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서 새벽까지

어제 저녁 문을 열고 나가 층계참에서 담배를 피웠다. 몇 동인지 모르겠으나, 맞은 편의 건물에는 밤이 담쟁이 넝쿨처럼 피어올랐고, 각 호마다 거실에서 불빛이 흘러나왔다. 그 불빛 사이로 사람들이 아주 좁은 공간을 배회하거나, 알 수 없는 몸짓들로 움직이고 있다. 나는 불빛을 건너 어둠 저편에서 담뱃불을 뻐끔뻐끔 피워 올리며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때 변두리까지 몰려온 도시의 불빛으로 하늘은 밝았고, 아파트로 들어서는 입구는 길에서 흘러드는 불빛과 나무 잎 사이로 켜진 가로등으로 어슴프레 했다. 오월의 밤 속에서 나뭇잎들은 가볍게 흔들리고, 온 세상이 어둠 속에 용해되고 있었다. 이런 밤이면, 정말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세상과 화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낮의 투명함 때문에 가려졌던 세상의 모습들이 더욱 은밀하고 뚜렷하게 떠오르며, 머리를 풀고 나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래서 낮은 목소리로 <안녕!>하고 사라져 가는 오늘을 향해, 인사를 했다.

너무 피곤하여 일찍 자려고 했으나, 결국 1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 두시에 깨어났다. 뱃속이 불편해서 피곤할 것이라는 예측은 여지없이 맞아 떨어졌다. 화장실에서 몇 장 남지 않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 읽어버릴까 하다가, 잠에서 완전히 깨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두기로 했다. 또 다섯 시에 잠에서 깨어났고, 어거지로 6시 30분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깨어나 몇 장 남지 않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끝냈다. 셀린저란 자는 무지하게 수다스런 작가다. 나보다 더할지도 모른다. 수다란 늘 아무런 결론이 없다. 그런 책이다. 도무지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책의 말미의 한 장짜리 해설에는 미국 사회의 도덕과 거짓, 통속적인 것에 대한 경고라고 되어 있으나, 내가 볼 때, 한마디로 수다이다. 수다를 그치게 하는 방법이란, 수다쟁이를 격리하는 수밖에 없는데, 결국 작가는 수다를 그치기 위하여 주인공은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그렇다는 이야기이지, 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사랑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들>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한다. 사랑을 객관적으로 보겠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보면, 사람이란 결국 동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이르게 되거나, 더 나아가서는 추잡한 동물이라는 결론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그것도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 아름다운 만큼 사랑이란 시나 노래로 말해져야 될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포지션의 노래가 맞고 나는 틀렸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목련]
    어느새 새벽이에요!..
    여인님의 사랑에대한 글 몇개가 사라졌군요…참 좋던데 왜 감추셨어요!.
    련이..들어와서 뎃글을 올리지 못했지만, 감상넘 잘하고 많이 감사했는데….
    여인님의 글속에는 여인님의 마음이 나타납니다…닮고 싶은 마음인데…난 왜….ㅎㅎ
    늘 좋은글 읽을때 감사한 마음있어요!..
    [여인]
    사랑에 대한…은 당분간 만 잠수를 시킬 것입니다. 그것을 쓰면서 아무리 즐겁게 쓰려고 해도, 어쩐지 시금털털해 지는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득은 있었지요. 라캉에 대하여 제 나름대로 새롭게 해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잘 주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또 몇번인가 깨어난 후 아침을 맞이 했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