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욱씨의 부음에 즈음하여

오늘 허세욱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그가 분신을 했을 때, 이미 그의 이름을 들었을 것이지만 그냥 까맣게 잊고 며칠이 흐른 뒤, 오늘에야 그의 이름을 들었다.

고 허세욱 택시노동자

그의 직업은 택시기사가 아닌 택시노동자이다. 사진의 그는 우리 나이로 55세이지만 하얗게 늙어있었다. 그는 독신이었고 철거예정지인 산비탈의 지하 단칸방에 살며 하루종일 택시를 몰고 월 120만원을 벌어 근근히 살았다고 했다. 그의 얼굴에서 운동권의 힘줄을 찾아볼 수 없다. 애초에 운동권이란 없으니까. 그는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운동의 운자도 신경 쓸 여가가 없었다. 그는 참여연대와 나눈 인터뷰에서 “1995년 봉천6동 철거촌에 살 때였다. 그때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살 때였다”면서 “그런데 빈민운동을 하던 여자 간사가 용역깡패들에게 얻어맞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냥 구경만 했다. 그 뒤 많은 걸 깨달았다”라고 사회참여의 계기를 밝혔다.

그리고 그는 4월 1일에 한미FTA에 반대하며 분신을 했고,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벚꽃이 하얗게 지던 어제 저 곳으로 가버렸다.

모든 죽음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그 까마득한 과정이란 한 장의 유서로는 설명되지 않고, 유서의 낱말은 삶의 끝에 잇닿아 있을 뿐 죽음 저편까지 넘어서질 못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것은 애처롭게도 타인의 밥 백 그릇이 나의 밥 한 그릇을 대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풍요롭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면서도, 한숟가락의 밥에 목이 매이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나의 오늘의 밥그릇과 내일 그리고 내일로 이어지는 가족들의 밥그릇을 앞에 놓고 그의 분신자살에 대하여 생각할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그의 직업은 택시기사가 아닌 택시노동자이다. 나는 그의 죽음보다 노동이라는 장엄한 의미 앞에 서글픔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뼈빠지게 몸을 굴려 밥을 빌어 먹는다>는 뜻의 노동과 <열심히 일하여 상응한 댓가를 받는다>는 근로 사이에 나의 좌표는 어디 쯤인가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이 노동이란 단어는 노자의 대립을 넘어서 사람으로 태어난 자들에게 주어지는 모멸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직업은 택시노동자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그의 직업에 그렇게 써넣은 것인지 그가 택시노동자라고 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하얗게 조로한 그의 얼굴에서도, 그의 유서에서도, 그의 행동에서도, 그의 분신자살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직업은 택시노동자이다. 그리고 그의 직업과 한미FTA와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망국적 한미FTA를 폐지하라”며 분신하였다. 그는 전에도 철거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효순이·미선이 촛불집회, 매향리 운동, 평택대추리 반전평화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리고 노조원들과 함께 관악구에 있는 시설에 ‘사랑의 김장 나누기’ ‘소년·소녀 가장 돕기’ 등의 봉사활동을 해왔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삶을 살았다고 어느 기사에는 쓰여 있다.

그러나 타인을 위하여 살기 위하여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인지, 그냥 못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단지 <뼈빠지게 몸을 굴려 밥을 빌어먹어야 하는> 이 세상에 그가 있었고, 그러한 사회가 한없이 선한 얼굴을 한 그에게 제공한 치욕과 분노가 그를 운동의 현장으로 달려가게 하였고, 또 그를 분신으로 내몰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오늘도 집으로 돌아가 또 까맣게 그를 잊고 또 한 공기의 밥그릇을 마주하고, 내가 노동자와 근로자 어디 쯤에 서 있으며, 내일의 밥그릇이 온전할 것인가를 걱정할 것이다.

아쉬웁게도 밥그릇 앞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한 것이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애린]
    국민들의 태도가 미온적인 건 한미 FTA가 우리 밥그릇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아직 감이 안잡혀서 그런 것 아닐까요? 이번 협상에서 얻은 건 별로 없고 내준 것만 많다던데 정작 협상 당사자인 정치권에선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한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내놓고 있으니까요. 협상 전문을 철저히 분석한 결과 우리 밥그릇을 빼앗기겠구나 위기의식을 느끼게되면 대규모 반대 여론 형성이 될 겁니다.
    [여인]
    자유무역주의는 공정한 듯 보입니다. 이 FTA를 통해서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인가 라는 문제만 남게 되는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미국이나 우리나라가 아니라 결국 자본에 유리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결국 우리와 같이 품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협상전문이 우리나라에 유리하던 아니던 소득의 재분배가 농촌에서 도시로 근로자에게서 기업으로 흘러가는 재분배가 이루어지겠지요.
    누군가 돈은 한푼이라도 더 벌리는 곳으로 흘러가게 되어있다고 합니다. 이 FTA조항으로 하여 돈벌기 안 좋은 여건이 조성되면 그 돈들은 중국이나 또 어디론가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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