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픈 악기로

해금은 슬픔을 연주하기에 가장 적당하다. 해금이 말하는 슬픔은 차라리 찬란하기까지 하다. 두 줄 사이에 포박당한 활대는 해금을 벗어나지 못한 채 애애앵 울고, 포개진 현은 한줄로 외롭다. 소리는 가녀리지만 길고 애절하여 창자가 끊이질듯 하고, 소리의 끝은 광막한 대지의 끝에 한줄기 먼지를 남기고 사라지는 가을바람과도 같다.

깡깡이라는 싸구려 이름으로 불리워졌던 이 악기는, 고대의 북방민족인 해족(奚族)의 악기라고 해서 해금(奚琴)이라고 한다. 계금(稽琴), 호금(胡琴)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얼후(二胡)라고 한다. 얼후의 소리는 오랜 시간동안 개량이 되어서인지 해금의 소리보다 낮고 굵은 소리가 나며, 거친소리가 많이 제거되었다. 반면 해금의 애절한 맛은 사라졌다. 해금은 두줄이지만 활대가 늘 두줄 사이에 놓여 두줄을 비비며 소리를 내기 때문에 한줄로 연주하는 것과 같다. 줄의 어디를 누르면 궁의 소리가 나고 어디를 누르면 각이다 하고 틀지을 수 없는, 원시적인 이 악기는 악공이 흘러나오는 소리와 자신의 감에 따라 활대의 위치와 누르는 위치를 가늠해야 만 한다. 한 줄로 연주해야 하는 이 놈의 악기는 소리가 풍성할 수는 없어도, 길고 끊임이 없으며, 소리끼리 서로 사무치는 법도 없다.

그래서 해금은 슬프다. 너무 슬퍼 듣다보면 슬픔이 인간의 본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슬픔이 정화의 묘법으로 우리의 심사를 풀어놓고 우리를 위로한다.

얼후가 서양음악과 협연되면서 이 해금 또한 우리 젊은 예인들을 통하여 크로스오버 장르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내가 듣기에는 이해금이 현악기 중 가장 고음역을 제공하며, 악기의 호흡이 가장 길다. 먼저 서양에 소개된 얼후는 해금의 소리 때문에 퇴출되지않을까 싶다.

정수연, 강은일, 꽃별 등의 연주자가 있지만 나는 하얀등대(지연의 노래)를 연주한 김애라의 곡이 가장 마음에 든다.

A Lighthouse…

Ave Maria……

This Post Has 7 Comments

  1. 흰돌고래

    예전에 티비에서 봤는데, 몽골의 전통악기였나… 꼭 해금처럶 생긴 악기였어요. 어미 소가 아기 소에게 젖을 주지도 않고 발로차고 미워했어요. 그게 출산 때의 고통(?) 그런 것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면서..
    그런데 그 소가 그 음악 소릴 듣더니 눈물을 흘리더라구요. 그러고는 아기에게 젖도 물리고 어미소 답게 됐어요. 음악의 치유라니!

    1. 旅인

      북방 해족의 악기라고 하는데, 해족이 어디에 산 종족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몽골과 가깝거나 몽골족인지도 모르지요.

      이제 음악도 함부로 올릴 수 없어서 지우고 나니 뼈는 없고 가죽만 남은 글 같습니다

      때때로 슬픔이 좋다는 생각이 드는 때는 이런 해금의 소리를 듣는 때인가 봅니다.

  2. 클리티에

    해금이나 얼후나 소리 너무 멋지죠..
    얼후는 애잔하면서도 좀 더 밝은 느낌인데 해금은 막 후벼 파는 느낌이에요. ㅠㅠ

    해금 소리 참 매력적이에요.
    우는것 같으면서도, 그 소리에 따라 마음이 우는 것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철렁 내려 앉았다가 붕 뜨는것 같기도 하고, 눈물이 핑 돈다고 할까?
    막 먼 산 보며 돌아오지 않는 서방님, 도련님 기다리는 처자가 된 기분이에요. 하하

    1. 旅인

      그래요. 막 후벼파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해금이 깡깽이 소리를 내면 어찌나 천박한 소리가 나는지… 같은 악기가 그렇게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김애라 씨의 <어느 하루>나 <하얀 등대>를 들을 때면, 숨이 끊길 것 같아 그만 활대가 멈춰버리기를 고대하게 됩니다.

  3. 선수

    엇 감사해요 잘들었습니다 역시 악기소리도 숨길수 없이 연주자를 닮는거겠지요?
    해금, 어떤 감정을 다듬어 혹은 모두어 둘러 안는다고 해야하나 머무는 소리와는 다른 듯 말씀하신 가을바람같기도 어쩐지 헛헛하고 황량한듯 거친듯 그렇게 휘릭 스륵 훑고 지나가버리는 소리같아 저는 그 소리가 견딜수 없이 허전하더군요..
    김애라씨 연주는 공명이라고 해야하나 울림이 느껴지는것 같네요 혹시 신날새씨의 연주도 마음에 들어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주 젊은 연주자였던것 같았는데 맑고 예쁜것 같달까 참 곱고 소리에 온기가 느껴지더라구요
    얼마전데 들은 꽃별씨 연주는 그냥 저냥 들을만 했던것 같아요^^; 제가 흔들리는 청춘의 한복판에서 워낙에 날뛰기를 하기때문인지 그런 소리는 그냥저냥 감흥이 덜하고, 반대로 어떤 소리가 내는 초연한 감동을 받고 싶어하는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 음악있으면 추천많이 해주세용^^

    1. 旅인

      신날새씨의 연주는 못들어보았지만, 꽃별씨는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는 음악이 없어서…까왈리를 하나 홍시에 달아놓았습니다.
      길지만 들어보시면 이상한 마력이 있습니다.

  4. 旅인

    목련
    창자가 끊이질듯,(이이고, 내창자끊어지면안되는데..ㅋㅋ)음 해금의 소리가 정말 애간장을 녹이는듯합니다.
    올려주신 음악 선율이 아름다우면서 무척이나 특별합니다.
    └ 여인
    파이퍼님의 블로그에 들렀다가 가야금 곡이 좋은 것이 있어서 듣다가 불현듯 해금연주곡을 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퓨젼화란 괄목할만한 것입니다.
    이 깡깡이 소리는 어렸을 적 환갑잔치 때나 듣곤 했는 데, 그때는 느낌이 안좋았었는데 이렇게 양음악들과 섞어 놓으니 맛이 은근합니다.
    그리고 포지션의 음악도 특별합니다.

    piper
    요즘처럼 습도나 기온이 낮지 않음에도 선선한 바람으로 성큼 다가온 가을을 느끼게 하는 청명한 하늘과 너무도 잘 어올릴것 같은 해금을 통한 두 연주곡.. 잘 들었습니다.
    지금은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지난 상념에 빠지게도 하는군요..^^;
    └ 여인
    트랙백을 쫓아가 다시 한번 Happiness를 들어보니 아침에 듣던 느낌과는 또 다르군요. 좀 더 편안하고 쉽게 다가 옵니다. 주말 오후라서 그런가요?
    퓨전이라는 것이 때론 값싸게도 하지만 때론 정말로 멋진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아다다
    공부할 때 음악을 듣지 않는 것이 제 원칙이었는데, 요새는 고요하면 졸려서.. ㅎㅎ
    고요한 음악을 듣는것이 고요속의 졸림을
    └ 여인
    이 음악은 창새기를 비틀어놔서 그럴 겁니다. 아다다님의 노고가 감탄스러울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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