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김훈)

정조가 명청조의 패관잡품의 문장을 배척하고 한문의 문장체제를 순정고문(醇正古文)으로 회복하자는 <문체반정>은 올바르고 순수한 문체를 공부하여 올리도록 함으로써, 전체 사대부의 문풍(文風)을 쇄신하려 한 운동을 말한다.

정치의 정(政)은 바르도록(正) 매질(한손에 몽둥이를 든 형상)한다의 뜻이다. 그러나 정자를 正+文으로 해석하여 말(文)을 바르게 (正)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무대가 칼의 노래와 다르다.

칼의 노래에서 적의 적으로서 칼을 들고 수많은 아수라를 돌파한 이순신이 있다.

남한산성은 겹겹이 적에 둘러싸인 조그만 산성에서 더 이상 칼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병자 음력 12월 14일부터 정축 1월 30일까지의 이야기다.

무력한 칼 앞에서 척화와 주화의 말들이 일어난다. 김훈은 이 남한산성에서 칼의 이야기를 접고 말(言)의 이야기를 한다.

… 전하, 지금 성 안에는 말(言)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은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적에게 닿는 저 하얀 들길이 비록 가까우나 한없이 멀고, 성 밖에 오직 죽음이 있다 해도 삶의 길은 성 안에서 성 밖으로 뻗어 있고 그 반대는 아닐 것이며, 삶은 돌이킬 수 없고 죽음 또한 돌이킬 수 없을진대 저 먼 길을 다 건너가야 비로소 삶의 자리에 닿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학고재 간 남한산성 197쪽>

최명길의 독백은 삶 위에 말(言)이 살 수 밖에 없으며, 죽음 위에 명분(言)이 살 수 없음을 말한다.

그 말들은 김훈의 아버지인 김광주 씨의 말에 이어져 있다. 창씨개명을 하고 일인들 밑에서 노예처럼 비굴하게 살았던 고국의 동포들에 대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에게 묻자, 김광주씨는 “그 비굴한 대다수의 동포들이 바로 민족과 국토와 언어를 보존한 힘이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삶은 뚜렷하게 현실이다. 그러나 말(言)은 현실 위에서 분분하며, 때론 화려하며, 때론 요사스러우며, 때론 그럴 듯 하지만, 늘 삶을 뒤덮지는 못한다.

청 태종에 대하여 김훈은 이렇게 쓴다.

칸은 붓을 들어서 문장을 쓰는 일은 없었으나, 문한관들의 붓놀림을 엄히 다스렸다. 칸은 고사를 끌어 대거나, 전적을 인용하는 문장을 금했다. 칸은 문채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과 뜻이 수줍어서 은비한 문장과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한 문장을 먹으로 뭉갰고,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과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꾸짖었다. 칸은 늘 말한다.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전게서 284쪽>

참고> 남한산성

This Post Has 3 Comments

  1. 저는 김훈 좋아하지 않았는데… 음.. 저와 친한 형은 김훈의 문장을 씹어먹고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하더이다마는..
    저는.. 너무 화려하고, 꾸미고, 돌리고, 향수뿌린.. 그런 느낌이 들어 싫어거든요..
    그런데. 남한산성은 다른 건 몰라도..
    그 책에 깔려있는 ‘약자의 비겁함-근데 아름다운..’이 좋았어요.

    1. 여인

      김훈씨의 글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들에 따라 너무 의견이 천차만별이더군요.
      저는 그의 글을 읽다가 이 글들이 외국어로 번역된다면, 죽은 글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말이 무엇인가를 조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느낀 그의 글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글에 날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2. 旅인

    목련
    삶은 뚜렷하게 현실이다. 그러나 말(言)은 현실 위에서 분분하며, 때론 화려하며, 때론 요사스러우며, 때론 그럴 듯 하지만, 늘 삶을 뒤덮지는 못한다.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
    *
    말을 펴서 내지러려해도 련이는,도체 할말이없어서….ㅎㅎ
    정말 어려우면서도 멋진말들이 이곳에다있습니다.
    └ 여인
    좋은 글을 읽으면, 좋은 말이 떠오릅니다.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할 말은 하라.
    명심해야 할, 삼엄한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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