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멤논 집 안의 비극

혜영친구님이 내준 숙제는 풀기가 어렵다.

다음 관계도표는 트로이 전쟁 시 그리스의 총지휘관이었던 아가멤논의 비극적인 가계보이다.

이 가계보를 그리기 위하여 네이버를 한참 뒤적거려야만 했다. 그리고 이 가계보에 숨은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리스인들은 신화 속에서 어째서 이렇게 복잡한 혈연관계를 그려야만 했을까?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과 신화는 다르다. 신화는 개인적인 창작이 아니라, 어느 한 집단이 형성한 것으로 그 속에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표와는 별도로 가계보의 맨 위에 나오는 펠롭스의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자.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는 자신의 딸 하포다메이아에 대하여 욕정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군신 아레스의 갑옷과 불사의 명마를 보유하고 있어서 딸에게 구혼하는 자들에게 마차경주를 통하여 이기면 딸을 줄 것이고, 지면 목숨을 달라고 했다. 펠롭스는 오이노마오스의 마부이자, 하포다메이아에게 군침을 흘리고 있던 미르틸로스에게 자신이 이기도록 해주면, 하포다메이아와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마차경주에서 마차바퀴가 빠져 오이노마오스는 전차에서 떨어져 펠롭스 손에 죽게 되고, 펠롭스는 미르틸로스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를 바다에 빠트려 죽인다. 미르틸로스는 죽으면서 펠롭스를 저주한다.

이 이야기에서 펠롭스는 미모의 아내를 순결한 상태로 얻게 되지만, 장인은 근친상간의 욕망을 달성하지 못한 채 죽고, 마부 미르틸로스는 연모하던 연인과의 하룻밤은 커녕 살해당하고 만다.

펠롭스와 하포다메이아는 결혼하여 가계보에 등장하는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를 낳는다.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는 배다른 형제를 죽이고 미케네로 도주하여 형 아트레우스는 왕이 된다. 동생 티에스테스는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하여 형수 아에로페와 통정을 하여 형의 왕위를 찬탈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도망하여 자기 아들로 키운 형의 자식을 자객으로 보낸다. 아트레우스는 자객을 해치우고 난 후, 그 자객이 자신의 아들임을 안다. 그는 화해를 가장하여 동생과 그의 자식 둘을 초청한 후, 동생의 자식들을 몰래 요리하여 동생에게 내놓는다.

그를 안 동생 티에스테스는 도망하여 신탁에 물으니 “형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친딸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아비라는 신분을 감추고 딸 펠로피아를 범한다. 펠로피아는 자신을 범한 티에스테스의 칼을 간직한다. 펠로피아가 임신한 그 즈음에, 미케네에는 이들의 잔혹한 행위의 저주로 흉년과 기근이 들어 왕 아트레우스는 동생을 찾아 참회코자 미케네를 떠나 방랑하던 중 펠로피아를 만나고 그녀가 조카인 것을 모른 채 결혼한다.

펠로피아는 아이기스토스를 낳자마자 버렸다. 그러나 아트레우스는 이 아이가 자신의 친자식인 줄 알고 찾아서 기른다. 아이가 장성했을 때,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가 티에스테스를 잡아왔고, 아트레우스는 아이기스토스로 하여금 티에스테스를 죽이도록 한다. 이때 아이기스토스는 어머니가 간직한 칼을 들고 티에스테스를 죽이러 간다. 티에스테스는 그 칼을 보고, 여차저차 이야기하니 몰래 그 이야기를 엿들은 펠로피아는 자신을 범한 자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고 그 칼로 자결을 한다. 아이기스토스는 어머니의 피가 묻은 칼을 들고 가서 티에스테스를 죽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트레우스가 신들에게 감사의 제물을 바치려고 할 때 그를 살해한다.

그 후 티에스테스와 아이기스토스는 한동안 미케네를 다스리다가,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공격에 패배, 도주하여 망명지에서 그만 티에스테스는 죽는다.

아가멤논은 피사의 왕 탄타로스를 죽이고 그 부인인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아내로 취했다. 둘 사이에는 이피게네이아와 엘렉트라, 그리고 오레스테스가 있었다.

아가멤논은 그리스군의 총지휘관이 되어 트로이로 출항할 때, 아르테미스의 진노로 배들이 묶이자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산 제물로 바치고 트로이로 간다.

그 틈을 빌어 아이기스토스는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통정을 하고, 전쟁에서 돌아온 아가멤논을 독살한 후, 미케네의 왕이 된다.

엘렉트라는 어린 오레스테스를 포키스로 보낸다. 성인이 된 오레스테스는 “네 아비를 죽인 자들을 죽이라”는 신탁을 받고, 미케네로 돌아가 아이기스토스와 어머니인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인다.

여기에서 인간이 지닌 질투와 욕망들이 전개되고는 있으나, 신화 속에는 구조적인 특징이 있다. 그래서 후세의 작가들이 유려한 문체와 오페라 등에서 이 신화를 인간의 감정과 관계의 드라마 속에서 비극적인 그림을 그리지만, 신화는 오히려 냉엄하여 비극적이다.

이 이야기를 그려보면, 아래와 같이 대비된다.

1. 오이노마오스는 딸을 탐하다가 오히려 죽는다. 딸은 자신을 살해한 펠롭스와 결혼한다.
1‘ 티에스테스는 신탁에 의하여 딸을 범한다. 딸은 자살을 하고 그녀의 남편은 살해당한다.  

2. 미르틸로스는 하포다메이아와의 하룻밤의 동침을 꿈꾸다가 약속을 저버린 펠롭스에 의하여 죽는다.
2‘ 아이기스토스는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통정을 한 후, 아가멤논을 죽인다.

3. 펠롭스는 근친상간을 욕망하는 장인을 살해하고, 하룻밤의 통정을 요구하는 미르틸로스를 죽인 후, 하포다메이아와 결혼한다.
3‘ 오레스테스는 근친상간의 결과인 이아기스토스를 살해하고, 부정한 어머니를 죽인 후, 존속살해죄로 재판을 받는다.

펠롭스 대에 벌어졌던 일들의 과잉과 부족을, 자식들 대에서는 정반대의 과잉과 부족으로 벌충하고 있는 것이다. 펠롭스 대의 경우 비극의 시발은 하포다메이아에 대한 부정한 욕망이었지만, 펠롭스의 자식 대의 경우 미케네의 왕위에 대한 욕망이다. 펠롭스는 하포다메이아를 둘러싼 근친상간과 부정한 관계를 방지하기 위하여 살인의 죄를 범하지만, 그 자식의 대에서는 왕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부적절한 관계와 근친상간이 오히려 수단으로 이용된다.

혜영친구님이 낸 숙제는 질투에 대한 문제였지만, 그것에 대한 해답은 남자는 자신의 DNA를 50% 지닌 자식을 퍼트리려고 하는데, 여자가 다른 DNA 쪽에 눈을 돌리기 때문에 질투하고, 여자는 자신의 배에서 태어난 자식은 모두 자신의 DNA를 50% 지니고 있는 데, 남자가 자신과 자신의 자식을 돌보지 않고 다른 여자에게 가려고 하기 때문에 질투한다는 서리풀님의 글에 있다. 이 글을 보면서 질투란 폄하되어야 할 가치가 아니라, 종족보전을 위한 방어기제라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단지 혜영친구님이 낸 숙제에는 안정된 관계구조가 깨져버렸을 때, 그 균형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그 균형을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을 시사하는 점이 있다.

예전에 1987년 육이구 선언이 발표되고 난 후, 육삼공(6월 30일)부터 우리에게 부과된 것은 민주의 과실이 아니라, 오히려 앞길을 가늠할 수 없는 혼란이었다. 민주주의가 몇월몇일자로 배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기에 환호했지만, 민주주의란 퍄쇼 권위주의보다 수용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었던 같다. 권위주의 때에 형성되었던 평형관계에서 민주주의라는 세계로 텀벙 뛰어들었을 때, 절로 평형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그때의 파문은 계속 출렁이며 동심원을 그리며 우리의 삶에 고달픈 궤적을 그리고 있지만, 과거보다 어느 면에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으며, 사회전체가 시끄럽지만 발랄해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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