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시절 -15

열 여섯의 나이로 사랑에 대하여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이를 더 먹는다고 사랑에 대하여 뚜렷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잿빛 세월 건너기를 하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 사랑이란, 자신의 체험에서 우려낸 것이라기 보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찾아낸 건더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건더기란 것은 우리가 건너왔던 초라한 사랑을 능멸할 만큼 지나치거나, 철부지에게 사랑에 몽롱한 환상 만을 남겨줄 뿐이다.

그 놈의 사랑은 영화나 소설로 팔아먹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늘어난 츄리닝처럼 시쭈구리한 우리의 삶과 잿빛 여울과 같은 빌어먹을 세상에 그나마 한줄기 빛을 던져주기 위한 것이지, 뜨거운 열정에 재가 되어 사그러져 가는 비련을 맞이하거나, 혹은 ‘그 후로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 라는 동화를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다. 헤어지면 죽을 것 같던 사랑도 찢어지고 나면 대충은 살 만하고, 잘 나가 결혼에 꼴인을 하여도 몇년만 지나면 지루하기가 그지 없어서 서로 절반의 원수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어짜피 죽기 전까지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나흘 간의 불장난 끝에 죽었을 때 나이가 16살과 14살이라면, 내 나이 열 여섯이란 사랑하고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나이였는지도 모르지만, 당시 나에게 사랑이란 멀고도 아득한 무엇이었다.

중학교 때, 우정에 대하여 가치를 두고 친구에게 집착을 했을 때, 그들은 귀찮아 했고,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더 이상 친구들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자, 오히려 그들은 나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우의 쌓기를 포기하고, 유년부터 누려왔던 홀로 있기를 택했을 때,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애착이 너무도 어린 나이에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약간 자유로웠는지도 모른다. 그 후 자신을 누군가와 무엇에 붙들어 매려고 하는 안타까움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도 아니고, 여자와 사귄다는 것은 번거로움일지도 몰랐다. 아니 그것보다는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을 지도 모른다.

사랑을 해보지는 않았어도, 종로의 한모퉁이에 있던 이본동시상영의 삼류극장에서, <연소자관람불가>라는 버스의 운전석 뒤에 붙어있던 <인화물지입엄금>처럼 난해한 딱지가 붙어있는 영화들을 통해서 배우기는 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을 통해서 조그만 자식이 그만 “사랑이란 할 만한 것이 못 된다”라는 결론을 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애들은 나이에 걸맞는 영화를 보아야만 한다.

중학교 이학년 어느 날, 오랫동안 극장을 가지 못했던 나는 탑골공원 뒤의 낙원극장으로 가서 극장 이층의 맨 앞줄에 앉았다. 영화는 <몬도가네>와 <초원의 빛>이었다. 몬도가네가 막 끝났고 “십년 전통의 종로 3가 천우전파사 어쩌고 저쩌고” 광고를 했고, 애국가와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는…”으로 시작하는 대한뉴우스가 끝난 후, 초원의 빛을 시작했다.

봄이었던 것 같은데, 이층의 어둠 속에 나 혼자였고 몹시 추웠다. 영화를 보면서 점차 열기에 몸이 들뜨기 시작했다. 뚜렷하게 영화의 줄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사랑이 젊은이들을 얼마나 괴롭게 하며, 절망 속에 깃들게 하는 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였지만 “에이 옷 벗고, 같이 자지. 빙신들 같이…” 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다.

사랑하던 젊은 두 사람은 결합하지 못한 채, 남은 생을 시의 한 구절처럼 ‘다시 되돌릴 수 없어도 서러워 말지어다’ 라며 살아갈 수 밖에 없거나,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 지기’를 쌔가 빠지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월마(나탈리 우드)가 차를 타고 버드(웨렌 비티)의 집에서 떠나며 눈물 지을 때, 나는 괴롭고 처참한 심정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워즈워드의 시가 화면에 한줄 한줄 떠 오를 때, 사랑의 추억이란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지 못한다면, 헤어나지 못할 질곡일 것만 같았다. 아니면 통속에 손을 집어넣고 청춘이 간직했던 사랑의 추억과 설레임, 그 모든 것을 돈과 출세와 하찮은 생활들과 바꿔치기 함으로써 구원을 얻어야 할 그들이 몹시 불쌍했다.

하기야 엘리아 카잔이 자신의 영화에 나오는 젊은이들을 행복하게 놔둔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까.

결국 <몬도가네>도 못보고 집으로 돌아와 볼거리(이하선염)라도 하는 것처럼 무너져 내렸고, 열에 들떠서 이틀인가 결석을 했다. 문방구에서 장난감 권총을 훔쳐서 집 마루 밑에 감춰 놓고서 죄악감에 빠져 슬프고 몸살이 들었던 어렸을 적처럼 아팠다.

그리고 그 아픔처럼 사랑이란 고통스러운 것이란 생각을 가졌는 지도 모른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다리우스 09.05.19. 13:32
    이본 동시 상영 오늘따라 그 삼류극장 맨 앞줄과 대한 뉴스의 뻑뻑함이 눈앞을 후려치며 가려서는 것 같습니다. 참 우스운 시절이었다는 지의 부재가 빚어낸 그야말로 정신적 영역에서 호롱불을 대신할 전기가 들어서지 못했던 물적 새것의 시대란 자본주의를 예비했던 시대의 뒤안길을 소설따라 배회해 봅니다. 아, 이본동시상영 극장에 가고 싶어라,,,삼본까지도 가 봤던가! ㅜ
    ┗ 旅인 09.05.19. 15:15
    저는 삼본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삼본은 영화와 쇼? 광고, 애국가, 대한 늬우스, 그리고 영화. 영화 한편 보는데 시간 많이 걸렸죠.

    다리우스 09.05.19. 13:34
    그러게~ 왜 그들은 옷벗고 같이 자지, 한적하고 쓸쓸한 공원이나 바닷가만을 배회했던 것일까, 감질나게 관객들을 대사로만 우롱하면서 말로 옷을 벗었던 것,ㅜ ㅎㅎ
    ┗ 旅인 09.05.19. 15:12
    아마 그 말을 하게 된 것은 버드의 친구들이 윌마를 성폭행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왔고 그 장면에서 너무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럴 바에야 서로 아낀다면 함께 잤다면 그런 일도 없으리라는 안타까움 때문에…

    샤 론 09.05.19. 20:26
    중고교때 영화를 많이 보신거예요?..전 딱 2번 본 것 같아요..졸업기념으로 학교에서 단체로 갔고 ..한 번은 반공영화던가…기억이 안나네요..자발적으로 간 적은 없지요..
    ┗ 旅인 09.05.20. 10:35
    500편 보았고 그 중 한 100편 정도는 영화관에서 그것도 이본동시상영에서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영화하면 절 능가할 놈은 없었습니다.
    ┗ 샤 론 09.05.20. 12:29
    와아! 엄청납니다..시골 사람들의 저와 거의 비슷했죠..그런데 이본 동시 상영이..그러니까 이본이란 것이 무슨 뜻이 있나요?..
    ┗ 旅인 09.05.20. 14:01
    500편 본 것에 대한 계산식은 이 글 녹슨 시절 03편에 나옵니다. 이본동시상영이란 二本立(て)를 한국말로 그냥 쓴 것으로 같은 값에 영화 두편을 상영한다는 뜻입니다. 주로 삼류극장에서 이미 한물간 영화, 그래서 화면 위로 스크래치 비가 내라는 영화, 상영하다가 필름의 일부분이 덜커덕 짤리는 영화들을 상영했지요. 당시에 돈없고 갈 곳없는 실업자들이 푼돈으로 서너시간을 보낼 수 있었죠.

    삭제된 댓글 입니다.
    ┗ 旅인 09.05.20. 10:38
    그럼 불란서 문화관도 종종 가셨겠네요? 그때 이상했던 것이 자막이 영어로 나오는데 그 자막을 보면서 웃고 있는 관객은 고삘이 저희들 뿐 이었거든요. 하여간 당시 만 해도 대학만 들어가면 고등학교 책가방 홀랑 뒤집어 엎고 놀기만 햇으니…

    산골아이 09.05.20. 00:05
    별들의 고향…. 처음 본 성인영화…. 지지직거리는 화면으로 본 별들은 고향은 충격이었어요. 며칠 동안 경아가 되어 눈덮인 곳에서 수면제를 삼키는 죽음을 동경했다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유치짬뽕이지만 그땐 아주 심각했답니다.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이장희 노래와 안인숙과 신성일의 느끼한 대화도 생각나네요.
    ┗ 旅인 09.05.20. 10:42
    아저씨 추워요! 꼭 껴안아 주세요. 저도 그 영화보면서 추웠습니다. 닭살이 와장창 돋을 정도로… 저는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을 입사가 확정되고 빈 시간에 처음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경아가 거울에 루즈로 쓴 아저씨 안녕!하고 쓴 글에게 그만 눈물을 흘릴 뻔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70년대란 어떤 의미인가를 조금 생각해보았죠.

    라비에벨 09.05.21. 23:20
    아~빈대극장 좋은 이름이 있었지만 항상 빈대극장이라 불렀던 기억이^^태권영화 한용철이란 이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돌아온 외다리 등등등…전 수준이 좀 낮았죠?^^한국 애정영화는 신성일 주연이 대부분 이었던것 같고 목소리도 매력있었는데 그후 더빙하지 않은 목소리 듣고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얄개도 생각나고 김정훈도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당시엔 극장에서 담배연기도 자욱했었던 기억도…
    ┗ 旅인 09.05.22. 10:21
    빈대극장? 멋있는 이름인데요? 깨평을 한편 더 해주는 영화관. 부산 동대신동에 가면 서부극장이라고 있었는데 제 사촌들은 <서부창고>라고 불렀죠. 예전에는 김일의 레슬링도 영화관에서 상영해주었던 적이 있지요. 저도 외팔이 시리즈, 박노식씨의 영화, 신성일씨 영화는 별루, 아무 것이나 다 보았습니다. 만화영화라면 제일 좋았고요. 고교얄개는 별루, 임예진 이덕화 영화는 몇편. 그렇지요.
    ┗ 다리우스 09.05.22. 13:17
    돌아온 외팔이,,, 아, 늘 보고 싶었는데,,,극장간판만,,,ㅜ
    ┗ 旅인 09.05.22. 13:30
    왕유의 독비도 시리즈 때문에 골목에서 애들끼리 창창창 하고 칼싸움도 하고 했는데… 후일 서극의 칼에 나오는 외팔이와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유리알 유희 09.05.22. 12:56
    남녀가 자는 문제, 그것은 매우 궁금한 무엇, 기대, 두려움, 그런 시간을 살았던 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지금도 애절한 눈빛을 교환하는 창춘남녀의 사랑장면이 나오면 가슴이 뜁니다. 어떤 정사신보더 더 저를 달뜨게 하니 저는 그 시기에 고착되어 버린 것인가? 저는 화면에 비가 내리는 저 하늘에 슬픔이, 그 영화를 중학교 때 처음으로 본 거 같아요. 그리고 여고 시절에 연흥 극장엘 혼자 갔다가 치한이 제 무릎팍에 손바닥을 대는 바람에 소릴 질렀고 그 후, 홀로 가는 영화관람은 끝! ㅎㅎ 사랑은 고통, 그걸 너무 일찍 알아 버린 울 여인님! 어떡해요. ㅜㅜ
    ┗ 다리우스 09.05.22. 13:14
    하여 너무 일찍 고다마 싯다르타의 길로 접어드신 건 아닐까? 헉 죄송합니다, 끼여들어서,,,^^;
    ┗ 旅인 09.05.22. 13:37
    이용복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제가 초딩 2학년 때인가? 국제극장에서 개봉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세종로 한 가운데 이순신 장군께서 안계셨고 광화문 지하도도 없었습니다. 극장 안에서 어른들은 우는데, 저는 그 가난함이 고통스럽기만 했던 기억이… 종로에 우미관, 서대문에 화양극장, 영등포의 연흥극장 등이 서울의 재개봉으로 유명한 극장이었던 것으로…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 친구들이 극장갔다가 재수없이 호모들한테 당할 뻔 했다고 투덜대곤 했는데, 저는 그렇게 들락거려도 한번도 그런 일은 없었으니…
    ┗ 旅인 09.05.22. 13:38
    다리우스님, 그 영화보고 구도자의 길에 들어섰다면 지금쯤 중생제도업에 종사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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