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페이지

그 일이 발생한 것은 작년 가을, 부천으로 가는 전철 속에서다.

나는 오래 전에 밑에서 근무했던 여직원의 결혼식에 가고 있었다. 그 여직원의 결혼식에 가야할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기에 간신히 그녀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였고, 함께 일하면서도 나는 애착을 느낄 수가 없는 그런 직원이었다.

그리고 부천이란 나에게는 너무 낯설어서 단지 <엽기적 그녀>의 무대 정도로 밖에 알지 못하던 곳이라서 내가 왜 그 여직원의 결혼식에 가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차창 너머로 오류동, 이런 곳들이 스쳐지나는 것을 망연히 보고 있었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정오의 길고 느린 햇빛이 철길 주변의 건물의 벽과 지붕 위를 비추고 있을 때, 그만 나의 생의 마지막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졸고 있지 않았고 차창을 스쳐 지나는 풍경들을 뚜렷하게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맞이할 수 있는, 휴지에 스미는 먹물처럼 죽음이 다리를 지나 복부에 까지 다다라 조만간 심장에 스며들 바로 그 직전에 이르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나의 생애를 뒤덮었던 서글프고 아팠던 기억들이 죽음과 함께 뒤섞이며, 가슴 속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들을 맞이하며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었고, 말할 수 없는 평화가 나에게 다가오면서 아주 나른한 기분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죽음을 맞이하려는 순간, 나는 다시 시간을 거슬러올라 내려야 할 역에 당도했고, 여직원의 결혼식을 보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용산에서 한양대로 가는 전철을 타고 겨울이 다가오는 서울의 뒷등걸을 보았다. 낙엽들이 아직도 떨어지고 오후의 햇빛은 느긋했다.

자신의 죽음의 그 시간을 맞이했던 나로서는 그 모든 풍경 속에 허무함과 살아있는 순간들의 찬란함이 뒤엉켜 슬픔과 황홀 어디인지를 모를 침묵 속에 빠져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날의 일상 속으로 다시 들어간 나는 그 순간을 까맣게 잊었다.

그러나  오늘 퇴근시간 불현듯 ‘왜 죽음의 순간, 나는 그렇게 평화로왔을까?’하고 중얼거렸다.

그것은 용서였다. 그 모든 사건들과 스쳐 지난 사람들에 대한 용서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용서였다. 그 모든 고달팠던 생을 지나와야 했던 한 인간에 대한 스스로의 용서가, 모든 지나간 생을 용납하고 죽음을 감내할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 생각된다.


목련님의 질문에 대하여…

이러한 경험은 너무 불현듯 다가와서 마치 몽롱한 거짓처럼 느껴지고, 어디까지가 경험이고 무엇이 저의 상념이 만들어 낸 것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작년 12월 6일(이러한 느낌이 다가온 것은 12월 3일)에 쓰여진 글에는

만족스럽게 석양빛에 그을리는 내 지나간 삶을 애처롭게 쓰다듬으며, 온갖 갈등과 괴로움과 자기연민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에게 미소 지으며 이제는 안녕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무 따스하게 마지막이 가슴에 스며들었고 긴 한숨 속에 모든 세월이 흘러나왔지만, 현실적인 시간으로는 거의 영점 몇초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마 그 순간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오분전까지의 나의 온갖 세월을 모두 이해했던 것 같다. 오지도 않은 세월을 포함해서 말이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목련님께서 말씀하신 추상이란 경험의 순간을 지나고 나면, 자신의 내적 체험을 추상화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추상이란 경험의 모든 것을 기억에 저장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점들에 맺힌 경험들, 광속으로 날아와 벽에 부딪혀 터지는 빛의 무늬며, 죽음이 몰려드는 순간 지난 생의 모든 순간들이 재잘대던 그 소리와 파도처럼 다가오던 죽음에 녹아들던 평화의 색조들, 이런 것들을 언어(사고)로 띄워 올리기에 말(언어)들은 나약하고, 오래된 삶이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곧 사라져버릴 허무라는 것을 깨닫는 그 시점에 삶과 화해를 하고 웃음지으며 <안녕~!>하던 그 순간들을 추상이 아닌 언어로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에 대해서는 바로 오분전의 시간이라도 말해질 수 없는 그러한 것이기에 더 이상 말할 수 없지만, 죽음 오분전의 나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창문이 열려진 방의 침대 위에서 세상의 온갖 소리와 오후에 가득한 빛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 죽음의 공포에 치를 떨었을지 몰라도,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평화와 행복 속에서 죽음이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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