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계필담을 사다

아내가 책을 산다고 하여 책방으로 가는 길에 폭우가 내렸다. 책방 옆에 차를 세워두고 기다리려다, 아내가 비를 맞으면 안 되겠기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답답한 주차장에서 기다리기도 뭐하여 아내를 졸래졸래 따라 책방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한문과 백화문을 바탕으로 개판 오분전, 내 식으로 <논어>를 해석해 왔기에 한번 한글로 번역된 책을 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놈의 논어라는 흔하디 흔한 책이 이만원씩이나 한다. 호화양장본 뿐 아니라, 그냥 페이퍼 백도 일만육천원 한다.(결국 어찌어찌 골라서 육천원짜리 샀다)

<논어>가 이렇게 비싸니 당대에 孔孟의 道가 끊어지고, 세상이 혼탁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嗚呼痛哉라!(하단의 참고 참조)

논어를 구하던 와중에 그만 몽계필담(夢溪筆談)을 찾았다. 이 몽계필담은 홍콩에 있을 때나, 대만에 출장갈 때 서점에 들러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었는 데, 동이족의 땅인 한국에서 그것도 한글로 번역이 된 완간본이 있다니 신기하여 내용 불문, 책을 덥썩 낚아책 수 밖에 없었다.

몽계필담은 주자(朱熹: 1130~1200년)보다 1세기가 앞선 심괄(沈括: 1031~1095)이 지은 책이다. 심괄은 송대 신법을 주장한 왕안석(1021~1086)의 사람이며, 그래서 소동파(蘇軾: 1036~1101)의 정적인 셈이다. 그는 24세인 54년에 지방관이 되고 61년에 樂論을 쓰고 63년에 교서랑, 왕안석 집권 후 수리 관개 업무를 관장했고 73년에 국립천문대장으로 천체관측을 하고, 80년에는 연주자사로 西夏에 대하여 공을 세웠다고 되어 있다.

몽계필담은 수필과 같은 책처럼 보이나 사실은 수학, 물리, 약학, 동식물학 등과 함께 문학, 예술, 인문과학 등을 아우르는 책이다. 필담만 26권, 보필담 3권, 속필담 1권 도합 30권, 2책이다.

아직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나는 중국의 고대과학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고대과학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아마도 주역에 대한 관심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주역에서 주비산경이라 고대 수학이 나오고 구장산술 등이 발전했다. 이러한 중국의 고대과학은 심괄을 통하여 주자에게 계승되니, 주자에 대해서는 우리가 성리학의 완성자라고 생각하나, 그는 송대의 뛰어난 물리학자로 말년에는 천문학에 심취하여 사분력(365와 1/4일)에 대한 탁월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조선의 퇴계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심리학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낳고 있으며, 율곡은 23세 때, 별시에서 <우주와 별의 움직임과 기상변화에 대하여 논하라>는 과제에 대하여 명문 <천도책>을 지어 장원하였다.

그러니 동양의 과학적으로 미개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주비산경(周비算經)은 후한때 쓰여진 책이다. 周代의 蓋天說을 중심으로 펼친 원주율과 피타고라스의 정리(주1) 쯤 된다. 周비란 주나라 때 천체관측을 위하여 세운 8尺짜리의 막대이다. 天圓地方의 개념 속에서 그림자가 1촌의 차이가 나면 땅의 거리가 천리(400Km)가 난다는 위도개념이 생겼고(주2) 원주율을 3으로 보았다.(후일 한번 주비산경을 번역해 보아야 겠음)

여기에서 개천설은 하늘이 땅 위에 펼쳐져 있다는 뜻이다. 이 개천설이 천체 운행의 설명에 미흡하여 渾天說이 등장한다.

이러한 고대 천문학적 과학적 성과는 송대에 와서 난개하는 데, 그것은 고대의 역법체계와 진한지제의 상수학에 어울어지고, 산해경과 같은 박물지, 위진현학과 도교의 연단술 등이 발전하고 불교적 우주관이 꽃피우면서 송대와 와서 유교적 형이상학(Metaphysics)인 성리학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메타적인 사고는 한상 메타의 바탕이 되는 물리학에 대한 갈증을 유발하게 되고, 그것이 심괄의 몽계필담의 탄생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나는 몽계필담이 근대과학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심괄의 사고를 통하여 고대 역법과 주역에 대한 해석방법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아내가 집에 돌아와 책값을 보고 “비싼 것도 골랐네…”하며 투덜거린다.

독후감은 일독 후 써야겠다.

* 참고 :

한국의 책값 겁나게 비싸다. 국민들보고 책 많이 읽으라고 하기 이전에 책값을 싸게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홍콩 三聯書店의 白話論語 HK$39.00 (HKD39X125원/HKD= 4,900원)
대만 商務印書館의 周易今註今譯 NTD140.00 (NTD140X33원/NTD=4,600원)
대만 大浮書局印行의 四書集註 NTD150.00 (=5,000원)
→  대만판 논어가 없어 비슷한 책으로 추산, 중국은 RMB10~20(1,200원~2,400원)

베텔스만코리아 刊 다빈치 코드 1 2권 : 7,800원X2권 = 15,600원(각 40%할인)
Random House刊 Da Vinci Code : 11,280원(이 또한 40%할인)

주1 : 以爲 句廣三 股修四 徑隅五
(그래서) 가로의 넓이가 3, 세로의 높이가 4, 빗면의 길이가 5

주2 : 周비(骨+卑) 長八尺 夏至之日晷一尺六寸. 비者 股也. 正晷者 句也.
正南千里 句一尺五寸 正北千里 句一尺七寸
주비는 여덟자이다. 夏至면 그림자가 한자육촌이다. 비란 높이고, 그림자는 밑변이다.
정남 천리를 가면 그림자가 한자오촌이고, 정북 천리를 가면 그림자가 한자칠촌이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목련
    근대 과학이 발달하기 전인 서기 1500년까지는 서양보다 우수한 과학·기술이 중국에 존재했다고 읽은적 있습니다.
    여인님께서 중국의 고대과학에 대하여 관심이 많으신것두 중국의 과학기술상의 재능이 타민족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는게 아닐까 싶기도…
    여러 면에서 서양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야 어려워서 도무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좋은책을 읽는 기쁨만은 알것 같꼬요.
    비가 그쳤으니..이제 슬슬 밖으로 나가보려구요.~~ 좋은글 잘읽고 감니다.행복한휴일이 되세요~~
    └ 여인
    이런 책을 읽는다면 사람들은 좀 이상스럽게 저를 봅니다.
    아마 이런 책을 읽는 것이 제 취미인가 봅니다.
    저는 주역 때문에 한국과 중국의 고대과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양의 과학은 근대 합리주의의 영향 때문에 대부분 疑似과학(Pseudo-science)으로 치부되어 왔습니다만, 카오스 이론 등과 같은 신과학의 영향으로 새롭게 평가되고 과학에 편입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 목련
    야심한 시각입니다.
    이곳에 한밤에 몰래들어오니까,
    우리 여인님의 코고는 소리가 크다랗게 들리는듯 하네요.ㅎㅎ코안고신다구요..ㅋㅋ
    음 저는 초저녁잠을 조금 잤는데…지금은 올빼미마냥 마구돌아다니면서 놀아요.
    우리 여인님 어려운 분이셔서 편안한 곳은아니지만 ㅎㅎ
    이제 낼을 위하여 저도 꿈꾸러 가야겠습니다.
    맑은아침맞으시그요 . 늘 같은이야기지만 줄겁고 핸복한 하루를 펼치세여!
    └ 여인
    어제밤에 출장을 다녀와 단 댓글을 아침에 보고서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여자친구에게 몇차례 “피곤해”라는 말을 썼다가 얼굴빛이 확 변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후 별로 이 말을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제는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 한시간 반 동안 전철로 이동, 비행기를 한시간 타고, 또 차로 40분 공장으로 가서 회의를 6시 반까지 하고 8시반 비행기로 서울로 돌어와 또 다시 1시간 반 자하철을 타고 11시에 집에 돌아오니 정신이 몽롱하더군요.
    주몽도 못보고 말입니다.
    아마 어제밤에는 코를 골며 신나게 잤을 겁니다.
    목련님은 잘 주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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