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기 전에서… 해 지기 전까지

비디오 가게 아줌마는 비포선셋이 앞의 것이고 비포선라이즈가 뒤의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비포선라이즈가 ‘95년 작이고 비포선셋이 ’04년의 것이다.

일월화수목금토이 맞는 것인지, 월화수목금토일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 정답이 없는 이런 것이 좋다. 둘 중 어느 것이나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는 것, 어떤 사람이 <수목금토일월화>라는 한 주일을 보낸다고 해도 인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듯 두편의 영화 중 어느 것이 앞이고 뒤인가를 분간해 내기란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DVD를 갈아 끼워야만 했다.

해 뜨기 전에(Before Sunrise)

우리는 영화를 볼 때, 그 영화의 현실감의 무게보다 우리가 부딪히지 못했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 특히 우리와 같은 사람에게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순간들에 대하여 매료된다. 그러나 모든 사랑의 순간은 생각보다 시시하다. 유로레일에 몸을 실었는데, 어느 독일부부가 시끄럽게 말다툼을 하고 있다. 조용히 책을 읽기 위하여 자리를 옮겼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잘 생긴 남자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 남자가 말을 걸었다. 이렇게 세상의 기적은 일어난다.

어렵게 시작한 대화를 어디론가 이끌고 가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남자가 내려야 할 비엔나에서 그만 여자도 내리고 만다. 기차에서 내렸을 때, 오후 네다섯시 쯤 되었을 것이다. 이미 골목과 다리 위에 비추는 햇빛은 금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남자가 타야할 미국향 비행기 시간인 다음날 아침 9시 30분까지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짧기도 하지만 모든 기적들은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들은 허니문카 안에서 그만 키스를 하고 만다. 짧은 낮과 어둠이 깃든 골목을 배회하는 시간들은 조금만 궤도를 이탈하면 늘 살아왔던 지리했던 시간들의 0.5도 각도로 또 다른 차원의 시간, 꿈꾸는 것 같기도 하고 달콤한 향기와 풍경들이 풋풋하게 살아넘치는 생애의 한 시점 또한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마 비엔나의 뒷골목이라면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내일과 모레 그리고 또 다른 날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적절한 시간을 선택하고 다시 만날 시간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아마 해 뜨기 전이라는 짧으면서도 추억이라는 형태로 아로새겨질 그 어둠의 그윽한 포용력과 안타까운 사랑으로 깨어나는 낡은 도시의 새벽, 아침이슬의 냉기를 지우기 위하여 깃드는 연인의 가슴의 온기, 한 푼 적선에 시를 써주는 길거리 시인, 늙은 점쟁이의 시어와 같은 예언, 이런 것들은 일상 속에서는 귀찮고 무의미한 장난에 불과하던 것이 아니던가?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는 진실 게임과 같은 대화를 나누며, 오후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보낸다. 그러나 그들이 그 대화를 통하여 사랑의 정체에 대하여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부드러움으로 자신 속에서 솟아나는 그 감정을 지닌 채, 그들은 비엔나의 역에서 헤어진다. 단지 6개월 후에 만나기로만 하고…

이 영화에서 에단 호크의 눈은 호기심과 동경 그리고 수줍음이 함께 담겨서 정말로 소년의 눈처럼 반짝였다. 그러나 줄리 델피의 눈은 푹 꺼져 있어서 피로해 보였고 북구 사람처럼 눈동자의 색이 엷어서 어떤 감정에 빠져 있는 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십대에 맞이하는 사랑에 대한 두 사람의 말끔한 열정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해 뜨고 난 후(After Sunrise)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6개월 후 제시는 비엔나로 가지만 셀린느는 할머니의 장례식 때문에 비엔나에 가질 못한다. 연락처를 가지지 못한 이들은 연락을 취하지 못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셀린느는 노처녀로 살아가지만, 제시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작가가 된다.

해 지기 전에(Before Sunset)

십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그 둘은 많이 변했다. 제시(에단 호크)는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눈빛도 달라져 있었고, 호기심과 동경에 가득한 청년의 눈빛에서 약간의 알코올과 허무함에 절어있는 눈빛으로 변했고, 셀린느(줄리 델피)는 누가 보아도 신경질적인 노처녀로 변해 있었다.

해 지기 전이라는 이 영화 속의 시간과 실제의 시간은 아마도 일치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저녁이 오기도 전에 영화는 끝난다.

때때로 사랑의 실용성에 대하여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랑의 실용적인 측면은 생식적인 측면, 섭리에 따라 육체적인 관계를 맺고 자식을 낳는다는 것, 그 뿐이다. 그 이외에 사랑이 가질 수 있는 프랙티컬한 면은 무엇일까? 오히려 현실적인 세상에서 불필요한 미련과 심리적인 동요를 일으키고 미장원을 가게 만들거나, 향수를 뿌리게 하고, 자신이 생각해도 먹은 것이 넘어올 유치한 언사나 내숭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파리의 조그만 책방에서 십년 전의 단 하룻밤의 사랑에 대한 책을 쓴 제시는 <저자와의 대화> 자리에서 셀린느를 만난다. 그들은 십년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서로를 추억했으며, 지금 현실이 만족할 만하지만 또 얼마나 불행한 가에 대해서 짧은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제시는 오후 7시 30분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그들은 지나가버린 아름다운 사랑과 지금의 지겨운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아름다운 사랑을 선택할 수 없다. 사랑이란 더 이상 살아가는 데 유용하지 않다. 사랑이란 단지 추억해야 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들의 만남은 우정과 같이 맑다. 그들은 공항으로 가는 길에 세느강에서 배를 타고, 잠시 셀린느의 집에 들러 셀린느가 부르는 지나간 사랑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잠시 서로를 쳐다보며 웃다가 영화가 끝나버린다.

해 진 후(After Sunset)

아마 제시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을 것이고, 셀린느는 환경기구에 다닐 것이다. 아마 그들은 다시 만나지는 못할 것 같다. 생은 즐겁지도,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다. 간혹은 서로가 생각나고 사랑이란 불필요한 것이지만 그래도 무의미한 자신들의 삶에서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젊었을 때 잃어버린 사랑을 찾기 위해서 때때로 바람을 피울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리고(And)

김독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아주 평범한 사랑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단 한컷의 베드신도 등장하지 않는다. 키스도 그다지 찐하지 않다. 그리고 두명의 배우는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참으로 조용하다. 사랑보다 비행기 시간표에 충실한 이 영화에는 극적인 반전도 없다. 그렇지만 모든 세상의 사랑은 늘 기적적이다. 사랑 그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적이기 때문에 나는 멜로물을 좋아한다.

참고> Before Sunrise & Before Sunset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목련
    정말 감동입니다..
    마치 영화를 직접보는듯한 착각에 빠졌다가 감니다.
    우리여인님 께서는 체계적인 업무 사고를 가진자, 조리있는 언변구사.로 늘 놀라움을 선물하시는,아마도 그런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여인
    연속극 터취의 영화이더군요. 젊은 시절의 연애와 뭔가 알 것 같은 삼십대 초반의 연애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영화(비포선라이즈, 비포선셋)은 좋은 영화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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