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들-05

멜 로

저는 멜로물을 좋아합니다. 저는 그것이 사랑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사전에는 <사건의 변화가 심하고 통속적인 흥미와 선정성이 있는 대중극>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제가 알던 것과 틀린다고 해도, 저는 통속적이며, 선정적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놈인지라, 멜로가 딱이긴 합니다. 겨울연가, 클래식, 와니와 준하, 엽기적 그녀, 냉정과 열정 사이, 남과 여, 씨애틀 어쩌고 저쩌고,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아웃 어브 아프리카 등등을 좋아합니다. 이래 뵈도 침대가 자주 나오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섹스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멜로물(사랑 이야기)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랑을 못해 보았기 때문에 화면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구하겠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너무 무시하지 마십시요. 저도 사랑은 한두번 해보았다고요.

멜로물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공포물은 무서워서 보기 싫고, 전쟁영화는 이제 지겹고요, 코믹물은 저와 같이 이지적인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SF물은 예전에는 미래에 대한 비젼이 있었는데, 이제는 우주의 괴물들로 가득합니다. 그렇다고 땅땅땅 으악! 서부활극을 보겠습니까? 007을 보겠습니까? 볼 것이라고는 진부하긴 하지만 사랑이야기 밖에 없습니다.

제가 멜로물을 보는 이유는, 어떻게 사랑이라는 심리적 양태를 이차원의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 펼쳐 보일 수 있느냐 이거죠. 남녀가 손을 잡거나 포옹을 했을 때, 혈압이 올라가고, 심장에 경미한 이상 증세를 보인다거나, 코가 막히면서 맹맹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이 현상들을 빛과 그림자와 대사 만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 이거죠. 이러쿵 저러쿵 시시콜콜 써대는 소설이라면 이해는 가지만 말입니다.

제가 얻어낸 결론은, 한번 보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잘 생긴 남자와 어여쁜 여자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외가 있긴 하지만, 얼굴 크고, 키 작고, 배 나오고, 인상 드러운 사람을 캐스팅하면 멜로가 지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멋진 풍경들이 등장하죠. 그리고 죽이는 음악도 있습니다.

멜로물을 통하여 거기에 나온 남녀의 슬픈 사랑을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멜로물을 보는 제가, 손예진, 엄정화, 최지우라는 어여쁜 여자에게 뻑하고 맛이 간다는 겁니다. 겨울연가 속의 배용준이 교통사고가 나서 실려가고 하는 것은 저에겐 하등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지우가 눈물을 흘리면, 제 가슴이 찢어지죠. 손예진이 조승우나 조인성의 손을 잡는다 칩시다. 그러면 손예진의 손은 얼마나 야들야들 할까하며 침을 흘립니다. 일본의 여편네들은 아마도 최지우의 가슴이 찢어져서 속살이 보여도 별 상관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 욘사마가 어떠냐는 것이 문제지요.

그러고 보니 겨울연가 속의 배용준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최지우의 이쁜 입술에서 나오는 혀 짧은 소리는 기억나지만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반쪽짜리 겨울연가를 본 셈입니다.

이 멜로물에서 주인공들이 눈물을 흘린다거나, 헤어지거나, 포옹을 하면 음악이 흐릅니다. 감미로워야 합니다. 행진곡이나 땐스곡이 나오면 산통 깨집니다. 포지션의 발라드라면 딱 입니다. “울지 말아요. 언제나 그대 맘 속에 나 영원히 살아 있을께요.” 죽이는군요. 저도 엄정화(영심이)의 맘 속에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이러한 멜로물의 경우, 사랑이라는 섬세한 감정을 대화로 풀어가기란 몹시 힘듭니다. 한번 대화를 보기로 하죠.

난 바본가 봐… 널 좋아하는 거 말곤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클래식), 기억하지 못하는 내 지난 시간 속에서 당신이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겨울연가),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번 오는거요.(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나는 슈베르트처럼 슬픈 사랑은 하지 않을꺼야…(여름향기), 나도 약속 하나만 하자. 우리 뒤돌아보지 말자… 마지막 모습이 뒷모습인거 기억하기 싫어… 절대 뒤돌아 보지 말자…(겨울연가), 그가 내 의식 속에 있지 않을 때도 나는 어디선가 그를 느낄 수 있었고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메디슨 카운티…), 당신도 나를 보면 가슴이 뛰나요?(여름향기)

이 글들은 소위 명대사라는 것에서 따온 것입니다. 멜로물을 보았을 때의 그 애틋함을 느낄 수 있습니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대사는 좀 그럴 듯 한 데… 문제는 저는 한번도 확실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거죠. 그것은 제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배회하던 그 늙은 사진기자보다 아직 덜 살았거나, 내 지난 시간 속에 최지우처럼 확실한 감정을 가져다 줄 예쁜 아가씨나 유부녀를 못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홀카닥 빠져서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없게 되겠죠. 그러면 직장에서 쫓겨나고, 집에서도 쫓겨날 것입니다. 불가피하게 슈베르트처럼 춥고 배고픈 사랑을 하게 되겠죠. 그럼 가슴이 뛸까요? 시간이 지나면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찢어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대화를 잘 들어보면 한마디로 잘 들 놀고 있습니다. 닭살의 현장이죠.

그러니까 멜로물의 대사는 품위가 있거나 고상한 언어를 쓰면 안 됩니다. 야비할 정도로 유치찬란해야 합니다. 작가들도 강남제비들이 카바레에서 쓰는 용어를 약간 수정해서 쓰고 있습니다. “누님! 외로운 이 밤, 따스한 누님의 가슴에 날아든 한 마리 가여운 제비이고 싶습니다.” 좀 끈적거리긴 하지만 외로운 아줌마에겐 달콤하지 않겠습니까? 사랑의 밀어라는 것은 다 그런 겁니다.

문제는 저 같은 인간은 이런 소리를 지껄이지 못한다는 점이죠. 그래서 저의 사랑은 짜릿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애인한테 걷어 채였고, 장가가서는 마누라한테 소박 맞는다 이겁니다. 소박은 면한다 해도, 늙어서 어부인께서 벚꽃놀이 가실 때, 혼자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먹게 된다는 거죠.

이러한 멜로물이 예전에 <별들의 고향>이나 <겨울여자>와 같이 젊은 아가씨가 “아저씨, 저 추워요. 꼭 껴안아 주세요.”하거나, 여자가 바닷가에서 갑자기 “나 자바바요.”하고 뛰면, 한 남자가 한 손을 앞으로 내밀고 “순이~, 순이~, 기다려.” 슬로우 비디오로 쫓아가는데, 갑자기 여자가 짱돌에 걸려 팍 넘어지고 남자가 그 위로 넘어지면서 갑자기 아기가 태어난다는 식의 고리타분함으로 이제는 손님을 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종 죽음에 이르는 질병과 기억상실증, 혼란한 가족관계, 불륜 등등을 현란하게 엮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애절함과 헤어짐의 서글픔을 그려갑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며 눈물을 질질 짜며 “아! 어쩌나. 영심이가 불쌍해서 어쩌나?” 라고 말하지만, 단지 채울 수 없었던 욕망들을 이차원의 화면에서 발견하는 것 뿐 입니다.

허전한 갈증을 채우기 위하여 카바레로 다가가는 낡은 아줌마처럼, 저는 멜로물에 다가가며, 제비 대신 꿈과 같이 어여쁜 아가씨와 땐땐고땐땐, 때로는 지루박을 쳐대곤 하는 것입니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러시아황녀 09.01.05. 16:06
    이젠 거의 사랑의 실체가 드러나려나 봅니다.. 계속 따라 가 보겠습니다….
    ┗ 旅인 09.01.05. 19:33
    양파껍질 같은 것이라서 실체가 들어날지는 모르겠습니다.^^

    유리알 유희 09.01.05. 15:04
    드라마, 그것이 갑자기 보고 싶습니다. 겨울연가에 저도 푹 빠져 살았고 그걸 보는 순간에는 근심이 없었거든요. 시작하려는 남녀의 아련한 몸짓, 그거이 제 가슴을 증말로 뛰게 했거든요. 그런제 지금은 드라마도 안 보고, 보더라도 그럴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문제인즉은 여인님은 너무 이성적이라는 것. 저도 조금 그런 편이고요. 후후. 어쩌면 저는 철저한 멜로과, 인지도 모르겠어요.
    ┗ 旅인 09.01.05. 19:36
    제가 가장 슬프고 재미있게 보았던 멜로물은 <신조협려>시리즈였습니다. 무협과 로맨스가 궁합이 절묘하게 배합된 멜로… 사실은 멜로물에 나오는 여자들이 제일 예쁘거든요. 그리고 여자의 눈물이 애처럽고…

    샤론 09.01.05. 15:57
    잘 읽었습니다..여인님도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구나…
    ┗ 旅인 09.01.05. 19:37
    전 쓸데없는 생각을 잘합니다. 집사람이 좀 쓸데있는 생각 좀 하라고 절 구박합니다.^^
    ┗ 샤론 09.01.07. 13:34
    쓸데 없는 생각은 저의 특기인데..공상의 대가 ..한번 한 곳을 응시한채 2시간이나 꼼짝않고 공상한 적도 있다니까요.. 여인님도 그런소릴 들으시네..
    ┗ 旅인 09.01.08. 22:26
    그렇게 공상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시죠? 아니면 나른해지던지?

    자유인 09.01.05. 17:42
    처음에는 풍자를 통한 멜로때리기 일까?하며 읽었습니다.영화”브로큰백 마운틴”이든가요..남 주인공 둘 간에 치열한 사랑을 다뤘든 수작으로 기억합니다.예쁜 여주인공이 없어도 사랑이라는 진정성에 감동을 받았든 기억납니다.^^
    ┗ 旅인 09.01.05. 19:42
    못보았습니다. 이상하게 동성애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력이 몹시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차이를 이해해야 하는데, 심정적으로는 차별하는 그런 속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유인님의 말씀대로 사랑의 진정성을 찾는다면, 브로큰백 마운틴과 같은 영화가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저의 좁은 속도 열어볼 겸.
    ┗ 러시아황녀 09.01.06. 14:43
    제 기억에는 “애수” 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같은 영화의 주인공들이 메로물의 극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스페인 내전에서 만난 연인과 탈출 도중 국경근처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여자가 ” 당신 가슴속에 내가 있으니 당신이 가면 나도 가는 것이니 나를 두고 떠나라” 는 말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가요..
    ┗ 旅인 09.01.08. 22:34
    애수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비비안 리의 왕팬이거든요. 그렇게 사랑하는(예쁜) 여자를 보내버린 로버트 테일러의 남은 세월은 어떠했을까요? 촛불이 꺼지며 울리는 올드 랭 사인 그리고 짧은 머리의 수줍은 소녀 잉그리트 버그만. 멋진 게리 쿠퍼 아픈 헤어짐의 명작이지요.

    자유인 09.01.06. 00:10
    여인님 댓글 읽고 브로큰 백 마운틴,찾아 보았는데 실패했습니다.이안 감독이 동양인 최초로 오스카이든가 에서 작품상을 받은 대단한 영화로 여기는데요.저는.
    ┗ 旅인 09.01.08. 22:26
    언젠가 한번 비디오가게를 전전해 보아야겠네요. 고맙습니다. 자유인님.

    다리우스 09.01.06. 14:45
    헉 땐땐고땐땐?!
    ┗ 旅인 09.01.08. 22:27
    옛날 신문광고의 맨 위줄 아니겠습니까?

    산골아이 09.05.14. 22:49
    남자와 여자의 상상은 비슷하군요.
    ┗ 旅인 09.05.15. 16:04
    그럼 이 글이 맞는다는 말씀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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