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주야 동안

일주일을 넘게 나의 블로그에 매일 천명 이상의 정말로 알 수 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평소 때의 열배라서 나의 블로그가 어디에 소개라도 된 것이 아닌가 싶어 네이버에 문의를 했더니 <놀라셨죠?>라는 것 이외에 똑 부러진 대답은 없다.

나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이 백명이라도, 나는 많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길게 포스트를 쓴다면, 누가 읽을 것인가. 길게 쓴다고 해도, 드나드는 사람은 대충 한두 줄을 읽고 지날 것이다. 그러니 천명이라는 방문자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왜 나의 블로그에 오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떨쳐버릴 수 없다.

그 일주일동안 로맹가리의 <새들은 패루에 가서 죽다>를 읽고,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었다. 또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1/3쯤 읽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작품의 무게 때문인지 진도가 잘 나가질 않는다.

로맹가리의 <새들은…>에 나온 단편들은 또 다른 필명으로 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과 엄청나게 달랐다. 삶과 체험한 문화가 전혀 다른 작가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의 단편 중 책명과 같은 단편소설 <새들은…> 외는 좋다는 느낌이 드는 단편은 없다.

남한산성을 가보면 그 산성이 방어적 기능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남한산성을 가보면 왠지 고집스럽다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김훈은 오랑캐를 마주하고 칼을 들기를 거부한다. 말과 글들에 대한 김훈의 글은 삼엄하면서 이제는 조금 식상할 만큼 명료하다.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글은 늘 무거웠다. 늘 책을 끝내고 나면 뻐근한 노동을 마친 것 같은 느낌이 늘 들곤 했다. 조르바가 실존하는 인물인지 나는 모른다.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에 보면, 우리와 같은 저 차원의 사람들보다 정신적으로 세단계가 높은 곳에 <조르바>가 위치하고 있다. 카찬차키스의 글은 너무도 뚜렷하게 종교적이다. 좀더 읽어야 겠다.

그리고 <섬 그늘에서…>를 썼다. 나의 평소 글쓰기에 비하여 이례적으로 오래 썼다.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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