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계절의 동화

tree/photos

좁다란 사다리를 타고 미루나무에 올라 노을을 보려고 했어요. 높은 곳에 오르면 다친다고 했죠. 저는 아니라며 올라갔어요. 풍성했던 여름이 지나간 나뭇가지에 올라 세상을 보았지요. 지붕과 도로와 숲을 지나, 노을이 어둠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어요. 안타까운 심정으로 노을이 지는 것을 보았지요. 어두워져 사다리를 찾지 못할지도 몰랐어요. 하지만 노을이 가슴을 물들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요. 밤이 오고 그만 굴러 떨어지고 말았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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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아세요? 길모퉁이의 사진관에는 그의 사진이 없었어요. 거리를 떠돌며 천사를 찾았어요. 누군가 말했어요. “얘야, 날개가 있어도 마음이 아프면 날 수가 없단다. 그래서 천사에겐 가슴이 없지.” 저는 천사의 가슴이 필요했거든요. 그 해 가을에는 왠지 가슴이 시렸어요.

편지를 썼어요. 시린 가슴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때면, 네잎클로버나 예쁜 꽃잎을 함께 부쳐야 한데요. 슬프지만 겨울이었죠. 할 수 없어 북쪽 바람을 따라 온 눈꽃과 함께 부쳤지요. 그리고 하루와 하루가 갔지요.

꿈일까봐 안아주지 못한 것, 가슴이 막막하여 말 못한 것, 미워할까 사랑하지 못한 것, 세상의 찬란함이 지워질까 당신을 바라보지 못한 것들. 유죄라고 하더군요.

마침내 사랑이 죽고 말았지 뭐예요. 묘지를 찾지 못한 나는 도시의 극장 뒤, 골목에 있던 사창가의 더러운 이불 속에 사랑을 토막 내 유기해 버렸어요. 꽃이 피었을까요, 죽은 사랑에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었어요. 노래는 눈물로 만들어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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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이 되고자 했어요. 일곱 개의 바다를 지나면, 세상이 끝나고, 그곳에는 잊혀진 것과 사라진 것들이 있다고들 해요. 그리고 영원과 지금이 늘 교차하며, 낮에도 별이 빛나고 밤에도 햇빛이 비추인다고… 시들지 않는 꽃을 들고, 세상의 끝에 가 당신을 만나려고 했지요.

부두에는 배가 많았어요. 갈매기와 생선의 비린내로 가득했어요. 햇빛에 그을은 거친 남자가 말했죠. “얘야, 세상에는 다섯 개의 바다가 있을 뿐이야. 네가 생각하는 세상의 끝에서는 외로움과 뜨거운 태양 만 찾을 수 있단다.” 열차를 타고 돌아온 도시는 불빛으로 소란스러웠어요.

도시의 곳곳을 항해했죠. 아주 먼 곳으로 표류하기도 했어요. 때론 강 가로 나가 시간이, 흘러오고 흘러가는 것을 보았지요. 내가 가진 것은 시간 밖에 없으니까요. 강은 바다로 흘러들겠죠? 그 날 강변에 당도한 술병 안의 쪽지에는 “보고 싶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 해 겨울에 제가 부친 편지를 읽을 수는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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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릅니다. 사랑도 진리도 노래도. 꽃도 하늘의 푸르름과 비 오는 날 처마에 부딪히는 그 소리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다. 단지 가슴 속에 차오르던 그 향기, 빛으로 아로새겨진 시절의 꿈과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것, 갈증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두레박을 올리고 올리고 또 올립니다. 퍼내도 퍼내도, 또 하루에 하루도 또 하루도 영원을 채우지 못하고, 슬픔에 겨운 제 목소리는 차마 울음이 되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말했어요. “얘야, 너무 높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란다. 높은 곳에서 보는 세상은 아름답지만, 살기 위해서는 먼지 속을 걸어가야 된단다.” 아니라고 했어요. 그 계절을 물들일 조그만 영광을 위하여, 저는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오르고자 했어요.

그때 세상을 꽉 채운 먼지 속으로 여름 오후의 햇살이 걸렸고, 아주 오래된 노래가 지평선에서 울리며 제게 다가왔어요. 세상의 모든 하루는 또 다른 하루라며 또 다른 색깔로 노을이 미루나무에 걸리기 시작했지요.

This Post Has 2 Comments

  1. 旅인

    [목련]
    감히… 뎃글을 내려놓을수가 없어요!
    련이 오늘 깨긋한 마음이 아니거든요……..그래서……..왔다가 돌아서야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들은 형언할수없는 묘한 마음을 안겨주네요.~
    깨끗한 마음으로 오겠습니다.
    글 … 정말 예뻐요!!.. 여인님 처럼 아름다운 글을 쓸수있음은…축복이에요!..
    [여인]
    빨리 마음이 고요해지셔야 할텐데…

  2. 旅인

    다리우스 08.10.18. 14:30
    애틋한 동화적인 요소가 가미된 문체가 인생을 노래하고 사창가에서 죽은 사랑의 시체의 허벅지를 만질땐 소름이 돋더군요. 충격적으로 잘 읽습니다. 이류님~알레고리들이 흥미롭습니다.
    ┗ 이류 08.10.19. 18:01
    한번 이런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잘 안되다가 우연히 써진 것입니다.

    유리알 유희 08.10.18. 22:56
    불과 며칠 전에 사라진 그 여름, 여름의 오후가 그리워집니다. 여름동화 결말이 긍정적인지라 더욱더 아름답네요. 즐감입니다. 동화도 쓰시는 님! 레테의 뜰에 무지개가 걸린듯 해서 흐뭇합니다.
    ┗ 이류 08.10.19. 18:00
    무지개라고요? 여우비라도 지나갔나 보죠?

    지건 08.10.19. 16:23
    난 왜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의 꿈”이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책이 생각났을까요…..
    ┗ 이류 08.10.19. 17:59
    예쁜 애벌레에서 못생긴 나방이 될 수도 있다는…^^ “갈매기의 꿈”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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