 09.01.10. 01:02
    이즘되면 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론,,,끝이 안 보인다고~^^;
    ┗ 旅인 09.01.10. 08:13
    그렇습니다. 마무리를 해야되는데… 그냥 계속 흘러가서 일년내내 이 글만 붙잡고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듭니다.^^

    스윗 노벰버 09.01.10. 16:14
    유럽 친구들이 성욕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들어보면 참 개방적입니다. 솔직하고. 하지만 사랑을 이야기하고 성을 이야기할 때 이 친구들은 결코 사랑없는 섹스에까지 자유롭게 넘나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처음 유학생활 시작했을 때 의외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은 이 친구들은 사랑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고백하는 기간만 보통 2년정도 걸리더라구요.(제가 아는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남자 친구들은 너무 순진순수한 부끄럼 타는 편이고, 그에 비해서 여자 아이들은 당찬 것 같구요. 우리나라 조선시대..에서나 있었을 법한 그런 고전적인 형태의 사랑 하는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사랑없는 섹스, 즐기는 섹스는 별로 안 하는 것 같았구요.
    ┗ 스윗 노벰버 09.01.10. 15:53
    독일의 이혼률은 30%정도 되는데요, 이혼사유의 99%가 배우자의 외도. 다른 유럽국은 어떤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적어도 독일 사람들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자녀에게까지도 결혼전 몇년간 동거를 하면서 상대방과 결혼해서 평생 가정을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인지 검증하도록 권유를 하거든요. 그렇게 길게 연애하고, 몇년 동거한 끝에 결혼으로 이어진 가정에서 이혼을 하는 경우는,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유럽국이어서 그런지, 외도가 거의 대부분 사유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피임교육을 아주 철저히 합니다.
    ┗ 스윗 노벰버 09.01.10. 16:16
    복지정책과 관련한 교육이 철저한데, 특히 피임같은 경우는 개인적 책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비용이 드는 일이라, 우리나라식으로 보자면 군복무의무처럼 아주 철저하게 사람들 의식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런 독일 사람들 삶을 들여다보면 한국 사람들의 섹스연애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오히려 동양인 한국 사람들 중에 그야말로 제비날라리들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국에 병원일 하는 친구가 피임 잘 안 하는 사람들 많다고 하더라구요. 낙태수술 해 주다가 병원일 때려치는 친구도 있었고…친구한테 전해들은 한국 사람들 피임의식수준 유럽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너무 낮은 것 같아요.
    ┗ 스윗 노벰버 09.01.10. 16:27
    사랑이 섹스로 전락했건 어쨌건 간에, 피임 좀 잘 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교사일 하는 친구들한테 들으면 원하지 않는 생명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한부모 가정 자녀이거나 이혼가정자녀인 경우가 많은데, 수업하다보면 구분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피임만 잘하면 개인적 사회적인 정서적 경제적 부담 훨씬 줄일 수 있는데, 피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론 읽다가 피임의 중요성으로 와전된 댓글을 달았네요…하지만 현대사회의 사랑론엔 반드시 피임의 중요성도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旅인 09.01.11. 08:01
    노벰버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유럽과 미국 사람들의 사랑과 성생활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영화나 TV 프로에 나오는 이지 러브로 대변되는 인스턴트적인 것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돈 벌어먹자고 만들어진 것과 현실의 사랑과 결혼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막연하게 나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몹시 피곤한 나라입니다. 조선조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20세기의 초반의 신파조의 사고방식과 미국의 플레이 보이지에나 나올 사고방식이 몽땅 섞여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성 문화가 몹시 변태적이고, 야비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이라는 것 자체가 가족을 형성하고,
    ┗ 旅인 09.01.11. 08:19
    그 사회의 문화와 윤리의 기본 틀이 된다는 점에서, 성이라는 문제가 몹시 사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방치해 둔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 시대는 성에 대한 문제를 가벼이 함으로써, 가족이 해체되고 믿음과 사랑이 붕괴되고, 쾌락만 질펀한 데, 우리에게 제공되는 성에 대한 윤리는 고리타분한 조선시대의 윤리입니다. 이러한 틀에 맞지 않는 윤리는 결국, 나만은 끝없이 쾌락을 쫓아 방종해도 되지만, 너희들은 도덕적으로 순결해야 한다는 아주 우매한 놀부적 논리에 빠져들게 합니다. 그래서 외도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상대의 순결에 대해 더욱 신경질적으로 대처합니다.
    ┗ 旅인 09.01.11. 08:38
    해체된 가족 위에 건강한 사회란 없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변화하는 사회에 대처할 만큼 솔직하지도 보편적인 사고를 가지지도 못했으며, 성에 대한 통찰력 또한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해체는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과 아이들만 남은 가족이 시골과 섬마을에는 가득합니다. 이런 점에서 노벰버님의 댓글이 어떤 면에서 이 시대의 우리의 자화상을 놓고 볼 때, 상당히 참고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유리알 유희 09.01.11. 00:59
    글쎄요. 사랑과 섹스, 등치를 주기에는 매우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랑, 그것은 무한울림의 언어가 아니겠는지요. 그 울림이 넘 깊어서 저는 감히. ㅎㅎ 그러나 섹스를 통한 표출, 그것이 가장 강한 수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사랑론은 제게 거대한 산입니다. 그 큰 산을 잘 어루만지셨군요. 이렇게 긴 글을 쓸 수 있는 힘, 제게도 좀 나누어 주시어요. 여인님! 즐감입니다. 늘 시간이 부족해서 재독을 못하니 안타깝네요.
    ┗ 旅인 09.01.11. 08:39
    지도도 없이 산을 넘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낭떠러지에서 추락할 수도…^^

    샤론 09.01.11. 13:55
    사랑은 너무 아름다워서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조차 없었죠 제 경우에는…그런데 뒷감당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읽고 보니 골치 아프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냥 사랑은 사랑일 뿐이라는 생각이…..
    ┗ 旅인 09.01.11. 21:08
    예, 맞습니다. 저의 실수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그 단순한 것에 대해서 너무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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