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飛 –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앎

그저께 저녁, 무릎팍 도사라는 TV 프로그램에 김건모가 나왔다. 그들의 대화 가운데,

강호동 : 도대체 김건모씨의 꿈은 모예요?
김건모 : 나는(飛) 것.
강호동 : 나는 것이요? 우하하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건모의 이야기에 나는 실소를 하고 말았다.
“미친 놈!”하고

김건모는 아이들이 대통령이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인 만큼 꿈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렇다면 현실화될 수 없는 꿈을 왜 김건모와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일까? 김건모의 속 마음이야 내가 알 수 없다.

나에게 있어 나는(飛) 것이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아직 내가 아는 학술과 이론, 그리고 세상이 설명하거나 보여주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나에게 주어진 한계 속에서 아직 불가지한 것일 뿐이다.

나에게 난다는 것은 꿈이 아니라, 무지(無知)의 대명사일 뿐이다. 세상은 아는 것과 인식되고 해석되어지는 것들 때문에 찬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무지, 그 불가사의함 때문에 모든 풍경은 뚜렷하지 않고 빛과 그림자로 나뉘고 섞이며, 바람과 소리, 냄새 등이 대지에 스미는 것이다. 그리고 논리와 지식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들, 사랑과 절망, 고통과 행복 등으로 교차하며 끊임없이 생명을 낳고, 우주 속에 꿈과 의지, 그리고 신과 섭리 등을 드리우는 것이다.

지혜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지식도 아니고, 처세에 능통한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가득한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오히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앎과 받아들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無知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단 말인가?

단지 이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엄청나게 많으며, 그것을 인정할 때 겸손해질 것이고, 알 수 없는 것들을 수용할 때, 이 세상의 절망과 고통, 사랑과 행복 그리고 온갖 소란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 내가 날게 된다면, 날기보다는 걸어다니거나 차를 타고 다닐 것이다.
왜냐고?
남들이 쳐다볼 것이고, 몹시 쑥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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