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찾기에서

미로찾기에서…

입구 쪽에서 길을 찾기보다, 출구에서 거꾸로 입구 쪽의 방향으로 미로를 찾아가는 것이 쉽다. 미로찾기가 입구 쪽에서 출구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미로를 찾는 것에 뭔지 모르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아무래도 편법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서점에서…

장을 보러 갈 경우, 사야할 것을 메모해 가는 것이 시간도 줄이고 돈도 덜 들어가기 때문에 현명한 방법이다. 서점의 경우는 다르다. 사야할 책을 메모해 갈 경우, 그 책의 내용이 어떻든 그냥 살 공산이 있으며, 시간을 절약한다는 점은 있겠지만, 우연히 좋은 책을 발견할 기회를 잃게 된다.

서점에 가서 정작 필요한 것은 돈보다 시간이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모자라는 것은 돈보다 시간이다.

도서관에서…

도서관이란 곳은 지식이 잠자는 곳이거나 저장고이다. 책이 많을수록 진리라는 것이 더 많을 수는 있지만, 이십만권 혹은 육십만권의 책이란, 몹시 비현실적인 수치일 뿐이다. 그래서 국립도서관에 있는 책의 끝에 붙어있는 열람카드에 빌려간 기록이 남는 책이란 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

하루에 한권을 읽는다고 칠 때, 이만권을 읽으면 끽이다. 읽은 이만권 중 가치가 있는 책은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몇십만권의 책은 무슨 소용인가?

그러니 뛰어난 사서란 극히 적은 책으로 훌륭한 도서관을 만들 수 있거나, 아니면 지식의 저장소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도서관에 가서 집에서 할 수도 있는 공부를 한다거나, 서점에서 살 수 있는 책을 빌려보거나, 아니면 서가에 놓인 잡지를 읽는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몇 시간을 보낸 후, 공부를 했다거나, 책을 읽었다는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평등에 대해서…

우리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 11조 1항에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표현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이는 법 앞이라는 제한된 공간 외에서는 불평등하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자유에 대하여…

한번도 자유로왔던 적이 없다. 자유를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한 탓이다.

소극적이지만 생활 속의 자유란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 일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기들에게 치욕을 안겨줄지도 모르는 변덕스러운 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 위해 (……) 가진 돈은 보잘것 없었을지 몰라도 대신 다시는 불쾌한 상관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라고 그들은 유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솔직한 표현을 보며, 자유와 봉급 중 과연 나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하지만 느닷없이 다가 올 자유가 나는 두렵다.

소설과 시 그리고…

소설과 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나는 산문을 좋아하면서도 시인이고 싶다. 소설가는 몹시 피곤할 것 같다. 그러나 수필을 쓰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나에겐 생활이 없기 때문이다.

생활이 없는 자는 멍청해 보이거나, 때론 신비해 보인다.

실체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외로움이란…

고독, 외로움, 심심함. 이 단어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감정이란 심심함에 불과할 뿐이다. 고독이나 외로움을 알려면 무인도에 가야할 지도 모른다. 반나절을 무인도에 홀로 머물렀을 때, 나를 지배했던 것은 고독이나 외로움이 아니라, 기다림이었다. 지겹게 시간이 가지 않는다는 것 뿐이었다.

친구나 애인과 헤어졌을 때, 고독이나 외로움보다, 서점에 가서 무슨 책을 사서 읽을 것인가 등에 신경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면 짜증이 나곤 했다.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할 경우, 친구가 없다면, 어떤 풍경 앞에 멈추어서서 더 많은 시간을 갖고 대지와 하늘의 색들이 서서히 변해가는 것을 가슴 가득히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광막한 대지 위에 나 홀로라는 처절한 인식이야말로 인간의 조건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뼈저린 고독과 외로움을 마주했을 때, 결국 친구든 적이든 인간에 대한 열망이 부풀어 오르며, 애증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영혼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가벼움을 지녔다는 것조차도 고독이라는 무게 때문이 아닐런지…

그래서 영혼이라는 단어를 아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곤 쓰질 않는다. 그런 만큼 천국이라는 것에 대하여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간혹 바보같을 때가 있다.

학교 축제에 단 한번 여자친구와 함께 간 적이 있다. 학교 앞 다방에서 우리가 일어섰을 때, 그녀가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는 것을 알았다. 늘 입던 스몰복(군복에 먹물을 들인 옷) 대신에 그 날 따라 양복을 입은 것은 그녀가 정장을 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다행이었다.

우리는 교정의 언덕을 걸어올랐다. 그때 뒤에서 야비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스커트 밑으로 보이는 다리를 향한 소리였을 것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휘파람을 분 사람에게 화를 내야하는 건지 고맙다고 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여자친구를 앞서 걷게 하고 그녀의 종아리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나도 야비하게 휘파람이 불고 싶어졌다. 아마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잡고 휘잌하고 휘파람을 불 수 있었다면, 그녀는 나에게 깜찍한 미소를 보냈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휘파람을 불지 못했다.

휘파람을 불지 못하자 갑자기 아까 휘파람을 분 놈에 대하여 분통이 터지기 시작했다.

나의 감정 또한 운동신경처럼 늘 반박자가 늦곤 했다.

미로찾기로 돌아가서…

인생이라는 입구에 들어섰다면, 때로 죽음이라는 출구를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겠으나 살아있기에 간단한 그것조차 어렵다.

This Post Has 2 Comments

  1. 旅인

    [목련]
    우리네 삶이 미로인것 같아요!.
    어지럽게 갈래가 져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내가 지금 미로속에 헤메는가 합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으니 말이에요.
    언제나 좋은글을 읽을수 있는 영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쁨에 겨워 지저귀는,
    아침새의 달콤하고 부더러운 노래속에, 맑게 깨어나소서!..ㅎㅎ
    [여인]
    그러나 늘 아름다움이 함께 하고 있으니 용서해주기로 하죠.
    때론 답답함이 우울증처럼 늘어붙어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도, 누구의 책에서 본 것처럼 다 지나가버리고 말더군요. 또 다시 그런 때가 다가오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늘 아름다운 아침을 맞이하시길… 또 편안한 저녁을…
    [목련]
    여인님…련이에요.
    제블로그의 이미지 얼마든 가져가셔도 되요.
    이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장미축제에서….. 고운꿈속에 뵐께요!.
    [여인]
    감사합니다.

  2. 旅인

    유리알 유희 09.01.27. 18:18
    미로찾기를 배웁니다. 서점, 도서관에서 자유와 평등에 ,공감하여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외로움 앞에서는 당혹감을 느낍니다. 이별 후에도 무슨 책을 살까 생각하는 대목에서요. 실로 그런 정신이 부럽기도 하거든요. 저는 이별에 무지 약하답니다. 대책없이 눈물만 흘리거든요. ㅎㅎㅎ 그러나 영혼의 정의에 대헤서는 또 긍정의 고갯짓을 하다가 바보, 거기서 하하 웃습니다. 그렇군요, 악동같으신 여인님! 다시 미로로 돌아가 지금 표정관리 하고 있답니다. 죽음, 그걸로 웃음을 털어 막고 있는 거 보이시죠? ㅋㅋ
    ┗ 旅인 09.01.28. 17:12
    저는 심각하게 그 부분을 썼습니다. 반박자가 느린 가슴과 머리란 깊은 후회와 참회가 늘 뒤따릅니다.

    러시아황녀 09.01.27. 19:35
    제 감정도 늘 반 박자가 늦었었는데.. 어느면에서는 오히려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 旅인 09.01.28. 17:13
    어느 정도는 공감… 하지만 아쉬울 때도 있었을 걸요?

    그라시아 09.01.27. 22:04
    바보같이 50이 된 부인에게 언제 외로운 적 있었느냐고 물으니 그가 하는 말 ” 심심할 새가 어딧노? 모임도가고, 사우나도가고,꽃밭도매고, 요가와 헬스하느라 백수가 과로사라는 거 모르나” … 윽, 서로 다른 방향 교차점을 지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다이달루스 공법으로 미로를 탈출 한다고 해도 앞서가면 총알탑니다. ^^ 때론 좀 둔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 旅인 09.01.28. 17:14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상이 조금은 더 살만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때론 더 재미있고… 그분이 부럽습니다.

    집시바이올린 09.01.27. 21:50
    미로찾기……..출구에서부터 거꾸로 길을 찾아 가는 것이 더 쉽다는 생각… 왠지 편법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군요 ;;
    ┗ 旅인 09.01.28. 17:18
    너무 결과위주의 세상을 살아가다보니, 과정중심의 그런 생각을 갖게 되나 봅니다.

    truth 09.01.28. 10:41
    휘파람을 불지 못하자 갑자기 아까 휘파람을 분 놈에 대하여 분통이 터지기 시작했다 ㅋㅋ 여인님은 왠지~ 그러셨을듯합니다. 휙~휙~제가 대신 불어드렸습니다.^^
    ┗ 旅인 09.01.28. 17:16
    남이 불면 짜증난다니깐요. 에이 휘파람부는 것부텀 배우고 여자를 사귀든지 했어야 했는데…^^
    ┗ truth 09.01.30. 03:47
    아하~그럼다시 휙~후릅 ^^;;

    난 향 09.01.28. 15:39
    평소에 공부가 힘들게 느껴질 때마다 정말 고독하다고 생각했었지요.. 그저 배운것 알고 있는 것으로 써먹고 살면 안되나 하는 말을 들으면 더욱 고독해 집니다..나 스스로도 힘든데 곁에서 도움은 커녕 힘 빼는 얘기를 하니까요..그런에 어제 거의 죽어가는 병원 옆침대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말한 고독은 지극히 사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그 분은 너무 고독해 보였지요..너무 힘들었지요..이승과 저승을 넘나 들면서 아무도 함께 해 줄 수 없는 그 고통의 시간 …그것이야말로 진정 처절한 고독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 旅인 09.01.28. 17:29
    우리가 사는 생활 자체가 어떤 때는 정말 사치스럽고 복에 겨워 짜증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때때로 느낍니다. 그런 느낌을 간직하면서 겸허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되는데, 늘 철딱서니 없이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비에벨 09.01.29. 11:35
    서점에서- 약속시간을 때운적이 더 많다. 도서관에서- 오수는 꿀맛 이었다. 평등에 대해서- 법앞에 정말 평등한 것인지 의문이다. 자유에 대하여- 찔린다. 소설과 시 그리고-좀 신비해 보일때도 있었겠다. 외로움-맞아 심심함인지 모르겠다. 반박자 있어 음악이 더욱 아름답듯 삶에도 틀리는 반박자가 아름답다. 글을 읽으면서 언뜻 언뜻 이런 생각들이 듭니다.여전히 사는건 미로라 생각되어지구요…
    ┗ 旅인 09.01.29. 21:51
    그저 짬짬히 생각했던 것, 어디서 읽었던 것을 모아 올렸습니다. 역시 사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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