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전장
창 밖으로 석원시장의 이삼층짜리 무너져가는 시멘트 건물들과 그 사이로 낡아빠져 무슨 색인지 조차 알아볼 수 없는 타포린 커버로 뒤덮힌 시장골목이 보였다. 비가 내리면 거리의 풍경은 자신의 생활처럼 을씬년스러워, 빌어먹을 이 곳을 빨리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예무(藝武)를 열었을 때만 하여도, 무술영화의 영향이 꽤 있던 시절이라, 무술을 배우겠다고 드나들던 수련생들이 꽤 있었다. 그 중에는 고등학생도 있어서 투로1를 가르치고, 각 투로의 이름과 그 의미를 알려주는 재미도 있었다.
성룡의 무술영화가 퇴조해서 인지, 아니면 수험준비나 수능 등으로 무술관같은 곳에 다닐 여가가 안되는지 중고등학생들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초등학교 아이 몇명이 다니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무술관의 월세를 내고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했다. 인근 도장들도 다 그 모양이어서, 무술을 가르치고 관비를 받는 것 외에 아이들의 체육점수를 위한 줄넘기나 훌라후프같은 것을 가르쳐주고 푼돈을 버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푼돈벌이도 태권도장에서 싹쓸이를 해서 자신이 발라먹을 푼돈은 없었다.
예무의 문을 닫고, 다른 직업을 찾아볼까도 했다. 이미 그의 나이는 불혹을 지났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음식장사나 육체노동 밖에 없었다. 장사를 하자니 돈이 없었고, 노동을 하자니 나이가 또 그랬다. 그것보다 예무를 하고 있는 것은, 장라오쓰(張老師)의 부탁 때문인지도 모른다.
짜장면으로 점심을 떼우고, 연탄난로 위애서 김을 내고 있는 결명자차를 컵에 따르면서, 유빈은 허~참! 하고 탄식을 토해냈다.
창 밖의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뜨거운 차를 호호 불어가며 창 밖 건너편, 무심결에 건미역과 마른멸치 등 건어물을 파는 욱일상점 쪽을 보았다. 늘 그렇듯 상점은 타포린 그늘에 가려져 있다.
어제 하이닝 모텔에서 희진엄마와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가 머리를 흔들며, 오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사흘 후라~ 오후 세시? 아이들이 올 시간인데... 그 놈도 참~!"
오전의 사내는 일방적이었다.
10시에 계단을 올라 3층에 있는 예무의 문을 따고, 난로가에 앉아 샤워실의 타월들을 거둬 빨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에 검은 양복의 건장한 사내가 들어왔다.
"어떻게 오셨나요?" 그는 무술관에 다닐 생각이냐고 물었다.
사내는 유빈의 응대에 아랑곳없이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예무를 주욱 훑어보고 난 후, 별 것 없네 하는 거만한 표정으로,
"당신이 사범이요?"하고 물었다.
갓 서른이 넘었을 듯한 사내의 '당신'이라는 말에 약간 화가 치밀었지만, 참고 말했다.
"저희는 사범이라고 안하고 그냥 선생이라고 하지요."
"허허 간판이 예무라서 혹시 찻집아닌가 하고 올라왔더니, 사범도 아니고 선생이라...?"
그는 손을 마주쳐가며 예무 안을 한바퀴 돌더니,
"이 바닥은 뭐요? 진흙이요?"
"진흙이긴 한 데... 약재가 좀 처방되어 있지요. 그래서 이 위에서 운동을 하면 건강에 도움이 되지요."
"건강에 도움이 된다아~ 원 무술이 약장사도 아니고..."
그의 말은 예무에서 운동을 할 생각은 없었고 그냥 시비조였다.
"젊은 사람이 무슨 용무인지 모르겠지만, 말씀을 좀 막하시는 것 같은데..."
벽 한쪽의 병기를 보던 그는 고개를 돌리며, 빙글빙글 웃으며,
"그렇씨다. 형씨께 씨비를 붙으러 왔소다."
그는 시비를 걸러왔다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럼 이건 예전에 용산 삼각지에서나 있었던 도장에 대한 도전을 하는 것인가...?"하고 중얼거렸다.
유빈은 난로의 뚜껑을 열고 연탄불에 담배불을 붙이며,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하는 이야긴데, 우리가 자기 나와바리를 다투는 깡패도 아니고 정당한 무술 대결 운운한다면... 상대에게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그리고 그는 담배를 힘껏 빨아 연기를 뱉아냈다.
그러자 사내는 옷깃을 여미고 차려 자세를 취한 후, 90도 각도로 절을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잘못보고 실례를 했습니다. 여느 사범들처럼 격분케 하여 대련에 응하게 하려고 했던 제 무례를 용서하십시요.
저는 일본 나라에 있는 청송관에서 이시구로(石黑) 사범을 모시고 10년동안 가라테를 배우고 온 유희철입니다. 가라테 공인 6단입니다. 저는 제 무도의 역량을 알고 싶어 선생께 도전을 받아달라고 왔습니다. 좀전 저의 결례에 용서를 바랍니다."
하며, 안저고리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유빈에게 건냈다.
유빈은 엉거주춤 편지봉투를 받아들며,
"그런 것이라면 일본의 가라테 도장에서 하실 일이지. 하필이면 이런 서울의 변두리에서...?"
하고 난처한 표정을 떠올렸다.
"선생께서 무도인이시라면, 저의 도전에 응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다치더라도 선생께 누가 되지 않게 조처를 취해놓겠습니다. 저도 승부 이상 불필요한 신체 손상이 안가도록 무도인으로써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빈이 어떻게 할까 하고 편지봉투를 내려다 보고 있을 때,
"그럼 선생께서 와 주실 걸로 알고 돌아가겠습니다."하고는 90도로 절을 한 후, 문을 열고 나갔다.
사내가 나가는 것을 본, 유빈은 편지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 안에 사내의 말대로 도전장과 약도가 들어있었다.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무술관이나 해먹고 있는 자신이 보더라도, 사내의 초대장에는 제법 격조있는 만년필 글씨로 굵직하고 정중하게 초대를 하는 이유가 적혀 있었다.
단순히 대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도란 도를 지향하는 것인 만큼 그 흐름은 하나이며, 무도들 닦는 무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범님들의 무도에 대한 고견을 듣고자 초대를 한만큼, 대련이 끝난 후, 승부를 떠나 무도인으로써 우의를 선양키 위한 다과와 주석을 마련하겠으니, 삼일 후 오후 3시에 자신의 도장으로 와 달라는 것이었다.
도전장은 정중했으나, 읽는 유빈의 심기는 불편했다. 승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며, 만약 졌다고 소문이라도 난다면, 그나마 먹고 살기 힘든 판에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몰랐다. 게다가 상대는 건장한 삼십대, 자신은 사십대였다.
도전장을 낡은 철제 책상 위에 던져놓고, 어깨를 으쓱하며 무술관의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두손을 공수하여 머리 위로 올렸다가 깃털이 떨어져 내리는 듯 느리게 손을 내려 복부에 가라앉히고 한쪽 다리를 뒤로 뺐다.
- 한자로는 套路이며, 가라테의 かた(型: 틀), 태권도의 품새와 비슷한 의미임. 중국무술에서 투로는 발의 움직임을 중시하며 각 투로의 式마다 이름이 있고, 투로 전반을 지배하는 연성결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