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몽상과 현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단상

앞머리 글

이 글은 ’88년 광주의 그 날들의 실체적 진실을 위하여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고 있는 도중, 나의 지인인 이 종렬형을 만나게 되었다.

이 종렬씨는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항상 부르짖는 그러한 분이었는 데 이 글을 쓰는 나라는 인물은 한줌의 애국심, 혹은 어떠한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는 그러한 사람이다.

이 글을 이 종렬형께 드렸는 데 그 분이 나의 글을 어떻게 받아들였는 지가 궁금하다.

그 때 글을 쓰면서 나는 두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우선은 국가보다 인간이 우선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고 둘째로는 과연 국회의원들이 부르짖었던 실체적 진실이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는가를 글을 통해 내 스스로 이해해 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지금 홍콩이라는 이역에서 한국경제가 침몰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금 이 글을 반추해 보고자 한다.

반추하고자 하는 점은 과연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가 올바른 것인가 하는 점이 될 것이다. 그 민주주의는 시대의 담론으로 맞는 것,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민주주의의 기저를 이루는 자본주의는 어떠한가? 과연 박통(박정희)이 이 IMF시대에 추앙받아야 할 인물로 부상하여야 하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일부 글 중 역사적인 서술 상 틀린 점이 있을 것인 바, 이는 수정치 않을 작정이다.

※ 삽입: 글을 읽으면서 인민 등 의 단어가 나오는 데 이 단어에 상당히 반감을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이란 단어는 황국신민에서 나왔으니  식민지적이고 국가중심적인 단어로 이 글의 논지와 어긋나 할 수 없이 북한에서 쓰는 인민이란 단어를 도입했다. 우리가 People이라고 할 때 단 복수 양쪽 개념을 갖는 단어로 하나는 자연인으로서의 사람, 하나는 집단적인 사람들을 뜻한다. 따라서 人과 民이다. 따라서 인민에게는 이데올로기적 함의는 전혀 없다.(2000.12.7일)

홍콩에서 1998. 2.28일

한국 현대사

동양의 현대사란 타율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물리적인 힘은 제국주의다. 제국주의란 모든 역사발전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현대사적 제국주의란 그 기초를 헤겔의 역사발전 이론에 두고 있는 데 그는 역사의 최종적인 형태는 개인의 자유의 완성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보고, 이러한 개인의 자유는 개별적으로는 서로 사맞디 아니한다고 보고 전체적인 권력을 통해서 통합과 완성을 이룰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사회의 최고형태인 국가에 개인활동의 지배권을 위탁함으로써 역사발전의 완성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러한 국가주의가 탄생된 배경에는 헤겔이 황제에게 어용적 통치이념을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구하는 동시에, 당시에 분할되고 낙후되었던 독일에 사상적 구심점을 제시하고 통일이념을 제시, 인민의식을 고취함으로써 독일의 발전을 모색한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역사가 동(중국)에서 서로 이동하면서 발전해 왔다고 도식화했으며, 최종단계에는 서인 게르만에서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러한 국가주의는 내재적 자발성에 의하여 국가를 최상의 존재로 보고 그 전능을 인정하며 개인의 국가에 대한 전면복종을 요구하게 되며, 민족의식을 유대로 하는 민족주의를 탄생시킨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우선 민족통일을 지향하며 이러한 목적이 충족되고 나면 민족세력의 확장을 위한 의욕을 갖게 되고 결국은 제국주의를 낳게 된다. 그래서 본래적인 제국주의, 즉 로마제국, 대영제국, 제삼제국과 같이 타민족이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및 영예의 목적을 위하여 그들을 정복 억압 지배하는 속성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이념적 문제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현대사는 출발한다. 결국 역사의 단층에서 조선조는 제국주의와 충돌하였으며 이러한 충돌의 압력을 주체적으로 흡수하기에는 전시대의 사상은 무력하였으며 지도적인 인물들이 서구사상에 무지하여 제국주의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점과 국력이 외세를 수용하기에는 피폐하여 조선조는 파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의 현대사는 제국주의에 대한 주체적인 이해없이는 해석에 난점을 지니며 단지 일제시대를 해석하는데 있어서의 필요성 뿐 만 아니라 해방전후사, 더 거슬러올라가 바로 현 싯점까지 제국주의와의 충돌은 계속되고 제국주의를 능가하는 이데올로기를 수립하지 못하여 사상적 공백상태를 해소치 못하고 있다.

조선이 대일본제국에 병탄되면서 숱한 독립항쟁이 있었으나 그러한 독립항쟁의 성격을 보편적인 테두리 속에 집어넣을 수 없기 때문에 삼일독립운동 전까지의 독립항쟁에 대한 평가를 일률적으로 내릴 수는 없다는 난점을 지닌다. 이는 우선적으로 사상적 맥락에서 동학을 해왔던 사람들의 민중적인 항쟁은 조선왕조에 대한 데모일 뿐이며, 별기군이라는 자신의 존립기반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절규와 구왕조체제로 복귀하여 자신이 누려왔던 지위를 되차지하려는 상층계급에 의해 주도된 항쟁들은 각각의 투쟁양상과 목적이 서로 달라 동일한 맥락에서 운동의 성격을 규정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삼일운동은 삼십삼인이라는 주도세력이 그토록 우매했음에도 독립항쟁사에 뚜렷한 획을 긋는 것이다.

그 첫째는 삼일운동이 고종의 국장에 연이어 벌어진 운동으로 다시는 구왕조체제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에 독립운동의 방향은 새로운 국가건설 쪽으로 고정될 수 밖에 없었으며 마땅히 새로운 이념적 토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둘째로는 삼십삼인의 지도급 인사가 우매하게도 독립운동 중 노출되어 독립항쟁을 이끌어 갈 지도세력의 공백을 초래케 했을 뿐 아니라 과도한 희생으로 국내에서 주체적인 항쟁을 이끌 수 없다는 점에서 지하정부의 수립을 포기하고 해외에 임시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독립항쟁의 장외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국내에서의 독립항쟁 포기 선언은 이 땅의 백성으로 하여금 식민지 체제에 대한 영속감을 불러 일으켜 독립의지를 상실케 했다. 삼일운동의 실패는 독립운동사의 실종을 초래하기는 했어도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사상적 기초를 마련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했다는 의의는 있다.

새로운 사상적 기초란 무엇인가?

그것은 망명인들을 주축으로 하는 민족주의와 국내와 일본에 있던 신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가 된다. 따라서 이 소논문에서는 민족주의보다는 공산주의를 말함으로써 점진적으로 민주주의와 제국주의가 무엇인가를 밝혀나가고자 한다.

식민지시대에 이 땅에서 성숙할 수 있는 사상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사상은 그 시대의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일제의 상황은 일본 내에서도 군국주의에 입각한 인권말살이 자행되고 있었으며, 식민지 인민에 대한 탄압의 참상은 그 도를 넘고 있었다. 또한 지주계급 ? 이들은 구왕조체제의 붕괴에 가담, 즉 가렴주구를 일삼고 당쟁으로 국가를 피폐시켜 조선조를 몰락하게 했던 양반계층의 후예인 동시에 일제와 결탁한 주구들로, 과도한 소작료로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리지 있었으며, 지식인들은 식민지 문화정책 속에서 철학과 법학 그리고 역사를 배우면서 데칸쇼(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와 헤겔의 관념론에 심취(진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현학적 심취)하여 이에 철학적 왕통을 부여하여 당시 식민지에 프래그머틱하지 아니한 사상을 유입하거나, 법관 혹은 검사가 되어 식민지 동포를 심판하고 단죄하였으며, 식민사관에 빠져들어 역사에 대한 혐오를 즐기고 있었다. 아니면 식민체제 내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 문학가 연한 사람들은 염세적 낭만주의에 빠져들어 주색잡기로 인생을 탕진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구세적 사상체계란 바로 공산주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공산주의는 자본과 권력이 결탁하여 만들어 낸 자본주의의 말기의 패륜적인 형태인 제국주의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전복함으로써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전단계, 국가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기치를 내세우고 있다. 이와 같은 이론은 일본 군국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으며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동족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부르조와 지주계층을 일소함으로써 역사발전과 새로운 국가건설에 장애가 되는 친일파를 제거하는 동시에 불쌍한 인민들에게 부의 공평 분배를 실현하고 전시대의 문제점이었던 계급구조를 청산할 수 있는 사상적 무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데올로기란 현실과 접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이기심 때문에 변질을 겪고 또 다른 계급을 낳게 된다는 점을 차치하고 본다면 이론의 결백성은 그 시대의 엄청난 비극을 청산해 줄 정답이었으며 의식을 지닌 식자층이 취할 선택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공산주의는 성숙의 토양을 내재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대전 후 소련이 동구권을 점령함에 따른 타율적인 사회주의 국가건설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독립항쟁사를 반추하고 새로운 건국이념을 민중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통은 좌익이지 우익이 될 수는 없는 것이며, 건국 후 좌우의 대립이 그토록 심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제시대를 지나고 해방과정에서 우리는 또 다른 역사적 오류를 남기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 자신들이 해방의 주체적인 세력이 되지 못하고 타국에 의해 광복을 수혜받았다는 것이다. 이 수혜의 역사는 내재적 필연성이 없는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접목시켰던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이 땅에 민주주의를 접목시키는 과정에 있었다. 우리에게 광복을 안겨주었으며 얄타합의에 의한 세계질서 유지라는 차원에서도 미국의 한국 지배권은 인정되었고 동측이 공산블록을 형성한다면 서측은 마땅히 자본주의 블록을 형성, 양극체제를 고착화하여 지역적 분쟁의 소지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이 승만을 그들의 괴뢰로 내세웠으며 그는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이 땅에 주입시킬 임무를 부여받았다. 새로운 민주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형성은 불가결한 요소이며 전문 행정능력이 있는 인물이 필요했고 국가를 꾸려 갈 돈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반민특위를 무산시키고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지주, 지식인 및 관리들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으며 식민지 청산이라는 시대명제를 해소치 못함에 따라 정부의 정통성의 뿌리인 인민의 신망을 얻지 못한 정부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자 하는 관료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자본가들 삼자가 결탁하여 우민정치를 계속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 과정에서 숱한 인권유린과 부패를 감추기 위한 공포정치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공포와 우민정치가 거듭될수록 인민과 정부의 분리는 심화되어 갔고 4/19로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4/19에서 5/16으로 넘어가는 싯점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배우고 시험하는 기간이었다. 이러한 때 박정희 소장 일당의 5/16 군사쿠테타는 민주주의의 본령으로 넘어가려는 인민의 여망을 저버린 또 다른 정통성의 파괴였다. 5/16은 국기수호와 국가존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한 애국군인들의 충정의 발로라는 명분 하에 민주주의에 딴지를 걸었으며 그들은 도조 히데끼 같은 군국정신에 입각하여 국가주의를 지향했다.

박정희 ? 시대의 기린아인 그의 개인적인 인격과 신념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존경의 념을 갖고 있어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역사와 국가에 대한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강요해왔다는 점이 역사의 해석여하에 따라서는 심판을 회피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어도 국가사관을 벗어나 민주적인 견지에서 바라본다면 단죄받아야 마땅한 것이며 파쇼였다는 점이다.

그가 지향한 국가주의는 여전히 자본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강력한 국가를 지향한 만큼 자본과의 결합은 더욱 심화되었다. 결국 그가 추진한 이승만 정권에 대한 청산방식은 정치깡패를 총살하고 제주도 간척사업이라는 것으로 삼청교육대의 전례를 만들었을 뿐 부패의 젖줄이며 일제 때부터 인민의 수탈을 자행해왔던 자본가들의 입지를 더욱 넓혀주었던 것이다.

그의 강력한 국가주의는 개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인륜적 형태인 국가로 복속 시켰고 국가발전에 대한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국가라는 전체의 발전이 개개인의 발전을 이끌 것이며 자신에게 발전을 제공해 주는 국가가 대의를 위하여 취하는 부분적인 탄압은 묵인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하여 광범위한 정치 소외계층을 만들어냄으로써 그의 파쇼정치의 마당을 형성했다. 이러한 그의 국가주의 공식은 5공화국에 들어와 허문도라는 사팔뜨기에게 승계되었고 무식한 전씨는 허의 허구에 가득찼으나 웅혼한 국가주의에 매료되어 서로 아삼육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국가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기원은 불과 3~4백년의 역사를 지닐 뿐이다. 이는 지도가 제작된 역사와 함께 한다. 지도에 의하여 국경이 확연해져야 인민 주권 영토라는 국가의 삼요소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국가란 근대적 개념이 아닌 단순히 왕조와 백성의 결합관계에 기초할 뿐이다. 그 왕조를 지지하는 백성이 사는 땅이 왕국의 경계였고 국가는 금 그을 수 없는 가변성을 띠고 있었다. 국경이 가변성을 띠고 있는 만큼 민족 또한 가변성을 띨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다 왕권이 상위에 속하는 것이며 국가의 개념이 부족했던 만큼 민족의식 또한 희박했다. 한국사를 보더라도 외침을 받거나 새로운 왕조를 수립할 때 민족이라는 구심적 이데올로기가 등장했을 뿐 왕권이 고착되면 민족이라는 구심점 이데올로기는 필요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결국 민족주의의 탄생은 국가라는 형태를 강화하기 위한 국가주의 탄생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볼 때 국가와 민족은 통치를 위하여 급조된 환상이지 그 자체로서는 실체를 지니지 못한다. 요약하자면 애당초 민족이란 없었던 것이다.

박정권은 국가주의라는 자신의 명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도처에서 인권을 유린했으며 이러한 실상을 감추기 위하여 중앙정보부를 세워 민주인사들을 탄압했으며 보도를 통제하고 언론을 관제화하여 우민정치를 해 나갔다. 이러한 우민정치야 말로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삼선개헌에서 유신체제로 넘어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반면 자본과는 결탁하여 저렴한 노동인구를 창출하기 위하여 이정권 시대의 저곡가 정책 기조를 지속했고 마을 길도 넓히는 새마을 운동을 통하여 농업을 기반으로 한 가족과 마을이라는 게 마인샤프트를 해체시켰다. 이로 인하여 농업과 대가족제도에 바탕을 둔 전통 윤리구조는 파괴되고 가치관의 공백을 가져왔다. 이러한 가치관의 부재와 농촌 궁핍화 정책은 농촌인구를 도시로 유입시켜 구로공단의 형성을 돕고 울산공업단지를 조성함과 동시에 양동, 588, 종삼의 비대화를 유도했다. 도시로 집중된 방대한 노동인구와 저곡가 정책에 바탕을 둔 저렴한 임금은 산업자본의 배를 불려주어 경제발전의 토대인 자본의 형성을 도왔다. 산업평화라는 미명 하에 왜곡된 노동법은 기층세력의 목소리가 새어 나올 수 없도록 하는 독소조항을 함유하여 기업의 노동탄압과 혹사는 당연한 일로 치부되었고 신음하는 그들을 우리는 공돌이, 공순이라고 멸시하였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 아닌 자신의 육신을 좀먹는 비루한 일이라고 우리는 폄하하였다.

이에 따라 전체를 위하여 부분을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부분이 전체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자각하기 시작하였으니…  자각하고 탄압받던 기층세력의 절규가, 함성이 현대조선과 부마사태로 사북사태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자 정권의 말기적 참상을 청산하기 위한 총성이 궁정동에서 울려 퍼진 것이다.

그러나 이리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에 날린 총성으로도 서울의 봄은 꽃피우지 못했다. 10/26에서 12/12의 능선을 넘어 5/17에 이르는 숨가쁜 세월은 비련의 현대사에 또 다른 정통성 문제를 야기시켰고 우리에게 역사란 발전없는 모순과 갈등의 되풀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했다. 혹자는 우리 인민들의 민주적 역량의 부족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한번도 민주주의를 체험치 못했을 뿐 아니라 철저한 언론통제로 민주주의의 편린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는 민중 소외의 서글픈 정치마당이 계속되었다는 점. 야당이 부르짖는 민주조차도 정치광대극에 불과했다는 점. 이를 그들은 무시했던 것이다.

5/17 광주해방공간에서 자행되었던 음모는 군부집권의 당위성을 마련하려는 교묘한 술수였다. 광주해방공간이라는 뜻은 박정권에서 이어져 나올 수 있는 전씨 파쇼세력에 대하여 해방된 민주공간을 만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신성한 해방공간은 불과 2~3백킬로의 공간을 달리하면서 국가전복을 획책하려는 붉은 무리들이 준동하는 배반의 땅으로 변질되었고, 나날의 어둠과 떠도는 뜬 소문 속에서 TV와 라디오, 신문 등 모든 매체들은 개구락지복의 특전사 장병들의 무훈과 공산테러 분자들의 만행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광주항쟁에 대한 호도를 통하여 국가를 비상사태로 몰고 가 민주적 방식으로 통치가 불가함을 알림으로써 국가수호를 위한 군부 부상의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광주반란을 명분으로 숙군의 전기를 마련하여 전씨에 대한 군부 내 불만 세력인 육사10기 이상을 제거하고 11기를 중심으로 군부 내 상하 갈등구조를 청산하여 전씨가 정권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정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양수겹장이라는 의의가 있다.

제5공화국의 불행은 새 정권을 담당할 주체세력이 아니면서도 정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사실을 호도하고 조용한 항변을 국가전복이라고 침소봉대하여 무수한 민주생령들의 피를 그들의 손에 묻혔으며 정통성의 위기를 군바리 그들 자체로 해소할 수 없어 일국의 정부가 미국의 치마 속에 기어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러한 악덕과 패륜은 공화국의 양심을 치매상태로 몰고 갔으며 정신의 상실은 비리와 부정부패에 불감증이 걸린 정권의 탄생을 기초하였다.

또한 그들은 공상적 파쇼정치를 단행하였던 바, 술수의 치졸함은 민심안무 차원에서 국풍80을 급조하였고 도덕의 저열함은 시온의정서의 복제에 불과한 장기집권계획을 만들었으며 그들이 초토화시킨 국가에 대한 사랑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단』이라는 책을 시중에 유포시킴으로써 국수주의에 입각한 사주나 관상봐요라는 운명적 국가발전 환상을 심어주었으며 올림픽을 유치하여 잔치 중에 정권의 부패 상과 개인의 악덕을 은폐, 퇴진하여 안락한 여생을 누리면서 막후정치를 해 보겠다는 몽상에 빠졌던 것이다.

이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소고를 끝마치고자 한다.

민주주의란 자본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발전되어 오면서 나타난 정치형태에 불과하며 자본주의의 성장이 아닌 발전을 가능케 하는 정치질서라는 점이다. 지난 봄, 청문회가 열리면서 실체적 진실이라는 단어가 국회의원들 간에 회자되었다. 실체적 진실이란 진실이 어떠한 논리에 의하여 유도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보고 있는 그대로의 실체의 확인을 통해서 나타나는 진실, 그것을 말한다. 즉 광주의 그 날, 특전사 장병이 시민을 대검으로 찔렀다는 것이 진실이지 결단코 어떤 논리(이념)적인 틀 속에서 찌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찾자는 것이 아니다. 이 실체적 진실을 민주적 개념으로 확대 해석해 보자면, 실체적 진실이란 해방공간에서 대검에 찔리는 시민과 찌르는 특전사 장병이지, 결코 찌르게 한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러한 실체들이 참정권을 활용, 대의정치를 함으로써 서로 찔리고 찌르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고 국가의 통치는 국가라는 허상적인 진실이 아닌 인민이라는 실체적 진실들을 위하여 행해져야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기층세력들이 자신의 참정권을 활용하여 정경유착을 방지하고 인민의 복지와 기회의 형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공개되고 언론이 잘 발달되어 정부의 정책의 잘못을 가려서 시정을 촉구해야 한다는 조건을 가져야 함은 민주주의 발달에 불가결하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제가 가로놓여 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인민이라는 개체보다 국가를 상위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시대의 사상과 이념의 토대를 형성하고 유포 확산시켜야 할 지식인들이 아직도 식민지의 전근대적 논리인 헤겔의 사고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맹목적으로 마르크시줌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또 정략적인 차원에서 인민이 민주주의를 모르는 것이 나을 것으로 판단하여 민주주의의 실체를 가르치지 않는, 오히려 그들 자신이 민주주의에 무지몽매한 야당과 정부,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 상실을 두려워하여 민주주의의 태동을 분쇄하려는 기업의 획책들, 이러한 난제들이 복잡하게 깔려있고 민중의 목소리는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여 쟁쟁하며, 언론 또한 민주주의의 실체에 대한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 모르고 있다. 이 싯점에서 역사의 전후를 따져 공산주의를 선택한다는 우를 범할 수도 없다. 체제를 버리고 또 다른 체제를 취한다는 것이야말로 새로 시작하는 것이며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체제의 차이인 만큼 그 파행성의 도는 엄청나게 증대될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야말로 현 시대의 인간과 다음 시대의 인간 그 모두가 다가갈 수 없는 이상향인 것이다. 공산주의는 인류의 전역사를 소급해 올라가 각 시대시대마다의 윤리와 도덕을 파괴함으로써 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세계요, 현존할 수 없는 정치질서인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시대에 알맞은 민주주의의 이념을 정비하고 이를 널리 유포함으로써 우리 현대사가 끌어안고 왔던 파행성과 정통성의 시비를 끝내 청산하는 것이다.

본 소고를 마무리하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모든 세대의 인간들은 자신의 현대사를 살고 있으며 결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변화는 가능하며 이 변화의 가능성이야말로 역사를 그르칠 수도 선한 방향으로 나가게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역사에 대한 뚜렷한 인식없이 체제를 수용하며 이끌려 간다. 이에 따라 그들은 맹목적으로 역사 속에 매장되고 만다. 따라서 변혁은 불가능하다고 하여도 시대를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념 종속의 굴레를 벗어나 시대를 통하여 이념을 전관할 수 있어야 한다.

– 끝 –

마무리 글

이 글을 쓴 때가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쯤 민주화가 시작되고 나의 나이가 막 서른이 되었던 싯점이다. 민주주의를 위하여 희망에 찬 가슴으로 이 글을 썼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태어난 민주주의는 만개했는가?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난 후 빠진 고민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성공했으나 그것은 전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일치단결에 의한 혁명이 아니라 러시아에서의 부분적인 성공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가난하고 척박한 동토의 러시아에서 무산계급이 서로 잘 먹고 잘산다는 방식으로 흘러갈 경우 기존 자본주의의 세계경쟁 구도 속에서 힘인 자본의 집약이 이루어지지 않아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열강에게 침탈의 기회를 줄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순결한 소비에트를 제국주의의 겁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취한 길은 또 다른 의제 자본주의를 소비에트에 주입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본을 일국으로 집결함으로써 다수의 자본가에 의한 자본집중보다 더한 경제적 집중을 기할 수 있었고, 2차 대전 후 미국보다 먼저 우주인을 보낼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공산주의 전단계인 공산당 일당 독재에 의한 국가 사회주의라고 부르짖었으나, 그 또한 자본주의에 다름 아니었다. 소유는 당서기장과 다수의 테크노크라트에 귀속되고 인민들은 단순히 노동에 대한 권리만 남는 즉 소비에트 코퍼레이트를 창설하였다. 주식회사 소비에트 속에는 군수사업부, 석유채굴부, 수송관리부, 등등이 있었고 회장직속기관으로 당과 비서실 그리고 KGB등이 있었다. 이 기업이 거대한 공룡으로 변하여 효율성이 떨어지고 경쟁개념을 상실하자 소비에트는 붕괴한 것이다. 즉 글로벌 경제체제 내에서 한 거대한 기업이 도산을 했을 뿐 결코 공산주의 그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었다.

즉 이 지구 상에는 단 한번도 공산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에덴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원시공산세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산주의는 단지 미필적 고의였을 뿐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공산주의가 멸망했다고 했다.

인류의 역사는 자본주의와 함께 시작했다. 인류 속에 있는 혈연에 입각한 자본(권력)의 세습욕구는 끊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부와 권력의 세습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지닌 본능이며 우리는 본능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약육강식의 잇빨을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게 견제해 나가느냐이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인간은 그 시대의 담론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어떠한 논의도 그 시대의 담론 속에서 독창적일 뿐 그 담론을 넘어선 담론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일지 모른다.

우리는 여태까지 공산주의를 민주주의에 대한 엔티테제로 배워왔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의 앤티테제가 아닌 바로 자본주의의 앤티테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생리적, 동물적 논리를 가졌다면 공산주의는 이데올로기적, 휴매니즘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살벌한 세상에서 동화의 세계는 꿈인 것이지 실존으로 승화할 수 없다는 인류가 지닌 파라독스, 그것이 공산주의인 것이고 유토피아다.

우리는 생리적으로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바에야 그 잇빨을 견제하기 위해서 민주주의가 제 자리를 잡아야 한다면 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창설하여야 한다.

우리는 정체를 입헌 민주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법률 상 가장 중요한 법률 중의 하나가 민법이며 이 민법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며 이는 소유와 핏줄이 주류를 이루는 바, 엄밀하게 자본주의적이다.

이 세대의 새로운 담론, 모든 인간이 다 같이 절대적으로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과 부의 분산을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나 법률이 또 다시 만들어져야 하며 이는 어떤 주의라는 이름없이 절대다수의 행복을 향해 웃음지을 수 있어야 한다.

절대로 민주주의가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국가에 시녀가 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나야 하며 국가가 잘 살아야 한다는 것에 선행하여 인민이 잘 살아야 하는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담론이 숙명적이어도 우리는 담론을 넘어 인류의 행복을 지향해야 한다.

– 이상 –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아다다
    다 읽었습니다…별다른 반론도 없고…그냥…시대순으로 쓰여진 글을 읽으며 당시 내가 뭘 했었나를 떠올렸지요….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그냥 둡니다. 예전에 읽었던 글 같은데 그때도 그랬던 것 같긴 하지만…^^
    └여인
    이 글은 처음으로 올린 글입니다. 이 글을 바탕으로 다른 글들을 썼기 때문에 한번 읽었다는 느낌이 드실 겁니다.
    이 글을 읽으면 아마 거부감이 크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이 글을 읽으면 제가 공산주의를 옹화하는 사람으로 오해할 소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현실(자본주의)과 이상(유토피아) 둘 다 병존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양자 모두에 대하여 비판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현실은 추잡하며, 이상은 공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소지는 제가 중립적인 데 반하여, 아직도 우리 사회는 우로 너무 많이 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결국은 아무런 결론이 없다는 것이 문제일 것 같습니다.
    └아다다
    별 거부감 없었는데요…ㅡㅡ;;;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고 한 글을 그냥 올릴걸 그랬네요^^
    며칠전의 시험문제가 근대국가의 탄생과 근대 기록관리와의 관계에 대해 쓰는 것이었는데, 기록보존소의 탄생을 민족주의와 결부해서 보는 글이 참고 논문이였거든요…그저께밤 sbs에서 우리의 단일민족국가에 대한 믿음의 문제점을 제시하는 방송을 본 터라 더 생각이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겪고 경험하고 내가 속하거나 걸치지 않으면 완고해지는 듯 합니다. 반대로 내가 속하거나 경험하거나 관계가 있다면 너그러워지는…
    중립적인 입장에 대해 생각하는 중입니다. 어린시절엔 도 아니면 모 식으로 정체를 밝힐 것을 중요시했는데, 그게 결국은 자기애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또는 자기 만족… 중간이 없는 것처럼 불안하고 불편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어느쪽이든, 무엇서건 결백하려고 하는 태도도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내가 가장 힘들겠지만…
    제 관심사가 아직은 우리의 세상에 닿아있지 않아서 읽으며 계속 딴 생각이었답니다^^
    중간자가 되려면 도도 알고 모도 알아야힐텐데 말이에요^^

    목련
    여인님..
    제가 이곳에 뎃글을 감히 쓸수가 없나이다.
    읽긴 읽었으되 지식이 짧아서 그러니
    넓으신 맘으로 깊이 헤아려주실줄 믿습니다.
    저 잠시또 잠수함을 준비했어요..길진않겠지만
    이런제가 얼마나우서울지..ㅋㅋ
    하루하루 미쳐날뛰다가 이젠 견딜수가 없더라구요.
    글타구 제게오셔서 그냥 돌아서시면 저 서운합니다.
    날이갑자기 추워졌어요.옷깃 따듯히 여미시구요.^^.늘 건강하세요.~
    여행중에도 찾아뵐게요.~~~~
    └여인
    저는 날씨가 이러니 좋네요. 여행을 잘 다녀오시길…

    goho
    절대다수의 행복…아`民主는 좋습니다.
    資本이 지배하는 체제론은 유감이지만 적자생존이란 정글의 법칙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도 민주의 구성원이거늘…
    현정권에 이르러 민주적 이념은 놀랍게도 번창했으나
    양키넘들이 그러하듯
    이시대의 정재계,기득권층들에게 자본이 편중되고 있는 엿같은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요즘같은 불황에도 까딱없는 관료들의 행태나 대기업의 독식은
    참으로 아니꼬운게 작금의 세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저 무식한놈이 나라탓하고 정부를 못마땅해 불평의 돌을 던지는거겠죠.ㅋ`
    아`한국의 미래사를 낙천적으로만 볼 수 없는 세태라니..ㅉ ㅓ ㅂ`
    08년 2월,입지전적인 인물,이명박씨가 대권에 선봉이 될듯한 무드입니다.
    만일 그가 된다면,그는 과연 자신을 뽑아준 主民들을 실망시키지 않을까요?ㅋ`
    절대다수의 민초들을 위해 헌신봉사할까요?
    여인님의 예지력으로 바라본 한국의 미래사를 읽고 싶네요..^^
    추운날씨에 건강유의 하시길 바랍니다.
    └여인
    예지력보다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미래란 어떤 가치를 갖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동일한 양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 국가의 미래에 대하여 국부와 군사력 그리고 민주화 등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예견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① 학원에 다니지 않고 학교에서 뛰놀면서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을 가던지 취직을 할 수 있는 나라
    ② 오래된 이웃으로 이루어진 동네가 많은 나라
    ③ 태어난 곳에서 대학까지 다니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죽을 수 있는 나라
    ④ 농촌 도시할 것 없이 결혼적령기가 되면 결혼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고 병원비가 안드는 나라
    ⑤ 배우고 싶으면 큰 돈 안들이고 배울 수 있는 나라
    ⑥ 5년정도 열심히 저축하면 어디에서든 조그만 집이나마 마련할 수 있는 나라
    ⑦ 인권이 나라나 어떤 특정한 개인에게 핍박받지 않는 나라
    아마 무수한 것이 있을 수 있겠으나, 나라의 미래는 결국 우리의 자식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goho
    아` 역시나 바람직한 가치기준을 뽑아내셨네요.^^
    이처럼 이상적인 미래가 보장된다면야 굳이
    이나랄 등지고 타국으로 이민가는 사태도 줄어들텐데 말입니다.
    길게 쓰면 볼쌍스러운 욕만 터져 나올듯하니 억제해야 겠습니다.ㅋ`
    언제나 깊은글,맛있게 탐식하고 갑니다.편안한 밤 되세요..^^
    └여인
    감사합니다.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웃에 먼저 인사하는 이웃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목련
    여인님께 부족한 마음으로 편지에 감사의 답을 했습니다.
    └여인
    읽고서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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