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의 맛

공갈빵이라고 우리는 불렀다. 빵인지 떡인지 짜파와 같은 밀전병인지, 호떡인지, 단지 먹는 것이라는 것만 알던 우리는, 그것을 공갈빵이라 불렀다. 전족을 한 산동출신의 할머니는 어린이 가슴높이까지 올라온 화덕의 속에서 그것을 구웠다.

큰 짱돌 크기였고 딱딱했지만, 허무할 정도로 가벼웠다. 딱딱한 껍질을 깨면, 그 안은 텅 비어 있어서 속이 없는 껍질로만 된 빵이었다.

먹을 것이 늘 부족한 시절에 먼지 낀 창 너머로 보이던 공갈빵 모습은 두 사람의 허기를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허기에 그 빵을 샀다면, 그 껍질을 깨는 순간,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거 순 공갈 아니야?”라는 소리를 칠 것이 뻔했기에 우리는 그것을 공갈빵이라고 했다.

그러나 딱딱한 껍질과 껍질의 안쪽에 발라진 소다냄새가 버무려진 꿀은, 친구들과 나누어 먹기에는 너무나 달콤했다. 결과적으로 공갈빵을 산 아이는 늘 치사한 새끼가 되곤 했다.

포만감을 상상하며, 공갈빵에 다가간 아이는 공갈빵을 통해서 세상이 피상적이며, 내용은 공허하다는 것을 알고 그 껍질마저 빼앗긴다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더 이상 나누어 먹을 것은 없으며, 세상에서 치사하게 살아남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공갈빵의 맛이 딱딱하고 달콤하다면, 번데기의 맛은 허무함이 스쳐지난 후, 은은한 짠 맛이 감돈다. 그 맛을 허무하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짜고, 짜다고 하기에는 씹는 맛은 너무 공허하다.

그러니까 딸내미의 말대로 몹시 <변태적인 음식>이다. 아기의 고추를 닮아서가 아니라, 그냥 변태적일 뿐이다. 애벌레를 구워먹지도, 나비(나방)를 튀겨먹지도 않으면서, 번데기만 삶아먹는다.

고치를 틀기 위하여 가느다란 실을 뽑아내고, 먼지처럼 가벼운 나비로 변태를 기다리고 있던 번데기는 통통하던 살이 빠져 주름이 잡히고 속살은 솜이나 수세미처럼 푸석하다. 그 속살을 소금으로 간을 한 국물로 다시 우려낸다.

그러니 씹으면 속살은 <톡!>하고 허무하게 터지고, 세상의 어느 맛으로도 환원시킬 수 없는 찝질하다고 하기에는 다소 짠, <뻔>한 그 맛이 입 안에 감도는 것이다.

그래서 방과 후의 오후의 동네 골목을 돌던 번데기 장사는 소리치곤 했다.

“뻔데기요~ 뻔!, 뻔데기~ 뻐언.”

Pupa/photos

<아마벨라님이 보내주신 사진에서 일부분을 절취…>

자세히 보면 참 변태적으로 생겼다.

2 thoughts on “번데기의 맛

    1. 저는 수퍼에 가서 통조림 번데기를 사서 드라마가 시작되는 10시 쯤 캔 뚜껑을 따고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습니다.(국물을 좀 덜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5분 끓입니다. 번데기의 1/3은 아내에게 주고(국물은 안줍니다) 나머지는 드라마를 보면서 한알씩 한알씩 씹습니다. 툭! 특!하고…
      간혹 스픈으로 국물도 마십니다.
      모습이 좀 처량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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