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중에서

내 작품을 말한다 중… 1권 222쪽

이 세계가 인간에게 가하는 모멸과 치욕은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밥을 먹고 숨을 쉰다는 것은, 이가 갈리는 일이지만, 마침내 협잡의 산물일 수 밖에 없다.나는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 있는 몸으로 감당해내면서, 이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없는 세계를 희망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이 돋아나기를 나는 바랐다.

2권 55~56쪽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내어줄 것은 목숨 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가로지를 때, 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늘 살아 있었다.

1권 74쪽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忠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武와 忠이 소멸해주기를 바랐다.

1권 36~37쪽

사실 나는 무인된 자의 마지막 사치로서, 나의 생애에서 이기고 지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나는 다만 무력할 수 있는 무인이기를 바랐다. 바다에서, 나의 武의 위치는 적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마지막 사치는 성립될 수 없었다. 바다에서, 나의 위치는 늘 적과 맞물려 돌아갔다. 내가 함대를 포구에 정박시키고 있을 때도, 적의 함대가 이동하면 잠든 나의 함대가 저절로 이동한 셈이었다. 바다에서 나는 늘 머물 곳 없었고, 내가 몸 둘 곳 없어 뒤채이는 밤에도 내 고단한 함대는 곤히 잠들었다.

1권 34쪽

권률이 돌아간 뒤, 나는 종을 시켜 칼을 갈았다. 시퍼런 칼은 구름 무늬로 어른거리면서 차가운 쇠비린내를 풍겼다. 칼이 뜨거운 물건인지 차가운 물건인지 나는 늘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칼을 코에 대고 쇠비린내를 몸 속 깊이 빨아넣었다. 이 세상을 다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이 방책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으라고 칼은 말하는 것 같았다.

2권 71쪽

적의 칼은 삼엄했다. 칼자루 쪽에 눈을 대고 칼날의 끝쪽을 들여다보았다. 칼이 끝나는 곳에 한 개의 점이 보였다. 그 점은 쇠의 극한이었다. 칼은 소실점 너머로 사라지는 듯했다. 칼날 위에서 쇠는 맹렬한 기세로 소멸하고 있었다. 쇠는 쇠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고, 그 경계를 따라 칼날은 아슬아슬한 소멸의 흔적으로 떠 있었다. 그 위로 긴 피고랑이 칼날을 따라 소실점 쪽으로 뻗어나갔다. 칼날에 묻은 피를 모아 흘려보냈던 피고랑 속에서 빛이 들끓고 있었다.

1권 158쪽

갓 잡은 고기는 살에서 경련이 일 듯이 싱싱했다. 칼이 한 번 멈칫거린 듯, 칼 지나간 자리가 씹혀 있었다. 잘려진 단면에서 힘살과 실핏줄이 난해한 무늬를 드러냈다. 붉은 살의 결들이 난해한 무늬를 드러냈다. 붉은 살의 결들이 어디론지 흘러가고 있었다. 칼이 베고 지나간 목숨의 안쪽에 저러한 무늬가 살아있었다. 내가 적의 칼에 베어질 때, 나의 베어진 단면도 저러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단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1권 129쪽

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죽이지 않겠다,고 임금은 멀리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면사’ 두 글자 속에서, 뒤척이며 돌아눕는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둣했다. 굴자 밑의 옥새는 인주가 묻어날 듯이 새빨갰다. 칼을 올려놓는 시렁 아래 면사첩을 걸었다.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첩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이 없었다.

1권 124쪽

그 각자의 몫들은 똑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이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 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 바다를 덮었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1권 44쪽

크고 확실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으므로, 헛것인지 실체인지 알 수가 없었다. … 크고 또 확실한 적들은 늘 보이지 않는 저편으로부터 몰려왔다.

1권 63쪽

우수영에서 내 군사는 120명이었고 내 전선은 12척이었다. 그것은 내가 그 위에 입각해야 할 사실이었다. 그것은 많거나 적은 것이 아니고 다만 사실일 뿐이었다. 다른 아무것도 없었고 그 밖에는 말할 것이 없었다.

2권 48~49쪽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1권 108쪽

군량은 명량에서 깨어진 적선에 올라가 빼앗은 쌀이었다. 모두가 적들에게 빼앗긴 연안 백성들의 쌀이었다.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 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아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 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

2권 128~129쪽

적의 포구로부터 동남풍이 불어오는 봄날 저녁에 염전 바닥의 소금은 오지 않은 적의 기척처럼 북쪽으로 쏠려 있었다. 방향을 감지할 수 없는 바람 줄기의 틈새마다 적들은 서식하고 있었다.바람이 잠든 가을날, 소금은 고운 눈이 쌓이듯이 염전 바닥에 내려앉았다. 소금은 먼 데서 오는 시간의 가루처럼 염전 바닥에 내려앉았다. 정유년 가을에 바람이 고와서 소금이 고요했다. 갯벌을 막아 물을 가둔 수영 염전에 허연 소금이 햇볕의 무늬를 드러냈다. 저녁에 수졸들은 소금을 퍼담아 창고로 옮겼고, 다음날 소금은 또 허옇게 내려앉았다. 바람 고운 정유년 가을에 소금은 풍년이었다. 소금은 먼데서 고요히 왔다.

내 작품을 말한다… 중 1권 223쪽

나는 나의 문장을 그 사내의 내면의 힘과 울음에 기대었고, 거기에 비벼댔다. 나는 진양조를 버리고, 자진모리나 휘모리까지 가고 싶었다. 그러나 자주 기진해서 중모리쯤에서 주저앉았다. 내가 드러내려 했던 많은 것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겨우겨우 써나갔다. 후반부에 나는 기진맥진했다. 조금씩 쓰고 많이 잤다…. [칼의 노래]를 쓰며 새운 겨울밤들은 춥고 무서웠다.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This Post Has 4 Comments

  1. earplug

    김훈! 역시 문장 하나는 좋군요. 뭔가 미학적인 값어치가 있는 문장이랄까요. 칼의 노래, 동인문학상 수상작 중에서 유일하게 (개인적으로) 납득이 가는 작품입니다. (다른 작품은 읽어본 적조차 없지만요ㅎㅎ) 좋다, 좋다 중얼거리면서도 끝까지 읽지는 못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한눈에 들어오네요.

  2. 여인

    저는 그가 해방 후인 1948년에 태어났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일본어의 영향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자라난 그들에게 우리말이 뿌리를 내리고 이만큼 자라 우아한 우리말로 다가오는 것을 보는 것은 기쁨입니다.

  3. 旅인

    [여인]
    이 글을 읽으면 김훈과 이순신 사이의 간격을 생각할 수 없다. 김훈은 이순신에게 습합되었고, 이순신 역시 김훈에게 의지하여 저 머나먼 임진년과 정유년을 지난 것만 같다.
    [애린]
    칼이 뜨거운 물건인지 차가운 물건인지 저도 분간이 힘들어요.
    사람이든 사물이든 극치에 이르면 현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글을 읽으면 늘 감탄보다 한 발 앞서 깊은 한숨이 나옵니다.
    제가 직업작가였으면 질투심에 자살이라도 했을 겁니다.
    [여인]
    칼의 노래를 다시 읽으면서 김훈씨가 글을 잘썼다라는 것보다 뼈저리게 썼다는 것을, 목이 끊어져라 부른 절창이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정말로 잘 벼려진 칼을 마주 대하고 쇠비린내를 맡는 것처럼, 적을 앞에 대하고 나의 칼에 목이 떨어져가는 적에게 연민을 느껴가며 이 글을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처절한 그의 감수성 앞에서, 후반부에 나는 기진맥진했다. 조금씩 쓰고 많이 잤다라는 그의 말에서, 고개가 숙여집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