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덤한 하루들

아프리카 출장 이야기가 나왔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왜 위험할까? 그것은 나라와 법이 그들의 생존을 담보해 주지 못하기에… 결국 생존을 위하여 그들은 무슨 짓이든 할 수 밖에 없다. 생존권은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이기에 푸르게 벼려진 날을 품고 있는 법이다.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ジョゼと虎と魚たち)>을 하나TV를 통해서 본다. 뜨겁다고 생각한 사랑을 미적지근하게 그린 이런 영화는 집에서 추리닝을 입고 보는 것이 차라리 낫다. 우리가 사랑을 뜨거울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치열한 순간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손을 잡고, 입맞춤하며, 또 살을 섞을 것인가 하는 순간의 생각들과 내적 좌절들, 그리고 마침내 그러한 일련의 일들이 지나가고 반복적인 것이 되면 치열한 순간들은 사라져 버린다. 조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호랑이와 물고기를 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에 이유나 필연성은 없다. 그냥 보고 싶을 뿐인 것이다. 그것처럼 사랑을 해야 할 이유나 필연성이라는 것은 도무지 없다. 그러면서도 그냥 사랑하고 싶은 것이다.

요즘은 너무 피곤하다. 즐거운 일이라고는 이회창이 대선에 출마했다는 것이다. 이씨를 내가 좋아해서라기 보다, 불에 뛰어들어 자멸하는 불나비 떼들의 춤그림자가 더욱 어지러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대선을 통해서 앞날의 희망과 꿈을 그리기 보다, 늘 어느 놈이 더 나쁜 놈인가를 심판한다. 그런데도 나쁜 놈들은 심판의 모닥불 앞으로 나오곤 한다. 아침 신문에 떠오르는 대선주자들의 사진에는 인간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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