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라는 것

때때로 숙명이나 운명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나나 우리들 같이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단어는 왠지 위대하거나 지나치게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숙명이나 운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더라도, 비극적이거나 위대하지는 않아도, 우리는 나름대로 괴로움이나 가난을 겪거나 아니면 아무런 의미없는 행복을 누리거나 한다.

친구가 “나의 운명이 왜 이러냐?”라고 나에게 말했을 때, 놈의 얼굴에 그려진 처절함을 바라보며, 나는 실소를 날릴 수 밖에 없었다. 놈이 “난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느냐?”라고 했다면, 아마 놈의 말에 공감을 하며, 놈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우리의 불행은 너무도 소소해서 조금이라도 과장을 할 경우, 늘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아니 왜? 그렇다면 나의 운명이 그런대로 괜찮다는거냐?” 나의 웃음에 놈은 그렇게 물었다.

한국을 떠나 있던 삼년 반이라는 세월에 불행이라는 것이 그토록 인과율에 입각하여 놈에게 다가왔을 줄은 몰랐다.

홍콩에 있을 동안 단지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놈이 위암에 걸렸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는 것이었다.

놈은 1996년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흥의 기아자동차 앞에 비싼 권리금을 주고 가게를 차렸다. 본인 말대로라면 처음 몇 달은 떼돈을 벌다가, 내가 홍콩으로 떠나고 얼마되지 않아 기아자동차가 망해서 파리 만 날리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어느 중소기업에 들어가 잡비라고 벌겠다고 영업을 하다가, 후배를 만났다. 후배의 도움을 받다 보니, 보증을 서달라는 놈의 부탁에 아파트를 담보잡히게 되었다. 꼭 연속극처럼 한두달 후에 후배의 회사가 부도가 났고, 집을 날린다.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그만 위암에 걸렸고 수술을 했다. 아내는 자신이 입원해 있는 동안 아파트가 날아가 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어떻게 남편이 이럴 수가 있을까 하고 점쟁이한테 갔다. 점쟁이는 남편에게 여자가 있는 데, 그년이랑 작당을 하여 재산을 빼돌린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병원에 누워 있는 놈에게 이혼장을 남겨두고, 자식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퇴원 후 처가에 가서 변명을 해도 아내는 듣지 않았고, 설령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고 하여도 아내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담보로 내놓는 사람과 살 수 없다고 했다. 집도 절도 없이 연로하신 부모님 밑으로 기어들어가 근근히 밥술을 얻어먹게 된다.

이 시점에 나는 홍콩에서 돌아왔다. 나는 돌아온 즉시 놈의 불행 중 가장 최대의 재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놈이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임을 알았다.

가족은 대체로 서로 사랑하던지, 서로 무관심하던지, 서로 증오를 하는 데, 놈의 식구들은 마지막에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치열한 증오라면 좋은 데, 늘 사소한 증오가 넘쳐나고 있었다. 놈의 어머니는 쿠시렁거리며 몇시간 씩 걸레질을 하며 머리칼이 어쩌고, 세수한 놈의 낯짝이 그 모양이냐 등으로 놈을 괴롭혔고, 아버지는 밥을 먹다말고 저 놈만 보면 소화가 안된다 하거나 따로 밥을 먹으면 저 놈은 뭐 잘났다고 혼자 밥을 먹느냐고 역정을 냈다.

약봉투를 베개머리에 두고 백수로 지내던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가 전화를 하여 자리를 마련해 줄테니 함께 일하자 했다. 약값이나 벌어보자고 나갔더니, 놈은 IT사업은 투자라며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려오라 하여 돈을 빌려다 주었다. 6개월 동안 일을 해도 봉급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다. 억울하지만 놈과 찢어질 수 밖에 없었다. 품삯을 받지 못한 만큼 친구 놈이 하던 아이템을 들고 나와 자신 나름대로 사업화하려고 했더니 점심값이다 기름값이다 이래저래 돈이 들어가 이제는 부모님에게 손조차 벌릴 수가 없다. 그러던 와중에 딸아이는 루푸스 병에 걸려 투병을 하게 되고, 아들놈은 과외 한번 제대로 시켜보지 못하니 이게 무슨 운명이란 말이냐고 투덜댔다.

“야! 오늘 돈이 없어서 길거리에 차를 세워 놓았더니 견인차가 끌고 갔다. 내일 청주에 가야 하는 데 큰일이야. 차를 찾자면 한 오만원이 필요하다. 오만원만 빌려줘. 무슨 인생이 이렇게 더럽고 치사하냐? 빌어먹을 운명을 타고 난 것도 아니고…”

나는 놈에게 오만원을 주었다.

오만원을 들고 차를 찾으러 가는 놈의 뒷등을 볼 때, 놈에게 남은 세월이 아득했다. 아득한 놈의 앞날을 보자 나의 앞날 또한 도무지 뚜렷한 것이 없었다.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릴 때, 저녁의 식고 습기찬 더위와 어둠이 나를 덮쳤고, 더 이상 버스를 기다릴 수가 없다는 공황감이 나를 휩싸기 시작했다. 그래서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몇 달간 나를 불안하게 했던 골목 어귀의 그것에 대한 정체를 알고 말았다.

그것은 골목 앞의 간선도로가 교차되는 사거리에 세워진 아주 불순하게 생긴 교회였다. 마치 찜질방처럼 생긴 교회, 그것은 도로의 끝에 펼쳐져야 할 한 자락의 하늘을 가로막고 올라서서 영원히 지상에 못 박힌 우리 삶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예배당의 실체를 늘 혼돈하게 만듦으로써 성속(聖俗)을 애매하게 하는 것이었다.

더더군다나 그 놈의 교회- 어머니와 아버지, 형과 형수님이 다니고 있는 -가 떡하고 내 앞에 버티고 서서 너는 배교자이다 라는 울림으로 내 앞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했던 모양이다.

택시 요금을 치르고 내렸을 때, 나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어떻게 놈의 불행은 그렇게 논리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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